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75)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75화.(175/390)
175화.
* * *
나를 빤히 쳐다보던 그는 이내 팔짱을 끼고, 가느다란 실소를 흘렸다.
“장난을 치는구나, 맹랑한 인간의 아이야.”
“목숨 걸고 장난치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는 고개를 착, 치켜들고 크림슨 구울을 쳐다봤다.
“요르문간드가 무섭지? 입구까지 구울들을 보내서 정찰하고 있던 거지?”
하필이면 선서식을 하던 우리가 걸린 것이다.
‘처음부터 이상했어.’
빛을 싫어하는 구울이 왜 꾸역꾸역 거기까지 나왔을까.
“너…….”
“너라면 바로 원화군을 전멸시킬 수 있었어. 그런데 원화들을 잡아 와서 거래할 기회를 준 것도 이상하지.”
“…….”
“인간들과 전투를 하느라 구울을 소모할 수 없었던 거 아냐?”
“…….”
“우리와의 거래에서 네가 달라고 하려던 건 백수정이지? 넌 송신용 마도구에서 백수정을 모으고 있을 정도로 그게 필요했으니까.”
“…….”
“그런데 중앙 원화의 태도를 보고 마음을 바꾼 거지. 몬스터를 만만히 보는 태도 말이야.”
“…….”
“넌 인간들이 거래를 어기고 백수정을 주지 않거나, 또 거래하는 척 지원군을 보내서 공격할 수도 있다고 여긴 거지?”
“…….”
“그럴 바에야 차라리 지금 없애자고 생각한 것 아냐?”
크림슨 구울의 몸 윤곽을 따라 마기가 일렁였다.
‘감정이 요동치고 있구나.’
내 말이 맞는 거야.
맞으니까 동요한 거지.
그 때문에 크림슨 구울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구울들이 난폭해졌다.
그으윽, 크륵!
사나운 소리를 낸 구울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만─.]크림슨 구울이 입을 열지 않았으나, 허공에서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를 공격하려던 구울이 움찔, 멈추었다.
구울들을 곁눈질해서 진정시킨 크림슨 구울이 입을 뗐다.
“좋다, 아이야. 네 말이 맞다고 치자.”
그가 허리를 굽혀서 나와 눈을 마주했다.
“네 말을 어떻게 믿지?”
“그건…….”
“너희가 내게 신성력의 매개(백수정)를 내주고, 우리를 지원할 것이라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 ……이미 너희는 한 번 내 뒤통수를 쳤는데 말이야.”
“그건 네가 중앙 원화를 공격했기 때문이야.”
“그러나 너희가 나를 공격하고 달아난 것도 사실이지.”
다시 자세를 바로 한 그가 눈썹을 까딱, 들어 올렸다.
“아이야, 내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나는 너희에게 대화의 기회를 주었단다.”
그건…… 맞지.
“하지만 네 동료는 나와 내 아이들을 깔보았고, 나는 그에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려 했을 뿐이지. 아니냐?”
“……맞아.”
“네가 나를 도울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너희를 신뢰할 수 없단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는 표정이었다.
나는 생긋 웃었다.
“백수정을 주려는 게 아니야. 그건 우리에게도 소중한 자원이거든.”
하나당 눈이 튀어나올 만큼 비싼 자원이다.
거기다 신성력까지 채워줘야 했다.
‘원화군의 목숨값으로 그만한 것을 내줘야 한다고 하면, 황제가 길길이 날뛰겠지.’
황제에게 원화군이 밉보이면, 원화가 된 건 헛고생이다.
내가 왜 그런 짓을 하겠는가?
크림슨 구울이 미간을 좁혔다.
“하면?”
“말했잖아. 요르문간드와 전투하지 않아도 되도록 해주겠다고.”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해다오.”
“나는 요르문간드가 왜 갑자기 이 땅에 간섭해왔는지 알아.”
“어째서─!”
크림슨 구울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긴 너도 엄청 궁금했겠지.’
이곳이 삼백 년이 넘도록 크림슨 구울이 다스리는 땅이었다고 했다.
그렇다는 건, 이전까지는 요르문간드가 간섭해오지 않았다는 의미다.
‘갑자기 간섭해온 건 사실 내 탓이지.’
“요르문간드는 불안한 거야. ……그의 땅에 새로운 용이 등장했으니까.”
나의 용, 라곤이 말이다.
이 세계의 동, 서, 남, 북엔 각각 용이 터를 이루고 산다.
동쪽의 수르트.
서쪽의 요르문간드.
남쪽의 네르투스.
북쪽의 스카디.
‘제국이 있는 서쪽은 요르문간드의 땅.’
그런데 여기에 새로운 용인 라곤이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내 명으로 몇 번이나 상공을 날아다녔으니…….’
크림슨 구울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너희는 걸핏하면 몬스터를 토벌하지. 우리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땅을 준다고 해도, 언제 토벌하려 들지 알 수 없다.”
“그건 내가 막아주겠어.”
“…….”
“사람의 일이라면 사람인 내가 막을 수 있지. 게다가─”
나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그를 쳐다봤다.
“똑똑한 네게 이곳은 지루하잖아?”
“…….”
“너는 수지 맞는 거래가 뭔지도 알고, 사람의 일을 잘 알아. 밖이 궁금한 거지?”
나는 그를 살살 꼬드기려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와 함께 가면 재밌는 것들을 보여줄게.”
“내 아이들에게 안심할 수 있는 땅도 주고 말이지.”
“그래.”
크림슨 구울이 고민하듯 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손을 잡을 거야.’
믿을 수 없는 인간과 거래하려 할 정도로 급하잖아?
닉스 새끼가 여기까지 들어왔다고.
곧 요르문간드와 전투해야 할지도 몰라.
하지만 너희는 사실 그와 싸워서 이길 수 없지.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뒤에는 인간.
앞에는 요르문간드.
남은 길은 결국 내 손을 잡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크림슨 구울이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아웬이다.”
“응?”
“나의 진명(眞名)이다, 작은 주인.”
“그럼……!”
크림슨 구울, 아니, 아웬이 구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작은 주인이 영면에 들 때까지 찰나의 외출이다.”
이것이 내게 죽지 않는 대군이 생긴 첫날의 일이었다.
이렇게 난 크림슨 구울, 아웬을 손에 넣었다.
“아, 그런데 그 전에 해줄 일이 있어.”
“해줄 일이라…… 무엇이냐.”
“네 아이들 말이야. 죽은 척 잘해?”
“……뭐?”
아웬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 * *
북군 원화가 초조한 표정으로 밖을 쳐다봤다.
“서군 원화가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실패한 걸까요?”
남군 원화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중얼거렸다.
“뭘 하러 갔는지도 모르니, 실패했는지 짐작할 수도 없죠.”
그러자 실린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언제까지 여기서 미적거릴 거예요?! 우리를 버리고 도망쳤을 거라니까요!”
남군 원화가 그녀를 노려봤다.
“그럼 어쩌자는 거예요?”
“누가 물길을 통해서 나가요. 그리고 군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자고요.”
“누가 나가는데요?”
“저는 움직이기 힘드니까 남군 원화나 북군 원화가…….”
“위험한 일을 떠맡으라는 거잖아요!”
“그러면 여기 계속 있을 거예요? 구울에게 잡혀서 끔찍하게 죽을 때까지?”
“그럼 직접 나가서 도움을 청하시든지요!”
북군 원화가 허둥거리며 둘을 진정시키려 했다.
“그렇게 소리치다간 구울이 들어요.”
남군 원화와 실린이 칫, 하며 고개를 돌렸다.
실린이 북군 원화에게 말했다.
“소리 좀 들어봐요. 서군 원화가 뭐 하고 있는지 알아야겠어요.”
“어, 그게…… 저는 마력이 그렇게 강하지 않아서 가호를 자주 쓸 수 없어요…….”
실린은 인상을 찌푸렸다.
“하여간에 도움이 안 돼.”
“…….”
북군 원화는 기가 죽어서 눈치만 봤고, 실린은 팔짱을 끼었다.
‘에릴로트 아스트라는 도망쳤을 거야. 우리가 방해되니까 떨군 거겠지.’
대체 왜 황궁에선 지원군을 보내주지 않는단 말인가?
‘설마 우리를 버린 걸까? 아냐, 그럴 리 없어. 저 둘이라면 몰라도 날 왜?’
아버지가 그냥 둘 리가…….
그때였다.
타다다다닥!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본 북군 원화의 표정이 밝아졌다.
“에릴로트 양!”
남군 원화도 얼른 그쪽으로 달려갔다.
“대체 어디에 갔었어요?”
“크림슨 구울을 제압했어요!”
“네?!”
“저는 <마물 조련> 가호가 있잖아요? 가호를 발동해서 제압하고 왔어요.”
에릴로트의 그림자 속에 있던 크림슨 구울, 아웬이 헛웃음을 흘렸다.
‘입에 침 한 번 안 바르고 거짓말을 잘도 하는군.’
에릴로트는 이곳에 오기 전에 말했다.
“내 아이들에게 죽은 척을 하게 하라는 거냐?”
“응. 종년 축제에서 이겨야 하니까. 너희를 토벌하지 못했다고 하면 과제 자체가 사라진다고.”
“종년 축제……?”
“그런 게 있어. 아무튼 토벌하는 척을 해서 과제를 무사히 끝내야 해!”
“……대체 무엇을 보이려고.”
“우리가 잡혀 있던 방에 있는 송신용 마도구 말이야. 안 부순 것, 더 남아있어?”
“남은 건 그 방에 있던 하나였다.”
“그럼 밖으로 나가야겠네. 좋아, 가자!”
실린이 꽥 소리쳤다.
“마, 말도 안 돼! 그런 힘이 있다면 왜 처음부터 사용하지 않았어요?”
“내 가호가 먹힐 거라고 확신하지 않았지.”
“그런데 왜 이번엔……!”
“닉스를 보고서 알았어. 구울의 영역에 다른 몬스터가 들어온 걸 보면, 크림슨 구울의 힘이 약해진 게 아닐까 하고.”
사실은 요르문간드가 분노할까 봐 그의 사역마를 죽이지 못한 거겠지만.
에릴로트의 뻔뻔한 거짓말은 먹혔다.
남군 원화와 북군 원화가 짝! 손뼉을 치며 기뻐한 것이다.
“그래서 닉스를 보고 달려가신 거로군요?”
“아우, 죄송해요. 저는 진짜 도망치신 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북군 원화가 미안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에릴로트는 어색한 표정으로 슥, 시선을 돌렸다.
‘좀 찔리는데.’
그렇게 생각했을 때, 크림슨 구울의 목소리가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놀라운걸. 작은 주인에게 양심이란 게 있었구나.]‘의식을 싱크로하게 해줬다고, 갑자기 말 걸지 마. 놀랐잖아.’
후후, 웃은 아웬은 곧 침묵했다.
에릴로트가 말했다.
“어쨌든 빨리 도망쳐요. 크림슨 구울 같은 강력한 몬스터는 금세 가호를 깨버릴 테니까!”
“그래요!”
“네!”
에릴로트와 남군, 북군 원화가 물속으로 들어갔다.
실린이 외쳤다.
“나는요?!”
“쫓아오든가.”
“난 공격당해서 움직이기 힘들다고요!”
“그렇게 소리치는 걸 보면 기운이 넘치네, 뭐.”
남군 원화가 부들부들 떠는 실린을 힐끔 쳐다봤다.
그러곤 픽, 실소를 흘리고 에릴로트의 뒤로 따라붙었다.
북군 원화도 눈치를 보다가 얼른 에릴로트를 쫓았다.
실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저게……!’
두고 보자.
황궁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테다.
‘상관에게 항명했으니 군사 재판을 받게 해줄 거야.’
황제 폐하께서 날 얼마나 귀여워하시는데.
또 대장군 출신으로 여전히 황군에서 영향력이 큰 노클랑 후작도 자신이라면 껌뻑 죽었다.
그러던 찰나.
“그그그그극…….”
멀리서 구울의 소리가 들려왔다.
실린은 황급히 일어나 두 사람을 뒤쫓았다.
원화들은 물이 들어오는 곳을 통해 동굴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 * *
동군 원화, 세바스티아가 날렵하게 검을 휘둘렀다.
‘쓰러뜨린 구울이 금세 회복하고 있다.’
언데드인 구울에게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을 쓰러뜨린 후 신관이 제를 지내야 완벽히 소멸하는 것이다.
구울은 낮에는 쓰러뜨리기 그리 어렵지 않지만, 밤이 깊을수록 강해지는 존재.
‘이대로라면 원화들을 구해내긴커녕, 군사들이…….’
세바스티아가 뒤를 돌아봤다.
대부분이 하루 종일 지속된 구울과의 전투에 지쳐 있었다.
“원화, 더는 싸울 수 없습니다.”
“……황궁과 통신은?”
“여전히 통신이 되지 않습니다. 구울에게 망가진 통신탑을 복구하려면 반나절은 더 필요하답니다.”
세바스티아가 눈을 꽉 감았다.
‘망신은 피할 수 없겠으나, 이제 물러서는 것밖에 답이 없다.’
움직일 수 있는 군사들은 몇 시간 전 합류한 서군이 다다.
“전군, 퇴각─”
그때였다.
“세바스티아 언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물에 온통 젖은 원화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에릴로트! 다른 원화들까지 어떻게……!”
숨을 몰아쉬며 달려온 북군 원화가 말했다.
“에릴로트 양이 크림슨 구울을 테이밍했어요. 그 덕에 도망칠 수 있었어요!”
“무슨…….”
엄청나다.
다른 군의 말에 따르면 크림슨 구울의 힘은 엄청났다.
‘그런 것을 테이밍 했다고?’
세바스티아가 공중에 떠 있는 송신용 마도구를 힐끔 쳐다봤다.
‘황궁에서 난리가 났겠군.’
듣지 않아도 귀족들이 얼마나 에릴로트에게 놀랐을지 예상이 간다.
에릴로트가 말했다.
“크림슨 구울이 정신을 차리기 전에 구울을 처리하고 도망쳐요.”
“그래.”
“네.”
“넷!”
중앙 원화를 제외한 다른 원화들이 대답했다.
원화들은 서둘러 제 군에게 돌아갔다.
모두 원화를 잃고, 동군에 합류해있었기에 찾기 어렵지 않았다.
물론 에릴로트 또한 서군에 돌아왔다.
“원화…….”
“걱정했습니다…….”
다들 눈이 울먹울먹했다.
<기사단의 꼬마 대장님> 때문인가.
에릴로트를 향한 애정이 엄청나게 충만해져 있었다.
에릴로트는 공중을 쳐다봤다.
‘점수는…… 동군이 최고로 앞서는구나.’
하기야.
원화들이 없는 동안, 동군은 세바스티아의 지휘를 받으며 착착 점수를 쌓고 있었을 테니까.
“난 아직 포기하지 않았어.”
“예?”
“우리가 종년 축제의 주인공이 되는 것. 가자!”
“옛!”
“옙!”
크림슨 구울이 제압되었다고 생각하자, 원화군의 사기가 올랐다.
“북군, 우리도 점수를 따러 가자.”
“남군! 지지 마세요!”
중앙군으로 돌아간 실린도 이를 악물고 소리치고 있었다.
“원화군의 중심이란 게 무슨 뜻인지 보여주세요.”
세바스티아 또한 소리쳤다.
“우리가 선두에 있다. 이 자리를 지켜라!”
와아아아─!
원화를 되찾은 군사들이 소리쳤다.
그런데.
‘빨간색. 빨간색 띠를 맨 군사들에게만 쓰러지는 거야. 알겠지?’
[그래.]구울들이 웬일인지 서군에게만 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