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85)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85화.(185/390)
185화.
* * *
내가 등 뒤로 구겨진 초상화를 감추고 있자, 조윅이 울상을 지었다.
“돌려주십시오. 제 겁니다.”
이건 내 거야!
‘내 그림이잖…… 잠깐.’
나는 미간을 좁히고 조윅을 쳐다봤다.
“네가 그렸어?”
“화가를 시켜서 그렸습니다.”
그렇지, 참.
이 녀석이 내 기억을 엿봤었다.
‘금발인 언니가 있냐더니 첫 번째 삶의 나를 본 거구나.’
그럼 어디까지 본 거지?
혹시 그게 나란 것도 눈치챘나?
아니지. 그러면 언니가 있냐고 물어보지 않았을 거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조윅을 흘겨봤다.
“압수야.”
“어째서……!”
“중요한 시합에서 여자 그림이나 보고 있어?”
“그건…… 그렇긴 하지만…….”
“얼른 준비하기나 해.”
그러자 참가 군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리암이 물었다.
“순서는 바뀝니까?”
“응. 시합마다 순서를 바꿀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지.”
“어째서요?”
“방금 시합에 나왔던 중앙군 1번은 카진과 상극이야. 방해 파장을 내보내서 상대의 가호를 망가뜨리더라고.”
카진이 우리 쪽에 유리하게 경기장을 바꾸려고 하면, 저쪽에서 방해 파장을 내보낼 거다.
‘까딱 잘못하면 유리하긴커녕, 불리하게 경기장이 바뀔 수도 있었어.’
나는 중앙군의 명단을 확인했다.
‘5명 모두 신입이야.’
코크, 마크, 무니르, 브뤼노, 알치드…….
이름을 확인하고 있는데, 카진이 “아.” 하고 중얼거렸다.
나는 카진을 쳐다봤다.
“왜?”
“혹시 이 무니르가 제가 아는 그인가 해서 말입니다.”
“네가 아는 무니르는 어떤데?”
“몬스터와 혼혈종이라더군요. 제 고향은 이민족들이 강 하나를 놓고 군락을 이뤄 살고 있는데, 전투가 빈번했었지요.”
“강이 하나니까 서로 차지하려고 했겠지.”
“예, 그때마다 보았었는데…….”
카진이 어두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무니르가 전장에 나선 이후, 강을 차지한 건 언제나 그의 부족이었습니다.”
“……뭐?”
“가공할 힘이었죠. 그 어떤 가호도, 마도구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힘으로 가호를 깨부수는…… 그야말로 짐승이었습니다.”
“설마 무니르가 이었다는 몬스터의 피가…….”
“예, 가호를 파괴하는 몬스터는 하나뿐이죠.”
어느 시대엔 신이라고도 불리었다는 그 최강, 최흉의 몬스터.
……용이다.
“하지만 그게 가능해?”
“소문일 뿐이었지만, 저는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전투 중에 그의 피부에 돋은 비늘과 창공을 가르던 날개를 보았습니다.”
나는 실소를 터뜨렸다.
‘그렇게 나의 라곤을 가지고 싶어 하더니, 반룡을 손에 넣었어?’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렇게 되면 이세즈를 1번으로 해야겠어.”
이세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경기장에 신성력을 쫙 깔아놔. 공기 중에 그만한 신성력을 풀어놓으면 대기석에 있는 무니르도 영향을 받을 거야.”
“신성력에 절여둔 상태로 시합을 하게 한다……. 예, 용이라면 신성력에 영향을 받을 겁니다.”
“그래. 약화시킨 다음, 본 경기에서 다음 선수가 친다.”
내 말에 우리 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성력에 절여진 시간이 길면 길수록 체력이 깎일 거야.’
최대한 무니르가 나오기 전에 시합을 길게 끌어야 해.
무니르 정도의 선수라면 후반에 배치했을 터.
‘2번으로 최대한 시간을 끌자.’
나는 로브를 뒤집어쓴 사내를 쳐다봤다.
“네가 또 2번이야.”
로브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은 리암, 조윅, 카진의 순이야.”
“어째서 라비오 경이 결승전의 5번을……!”
리암이 볼멘소리를 해서 나는 그의 등짝을 짝! 때렸다.
“경기장을 변형시키느라 마력을 엄청나게 소모했잖아. 시합하는 동안에라도 쉬어놔야 정상 컨디션으로 경기를 한다고.”
“예…….”
“좋아, 그럼 가자.”
“예!”
우리 군사들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결승전의 시작이었다.
* * *
경기장.
중앙군의 참가자들과 서군의 참가자들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각 군의 맨 앞엔 원화들이 서 있었다.
중앙 원화, 실린 샤토브리앙이 생긋 웃었다.
“서군 원화의 지휘력은 정말이지 놀랍더군요. 그 어떤 재료로도 훌륭한 요리를 낼 수 있는 솜씨, 확실히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서군 군사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싸구려 남은 재료들로 꽤 좋은 시합을 했구나, 운이 좋게.’
─그런 뜻이었다.
에릴로트도 방긋방긋 웃으며 실린을 쳐다봤다.
“원석을 발견하고, 가공하는 것이 원화의 역할이니까요. 하지만 중앙 원화처럼 처음부터 훌륭한 보석을 지니고 계신 것도 굉장한 일이지요. 역시 고귀하신 분.”
군사를 키우는 게 원화의 역할이잖아?
넌 이미 다 키워진 걸 데려와서 잘난 척하고 있네~?
역시 황제 도움 없이는 서지 못하는 샤토브리앙의 딸답다!
─라는 뜻이었다.
서군의 리암이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쿡, 웃었다.
실린은 굳은 얼굴로 에릴로트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금세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신의 가호로 좋은 기사들이 저를 찾아와 주었더군요.”
좋은 기사 찾는 것도 운이야.
아아, 참. 넌 운이 없어서 더러운 피로 태어났지?
“샤토브리앙 영애는 신의 사랑을 받는다는 말이 사실이었나 보군요. 두터운 신심을 신께서 가륵히 여겨주셨나 봅니다. 제 알량한 신심이 부끄러워요.”
응, 그렇게 모든 걸 ‘운 좋게’ 남이 이뤄줬지.
하이고, 자~랑스럽기도 하겠다. 기사도 아빠가 찾아와 주고, 중앙 원화를 만들어준 것도 아빠고…….
네가 한 게 뭐야?
모두 황도 사람인 만큼, 우아한 돌려 까기가 뭔지 잘 알고 있었다.
귀족들이 에릴로트의 말에 키득키득 웃자, 실린의 얼굴이 화르륵 타올랐다.
치맛자락을 꽉 비틀어 쥔 실린이 심판에게 홱, 고개를 돌렸다.
“시합, 시작하시지요.”
“예? 아아, 예!”
심판 볼프강이 소리쳤다.
“1번 선수는 앞으로 나오시오!”
서군의 1번, 이세즈가 나섰다.
중앙군의 1번은 깡마르고 작은 소년이었다.
그 소년은 엄청나게 두꺼운 로브를 입고 있었는데, 너무 마른 탓에 꼬챙이가 로브를 질질 끌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조윅이 에릴로트에게 속삭였다.
“암살조로 유명한 형제 중 동생 쪽입니다. 코크라고 합니다.”
“가호가 있어?”
“있다고는 하는데, 무슨 가호인지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코크가 히죽히죽 웃으면서 이세즈에게 말했다.
“코크다. 시합 전에 악수나 하자.”
그가 손을 내밀자 이세즈가 그의 손을 빠르게 쳐냈다.
“암살자에게 손을 내어줄 만큼 바보는 아니라.”
“헤에, 동군 녀석보단 똑똑한걸.”
코크의 목소리가 섬뜩하게 낮아졌다.
“……틈이 없어서 귀엽지가 않아. 재미없게 손에도 결계를 쳐놓을 건 뭐야.”
“……!”
이세즈의 표정이 굳어졌다.
‘저 녀석, 신성 파동을 느낄 수 있다.’
신성력과 마력은 상극의 힘이었다.
마력은 자연의 기를 뒤틀어서 ‘거짓을 창조하는 힘’.
신성력은 자연의 기를 흡수해서 ‘진짜를 강화하는 힘’.
애초에 사용법이 상극이라 서로의 힘을 이해하기 힘들다.
저 녀석의 불쾌한 기운은 필시 마력.
‘한데 내 신성력의 흐름을 읽었어?’
엄청난 고수란 소리였다.
크림슨 구울 이후로 처음 상대하는 강자다.
긴장으로 식은땀이 흐르던 그때였다.
“이세즈!”
이세즈가 흠칫, 등 뒤를 쳐다봤다.
에릴로트가 인상을 찌푸리고 그를 보고 있었다.
“말리지 마. 네가 저 손을 쳐내기 위해 결계를 만들었을 거란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야.”
이세즈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가 다시 코크를 쳐다봤다.
코크는 묘한 표정으로 에릴로트를 보고 있었다.
웃고 있으나, 어딘가 짜증이 난 것 같은 표정.
‘블러핑이었구나.’
이세즈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둥─, 둥─, 둥─!
북이 울었다.
“시합 시작이오!”
심판의 선언과 함께 결승전의 1회전이 시작되었다.
코크가 단검을 위로 던졌다, 받았다를 반복하며 말했다.
“한 번씩 주고받는 건 어때? 못 버티는 놈이 패배하는 거야.”
“안 믿어. 비열한 수를 쓸 것 같으니까.”
“그럴 리가.”
“거짓말을 잘하잖아, 넌.”
신성력을 읽을 수 없는 주제에 읽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면.
코크는 고개를 숙인 채 킥킥 웃었다.
“아아, 세상은 정말이지 불공평하다니까.”
“…….”
“나처럼 몇백 년 전에 조상이 귀족이었는지 가호가 있는데, 더럽게 가난해서 팔려나간 녀석이 있는가 하면─”
“…….”
“너 같이 부모 밑에서 잘 자라다가 황군이 된 녀석이 있고.”
“…….”
“게다가 잘생겼고, 똑똑하고─”
코크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이세즈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
“헉……!”
관중이 모두 숨을 들이켰다.
“따, 땅을 접어서 오는 것 같았어요.”
“<축지>가 저 중앙군 1번의 가호입니까?”
“진짜 땅을 접은 게 아니라 보법인 듯싶은데…….”
이세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코크는 히죽히죽 웃으며 새카만 손톱으로 이세즈의 뺨을 튕기듯 두드렸다.
“─저렇게 예쁜 애가 응원도 해주고.”
이세즈가 코크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그러나 코크는 유연히 몸을 틀어서 가볍게 검날을 피했다.
“어이쿠, 무서워라.”
“예쁜 애가 아냐.”
“예쁜데?”
그때였다.
구우우우웅─!
땅이 울며 엄청난 파동의 신성력이 경기장을 뒤덮었다.
위험을 감지한 코크가 재빨리 물러서려 했으나, 등 뒤를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가로막았다.
코크는 이세즈의 검을 확인했다.
‘45도에서 온다.’
그가 검을 피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을 때.
뻐어어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코크의 고개가 돌아갔다.
검은 미끼.
진짜는 주먹이었던 것이다.
이세즈의 주먹에 맞은 코크의 코 밑으로 새빨간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이세즈는 말했다.
“우리의 원화다.”
“……잘생긴 놈이 목소리까지 듣기 좋으면 진짜 재수 없는데.”
낮게 중얼거린 코크가 재빨리 이세즈의 팔 아래로 빠져나왔다.
그러나 움직이는 곳마다 쿵! 쿵! 소리와 함께 바닥에서부터 결계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오른쪽으로 피하면 오른쪽 바닥에서.
왼쪽으로 피하면 또 왼쪽 바닥에서.
결국 막다른 곳으로 몰린 코크는 씩씩대기 시작했다.
“이래서 신성계가 싫다고! 반칙이잖─ 윽!!”
이세즈의 주먹이 또 한 번 코크의 복부에 꽂혔다.
“아악! 저 빌어먹을 새끼. 검으로 공격하려는 듯이 굴면서 주먹을 쓰잖아!!”
“너, 공격이 온다 싶으면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이 움직이지?”
“무슨 헛소─ 아악!”
다시 주먹을 내지르는 줄 알고 피하려 했는데, 이번엔 검이 날아왔다.
코크가 검에 베인 왼팔을 감싸며 비명을 내질렀다.
이세즈의 생각이 맞다.
갓난아이 때부터 죽도록 반응 훈련을 했다.
“공격에 맞으면 우리 같은 건 치료해줄 사람도 없어. 쇳독이 올라 죽든, 독이 올라 죽든 죽는 거야. 무조건 피해.”
“하, 하지만 형…….”
“간다.”
“으아아악─!”
코크는 콧김을 뿜으며 씩씩거렸다.
하지만 이세즈의 공격을 막을 수 없었다.
검을 내지르나 싶으면 주먹이, 주먹인가 싶으면 검이 온다.
그도 아니면 신성 결계가 온단 말이다.
코크가 희멀건 얼굴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뭐, 뭐야. 왜 이렇게 진지해? 이건 페스티벌이야. 귀족들이 서커스를 관람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저 나리들을 더 즐기게 해줘야지. 응?”
“…….”
“이렇게 쉽게 끝내면…… 아아아악─!!”
이번엔 장딴지를 베였다.
코크가 울상이 되어 소리쳤다.
“나, 나는 절대 항복하지 못한다고. 직업상 기절도 못 하게 훈련받았어. 여, 여기서 날 이기려면 네가 날 죽이는 수밖에 없단 말야!”
“…….”
“날 죽일 거야?! 이깟 공연 때문에?!”
“…….”
“자, 잠깐, 컥! 잠깐……!”
이세즈의 주먹과 검이 무자비하게 날아왔다.
이세즈는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쪽은 목숨보다 더한 걸 걸고 있어서.”
“목숨보다 더한 게 뭔데……!”
처음으로 인정해준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다.
믿어주고, 지켜줬다.
그가 바란 모든 것을 이뤄준 아이가 등 뒤에 있었다.
저 아이는 제가 그토록 바라던 모든 것을 주었으나,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은 고작 승리뿐이었다.
평민이라고 해서 귀족들의 세계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에릴로트 아스트라는 가진 게 많은 만큼 결코 얕보여선 안 된다.’
얕보이게 되면 아이가 가진 것을 노리는 손이 생길 테니까.
그래서 결코 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언제까지 장난을 칠 셈이야, 코크!”
암살조 형제 중 형인 마크가 우렁차게 소리쳤다.
그러자…….
“……형은 참을성이 없다니까. 이런 건 기다릴수록 진짜 재밌는 건데.”
뭐?
이세즈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그 전까지만 해도 코크를 몰아붙이던 이세즈가 주춤, 뒷걸음질 치더니 입을 막았다.
“이세즈?”
에릴로트가 물었다.
상태가 이상했다.
그는 허리를 굽히고 있었는데, 어깨까지 가늘게 떨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에릴로트가 다가가자, 이세즈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이세즈? 왜 그래……?”
“…….”
“이세즈……?”
“……화.”
그 순간, 이세즈가 주르륵 주저앉았다.
“이세즈─!!”
안색은 새파랗고, 눈 밑은 충혈되었으며,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의 손 밑으로 새카만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