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78)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78화.(178/390)
178화.
종년 축제는 이렇게 끝이 났다.
실린과 샤토브리앙 공작가는 가문에 다시 없을 망신을 당했다.
황제 또한 그런 실린을 밀어주기 위한 과제를 내왔던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으니, 얼굴에 먹칠을 당했다.
순위식은 흐지부지 마무리되었고, 원화군엔 새 세상이 도래했다.
에릴로트 아스트라라는 새 태양을 중심으로.
* * *
종년 축제 이후로 일주일이나 지났다.
횃불의 궁에 들어온 나는 으그그, 기지개를 켰다.
그러다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보다 확연하게 포동포동했다.
한 주간 먹고 자고만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일에 찌들었을 때보다 훨씬 보기 좋았다.
‘행복했지.’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하녀들이 온갖 맛있는 음식을 대령했다.
음식을 먹고 다시 취침.
씻는 것도 하녀들이 다 해줘서 난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뽀송뽀송한 몸을 유지했다.
‘역시 돈과 시간은 낭비할수록 꿀맛이라니까.’
매일 이렇게만 살면 좋겠네.
……물론 가족들은 좀 피곤했지만.
삼 형제는 난리였다.
“어디 봐! 다친 데 없어? 다친 데?!”
“……상처가 났잖아. 이것도 실린 샤토브리앙의 탓이야?”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다.”
얼굴을 붙잡고 매의 눈으로 상처 찾기.
등 뒤를 졸졸졸 쫓아다니면서 괜찮냐고 물어보기.
의사에게 후유증은 안 남겠느냐고 소리치기.
과제보다 더 귀찮은 일이었다.
그리고 아빠는 의외로 조용하셨다.
조용히…….
“응? 아빠, 이 밤에 왜 검을 들고 나가세요?”
“샤토브리앙 저에 다녀오마.”
“……네? 아빠? 아빠! 잠깐만요!”
말릴 땐 가만히 있다가 내가 꾸벅꾸벅 졸기만 하면 슬쩍 샤토브리앙 저에 가겠다고 나섰다.
덕분에 우리 저택에 비상령까지 내려야 했다.
“놔봐! 놔보라니까! 애는 안 죽여. 자식을 그렇게 키운 놈을 죽일 것이다─!!”
“으악! 주군, 진정 좀 하십시오!”
“주인님─!!”
그 밤의 난리를 떠올린 난 핼쑥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정리가 빨리 되어서 다행이지.’
쉬고 싶다고 울상을 짓자, 리시먼드가 나서줬다.
“샤토브리앙의 처리는 에릴로트가 충분히 쉰 후에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나도 냉큼
“쉬고 싶어요, 아빠…….”
하고 울상을 지어줬다.
그렇게 소란은 마무리.
그 후로 나는 평화로운 휴식기를 가질 수 있었다.
흥얼거리며 앉아있으니, 서군의 행정책임자인 고르고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손엔 따뜻한 밀크티와 과자가 올라간 쟁반이 들려 있었다.
“뭐야?”
물으니 고르고가 하핫, 어색하게 웃으며 내 책상에 쟁반을 올려놨다.
“좋은 차가 들어와서 말입니다. 아, 물론 원화의 고귀함엔 터무니없이 부족하지만 괜찮으시다면 맛을 봐주시겠습니까?”
얘가 왜 이래?
엄청나게 느물느물한 눈빛이다.
그래도 기왕 가져왔으니, 나는 찻잔을 들었다.
‘아, 좋은 향기.’
맛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알레그로이 사(社)?”
“역시 알아보시는군요! 하하핫!”
돈 많기로 유명한 아스트라에서도, 직계들이나 마시는 고가의 차.
그게 알레그로이의 차다.
돈을 준다고 다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선착순으로 예약을 받고, 예약이 다 차면 마무리.
‘아스트라 같은 권력가의 주문은 어떻게든 맞추려고 하는 것 같다만…….’
나는 찻잔을 들고, 고르고를 쳐다봤다.
“황도 1구역 귀족들도 구하기 어려운 좋은 차잖아.”
“마음에 드십니까?! 제가 그러실 줄 알고, 아니, 마음에 드시면 드리려고 준비를……!”
고르고가 흥분하기 무섭게 뒤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려왔다.
우당탕탕! 쿵쾅!
웬 기사들이 떼로 들어온 것이다.
“알레그로이에 못지않은 좋은 차를 제가……!”
“플랑노즈(초고가 리치 향수 브랜드)의 향수입니다. 아직 미출시된 상품인데 원화와 잘 어울리실 것 같아서……!”
“마도구 ‘정령의 거울’입니다. 훈련에 필시 도움이 될 듯하여─”
기사들이 선물을 바치며 시끄럽게 굴었다.
서군 기사만이 아니었다.
동군, 남군, 북군, 심지어는 중앙군까지 있었다.
‘대장군 밑에 있는 원화군 행정병도 있잖아?’
나는 인상을 쓰며 그들을 쳐다봤다.
“무슨 일이야?”
물으니 기사들이 헤헤, 어색하게 웃었다.
“저, 그게…….”
“그게 말입니다. 원화, 제 이야기를 들어 주─”
“어허, 어디 상관보다 먼저 입을 열어?”
다시 시끄러워졌다.
그때, 가장 직급이 높은 중앙군의 기사 샴이 기사들을 노려봤다.
기사들이 흠칫 물러났다.
샴은 다시 나를 보며 애교스럽게 웃었다.
“신년에 기사들의 대이동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평소 서군 원화를 매우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창술로는 정평이 났지요. 곁에 두고 쓰신다면 필시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더니 리본으로 잘 포장한 주머니를 내 책상에 슬쩍 밀어 넣는다.
“…….”
나는 샴이 건넨 선물을 한 번, 기사들을 한 번씩 번갈아 보았다.
“아하, 뭔지 알겠다.”
다른 군의 기사들은 서군에 오고 싶은 것.
그리고 서군의 기사들은 남고 싶은 것이다.
‘서군이 이번 종년 축제로 확 떠올랐으니까.’
중앙군과 남군, 북군은 완전히 망신을 당했지.
게다가 서군은 기사들을 대거 쫓아낸 탓에 좋은 자리도 많이 남아 있다.
다른 군 기사들의 눈이 반짝인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원화! 서군의 위상이 높아졌을 때 실력 있는 기사들을 포섭해놔야 앞으로도 원화께 도움이 될 겁니다.”
반면에 서군 기사들의 표정은 울망울망했다.
“서, 서군은 이제 합이 맞고 있는데 외부에서 사람이 대거 들어오면 다시 혼란스러워질 테고, 또…….”
겨우 명성을 높일 기회인데, 다른 기사에게 뺏길까 봐 걱정이겠지.
다른 군 기사들이 서군을 노려봤다.
중앙군의 창술 귀재 샴이 내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원화의 곁에서 충성할 기회를 주십시오!”
남군의 천재 궁수라는 탈레스도 허겁지겁 무릎을 꿇었다.
“제 활로 원화를 지킬 기회를 부디—!”
북군의 일류 마기사 호아킨도 냅다 무릎을 꿇었다.
“서군엔 마도병이 부족하지요. 원화께서 화살이 되길 원하시면 화살이, 검이 되길 원하시면 검이, 방패가 되길 원하시면 방패가 되겠습니다!”
다른 기사들도 서로를 죽일 듯 노려보며 무릎을 꿇었다.
“원화, 저를 버리지 마십시오…….”
“서군에서 실력을 증명할 기회를 제발……!”
얘들이 왜 이래.
나는 귀찮은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 * *
황군 식당.
서군의 기사가 어느 테이블에 슬쩍 식판을 내려놨다.
“너는 이동하지 않겠지, 이세즈?”
식사 중이던 이세즈가 힐끗, 그를 쳐다봤다.
“글쎄. 원화가 결정하시겠지.”
그들의 대화를 들은 다른 기사는 껄껄 웃었다.
“이제 최강의 신성 기사라고 불리고 있는데 보내시겠어?”
식판을 내려놓은 기사는 입매를 비틀었다.
“그래, 구울 토벌에서도 적잖이 공을 세웠고 말이야. 그러지 말고 솔직히 말해봐. 원화께서 너는 안 보내신다지? 그치?”
“별말씀 없으셨다니까.”
“이세즈는 안 된다고 온몸으로 막아주셨잖아? 그렇게 예뻐하시는데 언질도 없으셨겠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리암.”
“아니, 뭐……. 솔직히 이해가 안 가서 말이야.”
리암이라 불린 기사가 포크로 음식을 툭 치며 말했다.
“신성 기사가 특별하다곤 하지만, 사실 몬스터 토벌 아니면 별 가치가 없잖아? 치유나 강화 같은 후방 지원 정도나 하지.”
“그래서?”
“그에 비하면 나 같은 마기사는 얼마나 쓸모가 많으냐고. ‘공격은 마도병이다’라는 말이 괜히 있겠냐?”
“…….”
“우리도 결계를 펼칠 수 있지. 원거리, 근거리 모두 커버 가능하지. 공방으로 따지면 신성 기사보다 낫지 않느냐고.”
“요점만 말해.”
“근데 왜 너만 특별 취급을 받느냐 이 말이지.”
분위기가 묘해지자, 기사들의 시선이 모였다.
리암은 웃으며, 이세즈의 식판에 제 고기를 넘겨줬다.
“아직 원화께서 마도병의 가치를 모르실 때 즐겨둬라.”
“…….”
“그 관심, 곧 내 것이 될 테니까.”
이세즈가 두각을 보이기 전, 서군의 최강은 리암이었다.
다른 군에서 끊임없이 이동 제안이 올 만큼.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 몸값을 높이기 위한 시간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서군에 남아있어서 좋은 기회를 얻은 거지만.
‘이깟 놈에게 질 순 없지.’
구울 전투에서 기사, 병사 할 것 없이 모두 느꼈다.
서군 원화에겐 특별한 것이 있다.
개인의 능력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아스트라 공작에게 가장 신임받는 손주이기도 했다.
기사의 보람은 뛰어난 주인을 모시는 것.
“서군 원화의 호위는 내가 될 예정이니 코 들이밀지 마라, 이세즈.”
아직 서임조차 못 받은 평민 출신 햇병아리에게 뺏길 순 없지.
이세즈는 실소를 흘렸다.
그가 식판을 들고 일어나, 리암을 쳐다봤다.
“네 구린내 나는 입이나 들이밀지 마. 난 그 자리를 놓칠 생각이 없으니.”
“중앙군의 샴, 남군의 탈레스, 북군의 호아킨, 심지어는 황제 직속 기사단으로 영전이 예정된 제이든까지 노리는 자리를 네가? 꿈도 크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 너 정도는 안 대도 알 것 같다만.”
“뭐야?”
리암이 덜컹!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이세즈가 서늘하게 웃었다.
“붙어볼까.”
“이 새끼가—!”
식당이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야, 인마!”
“뭐 하는 거야! 안 떨어져?! 야, 야!”
기사들이 서로에게 달려드는 리암과 이세즈를 붙들고 식은땀을 흘렸다.
* * *
횃불의 궁.
기사 대이동을 논의하기 위해 원화들이 모였다.
‘나와 세바스티아 언니를 제외하면 다 죽상이네.’
북군 원화는 엄청나게 의기소침했다.
“아버님께도 많이 혼났고, 언니께서는…… 으으.”
그녀의 언니는 전임 북군 원화였다.
언니가 있을 땐 최강 북군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그 ‘최강의 북군 원화’에게 엄청나게 혼났는지, 얼굴이 여전히 희멀겠다.
남군 원화의 표정도 좋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차가 다 식었잖아! 감히 횃불의 궁에 이따위 차를 내오다니 정신머리가 썩었어.”
온종일 짜증을 내는 중이었다.
‘꼴찌니까 자존심이 완전히 뭉개졌겠지.’
그에 비해 나와 세바스티아 언니는 여유로웠다.
나는 쓰레기 서군을 이끌고 1등을 했으니 당연했다.
세바스티아 언니는 2등이지만, 그래도 나와 함께 신기록을 세우긴 했던 것이다.
그리고 중앙 원화는…….
그때, 횃불의 궁을 담당하는 궁인이 말했다.
“오십니다.”
문이 벌컥 열리고 중앙 원화, 실린이 굳은 얼굴로 들어왔다.
그녀는 거칠게 의자에 앉았다.
평소의 우아한 체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세바스티아 언니가 소리 없이 웃곤, 내게 속삭였다.
“샤토브리앙 공작이 황제 폐하의 신임을 완전히 잃었대.”
“중앙 원화 때문에요?”
“그래. 멋대로 날뛰는 걸 다들 보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 게다가 그 후에 널 공격한 일도 그렇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는지, 중앙 원화가 우리를 노려보았다.
“두 분은 떠들 시간이 있는가 보죠.”
세바스티아 언니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실린은 입술을 꽉 깨물고 세바스티아 언니를 쳐다봤다.
그러나 별말은 못하고 홱, 고개를 돌린다.
‘더 이상 소란을 피울 순 없을 테니까.’
실린이 말했다.
“회의를 시작하죠. 상장군과 1등 기사들을 들이세요.”
궁인이 말을 전하러 나갔고, 곧 기사들이 들어왔다.
그렇게 회의가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남군 원화였다.
“우리 쪽엔 마기사가 부족해요. 마기사는 북군에 많으니 뤼스, 헬만, 조이드를 데려오겠어요.”
“앗! 그렇게 다 데려가겠다고 하시면……!”
“대신 신성 기사를 드리죠. 부족하시잖아요?”
“……그럼 헬만과 조이드를 드리겠어요. 뤼스는 곤란해요.”
“그러시든지요. 그리고 동군에서 파람스를 데려오고 싶은데요.”
그 말에 세바스티아 언니가 인상을 썼다.
“불가.”
“동군엔 강력한 창병이 많이 있잖아요. 덕분에 좋은 성적을 내셨고요. 양보해주세요.”
“그럼 카이사를 주시겠어요?”
“그런……! 카이사는 저희 참모 후보예요.”
“참모가 된 건 아니잖아요? 카이사 외엔 교환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너무하시네요!”
분위기는 완전히 살얼음판이었다.
하위권 군은 입지 회복을 위해, 상위권 군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날카롭게 대립했다.
실린이 말했다.
“싸운다고 해결이 되나요? 서로 조금씩 양보하죠. 저는 카이사와 딘, 모리를 원해요.”
남군 원화와 세바스티아 언니가 헛웃음을 흘렸다.
“알짜배기를 다 데려가시겠다는 게 무슨 양보예요?”
“아아, 이런 식이면 동군은 군사 교환을 하지 않겠습니다.”
“부, 북군도 모리는 줄 수 없어요!”
원화들이 목소리를 높이자, 실린이 가볍게 손을 올렸다.
“대신 조윅을 내놓죠.”
“……!”
“무, 무슨…….”
“조윅이라고요?”
세바스티아 언니, 남군 원화, 북군 원화가 모두 숨을 크게 들이켰다.
조윅은 중앙군의 상장군이었다.
거기다 엄청난 가호에, 뛰어난 전술, 무예도 흠잡을 데 없다.
중앙군 상장군이었던 만큼 기사들의 신임도 대단했다.
“그, 그런 조윅을…….”
북군 원화가 마른침을 삼켰다.
‘서군에 군자금을 준 일로 조윅이 쫓겨나는구나.’
조윅은 예감했다는 듯 담담했다.
남군 원화가 냉큼 말했다.
“그럼 어느 쪽에 주실 건지……!”
“그건 네 분 원화께서 상의하시고요.”
“네 분? 서군엔 군사를 요청하시지 않았는데요?”
“서군에선 이세즈와 리암, 쿠(서군 상장군 대리)를 원해요.”
그러자 내게 시선이 쏠렸다.
‘진짜 알짜배기들만 가져가겠다고 하는군.’
우리 쪽에서 쓸만한 건 딱 셋인데, 셋을 전부 다 달라고 하다니.
다들 그렇게 느꼈는지 모두 내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이세즈와 리암, 쿠도 흠칫하고 나를 쳐다봤다.
북군 원화가 나와 실린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서군 원화께선 조용하시군요. 원하는 기사가 없으신가요?”
“그럴 리가요.”
“하면 말씀해주세요.”
“제가 원하는 기사들은…….”
기사들이 홱,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내게는 종년 축제 1위의 부상이 있다.
원하는 기사는 무조건 데려갈 수 있다는 것.
모두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나는 천천히 ‘그들’을 쳐다보았다.
* * *
그 시각, 황제궁.
제국의 6공작이 한데 모여 황제와 대면했다.
날카로운 분위기 속에서 아스트라 공작이 입을 열었다.
“제 손녀 습격 사건의 조사를 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