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69)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69화.(169/390)
169화.
* * *
이튿날, 아침.
잔느는 새벽같이 일어나 내 과제 준비를 도왔다.
내 어깨에 로브까지 둘러준 그녀가 말했다.
“좋아요. 아주 의젓해 보이시네요.”
“서군의 색이네.”
각 군에겐 상징색이 있다.
중앙군은 흰색.
동군은 짙은 남색.
남군은 채도가 낮은 녹색.
북군은 선명한 보라색.
그리고 서군은…….
“빨간색.”
“아가씨와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지요.”
잔느가 내 뺨을 콕, 찌르며 말했다.
그러곤 몸을 낮춰서 나와 시선을 맞췄다.
“할 수 있는 한 노력하시고, 넘치지 않는 선에서 용맹하셔요.”
죽음도 불사하는 용기를 보여라.
죽어라 노력해라.
그런 말이 아니라서 웃음이 났다.
‘할 수 있는 한…… 넘치지 않는 선에서…….’
노력하되 몸을 망치면서까지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제가 어제 무어라 말씀드렸지요?”
“나는 아빠의 보물이고, 오라버니들의 소중한 가족이고, 잔느에게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아이라고.”
“그래서요?”
“그러니까 고작 승부 따위로 내 가치가 결정되지 않는다고! 내 가치를 결정하는 건 내 마음이라고!”
“똑똑하기도 하지.”
잔느가 날 끌어안고 내 얼굴에 뺨을 비볐다.
나는 까르륵 웃었다.
‘엄마는 이런 건가?’
곁에만 있어도 마음이 편해지고, 조금도 무섭지 않은 기분.
‘뭐야. 양육자한테 사랑받는 건 이렇게 굉장한 일이구나.’
아빠도 날 엄청나게 사랑해주지만, 잔느처럼 감정을 말로 잘 전달해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등 뒤에서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또 자기들만의 세계…….”
음울한 목소리까지 들려온다.
살짝 고개를 돌리자 오라버니들이 어두운 얼굴로 나와 잔느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빠까지?’
마치 총애를 빼앗긴 후궁처럼 음산한 표정으로 잔느를 쳐다본다.
“아빠?”
그러자 움찔한 아빠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러곤 무서운 눈으로 잔느를 쳐다보다가 내 어깨를 단단히 잡았다.
“대충 노력하고, 얼렁뚱땅 용감하게 굴어.”
“……응?”
“너는 내 보검이야.”
……잔느의 말을 이상하게 표절했는데?
그렇다고 지적하기엔 아빠의 눈이 너무 이글거린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올게요.”
“황궁에서 혈족들과 너를 지켜보고 있으마.”
“네!”
오라버니들은 내내 불안한 표정이었다.
발자크가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로 가도 되겠어? 어마어마한 놈이 습격했다면서.”
“그래, 에릴로트.”
“구울 토벌 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
습격 사건은 하룻밤 만에 제국 곳곳에 퍼졌다.
‘그야 무려 외궁에 괴한이 들어온 거니까.’
황제와 할아버지가 크게 분노했다.
황제는 황가의 위신이 상한 것에, 할아버지는 나를 노린 것에 화가 난 것이다.
요슈아가 좋은 말로 나를 설득했다.
“습격이 있었으니까 과제에서 빠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야.”
“그러면 내가 승부를 피하기 위해 말을 꾸며냈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겠지.”
리시먼드까지 나섰다.
“하지만 에릴로트─”
“마경으로 중계될 거야. 바보가 아니고서야 또 습격할 리 없어.”
“…….”
“그리고 마경으로 지켜보다가 문제가 있으면 구해줄 거잖아?”
그 말에 아빠가 커흠, 헛기침했다.
오라버니들도 약간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
“그야 당연히 내가 구해주러…….”
“내가 널 구하러…….”
“잔느가!”
나는 활짝 웃으며 잔느를 보았다.
잔느도 다정하게 마주 웃어주었다.
“물론이지요.”
“응, 든든해!”
어제도 위험한 순간에 히어로처럼 등장했다고.
그런데 이상했다.
“…….”
“…….”
등 뒤에서 또 맹렬한 기세가 느껴졌다.
슬쩍 돌아보니 아빠와 오라버니들이 또 총애를 빼앗긴 후궁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손수건이 있었다면 물어뜯을 것 같았다.
그렇게 과제 <구울 토벌>이 시작되었다.
* * *
황궁.
종년 축제의 하이라이트, 원화군의 승부를 지켜보기 위해 귀족들이 모였다.
주변을 둘러보던 귀족이 곁에 있던 귀부인에게 속삭였다.
“맙소사, 이번 관람의 초청객들 수준이 상당하군요.”
“제국의 초고위층 귀족 외에 타국에서도 손님들이 관람을 청했으니까요.”
“알리기오사의 왕세자, 라온트라국의 공작, 팔라사의 마탑주…… 우리 제국의 6공작이 모두 모였습니다.”
“이번 기의 원화들은 유난히 굉장한 가문의 자제들이잖아요.”
‘중앙군’엔 샤토브리앙 공작의 딸, 실린.
‘동군’엔 비페리 공작의 손녀, 세바스티아.
그리고 ‘서군’엔…….
“그 에릴로트 아스트라.”
“아스트라 공작이 특별히 귀애하는 아이라지요.”
“용을 가진 소녀라잖습니까.”
귀부인이 부채를 나붓나붓 흔들며 주변을 둘러봤다.
“각 가문의 후계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가늠할 수 있는 장이에요.”
“다들 눈에 불을 켜고 관람하고 싶어 하겠군요.”
“그러니 사교계의 거두들까지 모두 모였고요.”
그들이 대화를 마무리하던 때였다.
“황제 폐하 드십니다!”
황제궁과 이어진 거대한 문이 열렸다.
초청객들이 일시에 예를 갖췄다.
공작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이시론 공작이 선창했다.
“칼소이에에 무한한 광영을!”
귀족들이 제창했다.
“광영을!”
“광영을!”
황제를 따라 들어온 황비와 황태후가 미소 짓고, 황제가 가장 상석에 자리했다.
황제는 가볍게 손을 들었다.
“앉으라.”
초청객들이 일시에 의자에 착석했다.
황제의 가벼운 축사가 끝나고, 중앙에 거대한 구(球) 형태의 마도구가 등장했다.
360도로 송신된 화면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마도구였다.
이시론 공작이 하하, 사람 좋게 웃으며 말했다.
“성물인 탄틸라(신의 거울)가 나온 것은 60년 만이로군요. 이번 종년 축제에 기대가 크신가 봅니다.”
“공작가에서 원화군에 뛰어난 인재들을 보내주었으니 기대가 될 수밖에.”
미소 지으며 대답한 황제가 공작들을 쳐다봤다.
샤토브리앙 공작이 허리를 숙였다.
“영광입니다, 폐하.”
비페리 공작과 아스트라 공작 또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황제는 하하, 웃으며 샴페인 잔을 들었다.
“이번 우승자는 누가 될지 지켜보겠소. 탄틸라를 가동하라.”
황제의 명을 받은 마도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탄틸라의 가동 준비를 하는 동안 귀족들이 수군거렸다.
“황제 폐하의 시선이 샤토브리앙 공작에게 오래 머무는군.”
“역시 우승자는 중앙 원화가 아니겠어요?”
“유난히 엉망인 이번 기의 원화군이 돌아가는 것은 실린 샤토브리앙의 통솔력 덕이라잖소.”
“세바스티아 비페리도 기대가 되지요.”
“에릴로트 아스트라는 어떻습니까?”
누군가의 말에 귀족들이 멈칫했다.
그들의 시선이 묵묵히 탄틸라를 지켜보는 아스트라 혈족들에게 향했다.
“가문 내에서야 뛰어난 실력을 증명했다지만, 어디 외부에서도 그럴까요. 너무 어리지 않습니까?”
“군을 통솔해본 경험이 부족해요.”
“마물 조련이라는 가호는 특별하지만, 이번 토벌에 몬스터는 이용할 수 없을 테고요.”
구울은 몬스터에 스며들어 육체를 조종한다.
“바보가 아닌 한 몬스터를 이용할 리 없지요.”
“그 대단하다는 용도 못 쓸 테고요.”
“황제 폐하께서 관람하시는 자리에서 용을 불러들인다면 선전 포고나 마찬가지니…….”
개인의 능력은 뛰어나도, 제약이 많다.
몇 년간 원화로 군을 통솔해온 다른 원화들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지.
“드디어 저 아스트라 공작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볼 수 있으려나.”
“어머나, 너무하셔라.”
아스트라의 3세가 뛰어나다는 얘기는 풍문뿐이다.
직접 함께 전투를 치러본 자들이 허풍으로 떠드는 소리일 터다.
‘가문 내의 교육이 어떻게 황도의 교육을 당하겠어?’
키득거리는 소리를 들은 아스트라 3세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저것들이…….”
애덤이 울컥 인상을 찌푸리자, 로레이나가 말했다.
“조부님 앞에서 멍청한 꼴을 보일 셈이야?”
“하지만 누님……! 칫, 에릴로트 때문에 우리까지 망신을 당하는 게 아닙니까?”
“여기서 그 애가 진짜 우승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 ……승부의 내용만 좋으면 되는 거야.”
그때, 탄틸라가 가동되었다.
떠들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탄틸라의 화면에 집중했다.
화면 속에선 새로운 황궁 묘지로 낙점된 아졸데 고원에 모인 원화군이 보였다.
각기 다른 색의 완장을 찬 수많은 소년병의 뒤로 군기가 휘날렸다.
종년 축제 과제를 주관하는 황제 직속 기사들이 그들 앞에 등장했다.
그러자.
쿵! 쿵! 쿵! 쿵!
소년병들이 일시에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글라데 마 거스! (모든 영광을 제국의 발 아래)] [글라데 마 거스!] [글라데 마 거스!]거칠고도 웅장한 소리를 가로지르고 갑주에 로브를 두른 소녀들이 등장했다.
황제의 대리인인 황제 직속 기사에게 무릎을 굽힌 소녀들이 소리쳤다.
[칼소이에에 무한한 광영을!]화면을 지켜보던 중년의 사내가 말했다.
“중앙군의 무구를 보세요.”
“병사마다 무구가 다르군요.”
“부대로 나뉜 것도 아닙니다. 병사에게 맞춤 제작한 무구를 주었어요.”
과연 실린 샤토브리앙.
사려 깊은 중앙군의 수호자다.
데이몬드와 함께 화면을 보던 한지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중앙군에 돈이 넘쳐서 그런 것뿐이잖아.’
이쪽도 시간과 돈이 있었더라면 그런 무구쯤은 준비할 수 있다.
‘서군은 구울 토벌에 참가할 수 있을 수준의 무구도 겨우 갖췄다고.’
화면에선 계속해서 황제 직속 기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너희들의 피와 살, 땀과 눈물이 이 제국의 미래를 여는 길이 되고─]그때였다.
[기기기기기기기기기기긱긱……!]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일그러졌다.
“뭐야, 성물인 탄틸라의 송신에 오류가 생겼다고?”
“그럴 리가…… 아마톨이다─!”
마력의 파장을 일그러뜨리는 박쥐형 몬스터, 아마톨.
“어둠 속에서 사는 몬스터이긴 하지만…… 아마톨까지 있는 곳이란 말이야?”
처치해야 할 것이 구울 뿐만이 아니라니.
관람하는 귀족들은 물론이고, 화면 속의 소년병들도 당황했다.
[아마톨에게 철은 먹히지 않는다! 은제 무기! 은제 무기를……!]남군의 상장군이 소리쳤다.
그러나 아마톨은 강철 까마귀와 비견될 정도로 빠른 몬스터다.
원화군이 방어 태세를 갖추기도 전에 먼저 공격이 들어왔다.
[크아아아악!] [빌어먹을, 물렸어! 물린 자는 버려라, 아마톨의 졸개가 된다!]아마톨 자체의 물리력은 뛰어나지 않다.
피를 빨리면 육체를 조종당하는 특수 능력이 귀찮은 것이지.
하필이면 덩치가 커서 가장 뒤에 있던 탱커들이 물렸다.
[젠장! 정신 차…… 아악!]눈이 새빨갛게 변한 중갑병들이 거대한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동군 원화인 세바스티아가 소리쳤다.
[산개해라! 흩어져! 아마톨에게 물리면……!]그때였다.
쉭, 쉭, 쉭!
은제 화살이 아마톨의 날개에 박히기 시작했다.
“뭐? ……어? 저건!”
“서군?”
황군의 쓰레기라고 불리는 서군이 정확하게 아마톨의 날개에 투창 급의 활을 날리고 있었다.
“저 연약해 보이는 소년들이 무슨 힘이 있어서 투창 급의 활을…….”
“보세요! 마도병입니다! 마도병이 후방에서 지원해주고 있어요!”
바람을 일으켜서 부족한 힘을 보조해주고 있었다.
‘저게 서군이라고?’
공작들이 놀란 얼굴로 화면에 집중했다.
제 군사들인 만큼 서군을 잘 알고 있는 황제는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아마톨. 암흑 속에서 살고, 어둠이 짙어질수록 특수 능력이 강력해지며…….] [약점은 날개. 왼쪽 송곳니에서 특수한 파장이 있는 체액을 흘리고…….] [체액을 사람의 몸에 투입하여 조종…….]서군이 음산한 얼굴로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스트라 공작이 서군 게스트로 초청된 직계들을 쳐다봤다.
“어떻게 된 것이냐?”
“에릴로트가 어둠 속에서 사는 몬스터에 관한 거라면 자다가도 줄줄 읊도록 가르치라더라고요.”
“……뭐라고?”
“곧 과제인데 이렇게 안 재워도 돼? 그러다 지쳐서 쓰러지면…….”
“사람은 쉽게 쓰러지지 않아. 너희 뭐해, 책 펴.”
“─라고 하던걸요.”
리앙틴의 말을 들은 귀족들이 입을 떡 벌렸다.
‘아마톨이 나올 것을 예상하였다고?’
‘그렇게 가르쳐놨으니 저렇게 정신이 없어도 몸부터 움직일 수밖에…….’
화면 속에서 실린이 이를 악물었다.
[중앙군! 우리도 궁병을!] [옛!]과연 중앙군이었다.
명을 받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탱커들이 궁병의 보호막이 되어주고, 바람을 읽는 자들이 궁병에게 지시했다.
그런데.
[컥─!]활을 겨누던 궁병이 별안간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구, 구울…… 구울이 몰려왔어…….]남군 원화인 리카 델프르가 사색이 되어 중얼거렸다.
뒤는 구울, 앞은 아마톨인 상황이다.
“몬스터들이 협공을 해……?”
비페리 공작이 당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발자크가 급히 데이몬드에게 물었다.
“몬스터 토벌에서 이런 경우가 있었습니까?”
“그럴 리가.”
데이몬드마저 굳은 얼굴로 중얼거리던 찰나.
[당황은?!]우렁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렁찬…… 에릴로트 아스트라의 목소리.
그러자 서군이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죽음이다─!!]몬스터의 협공에 우왕좌왕하던 서군이 흠칫, 자세를 바로 했다.
에릴로트가 휙! 도약하여 아마톨의 날개를 잡았다.
놀란 아마톨 한 마리가 황급히 날아올랐다.
[기기기기기긱!]아마톨을 이동수단으로 쓴 에릴로트가 구울 쪽으로 파고들었다.
“어어?! 저러다 공격당할 텐데!”
“너무 급했어!”
관람하던 소년들이 소리쳤다.
그런데.
[그아아아아아아아아!]구울이 공격하자, 아마톨을 쭉 끌어내려서 막아냈다.
쾅!
구울의 음기가 아마톨에게 직격했다.
같은 무리가 공격당하자, 인간을 공격하던 아마톨의 시선이 구울에게 향했다.
[오냐, 어디 둘이 치고받아봐라.]입을 떡 벌리고 화면을 지켜보던 한지혁은 떠올렸다.
‘맞다, 저 녀석…….’
정치인 보좌관 출신이었다.
여론조작이 취미.
이간질은 특기.
첫 번째 삶에선 무려 이 세계에 메인 악역이었던 정치질의 귀재였던 것이다.
‘에릴로트─!’
주먹을 꽉 쥔 데이몬드가 벌떡 일어났다.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