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7)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7화.(17/390)
17화.
* * *
중정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레이첼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딱딱하게 굳어져 버렸다.
하인들 또한 어쩔 줄을 몰랐으며, 병사들은…….
“돌아 버린 건가?”
“살다 살다 별 헛소리를 다 들어 보네.”
“레이첼 부인이 저런 성격이었다고? 소름이 다 끼치는군.”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마지막 말은 엔조였다.
그가 하이디, 베티에게 안겨 있는 내게 달려왔다.
나를 꼼꼼하게 살핀 그가 아버지를 쳐다봤다.
“다치시진 않으셨습니다.”
그 말에 레이첼이 흠칫했다. 아버지에게 와들와들 떨리는 손을 뻗은 그녀가 황급히 변명했다.
“자, 장군님, 이건, 그러니까…… 제, 제 말을 들어 보시면 이해가 가실…….”
“그 입─”
쿵─!
태산이 짓누르는 것 같은 압박감이었다.
아버지가 가호를 발현시킨 거다.
중정 구석마다 비치된 화병들이 쩌적,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닫아.”
레이첼이며 하인들, 병사들까지도 바닥에 뿌리가 박힌 듯 굳어졌다.
아버지는 천천히 걸어서 레이첼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 나? 안기라고?’
저 가호에 영향을 받아서 온몸이 찢어발겨지면 어떡해!
하딕스 산에서 아버지의 가호에 의해 분해되었던 몬스터들이 떠오르자,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노리고 벌인 일이긴 하지만, 무서워 죽겠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피하는 것도 좀 그렇지.
나는 아버지에게 쭈뼛쭈뼛 안겼다.
“네 입으로 말해 다오. 무슨 일이 있었지?”
그러자 레이첼 부인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자, 장군─”
“레체 부잉이요. 하녀들 개로펴써요. 하녀들이요. 나한테 잘해조 가꾸요. 레체 부잉 화 나써. (레이첼 부인이요. 하녀들을 괴롭혔어요. 하녀들이요. 나한테 잘해줘 가지고요. 레이첼 부인이 화가 났어요.)”
“그래서.”
“내가요. 하녀들 구해 주 꺼예요. 왜냐면요. 주인밈이니까요. 구론데요. 레체 부인이 나쁘게 말해써요.”
“…….”
“더러운 피라고 해써!”
나는 손가락을 쭉 펴서 레이첼 부인을 가리켰다.
“……!”
레이첼 부인은 당황해서 입만 벙긋거렸다.
병사들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저거 미친 게 맞았구만.”
3m 거구의 사나이 모스코의 말이었다.
엔조가 그녀를 노려봤다.
“죽은 남편의 공을 생각해서 집사로 들여 준 장군의 자비에 감사할 생각은 하지 않고, 감히 아가씨께 그따위 말을.”
“저, 저는…… 장군, 저는─!”
마른 모델 체형의 남자가 킬킬 웃었다.
“장군께서 보는 눈빛이 남달랐다잖아.”
모스코는 콧방귀를 뀌었다.
“내 기억으론 전장에서 사람 죽일 적에도 저런 눈빛이셨지.”
병사들이며, 관리들까지 수군덕거렸다.
“역시 정신이…….”
“어딜 감히 주제도 모르고…….”
“소름이 끼쳐서…….”
수군거리는 소리에 레이첼 부인의 얼굴이 화르륵 달아올랐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표정이었다.
아버지는 말했다.
“징벌방을 여는 것을 허가한다.”
“가, 각하─!”
“내 딸에 대한 존경을 뼛속 깊이 새겨 줘라.”
“사,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세요, 각하! 이렇게 빌겠습니다! 죽은 남편과의 정을 생각하셔서…… 각하! 각하!”
하녀들이 그녀를 끌고 갔다.
‘오…….’
나는 아버지의 목에 매달려서 목이 찢어지게 비명을 내지르는 레이첼 부인을 구경했다.
징벌방이란 건 하인들이 집안에 매우 큰 해를 입혔을 때 열리는 공간이다.
주인은 참여하지 않고, 오직 하인들끼리 단죄하는 공간.
‘지금까지 그렇게 하인들에게 채찍질해댔으니 무사히 나오긴 글렀네.’
인과응보였다.
나는 처절하게 절규하는 레이첼 부인을 향해 남몰래 팔랑팔랑 손을 흔들어줬다.
‘안녕!’
* * *
밤.
식사를 하고 온 나는 방 안에 준비되어있는 약을 발견했다.
“이거 모야?”
하이디에게 묻자, 그녀가 에헤헤 웃었다.
“주인님께서 준비해 두라고 하셨어요. 이번 일로 아가씨가 많이 놀라셨을까 봐 염려하신 것 같아요.”
“…….”
나는 약의 포장지를 매만졌다.
‘아버지는 좀 좋은 사람인가 봐. 어쩌면……. 헉.’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나는 뺨을 두 손으로 찰싹 때렸다.
“세상에, 아가씨! 왜 이 귀한 뺨을……!”
“차라리 엔조 경을 때리세요!”
“맞아요!”
하녀들이 허둥대고 있는 틈에서 나는 생각했다.
‘또 가족의 정을 바라려고 하다니. 하마터면 학습 능력 없는 바보가 될 뻔했어.’
대가 없는 사랑을 바라는 순간 꼬리 흔드는 멍멍이가 되어 버리는 거다.
엄마와 새아버지가 나를 이부동생만큼 사랑해 주길 바랐을 때 경험했지 않은가.
‘그리고 투병 중일 때도…….’
“우리 혜민이 힘들어서 어째. 엄마가 널 너무 고생시켜서 병든 것만 같아. 이게 다 엄마 탓이야.”
아픈 날 끌어안고 울먹이던 엄마에게 또 기대했다.
주말이면 엄마를 태워서 늘 병원에 오는 새아버지에게도 기대를 가졌다.
‘어쩌면 두 분 마음속에 내가 있던 게 아닐까.’ 하고.
병든 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사망 보험은 몇 개나 들어놨대?”
“그런 얘기는 차에 가서 하자니까.”
“애가 아픈 건 아픈 거고, 중요한 얘기는 확실히 들어야지. 나 사업 시작하고 가세가 얼마나 기울었어? 우리 세은이 유학도 못 보내게 생겼어.”
“꽤 들어놨나 봐. 쟤가 그런 데엔 얼마나 철저한데.”
─두 사람이 몰래 나누는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분해서.’
그 뒤로 사망 보험을 싹 해약했다.
당연히 엄마와 새아버지는 눈이 돌아갔다.
“사람이 독해도 어떻게 저렇게 독해!”
“너랑 같이 죽어? 그래? 죽어야 속 편하겠어? 산 사람은 살아야지!”
“언니, 진짜 못됐다.”
정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서 그런 말엔 조금도 상처 입지 않았다.
그래서 지폐 다발이나 나붓나붓 흔들며,
“할 얘기 다 하셨으면 가세요. 문은 저쪽.”
─하고 잔뜩 약 올려 줬다.
어쨌든 난 부모가 자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는 얘기는 믿지 않는다.
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깨달음이었다.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힘내야지.’
나는 콩떡만 한 주먹을 불끈 쥐고 결심했다.
“아가씨.”
마침 하이디가 말을 걸었다.
나는 “웅?” 하고서 그녀를 쳐다봤다.
“레이첼 부인이 쫓겨났어요. 이게 다 아가씨 덕이에요. 정말로, 정말로 감사해요.”
“네, 아가씨! 내정 자금에서 횡령도 엄청나게 했나 봐요. 장군께서 먼지 한 올까지 다 찾아서 빚으로 달아 두셨어요.”
“징벌방에서 하녀들한테는 엄청 심한 꼴도 당했고. 그치?”
“사람을 그렇게나 때렸으니까 되돌려 받은 거지.”
두 사람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몬 이제 집사는 누가 해?”
“글쎄요……. 일단 제일 경력이 긴 하인이 맡지 않을까요?”
베티의 말에 하이디가 고개를 저었다.
“모리스 님이라면 방금 울면서 쫓겨나고 계시던걸. 레이첼 부인의 수족들은 다 쫓겨나나 봐.”
“그러면 절반은 쫓겨날 텐데.”
“절반이면 다행이지. 바빠지겠다.”
“응. 그렇겠어.”
하지만 하이디와 베티는 싱글벙글했다.
맞는 것보다 바쁜 게 낫다면서.
‘집사라.’
새로운 사람을 구하는 건 쉽지 않을 거다.
하인들이 그렇게 쫓겨나는 마당에 인수인계도 제대로 되지 않을 거고.
‘어지간하게 능력이 있지 않으면……. 아!’
좋은 생각이 났다.
나는 정원을 바라보며 킬킬거렸다.
* * *
이튿날.
아침부터 정원에 나온 난 주변을 샥, 샥, 둘러봤다.
‘없나?’
열심히 둘러보고 있는데 멀리서 자루를 짊어진 노인이 보였다.
‘미켈란이다.’
나는 그에게로 쪼르르 달려갔다.
“안넝!”
“안녕하세요, 아가씨.”
미켈란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인사했다.
“하부지, 여기 잉네. 다해이야! (할아버지, 여기에 있네. 다행이야!)”
“예?”
“하인들이요. 마니 나가써요. 하부지도 나가면 안대. (하인들이요. 많이 나갔어요. 할아버지도 나가면 안 돼.)”
미켈란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러나 이내 그는 하하 웃고 “감사합니다.” 하고 말했다.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미켈란은 이 관할성의 정식 하인이 아니다.
외부에서 임시로 온 잡일꾼이었다.
하인들과 친하게 지내지도 않는 것 같은데, 벌써 저택 내부 사정을 알고 있을까.
“하부지도 들어써?”
묻자, 미켈란은 웃으며 말해 줬다.
“아뇨. 아직 아무런 얘기도 못 들었습니다.”
“구론데 어떠케 하인들 마니 나갔는지 알아?”
“저기를 보십시오.”
나는 미켈란이 가리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바닥에 무언가 끌린 자국이 있었다.
“크기와 모양으로 봐선 짐 가방이 끌린 것입니다.”
“웅.”
“어제 누군가가 짐을 끌며 나간 것이겠지요. 귀족은 아닐 겁니다. 하인이 귀족의 짐을 그렇게 관리할 리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하인 본인이 떠난 걸 텐데…….”
“웅.”
“저런 자국을 주인이 보아서 좋을 게 없으니, 서둘러 자국을 없애 놓아야 합니다. 하지만 해가 뜨도록 여전히 자국이 남아 있죠.”
“…….”
“그래서 인력이 부족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인들이 많이 쫓겨나서 말입니다.”
나는 하마터면 입을 떡 벌릴 뻔했다.
탐정이야 뭐야.
이런 건 마취 총 쏘는 애니메이션에서나 보던 거다.
‘과연 가장 총애 받던 황비의 시종장이네!’
이렇게 눈치가 빠르니, 황태후가 죽은 선황비의 꼬투리를 잡으려고 했을 때도 선수 칠 수 있었겠지.
‘이 관할성에 딱 필요한 인재야.’
지금처럼 혼란할 때 필요한 사람.
충성심 깊고, 능력도 뛰어나다.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총 집사감이었다.
‘살짝 운을 띄워 볼까.’
나는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하부지가 집사 하면은 조을 텐데.”
“예?”
“귀족어두 알구요. 또또카구요. 머시써요. (귀족어도 알고요. 똑똑하고요. 멋있어요.)”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별로 집사 일에 관심이 없나?’
하지만 행색으로 보아선 일이 필요한 모양인데.
“집사 하는 거 시러?”
“아가씨, 주제넘은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녜.”
“궁핍한 사람은 쓰는 게 아닙니다. 당장 돈이 급하면 욕심을 갖는 법이거든요.”
그런 욕심을 가질까 봐 일할 수 없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그래서 미켈란이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올곧아, 올곧아!’
이 아름다운 충성심을 보라.
이런 사람이 있다면 마음 놓고 관할성을 비울 수 있겠다.
나는 어린애답게 눈을 깜빡였다.
“군핍……? (궁핍……?)”
“가난하다는 뜻입니다.”
“왜?”
“그건…….”
미켈란의 눈빛이 잠깐 흐려졌다. 그러나 곧 이전처럼 사람 좋은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저는 일이 바빠서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응…….”
“좋은 하루 되십시오.”
그는 내게 예의 그 완벽한 자세로 인사하고는 떠났다.
나는 미켈란의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집사일 자체가 싫은 것 같진 않다.
좋다 싫다 말하는 대신, 궁핍한 사람을 구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으니까.
‘그러면 걱정거리를 없애주면 되지.’
히죽 웃은 난 바로 내성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식당을 향해 우다닥 뛰었다.
1층에 있는 식당에 도착하자, 아버지가 식사 중인 모습이 보였다. 곁엔 엔조가 함께였다.
“안넝하세요.”
내가 인사하며 들어가자, 엔조가 고개를 숙였다.
“아가씨, 좋은 아침입니다. 벌써 일어나셨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마자 하인이 서둘러 다가왔다.
“식사를 내올까요?”
“…….”
나는 하인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그는 “저어…….” 하며 내 눈치를 본다.
“응. 머글래.”
하인이 서둘러 주방을 향했다.
‘엄청나게 공손하네.’
거의 손을 벌벌 떨고 있었다.
어제 하인들이 대거 쫓겨나는 걸 보고, 저도 그렇게 될까 봐 염려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까 아침에 마주친 하인들이 다 날 보면 사색이 되어 뛰어왔다.
“조, 좋은 아침이지요, 아가씨.”
“필요하신 건 없으십니까!”
레이첼 부인을 쫓아낸 보람이 있었다.
‘여기서 딱 좋은 집사만 들이면 되겠어.’
미켈란이라면 부족한 인원을 충원할 때, 괜찮은 고용인들을 뽑을 수도 있을 거다.
신문을 보던 아버지가 날 힐끗 쳐다봤다.
“아침부터 어딜 다녀왔나.”
“정언이요. (정원이요.)”
“정원은 무슨 일로.”
대화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인 척 순진하게 말했다.
“정언에요. 일하는 하부지 이써요.”
그런데 아버지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난 눈을 끔뻑였고, 엔조가 “장군?” 하고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할아버지란 단어는 좋아하지 않아. 공작이란 단어도.”
“…….”
“…….”
아무래도 아버지는 인간 혐오증보다 부친 혐오증이 더 심한 모양이었다.
“그러면은요. 하부지 말고 미켈란!”
“미켈란?”
“응! 정언에 하부지 이름 미켈란이에요. 기족 단어두 알구요. 또또카구요. 또 인사도 엄─청 잘해!”
엔조가 “인사요?” 하고 말해서, 나는 이때다 싶어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쪽 팔을 명치와 배꼽 사이에 두고 발을 뒤로 뺐다.
“이거!”
엔조는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그건 무슨 인사법입니까?”
병사인 엔조라면 모를 만도 했다. 내가 대답하려는데 아버지의 눈이 가늘어졌다.
“고귀한 자에게 하는 인사법이다. 지금은 나이 든 대귀족이나, 황실에서 쓰이지.”
“그런 인사를 정원의 일꾼이 어떻게 압니까?”
“……미켈란이라고.”
그래, 선황비의 시종장이었던 미켈란 말야.
‘아버지라면 알아차릴 거야.’
마침, 내 몫의 식사가 나와서 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스푼을 들었다.
아버지는 한참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 실소를 터뜨렸다.
“만약 그 미켈란이 맞다면, 내 성에 노다지가 있던 모양인데.”
“예?”
엔조는 되물었지만, 나는 속으로 킬킬 웃었다.
맞아.
미켈란이라면 능력도 좋고, 황궁의 정보도 빠삭하다.
그가 이 성의 집사가 된다면 활용 방향이 무궁무진한 조커 카드를 손에 넣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넌 정원으로 가서 미켈란이란 자를─”
그런데 그때였다.
“욱.”
엄청난 토기가 치밀었다.
난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는데, 짧뚱한 손가락 사이로 뭔가가 뚝뚝 떨어졌다.
‘피……?’
옷을 흠뻑 적신 액체는 새빨간 피였다.
그러고 보니까 며칠째 몸이 안 좋았지.
“에릴로트?”
“아밤미 나─”
무어라 말해 주고 싶었지만, 세상이 뒤집혔다.
“에릴로트!”
나는 의자에서 툭,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본 건 고함을 내지르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