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84)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84화.(184/390)
184화.
* * *
와아아아─!!
서군의 관중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반면에 남군의 관중석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나는 속으로 킬킬 웃었다.
‘잘했어, 카진.’
서군에서도 카진이 1번으로 나가는 데에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다.
“남군과 붙을 땐 카진이 1번으로 나간단 말입니까? 어째서……!”
“예, 원화. 남군은 카진이 나온다는 것을 예측하고 있을 겁니다. 카진이 본래 남군이었던 만큼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을 테지요.”
“원화! 이 리암 쿠니스에게 1번을 맡겨주신다면……!”
하지만 남군을 철저하게 이기기 위해선 카진이 1번으로 나가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의 가호인 <물질 변화>를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나는 불안해하는 우리 군사에게 말해줬다.
“남군만이 카진의 약점을 아는 게 아니야. 카진 또한 남군의 약점을 알지.”
“예?”
“생각해 봐. 카진의 가호로 경기장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예?!”
“땅을 부수고, 돌을 물로 바꿔서, 완벽하게 <아군의 영역>으로 만든다면?”
“그런……! 그렇게까지 광범위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가호였습니까?”
“만약 가능하다면.”
“그야…….”
“경기장은 쉽게 바꿀 수 없어. 남군의 약점을 아는 카진이 1번으로 나가서 경기장을 바꿔놓는다면, 남군과의 승부는 우리의 필승이야.”
카진은 나를 정신 없이 쳐다봤다.
“경기장을 변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가호는 아닙니다.”
“그럼 되게 해.”
“……예?”
“나는 널 믿어, 카진.”
나는 이전 삶에서 남에게 휘둘리고만 살았다.
많이 휘둘러져 봤기에, 남을 휘두를 수 있는 방법도 잘 알고 있다.
남을 움직이는 가장 쉬운 방법.
그건 상대가 원할 때, 원하는 말을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카진이 바라는 말은…….
“너를 믿고 있어, 카진.”
“……하겠습니다.”
상관과 동료들의 믿음.
자신이 있어도 되는 자리.
그를 필요로 해주는 것.
그것이었다.
‘그리고 카진은 정말로 할 수 있거든.’
첫 번째 삶에서 제국보다 몇 배나 적은 군사로, 몇 번이나 위기에 빠뜨린 명장.
그게 카진 라비오였으니까.
귀족들은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지형을 완전히 변화시키다니!”
“아군에게 유리하고, 적군에게 불리한 지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야말로 최강이 아닌가!”
“미, 미쳤어. 카진 라비오의 가호를 이런 식으로 활용한다고?!”
남군 원화는 새파래졌다.
‘이런 엄청난 남자를 놓친 거라고. 아까워 죽겠지?’
세바스티아 언니, 북군 원화, 중앙 원화도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다.
공작들과 황제마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시합을 관람하던 서군의 군사들은 잔뜩 흥분했다. 그들이 쿵! 쿵! 쿵! 발을 구르며 원화군의 군가를 불렀다.
“횃불을 들어라! 우리의 어머니가 밤길을 수호하신다! 간악한 뱀도, 흉포한 용도 우리의 앞길을 막지 못하리라!”
“우리는 원화군! 횃불 속에서 태어나 이 제국을 수호하는 자! 자, 가라! 우리는 불의 벽, 불의 창! 우리의 어머니가 밤길을 수호하신다!”
“횃불을 들어라! 우리의 어머니가 밤길을 수호하신다! 스테마 리도르!(불꽃의 근원!)”
이어서 서군 군사들이 건국기에 기록된 최강의 원화를 부르는 대륙어를 소리쳤다.
“스테마 리도르! 칼 로 네스!(불꽃의 근원! 최강의 원화여!)”
“스테마 리도르! 칼 로 네스!”
“스테마 리도르! 칼 로 네스!”
부우우우─!
흥에 겨운 서군 병사 하나가 나팔을 불었다.
경기장은 한순간에 달아올랐다.
“굉장해!”
달아오른 분위기 속에서 어린 귀족 소년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몇몇 다른 귀족까지도 흥분한 표정으로 구호를 외친다.
“칼 로 네스! 최강의 원화!”
“스테마 리도르! 우와아─! 스테마 리도르, 불꽃의 근원!”
와아아아아─!!
함성이 황궁을 흔들었다.
열기에 달아오른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황군의 대부분은 원화군 출신.
황제 직속군이나, 황군 출신의 귀족들마저 잔뜩 흥분한 표정이었다.
대장군 출신의 노클랑 선후작이 꽥꽥 소리쳤다.
“그래! 이것이 원화의 역할이다!”
그의 아들인 노클랑 현후작이 곤란한 표정으로 제 부친을 뜯어말렸다.
“아버지, 진정하십시오. 또 혈압이…….”
“과연 스테마 리도르! 최강의 원화라는 단어에 걸맞은 자로다!”
물속에 갇힌 남군의 1번이 허우적거렸으나, 빠져나오지 못했다.
‘맥주병인 게 약점이라더니.’
역시 카진.
상장군으로서 남군의 군사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지켜본 것이다.
“사, 살려…… 어푸! 살려 주……!”
물속에서 괴로워하던 남군의 1번이 스르륵 눈을 감았다.
쿵─!
북이 울었다.
심판 볼프강이 선언했다.
“카진 라비오 승! 서군의 승리요!”
이렇게 우리는 첫 번째 승리를 가져왔다.
심판역의 기사들이 남군의 1번 선수를 끌어올렸다.
그러는 동안 남군 원화와 다른 참가자들이 새파란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겜마에게만 불리한 게 아닙니다. 저도 수영은 잘…….”
“저쪽엔 나무를 깔아놨습니다. 불을 쓸 생각이 아닐는지요. 제 가호인 <초목>은 불에 특히 약하지 않습니까.”
“미로처럼 복잡한 건 제 발을 묶어두려는 겁니다. 제 특기는 빠른 이동인데 이렇게 되면…….”
남군 원화가 거칠게 머리를 쓸어올렸다.
“치사해. 남군에 있었을 땐 이런 능력을 숨기고 있던 거잖아! 나도 카진의 능력을 알았다면 종년 축제에서부터 잘 쓸 수 있었을 텐데……!”
남군 원화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때, 카진이 말했다.
“저도 제 가호를 이렇게 활용할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 못했습니다.”
“뭐라고?”
남군 원화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서군의 원화께선 언제나 훈련을 참관하십니다. 서군의 군사가 움직이는 것, 약점, 장점…… 모든 것을 지켜보고 조언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
“제 능력이 강해졌다면 이유는 그것뿐입니다.”
남군 원화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감히 내 탓을 하는 거야? 주제도 모르고…….”
나는 말했다.
“말을 삼가세요, 남군 원화.”
“조금 쓸만해 졌다지만, 서군 원화께서 그리 감쌀만한 자는 아닙니다.”
“군사의 능력을 떠나 말을 삼가라고 말씀드린 거예요.”
“네?”
“내 아이들의 주제를 당신이 결정하지 말란 말이에요.”
“기가 막혀서……. 하면 누가 결정하나요? 당신이? 군사의 미래를 점칠 수 있다니, 점술가라도 되시려는 모양이죠?”
“그럴까요.”
“네?”
“말이 나왔으니, 미래를 점쳐볼까요.”
나는 경기장에서 돌아온 카진을 감싸며 말했다.
“카진 라비오는 황군의 대장군이 될 겁니다.”
“……!”
남군 원화뿐 아니라, 다른 군의 기사들, 황제 직속군, 귀족들, 심지어는 황제까지 눈을 크게 떴다.
카진이 떨리는 눈으로 날 쳐다봤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암막의 대제(5대 황후 이자벨라)께서도 신기 없이 미래를 점치셨다지요?”
제 남편을 무시하는 친정 오라비에게 그렇게 선언했다고 했다.
[고개를 숙이세요. 미래의 황제 폐하께.]─하고.
그때, 귀빈의 관중석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황태후였다.
“저 기사, 성씨로 보아 이민족 출신인 듯싶은데.”
그러자 황제 직속군의 기사가 황급히 참가자 명단을 살피더니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래……. 하면 볼까요. 암막의 대제를 빼닮았다는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그마저 닮았는지.”
“…….”
“최초의 이민족 대장군이라. 재미있겠어요.”
그러자 오셀리아 황비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모후. 저 아이가 황도에 올라온 이후 심심할 겨를이 없네요.”
황비가 묘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응? 왜 저렇게 느끼한 눈빛으로 쳐다본담?’
난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 * *
1회전은 서군의 대승이었다.
귀족들은 흥분해서 말했다.
“카진 라비오가 경기장을 변화시켜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게 컸죠!”
“거기다 카진 하나로 남군의 5번까지 전부 해치웠지요!”
“굉장합니다─!”
서군은 2번까지 갈 것도 없었다.
카진이 워낙 상대와 엄청난 격차를 보였기에.
에릴로트는 5번까지 항복시킨 후 돌아온 카진을 보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잘했어!”
카진은 그런 아이를 보고 다정히 미소 지었다.
“원화의 명대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그래, 그래. 나도 잘했네. 그럼 다음 시합이 시작되기 전에 쉬자.”
“예.”
에릴로트는 신이 나서 관중석으로 올라갔다.
동군은 1회전에서 3번까지 썼다.
그러니 1번 하나로 승리한 서군이 결승전까지 부전승으로 올라갈 터.
이제 우승까지 시합이 한 번 남았다.
카진은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가는 에릴로트를 픽 웃으며 지켜보았다.
그리고 서군의 대기실로 돌아갔는데…….
“오셨다! 오셨어!”
“이야! 굉장하더군요, 라비오 경!”
“자, 자, 1회전의 주역께선 여기 앉으십시오.”
시합을 지켜보던 서군의 병사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카진은 픽 웃었다.
‘밝군.’
남군과 비교하면 분위기가 훨씬 밝다.
아무래도 종년 축제부터 계속 승리한 영향인 듯싶었다.
패배를 모르는 군에겐 열등감이 없으니까.
그는 병사들의 환대를 받으며 의자로 걸어갔다.
그런데.
툭.
누군가 검집으로 카진의 앞을 막았다.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리암 쿠니스였다.
그는 껄렁한 표정으로 카진을 힐끗 쳐다보았다.
“미래의 대장군께서 이런 누추한 자리에 앉으시면 되겠습니까?”
“…….”
“저 귀빈석으로 가시면 딱 좋겠는데?”
“남군에 있던 내게 이런 견제는 간지러울 뿐이다, 리암 쿠니스.”
리암이 인상을 콱 찌푸렸다.
벌떡 일어난 그가 카진에게 바짝 다가가 말했다.
“내가 1번이었더라도 대승이었을 겁니다.”
“해서.”
“원화께 기회를 받았다고 해서 당신이 특별할 거란 생각은 말란 말이야.”
“…….”
“당신 전엔 이세즈가 그 관심을 받았다고. 안 그러냐, 이세즈?”
검을 손질하던 이세즈가 그쪽을 힐끔 쳐다봤다.
“쓸데없는 데에 날 끼워 넣지 마. ……하지만 크림슨 구울의 공격을 온몸으로 막아주신 적은 있지. 나를 위해 아스트라의 혈족들을 데려와 교육해주셨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이세즈의 눈빛도 매우 흉포했다.
리암은 카진을 오만한 각도로 내려다보았다.
“그러니까 다음은 나야.”
“…….”
“이세즈, 당신 카진. 그다음에 관심을 받는 건 나라고.”
카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리암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그러자 리암이 움찔 뒤로 물러났다.
“난 뭐든 열심히 하는 타입이야.”
“뭐?”
“이번에도 원화의 관심을 빼앗기지 않도록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허……. 원화의 앞에선 순한 개처럼 굴더니, 순 내숭이었군!”
분위기가 날카로워졌다.
중앙군의 상장군이었던 조윅이 “자, 자.” 하며 카진과 리암의 목에 팔을 걸었다.
“뭐 그렇게 날카롭게 구냐. 서로 경쟁하며 성장하는 건 좋지만, 화합을 해치지는 말자고.”
리암은 헹, 콧방귀를 뀌었다.
“화합 좋아하는 중앙군에서 오신 분 답수.”
카진은 조윅의 팔을 치우며 말했다.
“싸울 생각은 없습니다. 질 생각도 없지만요.”
조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서군 녀석들은 제 원화를 너무 좋아한단 말이지.’
주인을 두고 컹컹 짖으며 경쟁하는 큰 개들 같달까.
“뭘 어린애 관심을 두고 그리 경쟁해?”
“원화를 어린애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카진─
“말이 심한데? 붙어볼까?”
리암─
“그냥 어린애가 아닙니다.”
─이세즈가 순서대로 눈을 희번덕 떴다.
조윅은 다시 두 손을 가볍게 들었다.
“욕하는 게 아니라, 우리 나이대엔 존경 같은 것보다 더 우선해야 하는 게 있지 않겠냐고. ……사랑 같은?”
조윅이 씩, 웃으며 품에서 작은 초상화를 꺼냈다.
군사들이 몰려들었다.
“누굽니까? 애인?”
“아아, 애인은 아니고. 원화의 기억에서 봤는데 도통 누군지 알려주지를 않으시기에 내가 직접 찾으려고 화가를 시켜서 만들었지.”
“에이, 기억이 미화된 거 아닙니까? 사람이 이렇게 인형처럼 예쁘기가 가능하냔 말입니다.”
“아, 그런데 예쁘긴 정말…….”
“예……. 진짜 예쁘기는…….”
초상화를 본 군사들이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대륙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열일곱 소녀, 클레망스 루첼레도 이만큼 매력적이진 않다.
군사들이 카진과 리암, 이세즈에게도 초상화를 보여줬다.
“진짜 예쁘지 않습니까?”
“됐어, 치워. 난 별로 이성엔…… 와.”
리암이 눈을 크게 뜨고 초상화를 붙잡았다.
묵묵히 검을 닦고 있던 이세즈도, 무뚝뚝한 표정의 카진도 움찔 사진을 쳐다봤다.
바다의 윤슬처럼 반짝이며 일렁이는 금발의 머리카락.
긴 속눈썹이 덮고 있는 고혹적인 새빨간 눈동자.
아름다운 선으로 이루어진 붉은 입술.
어디 하나 부족한 곳이 없는 완벽한 미인이었다.
나이는 열일곱, 열여덟쯤?
딱 원화군의 평균 나이대였다.
조윅이 리암에게서 휙, 초상화를 빼앗았다.
“그만 봐라. 닳아.”
“보여주십시오. 누굽니까? 어느 가문 영애랍니까? 타국? 예?”
“이성엔 관심 없다며. 너희는 원화나 마음껏 존경해라. 나는 이 사랑스러운 여인을 찾아서 백년해로를…….”
“아, 좀 보여주십시오!”
조윅과 리암이 엉켜가며 싸우는 동안 이세즈가 초상화를 슬쩍 빼앗았다.
카진도 살짝 그의 곁에 다가가 초상화를 보았다.
“…….”
“…….”
두 사람은 멍하니 초상화를 바라봤다.
누구에게도 이렇게 시선을 빼앗겨 본 적은 없었다.
조윅이 꽥꽥 소리쳤다.
“내놓으라니─”
그때였다.
쾅─!!
문이 열리고, 에릴로트가 서군의 2번으로 임명되었던 후드의 소년과 함께 대기실로 들어왔다.
“준비해. 이제 나가야 하니까.”
리암과 엉켜 있던 조윅이 물었다.
“예? 동군과 중앙군의 시합이 취소되었습니까? 왜 벌써…….”
“시합은 끝났어. 중앙군의 대승이야. 동군의 전원이 2분씩도 버티지 못했다고.”
“예?! 말도 안 됩니다!”
“그래, 이제 우리는 그 말도 안 되는 자들을 상대하러 가야 한다고…….”
에릴로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러던 찰나.
에릴로트의 발 밑으로 팔랑, 조윅의 초상화가 날아왔다.
에릴로트는 인상을 찌푸리며 초상화를 집었다.
“이건 누구의 것이…… 응?”
초상화를 본 에릴로트가 흠칫해서 종이를 구겨버렸다.
“워, 원화!”
조윅이 우는 소리를 했지만, 에릴로트는 등 뒤에 종이를 숨기고 돌려주지 않았다.
‘이게 뭐야!’
왜 이것들이 내 미래 모습의 초상화를 가지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