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87)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87화.(187/390)
187화.
바람을 타고 흩날리는 결 좋은 흑발.
깊고도 투명한 푸른 눈동자.
유려하게 떨어지는 턱선.
아직 앳된 티가 나는데도 결코 모자란 구석을 찾아볼 수 없는 외모였다.
미인을 숱하게 본 황궁인들조차 잠시 말을 잃었을 만큼.
그 옛날 데이몬드 아스트라의 아성을 떠올리게 하는 외모였다.
멍하니 소년을 쳐다보던 사람 중 누군가가 핫, 숨을 들이켰다.
“서부 예비 원화전!”
에릴로트와 셀레네가 예비 원화전을 두고 경쟁한 그 자리에 있던 용병이었다.
‘몰라볼 리 없잖아!’
대장군 출신 도망자, 칼리 무소의 위세를 뛰어넘던 강자였으니까.
서부 예비 원화전을 본 자들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 소년이로군요.”
“굉장했지요. 예, 그래요. 정말이지 굉장했어요…….”
“한데 대체 저 소년이 걷어찬 것은 뭡니까?!”
코크의 반대편에서 나타난 기이한 물체.
얼핏 사람인 듯싶은데, 성별과 나이를 알 수 없었다.
낡고 검은 천에 파묻혀 눈만 겨우 보였기 때문이었다.
코크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소년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소년이 낡은 천의 물체에 다가갈수록…….
“키이이익!”
얼굴이 마치 몬스터처럼 일그러지는 것이 아닌가. 마치 보호하려는 듯이.
소년과 검은 천의 물체 사이에 두세 걸음쯤 남았을 때였다.
검은 천의 물체가 소리쳤다.
“아샤크투라 샤칼라…!”
마치 주문 같은 말을 소리친 것이다.
제국어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대륙 공용어도 아니고, 외국어 같지도 않았다.
더욱 특이한 건…….
“모, 목소리!”
“예, 목소리가 코크의 것입니다!”
“잘못 들은 것 아니오?! 중앙군 1번은 반대쪽에 있지 않소?!”
그 순간 코크가 흑발의 소년을 향해 달려들었다. 팔을 써서 달리는 통에 얼핏 네발 달린 짐승으로 보인다.
흑발의 소년은 가볍게 코크를 피했다. 그러곤, 콱!
검은 천의 물체를 붙들었다.
바둥거리는 자세로 보아 목을 잡아 올린 듯싶었다.
“괴, 괴력? 가호가 괴력인가? 아니, 잠깐 천이 벗겨지는…… 핫?!”
검은 천이 바닥에 떨어지며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에 곰보가 핀, 작고 깡마른 사내.
코크였던 것이다……!
“말도 안 돼. 코크가 둘이라고?!”
“그런…… 아, 설마…….”
노클랑 선후작이 소리쳤다.
“저게 코크의 진짜 가호였구나! <분신>이다!”
말 그대로 자신을 복제하여 분신을 만들어내는 가호였다.
흑발의 소년은 손안에서 버둥거리는 코크를 지그시 쳐다봤다.
“애초에 원거리에서 독을 주입하는 가호 같은 건 없었지.”
“이익……!”
“분신을 전면에 내세우고, 실체는 ‘은신의 망토’로 서군 1번에게 접근. 등 뒤에서 독을 쓴 것이다.”
“이……! 놔! 놔아─!!”
코크의 형제인 마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정답이었다.
코크가 ‘실험장’에서 훈련받은 것 중 성공한 것은 딱 하나.
무기척의 보법이었다.
“기척을 완벽하게 숨겨서 접근해. 적을 겁먹게 만들면 네 승리야.”
“으, 으응, 형아…….”
코크가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렸다.
“어, 어떻게, 네가, 이걸 어떻게…… 절대로 들키지 않을 거랬는데, 형이, 형이 그랬는데……!”
“내가 있던 용병단에선 무기척의 보법도 읽어내라던 무지막지한 교관이 있었거든.”
“놔, 이거 놔, 형! 혀엉─!”
마크가 이를 악물고 튀어 나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튀어 나가려 했다.
중앙군에게 붙들리지만 않았다면.
“아직 시합이 끝나지 않았어!”
경기장에 난입하면 전원 실격이다.
코크의 분신은 공격 의지를 잃었다. 본체가 겁에 질린 탓에 마력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놔, 놓으라고!”
줄곧 사지(死地)에서 살아왔기에 알고 있다.
‘이, 이 녀석은 내가 상대할 놈이 아니야.’
급소를 제대로 압박해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품에 넣어둔 독을 꺼낼 수조차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버둥거리며 손톱으로 그의 손을 긁는 것뿐이었다.
“이, 이거 놓으란 말야. 난 패배를 인정할…… 흡!”
항복 선언을 할 셈이었는데, 소리가 나지 않았다. 무언가 폐를 꽉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괴, 괴력이 가호의 전부가 아니었단 말야?’
흑발의 소년은 덫에 걸린 생쥐처럼 버둥거리는 코크를 가만히 쳐다봤다.
“실격 조건은 셋.”
“끄으…….”
“장외, 항복 선언…… 그리고 경기 불가능한 상황에 빠졌을 때뿐이다.”
“……!”
“목이 부러지는 것도 경기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겠지.”
코크가 새파랗게 질렸고, 그 형인 마크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관중들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씨, 씨앗을 심은 대로 거뒀군요.”
그랬다. 확실히 이세즈가 궁지에 몰렸을 때와 같았다.
이세즈는 결코 패배를 선언하지 않고, 저쪽은 패배 선언이 간절하다는 것은 달랐지만.
코크가 신음했다.
“으극, 그, 끄윽…… 혀, 혀엉…….”
마크가 중앙군의 원화인 실린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항복을 선언하십시오!”
“…….”
“코크를 죽일 셈입니까?!”
“…….”
실린의 얼굴이 희멀게졌다.
항복 선언?
내가?
이 실린 샤토브리앙이 중앙 원화 중 처음으로 공개 전투 훈련에서 항복을 선언하라고?
사관이 기록할 것이다.
역사에 남을 거야.
최초로 항복 선언을 한 중앙 원화로 자신의 이름이 남는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 하지만…….’
주변의 시선이 쏠려 있었다.
에릴로트 아스트라는 세 치 혀로 간악하게 항복 선언을 피했다. 자신의 군사가 원하지 않는다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크는 간절히 항복 선언을 바라고 있었다.
‘선언하지 않으면…….’
분해서 가슴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왜?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
그냥 군사가 직접 항복하게 하면 되잖아!
실린이 반대편에서 고요히 서 있는 에릴로트를 찢어 죽일 듯 노려봤다.
‘저 계집애가 시킨 거야. 날 망신 주려고……!’
“중앙 원화─!!”
코크의 얼굴이 붉어질수록 마크의 목청이 높아졌다.
아버지인 샤토브리앙 공작의 명으로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중앙 기사도 고개를 저었다.
방법이 없으니 항복하라는 의미였다.
“이미 시간을 너무 끌었습니다. 관중들이 술렁이고 있어요, 원화.”
“…….”
“서두르지 않으면 원화의 평판이…….”
실린은 입술을 꽉 깨물고 중얼거렸다.
“항…….”
그때였다.
흑발의 소년이 코크를 장외로 내던지며 말했다.
“그 정도로 지독한 인간은 아니라.”
심판의 깃발이 올라왔다.
장외 실격!
그것을 뜻하는 푸른 깃발이.
중앙군 4번과 샤토브리앙 공작, 그리고 실린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이렇게 되면 실린이 자존심에 항복을 선언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다.’
아니나 다를까 노클랑 선후작이 쩝, 입맛을 다시며 매우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군사를 위해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할 터인데.”
“아버지, 제발 좀…….”
“혼잣말이다.”
관중들도 술렁이고 있었다.
흑발의 소년은 힐끗 에릴로트를 쳐다봤다. 점잖은 얼굴이지만 턱이 움찔거린다.
에릴로트는 낄낄거리고 싶은 걸 꾹 참고 있을 때 꼭 저런 표정을 지었다.
에릴로트가 주변의 눈치를 보곤 슬쩍 엄지를 치켜들었다.
제2시합, 서군의 대승이었다.
실린이 파르르 떨던 그때 마크가 말했다.
“다음 시합은 언제 시작합니까.”
“……뭐?”
“내 손으로 죽여버리고 말겠어요.”
마크의 눈이 분노로 번들거렸다.
* * *
제2시합 후, 우리는 20분의 휴식을 하게 되었다.
중앙군을 살피며 우리 군사들의 전략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저쪽에서 궁인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원화, 잠시 뵙기를 청하는 분이 계십니다.”
……왔구나.
나는 빙그레 웃고 궁인을 따라갔다.
누군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야, 시합 중간에 이렇게 날 찾을 사람이야 뻔하지 않은가.
나를 인적 드문 곳으로 안내한 궁인이 떠나갔다. 그러자 불러낸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부르셨습니까, 이시론 공작님.”
이시론 공작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잔뜩 애가 닳은 것이다.
‘제 2시합에서 완벽하게 승리한 흑발의 소년이 알렉시스였으니까─!’
정말로 외손주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데굴데굴 구르고 싶은 지경일 것이다.
“저 자가 내 손주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
“시합 중에 아시게 될 것입니다.”
“언제까지 날 네 손바닥에서 춤추게 할 셈이야─!”
제르모 공작만큼이나 속 감추는 데엔 선수인 그가 완벽하게 민낯을 드러냈다.
“그리 오래는 걸리지 않을 거예요.”
“저 애가 안나마리아의 아들이란 것을 이 시합에서 증명하지 못한다면 어찌할 것이냐.”
“이 목을 내어드리지요.”
“…….”
나는 생긋 웃고서 말했다.
“하지만 증명한다면, 공작님께서 제 청을 들어주셔요.”
“……청?”
나는 까치발을 들고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시론 공작의 눈이 커졌다.
“너…….”
“들어주시겠어요?”
“…….”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본 그가 짓씹듯 말했다.
“저 애가 정말로 안나마리아의 아들이라면.”
7년이 넘도록 공들인 계획이 이제야 궤도에 올랐다.
나는 짙게 미소 지었다.
아마도 할아버지와 아주 닮은 미소일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 종이 울었다.
시합 재개의 신호였다.
* * *
시합이 시작되었다.
마크는 알렉시스를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코크는 완성품이었다.
‘실험실’ 놈들도 하지 못한 일은 제가 이루었다.
실험실에선 4등급 이하의 아이들을 폐기한다. 코크는 폐기를 앞에 둔 쓰레기였다.
그런 쓰레기를 이름난 암살자로 만든 것이 자신이다.
코크는 자신의 첫 작품이었단 말이다.
지난 시합 후, 코크는 완전히 겁을 먹었다. 마치 폐기를 목전에 두었을 때처럼.
‘이제 저건 써먹을 수 없다.’
가호를 들키고, 무기척의 보법을 사용한다는 것도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나마 살아는 있으니 실험용 쥐 정도로는 쓸 수 있겠군.’
장사 수단이 드러난 이상 더는 이용할 수 없는 것이다.
마크가 알렉시스에게 살벌하게 읊조렸다.
“저건 내 첫 작품이었다.”
“동생이 아닌가.”
“쓰레기를 저렇게 다듬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과 돈이 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나.”
목을 주무르던 알렉시스가 하하, 낮게 웃었다.
“알 게 뭐야, 쓰레기야.”
“이 새끼가─!”
쾅! 쾅! 쾅!
마크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겨우 복구했던 경기장이 부서지고 있었다.
마크.
그는 코크와 격이 달랐다.
무수히 많은 실험체가 존재하는 실험실에서 언제나 탑을 달리는 실력자.
그 흉포한 경비원들조차 12살의 자신에게 감히 대항하지 못했다.
“힘으로만 서열을 따진다면 난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어야 할 사람이야!”
마크가 알렉시스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과과광─!!
살벌한 소리를 내며 경기장 한구석이 무너졌다.
알렉시스가 재빨리 피하지 않았다면 그 또한 저 바닥처럼 산산조각이 났으리라.
그러나 피한 것도 잠시.
알렉시스가 피한 쪽으로 또 다른 사람이 등장했다.
10시 방향으로 피하면 그곳에 또 다른 사람이.
3시 방향으로 피하면 그곳에 또 다른 사람이…….
관중 하나가 기함하며 중얼거렸다.
“모, 모두 마크예요. 저쪽도 <분신>을 쓰는군요……!”
“형제는 같은 가호가 발현하기도 하니.”
“하지만 숫자가 달라요. 코크는 하나도 쉽게 만들어내지 못했는데 벌써 경기장에 12명의 마크가…….”
저 괴력과 분신의 숫자.
괴물 같은 능력이었다.
서군은 분통을 터뜨렸다.
“몬스터는 금지하면서 왜 분신은 그냥 두는 거야! 저러면 다대일이잖아!”
“하나의 자아라 이거지.”
“빌어먹을. 저런 걸 어떻게 상대해…….”
알렉시스는 완전히 수세에 몰린 것으로 보였다.
마크가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아아, 벌써 겁먹지 마. 충분히 귀여워해 준 다음 목을 비틀어버릴 테니.”
“…….”
여전히 피하는 곳마다 분신이 늘어갔다.
마크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제르모 공작이 앞쪽 자리에 있는 데이몬드에게 물었다.
“몇 명이나 더 늘릴 수 있을 것 같소?”
“적어도 두 배는 가능해 보입니다만.”
“뭐요?! 허어…….”
데이몬드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마크를 살폈다.
‘열여덟의 분신을 만들고 나서야 마력 파동이 거칠어졌다.’
파동으로 봐선 두 배까지 분신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가호가 2단계…… 아니, 3단계는 능히 되겠군.’
반면에 딸의 군사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에릴로트의 호위를 맡은 눈엣가시 같은 놈.
아스트라 장원의 훈련 때도 눈여겨 보았지만, 결코 한계를 드러내는 법이 없다.
‘숨기는 데에 능해.’
귀족들은 벌써 내기를 하고 있었다.
“저건 질 수밖에 없지. 분신이 본체 능력을 고스란히 받았다면 필패야. 난 마크 쪽에 걸겠소.”
“나도 마크요.”
“이런, 나도 마크인데……. 내기가 되겠소?”
알렉시스는 피하는 게 고작인 것으로 보였다.
이시론 공작은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이 시합에서 무엇을 증명한단 말인가.’
공작들도 하하 웃으며 내기를 걸었다.
제르모 공작이 말했다.
“우리도 뭐라도 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샤토브리앙 공, 거실는지요.”
“내 장원의 서쪽 곡창지대라도 걸어볼까. 하하하!”
그런데 그때였다.
“뭐, 뭐야?!”
마력이 약한 사람까지 느껴질 만큼 강력한 파동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사슬…… 육체 지배의 사슬이다!”
서부 예비 원화전에서 보였던 그 능력.
밀란 아스트라와 같은 가호였다.
알렉시스가 마크의 분신 하나를 사슬로 단단히 옭아맸다.
그리고 무감한 목소리로 말했다.
“분신은 지배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볼까.”
뭐?
마크의 얼굴이 딱딱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던 찰나 사슬에 묶인 분신이 본체인 마크를 공격했다.
“……!”
“이런, 가능한걸. 하나의 자아라더니.”
“너 이 새끼……!!”
약이 바짝 오른 마크의 분신 중 하나가 달려들었다.
그런데.
콱!
결계에 부딪혔다.
“겨, 결계? 네 놈, 결계를 쓸 수 있었어?”
이건 이세즈의 결계와 똑같은 형태였다.
그리고 반대쪽에선…….
“어, 어?! 땅이……!”
관중이 소리쳤다. 마치 카진이 그러했듯 경기장을 변형하고 있는 것이다.
이시론 공작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지배자의 위세!’
초대 황제의 가호로 역사상 최강의 가호였다.
이시론 공작이 중얼거렸다.
“진짜였어…….”
진짜였다.
이보다 더 완벽한 증명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