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73)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73화.(173/390)
173화.
“더러운 피라 생각할 뇌도 없는 거냐고!!”
저게 진짜.
한 대 쥐어 박아줄까 하다가 말았다.
‘저 성격에 황도로 돌아가면 어차피 혀를 깨물고 싶을 거다.’
안 그래도 패닉인데 이것까지 알려주면 미칠지도 모른다.
‘그럼 데리고 가기 귀찮아지니까 내버려 둬야…….’
그런데 남군 원화가 버럭 소리쳤다.
“제발 입 좀 닥쳐요!”
“뭐, 뭐라고요?”
“이러다 구울이 우리에게까지 금제구를 채우면 어쩌려고 그래요?”
“감히…… 당신 가문이 누구 덕에 이만큼 호사를 누렸는데…….”
“더는 내 가문을 인질로 삼지 마세요.”
남군 원화가 실린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에릴로트 아스트라를 황도 사교계에서 고립시키라고 해서 파앙테 양의 파티에서 그 난리를 쳤다고요.”
“당신—”
“용을 빼앗아오라기에 그런 말까지 했잖아요.”
“입 닥치지 못해요?”
“그런데 정작 일이 꼬이자 당신을 위해 충성했던 내게 모든 걸 뒤집어씌우고─”
“그러게 누가 멍청하게 굴래? 네가 그 일 처리만 제대로 했어도 구울 토벌 과제가 내려올 일은 없었어!”
“기가 막혀. 그게 왜 내 탓이에요?”
“네 탓이지! 원래 같았으면 폐하께서 나를 위해 좋은 과제를 주셨을 테니─!”
두 사람은 날카롭게 대립했고, 북군 원화는 둘 사이에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아이고.’
적진 한복판에서 잘하는 짓이다.
난 묶인 상태로도 치고받을 기세의 두 사람을 떼어놓았다.
“일단 진정해.”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실린이 버럭 소리쳤다.
“남 탓 안 하면 대화가 안 되는 거야? 풀어주지 말까 보다.”
풀어준다는 말에 실린이 입을 다물었다. 물론 나를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긴 했지만.
나는 남군 원화의 밧줄을 먼저 풀어줬다.
“북군 원화를 풀어줘요.”
“……네.”
남군 원화가 얌전히 북군 원화를 풀어줬다.
나는 실린에게 다가갔다.
‘이런 거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탈출에 도움이 되겠지.’
주저앉아 있는 실린의 금제구를 확인했다.
다행히 황궁이나 고위 귀족가에서 쓰이는 것처럼 엄청나게 까다로운 금제는 아니다.
‘뭐, 구울이 주워올 수 있을 정도니까 당연한 거지만.’
나는 실린의 팔을 풀어준 뒤, 금제의 술식을 파훼하기 시작했다.
“중앙 원화, 경고하는데 함부로 움직이지 마. 탈출에 방해되면 버리고 갈 테니까.”
“왜 자꾸 반말을……! 게다가 탈출이라고요? 지원군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죠.”
“조용히 좀 해.”
“위험하잖아요!”
“계속 있다가 잡아먹히는 게 더 위험하거든?”
철컥.
금제구가 떨어졌다.
그제야 실린의 안색이 돌아왔다.
실린은 풀려나자마자, 벌떡 몸을 일으켰다.
“어쩔 수 없네요.”
그러더니 나와 남군 원화, 북군 원화를 쭉 둘러본다.
“탈출 지휘는 원화의 수장인 내가 맡죠. 에릴로트 아스트라, 나가서 구울들을 조련해와요.”
“…….”
“안 들려요? 잘난 능력으로 구울을 테이밍하라고요.”
“구울이 포진해있는데 어떻게 테이밍 하라는 거야? 조련 중에 당할 텐데.”
“남군 원화가 지원해줄 거예요. 북군 원화는 날 호위해요.”
남군 원화가 울컥 인상을 썼다.
“나와 에릴로트 아스트라 양을 미끼로 써서 탈출하겠다는 거예요?!”
“항명은 군법으로 다스리겠어요.”
이게 진짜.
풀려나자마자 기가 살아서.
‘그냥 둘 걸 그랬나.’
참자.
송신용 마도구가 가동 중이다. 실린을 그냥 두고 오면, 나는 동료를 버린 쓰레기가 된다.
그렇다고 다른 기사처럼 힘이 강해서 저 애를 안고 탈출할 수는 없었다.
그때였다.
동굴 밖에서 묘한 기척이 느껴졌다.
‘엄청난 기세다.’
나는 얼른 두 사람의 입을 틀어막았다.
“조용히 해, 뭔가 다가오고 있어.”
“……!”
“……!”
두 사람은 물론이고, 북군 원화까지 새파래졌다.
북군 원화가 와들와들 떨며 속삭였다.
“우, 우리를 해치우려고 온 걸까요?”
“글쎄요.”
나는 부서진 송신용 마도구에서 날카로운 조각을 떼어냈다.
그리고 입구 쪽에 몸을 숨기고서 말했다.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내가 신호하면 달려들어요.”
우리는 숨을 바짝 죽였다.
‘크림슨 구울인가? 아니, 기척으로 봐선 사람만 한데.’
그만큼 엄청난 기세긴 했지만, 크림슨 구울보다는 땅 울림이 작다.
대충 어림잡아 성인 남성 정도였다.
‘아군? 아니면 또 다른 강력한 구울?’
앞으로 20미터.
10미터.
5미터.
……바로 앞.
180센티에 약간 못 미치는 성인 남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최대한 기척을 죽이고, 입구에 숨어서 그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아군…… 제발 아군이어라.’
그가 나를 제외한 원화들을 쭉 둘러보았다.
“계집 하나가 없군.”
‘적이다!’
황군이라면 우리를 계집이라고 부를 리 없으니까.
‘잠깐, 대화가 가능하다면 육탄전 말고도 말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럼…….’
그때였다.
“공격!”
실린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뭐?!’
그녀가 가장 먼저 달려들자, 북군 원화가 흠칫했다.
“모, 모르겠다……! 에잇!”
북군 원화까지 공격에 가세하자, 남군 원화도 칫, 혀를 차며 뛰어들었다.
‘저 바보들이!’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었다.
쟤들이 다 죽으면 자력으론 탈출할 수 없다.
‘어떻게든 상처를 입혀야 돼.’
나는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그리고 그의 등에 매달려 목전에 검을 들이밀었다.
키가 작은 탓에 군사들처럼 완벽한 자세는 아니었지만, 그의 목전에 검을 겨눌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쇠붙이는 내게 위협이 되지 않는단다.”
그가 고개를 가볍게 돌려 나를 쳐다봤다.
허리까지 늘어진 새카만 장발.
검붉은 피를 떠올리게 하는 적안.
흰 피부와 나른한 눈매.
겉보기에는 완벽한 미청년의 모습이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쾅—!
내 손에 들려있던 쇠붙이가 벽에 처박혔다.
나는 재빨리 그에게서 물러났다.
실린과 남군 원화가 새파래졌다.
그도 그럴 게…….
‘시전 준비가 전혀 없었어.’
가호 <염동력> 급의 힘이었는데, 시전하는데 시간이 조금도 걸리지 않았다.
우리 힘으로는 결코 상대가 안 되는 적이라는 것이다.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던 실린이 말했다.
“나, 나를 살려서 보내준다면 우리 가문에서 보상할 거예요.”
“보상이라. 어떤 보상을 말하는가, 맹랑한 아이여.”
실린의 표정이 밝아졌다.
말이 통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무슨 보상이든지요! 나는 샤토브리앙 공작가의 막내딸이고, 원화군의 중앙 원화예요. 내가 못 하는 일은 없어요!”
실린은 다른 원화들을 보며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봐, 내가 얘기하니까 말이 통하잖아.
─딱 그런 표정이었다.
실린이 손끝을 가슴께에 올리고 말했다.
“말씀하세요. 뭘 원하시죠?”
“네놈들 수장의 목.”
“……!”
제국인의 수장이라면 황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굳어졌다.
실린이 입을 뻐끔거렸다.
“그, 그건…… 그건…….”
“내주겠느냐.”
사내가 요요히 웃었다.
그의 몸 윤곽을 타고 거친 기운이 일렁였다.
숨이 막히도록 아름답지만 그만큼…… 아니, 그보다 더 위험한 남자였다.
남자는 느른히 걸어 실린에게 다가갔다.
“묻지 않느냐.”
“그건…… 그러니까…… 그, 그것만 빼고…….”
순식간에 실린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꺄악!”
실린은 희게 질려서 눈물만 줄줄 흘렸다.
“요람에 흙발로 들어와 내 아이들을 해쳤으니, 그것이 아니라면 수지가 맞지 않아.”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아버지, 아버지─!!”
남군 원화와 북군 원화는 뻣뻣하게 굳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느 순간, 숨이 턱 막혀오기 시작했다.
사내가 내뿜는 마기가 족쇄처럼 폐를 꽉 옭아매고 있었다.
실린이나, 다른 원화들도 “끄으…… 윽…….” 신음하며 몸을 비틀었다.
난 송신용 마도구를 쳐다봤다.
‘이 장면이 전부 송신되고 있을 거야.’
원화들이 전부 죽을 위기이니, 지원군을 파견하겠지.
그러면 우리는 지원군을 없애기 위한 비상식량으로…….
‘안 돼.’
“그만둬, 크림슨 구울!”
소리치자, 몸을 옥죄던 힘이 끊어졌다.
주저앉아 헉, 허억, 숨을 몰아쉬던 원화들이 나를 쳐다봤다.
“크, 크림슨 구울?”
북군 원화가 중얼거렸다.
사내, 아니, 크림슨 구울이 나를 돌아보았다.
“본질을 볼 수 있는 자인가.”
“그 기세, 우리 군과 전투할 적에 보였던 능력, 폐하를 황제가 아닌 수장이라고 한 점.”
“…….”
“전부 네가 크림슨 구울이라는 걸 가리키잖아.”
보고 있지? 송신되고 있는 거지?
인간으로 변할 수 있는 크림슨 구울이다.
다른 크림슨 구울과는 비교도 안 되는 힘이었다.
가히 고대몬스터 급이란 소리다.
‘별거 아닌 지원 병력으론 안 돼. 황제 직속 기사단이라도 데려와야 한다고.’
크림슨 구울이 나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머리 좋은 아이는 싫어하지 않아.”
“…….”
“저것보다는 대화가 통하겠구나. ……네 안에 있는 ‘그것의 잔재’도 흥미롭고.”
그것의 잔재?
‘설마 세일론을 말하는 건가?’
고대인의 제사장, 세일론.
내 진짜 가호 <열람>의 근원인 그 자 말이다.
“네가 내어주겠느냐. 너희들 수장의 목을.”
“아스트라의 혈족은 감히 황제 폐하를 거래의 테이블에 올리지 않는다.”
“하면.”
“다른 것을 줄 수 있지.”
“그것 외엔 그 어떤 보상도 받을 수 없노라 말하였단다.”
“간은 그만 보지 그래? 그쪽이 입을 벌릴 때마다 시체 썩은 내가 나거든.”
그러자 원화들이 흠칫했다.
“무, 무슨……!”
“서, 서군 원화, 그런 말은…….”
“상황을 더 악화시킬 셈인가요?!”
남군 원화, 북군 원화, 실린이 차례로 말했다.
나는 크림슨 구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크림슨 구울은 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그의 붉은 눈동자에 결연한 표정의 내가 비치었다.
그리고.
하하하!
미성의 웃음소리가 동굴에 메아리쳤다.
“재밌구나, 참으로 재밌는 아이야.”
“…….”
“감히 영면의 왕인 내 앞에서 그따위로 오만방자하다니. 너는 목숨이 몇 개나 되는 것이냐.”
“너는 머리가 좋은 몬스터지. 단지 우리를 비상식량으로 쓰려는 건 아닐 거야.”
송신용 마도구가 완전히 망가지지 않고 가동 중이었다.
저 엄청난 힘의 크림슨 구울이 마력의 파동을 못 알아볼까?
인간들에게 원화를 잡아두었음을 알린 것이다.
“굳이 신성력이 강력한 자가 아닌, 원화들을 잡아 왔어.”
“해서.”
“우리가 원화군의 우두머리라는 걸 알아본 거지.”
크림슨 구울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해서.”
“넌 우두머리와 대화하고 싶은 것이다.”
‘할아버지, 아빠…… 보고 있지요?’
이 얘기를 굳이 하는 이유.
그라면 느끼고 있을 것이다.
‘지금 진격하지 마세요. 크림슨 구울이 노리는 게 있어요.’
나는 떨림을 숨기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크림슨 구울이 고개를 가볍게 숙이고 쿡쿡 실소를 흘렸다.
“합격이다, 인간의 아이여.”
그렇다면─!
“따라와라, 거래의 장으로.”
나는 얼굴이 밝아졌다.
크림슨 구울은 빙그레 웃고, 우리를 지나쳐 걸었다.
원화들이 그 뒤를 쫓았다.
물론 나도 절뚝절뚝 뒤따랐다.
‘긴장이 풀리니까 발목이 아프네.’
아무래도 아까 크림슨 구울의 본체와 전투할 때 접질린 모양이었다.
크림슨 구울은 나를 보고 멈춰 섰다.
그러곤 내게 다가왔는데…….
“어, 어어?”
나를 안아 들었다.
실린과 원화들이 깜짝 놀라서 나와 크림슨 구울을 쳐다봤다.
나도 움찔, 그를 올려다봤다.
“난 숙녀에겐 다정한 편이라.”
“……거짓말쟁이.”
나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남자든, 여자든 인간은 모두 싫은 주제에.”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는 까다롭지.”
크림슨 구울이 빙그레 웃으며 내게로 고개를 숙였다.
“어때, 시체 썩은 내에 코가 아픈 것이냐.”
“……아까는 안 지려고 거짓말했어. 구울인데 왜 좋은 냄새가 나?”
하하.
웃은 그가 말했다.
“인간은 크림슨 구울을 다른 구울과 같은 언데드로 여기는 모양이지만, 다르지.”
“그럼?”
“날 때부터 종이 다르단다. 너희 언어로 하면 악마쯤 될까.”
“그렇구나…….”
“한데 너는 아주 좋은 향기가 나는구나.”
좋은 향기?
‘아, 설마.’
나는 몬스터들을 조련하기 위해 백경 나무를 쓴다.
백경 나무는 피리로 만들어서 쓰는 게 제일 좋지만, 향기도 충분히 도움이 된다.
그래서 세 살 때부터 백경 나무를 빻아서 만든 입욕제로 목욕해왔다.
‘후각에 예민한 발자크는 백경 나무 냄새를 내 냄새라고 생각할 정도니까.’
크림슨 구울도 몬스터.
백경 나무 효과가 먹히는 모양이었다.
‘그럼 설마…….’
“아주…… 좋은 향기야.”
─혹시 이 녀석도 조련할 수 있나?
나는 음흉하게 눈을 빛냈다.
그리고 그의 목에 철썩 매달렸다.
“무슨 변화지.”
“도움을 받는 거야!”
“뭐, 좋아. 난동을 부리는 것보다야 나으니까.”
난 적이라면 가차 없지만, 내 몬스터(예정)에겐 다정한 어린이거든.
나는 크림슨 구울에게 안겨 걸으며 이것저것 물었다.
“그런데 너 혹시 그림자에도 스며들 수 있어? 먹이는 뭘 먹고? 특수 능력도 있는 것 같던데, 다른 몬스터를 치유도 할 수 있어? 다른 종의 몬스터와는 잘 지내? 그림자 마물 좋아해?”
“……묘한 것을 묻는구나.”
크림슨 구울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 * *
실린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대체 뭐야.’
왜 크림슨 구울같은 굉장한 몬스터가 저 계집애를 특별 취급하는 거냐고!
크림슨 구울은 자신과 남군 원화, 북군 원화를 세워두고 에릴로트에게만 의자를 내주었다.
‘나 같은 사람을 두고 왜…….’
에릴로트는 시중을 드는 구울에게 이것저것을 묻고 있었다.
“너, 아까 말하던 구울이지? 넌 무슨 먹이를 먹어? 그림자 마물이랑 잘 지내? 자이언트 타란튤라는?”
크림슨 구울은 재밌다는 듯 쿡쿡 웃기나 하고 있었다.
실린은 에릴로트가 종알거리는 틈에 크림슨 구울에게 다가갔다.
“이봐요.”
“무슨 일이냐.”
“내게 저 자리를 내줘요. 저 애보다 내가 더 높은 자리에 있다고요.”
실린이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
“저 애는 더러운 피예요. 하지만 난 고귀한 몸이죠. 대화라면 제가 더 잘 통할 거라고요.”
“…….”
“저와 얘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