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8)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8화.(18/390)
18화.
* * *
여긴 어둠 속이었다.
손가락 하나 보이지 않는 새카만 어둠 속.
‘꿈인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지만, 나는 이곳이 현실이 아니란 것을 알아차렸다.
현실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으니까.
공중을 부유하는 듯도 하고, 물속에 잠겨 유영하는 듯도 한 기묘한 감각이었다.
한참을 어리둥절하게 있기를 얼마쯤.
발끝에서부터 반딧불이처럼 빛이 퍼져 나왔다.
‘아, 나 세 살 에릴로트의 모습이네.’
나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제야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가시덤불 사이에 서 있었다. 덤불 곳곳엔 붉은 장미가 가득 피어 있다.
“일단 길을 찾…… 아?”
말을 우따우따 하지 않고,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정말로 꿈인가 봐.’
목소리는 매우 어리지만, 발음이 제대로 나왔다.
‘뭐, 됐어. 일단 길을 찾자.’
여긴 너무 어둡고 추워.
일단 정면을 향해 걸었다. 어두컴컴하긴 하지만,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저 멀리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문이 보였다.
발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종국엔 거의 뛰다시피 했다.
그렇게 겨우 빛이 뿜어져 나오는 문에 다다랐는데,
[그쪽이 아냐.]─누군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나를 붙잡은 사람의 얼굴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실루엣과 손만이 어렴풋이 보인다.
원피스를 입은 여성.
손은 상처투성이였지만, 꽤 젊어 보인다.
[두렵겠지만, 나를 믿어 줘.]“…….”
[비록 네게 모든 것을 알려 줄 순 없으나, 나는 너의─]“엄마다.”
나는 손가락을 쭉 펴서 그녀를 가리켰다.
이런 패턴은 소설에서 자주 봤다.
보통 이럴 때 ‘거기가 아냐’, ‘이쪽으로 와’ 등의 말을 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죽은 엄마다.
[아가야, 나는─]“사실 엄청난 힘이 있는데, 불운하게 죽었고, 영혼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던 패턴?”
[…….]그녀는 잠시 말이 없었다.
왠지 침묵에서 어처구니없음이 느껴진다.
[실망하게 해서 미안해. 난 네 엄마가 아니라─]“그러면 에릴로트다.”
[…….]“불운하게 죽은 캐릭터가 날 이 세계에서 데려온 거고, 내가 인생을 바꿔 주길 바라며 영혼으로 지켜보고 있던 패턴?”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도 아니면 신이다.”
[…….]“내가 사실 신이 이 제국에 내린 운명의 아이였고, 그런 날 지켜 주는 패턴?”
여성의 침묵은 길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그녀가 내 손을 놓고 이마를 쥐었다.
그러곤 하……, 한숨을 내쉰다.
[너 가. 빨리 가.]“왜 뭔데요. 세 가지 중에 없어요? 힌트만 줘 봐요. 내가 웬만한 판타지 패턴은 다 아는데─”
[가라고.]목소리의 주인은 나를 반대편으로 떠밀었다.
“아니, 보통 이런 데서 설정 풀리는 거잖아요! 알려 주고 보내야지─”
[가!]그녀가 나를 떠민 곳엔 새로운 문이 생겨 있었다.
나는 얼떨결에 문에 발을 들여 버렸다.
‘진짜로 이렇게 보낸다고?’
뭐야.
어떻게 된 건데.
피까지 토하면서 이곳에 왔는데, 그냥 이대로 돌아가는 게 어디 있어.
말하려고 했지만, 세상의 소리가 모두 먹힌 듯이 사위가 고요했다.
시야가 점점 흐려진다.
정말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는 듯이.
눈을 감기 전에야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말해 줄 수가 없구나. 하지만 너라면 잘해 낼 거라고 믿고 있어.]‘믿기는 개뿔이.’
믿음 같은 건 쓸데없으니 정보를 줘.
정보도 없이 이 각박한 인생을 어떻게 헤쳐나가라고!
그런데 이 공간에선 상대의 생각까지 들리는 모양이었다.
[성격하곤. 누가 ……아니랄까 봐.]이렇게 말한 걸 보면 말이다.
그니까 그 말 줄임표가 무슨 뜻인데.
왜 이런 데에선 맨날 중요한 말만 말 줄임표를 거냐고.
나도 알려 줘 봐!
* * *
헉!
나는 번쩍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리기 무섭게 격통이 나를 덮쳤다.
온몸을 두들겨 맞은 것처럼 괴로웠다.
“끄으응…….”
너무 아파서 신음이 절로 나왔다.
“아가씨!”
“정신이 드세요?”
옆에서 하녀 하이디와 베티의 소란스러운 말소리가 들렸다.
나는 끙끙거리며 몸을 뒤척였다.
“왜케 아프지……? (왜 이렇게 아프지……?)”
말투가 평소처럼 어린애의 발음이다.
‘방금 본 건 개꿈이었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하녀들이 스푼으로 작은 그릇을 휘젓는 게 보였다.
몇 차례나 그릇 안을 휘휘 젓던 하녀가 내게 스푼을 내밀었다.
“드셔요. 약이에요.”
물에 녹차 가루를 짙게 탄 것 같은 액체였다.
엄청나게 쓸 것 같았지만,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라 나는 약을 받아먹었다.
먹고 나서 얼마쯤 지나자, 그제야 한결 편안해졌다.
‘죽는 줄 알았네.’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 널브러져 있으니, 하녀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제 좀 괜찮으세요?”
“웅.”
하이디와 베티의 눈이 울망울망 해졌다.
“저는 아가씨께서 돌아가시는 줄 알고…….”
“그런 말 하지 마. 장군께서 의사에게 얼마나 화를 내셨는지 잊었어?”
아버지가 화를 냈다고?
나는 눈을 깜빡이며 하녀들을 쳐다봤다.
“무슨 일 이써써?”
“정말 난리였어요. 관할성이 완전히 뒤집혔거든요. 행여 잘못되실까 봐 닷새 동안 얼마나 무서웠는지…….”
“다쌔? (닷새?)”
“네. 쓰러지신 지 5일이나 됐어요.”
하녀들은 훌쩍이며 그간의 일을 말해 줬다.
식당에서 내가 쓰러진 뒤, 곧장 의사를 호출했다고 한다.
그런데 의사들도 내가 왜 쓰러졌는지, 이유를 몰랐다.
하녀들이 ‘혹시 레이첼 부인이 독을 쓴 게 아닐까요?’라고 해서 온갖 독을 전부 조사해 봤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공작성에서 데려온 치유사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고 했다. 저주나 마법은 아니라면서.
그때, 도움을 준 사람이 있었다.
“미켈란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제가 아가씨를 도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는 미심쩍어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내가 미켈란의 정체를 알려 주기도 했고.
황비궁 시종장 출신이 헛소리를 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
하지만 철저하게 검사했단다.
미켈란이 가져온 약을 그에게 먼저 먹이기도 하고, 의사와 치유사에게 빈틈없이 검사시켰다.
“미켈란이라는 분이 가져온 약을 먹이고서 이틀 만에 아가씨가 깨어나신 거예요!”
‘그렇구나.’
미켈란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겠다.
까딱했다간 죽을 뻔했네.
‘그런데 에릴로트가 원래 갑자기 이렇게 아팠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벌컥, 문이 열렸다.
“아밤미!”
나는 얼른 침대에서 일어났다.
빠르게 일어나느라 눈앞이 휙, 돌아서 잠깐 비틀거렸지만.
그래도 얼른 중심을 잡고 아버지에게 총총 달려갔다.
“…….”
아버지는 아무런 말 없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공작성에서 치유사를 데려왔다더니 그것 때문에 화가 났나?’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이는 걸 제일 싫어하는 사람인데.
자꾸 귀찮게만 해서 어쩌지.
‘일단 사과하자.’
뻔뻔하게 구는 것보다 자기 잘못 정도는 알고 사과를 하는 쪽이 낫다.
난 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파서 미안함미다.”
“……제발 그런 말 좀.”
아버지가 짓씹듯이 말해서 나는 깜짝 놀랐다.
진짜 화가 났을까 봐 딱딱하게 굳어 있자,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깨어난 걸 봤으니 됐다.”
아버지는 하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약을 챙겨서 먹이고 필요한 게 있거든 뭐든 요청해라. 에릴로트 방의 요청이라면 최우선으로 긴급히 처리하도록 할 것이다.”
“예, 옛, 장군님!”
“예…….”
그렇게 말한 아버지는 등을 돌렸다. 나가려는 모양이었다.
‘진짜 화났나 봐.’
투병 중에 병간호를 해 주던 엄마도 그랬다.
그때는 사망 보험을 해지하기 전이라 엄마가 내게 신경을 쓸 때였는데도.
온종일 간병해야 하니 여간 짜증 난 내색이 아니었다.
‘아, 안 돼!’
이대로 짜증 나는 애가 될 순 없다.
나는 방을 나서려는 아버지의 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이제 안 아프께요!”
“…….”
“이제 기찮게 안 하께요. 진짜예요!”
“…….”
“나 미어하지 마…….”
내 방에 있던 하녀들이고, 문 앞을 지키던 병사들이고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아버진.
‘어……?’
왜 이렇게 굳어져 있지.
“그런 게 아니라고 했잖아.”
“…….”
무릎을 굽힌 아버지가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근사한 눈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아이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잖아.”
마치 어딘가 매우 아픈 것처럼.
나는 치맛자락을 꽉 비틀었다.
그가 아파 보여서, 나를 정말로 걱정한 것 같아서 무언가 울컥 치미는 기분이었다.
잘못했다간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난 턱에 바짝 힘을 줬다.
‘왜 그런 말을 해?’
사람이 기대해 버리게.
나는 한 번 죽고 나서야 겨우 부모에게 기대를 버렸는데, 왜 날 기대하게 해?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데. 얼마나 외롭고 슬픈 일인데.
믿으면 안 돼.
기대하면 안 돼.
또 얼마나 상처받으려고.
‘그만큼 했으면 이제 깨달을 만도 하잖아.’
결국, 대가 없는 사랑 같은 건 없다.
지금은 내가 좀 잘해 왔으니까,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 왔으니까 눈에 든 거지.
나중이 되면 다시 귀찮아질지도 몰라.
“널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 봐. 금세 내가 귀찮아지고─’
“그런 건 배운 적이 없어서.”
“…….”
“노력하마. 그러니 네가 날 좀 봐주면 안 될까.”
“…….”
“못난 아비라 미안해.”
데이몬드가 아스트라에서 그나마 나은 종류의 사람이라고 하던 서술은 거짓이다.
그는 할아버지보다도, 그 못된 숙부들보다도 지독한 남자였다.
애써 꽉꽉 닫아 놓은 문을 비집고 들어와서, 기어이 기대를 심어줘 버리니까.
“허엉…….”
결국, 나는 양손으로 눈을 가리고 울어 버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어색하게 안아주었다.
* * *
데이몬드는 침대에 누워 잠든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기묘한 감정이었다.
전장에서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이런 감정을 갖게 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그 누구에게도 정을 붙이지 않을 거라 여겼는데.’
형제들은 모두 어머니가 다르다.
어릴 때부터 형제 모두가 독살과 암살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그중 어머니를 일찍 여읜 데이몬드는 특히나 만만했는데, 능력도 뛰어났다.
형제들에게 자신은 최우선으로 처리해야 하는 상대였다.
‘비루하게 죽을 순 없다. 당한 것은 그대로 돌려준다.’
그 마음가짐 하나로 살았다.
곁을 지키는 자는 없었다.
형제들은 남보다 못했고─
동료라는 자는 형제들에게 넘어가 자신을 암살하려 했으며─
유일하게 믿었던 친구는 자신을 대신해 죽었다.
그런 이유로 데이몬드는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살았다.
그리고 그날이 찾아온다.
아비의 명으로 나간 전장. 그 전장에서 데이몬드는 적군 주술사의 저주에 당했다.
심장이 타오를 것 같은 격통.
사경을 헤매길 며칠, 그의 막사 안으로 어떤 여자가 들어왔다.
“넌…… 누구지.”
“이 저주의 근원.”
“무슨 말을…….”
“잘 들어, 데이몬드 아스트라. 나는 당신이 삼킨 내 힘이 필요해. 그리고 당신은 살고 싶겠지.”
“…….”
“그러니까 이건 거래야.”
그 후로 의식이 사라졌다.
이튿날이 되어 일어났을 때, 그녀는 곁에 없었다.
몸은 씻은 듯 나아 있었다.
그리고 딱 10개월 뒤.
“장군! 장군─! 공작성에서 급보입니다.”
“무슨 일이냐.”
“장군의 아이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무슨 헛소리야.”
병사가 알아 온 정보에 의하면, 공작성에 만삭의 평민이 찾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데이몬드 아스트라가 이 아이의 아비이니 당장 출산 준비를 해달라’고 말했단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가 에릴로트였다.
공작의 말론 여자는 출산 중에 사망했다고 했다.
공작성에서 온 여성의 인상착의를 들어 보니, 저주에 걸렸을 때 본 그 여자가 맞았다.
살다 살다 그런 일은 또 처음이었다.
‘아이라니.’
결혼 생각도 없던 제게 아이라니.
며칠을 멍하니 보냈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초상화 하나가 전장으로 도착했다.
“이게 에릴로트 아가씨의 초상화라고?”
“어디 보자. 오, 장군과 머리 색이 똑같은데.”
“이 적안도 판박이야.”
“눈꼬리가 올라가 있는 점도.”
“……시끄러우니까 다 꺼져.”
에릴로트의 초상화에 몰려 있는 병사들을 몰아냈다.
초상화는 테이블 한편에 아무렇게나 두었다.
전황이 긴급했다. 이딴 것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지도를 보고 있는데…….
‘좀 닮기는 했나?’
표정이 제 어릴 때와 닮은 것 같긴 하다.
그 여자가 남의 애를 가지고, 자신의 애로 둔갑시킨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이는 12번째 탑으로 갔다고 합니다. 장군의 핏줄에게 너무한 일이 아닙니까! 당장 본성에 연락해서─”
“놔둬.”
“예?”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형제들은 자신의 약점을 잡기만 노리고 있었다.
제가 아이의 일로 반발한다면, 약점이 생겼다고 여기고 아이를 노릴 터였…….
‘내가 왜 이딴 걸 신경 쓰는 거야.’
원하지 않은 아이다.
제겐 돌발 사고 같은 녀석이었다.
‘신경 쓰지 말자.’
그게 아이에게도 더 좋을 테니.
덧붙인 생각은 모르는 척했다.
어느 날엔가는 웬 꼬질꼬질한 양피지가 도착했다.
“이게 아가씨가 처음 쓴 글자라고?”
“뭐라고 쓴 거지?”
“[아스트라]란다.”
“오오오─!”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회의에 집중해라.”
그렇게 일축했으나, 테이블 한편에 놓인 글자가 신경 쓰였다.
‘보통 애들은 부모 이름을 먼저 쓰지 않나.’
아스트라라니.
그 늙은이가 뭘 시킨 거지.
회의 내내 짜증이 났다.
‘어쩌면 아스트라가 아니라 아버지를 썼는데, 못 알아본 걸 수도 있다.’
회의가 끝난 후에 슬쩍 종이를 찾았다. 그런데 없다.
“엔조.”
“예.”
“누가 막사를 정리했나?”
“예, 지저분한지라 제가……!”
엔조는 뿌듯하게 대답했다.
“하하, 하인만은 못해도 제가 꽤 청소를…….”
“가서 진지 주변을 서른 바퀴 뛰어라.”
“예? 아, 아니, 갑자기 왜!”
“생긴 게 마음에 안 들어.”
또 어느 날은 좀 자란 아이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가 도착했다.
“이야, 아이는 쑥쑥 자라는군요.”
“역시 귀족 가문에서 자라면 어릴 때부터도 보기 좋구만. 나는 거리에서 자라서 어릴 땐 삐쩍 골았다고.”
“볼살이 포동포동하네.”
“그래, 토실토실한 게 아주 귀엽군.”
‘저것들은 눈이 삐었나.’
애는 작다.
볼살도 다른 애들에 비하면 그다지 나온 것 같지 않았다.
늙은이가 애를 굶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