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9)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9화.(19/390)
19화.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해마다 도착하는 초상화 속의 에릴로트는 쑥쑥 자라 있었다.
처음엔 머리카락도 별로 없더니, 이제는 돌돌 묶어서 양쪽에 고정을 시킬 정도였다.
‘……다람쥐?’
이따금 달력으로 초상화가 오는 날을 체크하곤 했다.
가끔이었다. 아주 가끔.
그리고 얼마쯤 뒤.
‘지난달에 초상화를 그렸을 텐데 왜 아직까지…….’
가문이 망해서 화가를 들일 여력도 안 되나.
늙은이는 그렇게 돈을 박박 긁어모으더니, 화가 하나 제때제때 안 들이고.
“부르셨습니까, 장군,”
“그래. 이번엔 초상─”
“예?”
“…….”
“장군?”
“아니다.”
엔조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초상? 무슨 초상…… 설마 날 초상 치르게 하겠다는 건가!’
엔조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렇지 않아도 작년엔 생긴 게 마음에 안 든다고 진지를 서른 바퀴나 뛰게 했던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내, 내 얼굴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드시나.’
아닌데.
우리 어머닌 잘생겼다고 했는데.
‘장군의 취향이 아닌가?!’
머리를 빡빡 밀었다.
머리로는 별로 안 변한 것 같아서 눈썹도 밀어보았다.
나름대로 열심히 장군의 취향에 맞춰보려고 했는데…….
“개기는 거야?”
진지를 마흔 바퀴 돌아야 했다.
그렇게 몇 주.
여전히 초상화는 오지 않았고, 데이몬드의 기분은 저조했다.
그런데.
“장군! 본성에 있는 우리 사람에게서의 연락입니다!”
“무슨 일이냐.”
“아가씨께서 가호를 발현하셨고, 12번째 탑에서 본성으로 옮겨가신다고 합니다.”
‘이 미친 늙은이가.’
그 늙은이라면 뒷배 없는 아이에게 본성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모를 리 없다.
특히나 아스트라 공작의 관심을 받는 아이라면, 형제들은 눈에 불을 켤 것이다.
몇 달이 지나도록 기분이 저조했다.
그러던 어느 날, 늙은이에게서 귀환령이 내려졌다.
“장군께서 순순히 돌아가실까?”
“이제 헤리움의 벽만 뚫으면 적진으로 진격할 수 있는데 가실 리가.”
“그래. 이대로 돌아가면 전공은 다른 놈 차지가 된다고.”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난 돌아가셨으면 좋겠구만. 자식 얼굴 본 지가 벌써 5년이야.”
다들 데이몬드가 귀환령에 불복하리라 여겼다.
그런데.
“짐 싸. 아스트라 장원으로 돌아간다.”
“예?!”
엔조와 부관들은 사색이 되어 설득했지만, 데이몬드는 완강했다.
전쟁터에 너무 오래 있었다.
딱히 본성에 딸이 갔다는 얘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렇게 성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서 사과해.”
“…….”
“내 말 안 들려!”
제 앞에선 감히 고개도 들지 못하는 데콘스가 소리치는 모습을 보았다.
데콘스 앞에서 손을 꼼지락거리는 아이.
자신과 닮은 금발에 자신과 같은 적안.
그러나 저와 달리 한없이 말랑하게 생긴 조그만 다람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얼떨결에 생긴 아이지만, 아비와 똑같은 짓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부모 된 도리만 하자.
돌아오면서도 내내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여전히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는구나, 데콘스.”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면, 치마를 꼭 부여잡은 손이 너무 작아서.
커다란 눈에 배인 감정이 공포라서.
고작 세 살짜리가 공포를 학습했다는 게 화가 나서.
그게 꼭…… 어릴 때의 자신 같아서.
그런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날 밤, 제 관할지로 돌아가려던 데콘스의 마차는 습격당했다.
범인이 3m 거구라는 소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아밤미!”
자꾸 아이가 찾아왔다.
아이 앞에선 뭐 그리 크게 도와준 것 같지도 않은데, 먼저 찾은 적도 없는데 아이는 끈질기게 자신을 쫓아왔다.
처음 병영에 왔을 땐 제 다리에 매미처럼 달라붙기도 했다.
‘저 녀석은 겁도 없나.’
전장의 핏기가 다 빠지지 않은 병사들을 지나서, 남들은 다 소름 끼친다는 제게 매일 같이 찾아온다.
아침 먹고 오고, 점심 먹고 오고, 저녁 먹고 또…….
매일 혼자.
‘저 애 입장에서 난 처음 보는 성인 남자일 텐데.’
그래도 아버지랬다고 열심히 쫓아다니는 게 신기했다.
자꾸만 시선이 갈 만큼.
“음, 으으음, 음.”
제 집무실 양탄자에 배를 깔고 누운 아이가 콧노래를 부르며 책을 읽었다.
‘읽는 것은 되나.’
고작 3살짜리가 신통했다.
‘글씨도 쓸 줄 안다고?’
[몬득이]‘…….’
그래도 두 글자는 맞았다.
‘성장이 빠른 걸 보면 역시 날 닮아서…….’
─까지 생각하다가 인상을 썼다.
자꾸 눈앞에서 거슬리게 구니 별생각이 다 들었다.
그 늙은이가 무슨 생각인 건지 하딕스 산에도 함께 오르게 되었다.
기어코 쫓아와선 그늘에 덩그러니 앉은 모습이 보기 싫었다.
성에 있으면 춥지나 않지. 왜 여길 굳이 쫓아와서.
다가가자 그 애는 벌떡 일어났다.
“아밤미!”
그렇게나 반가울까.
대체 내가 뭐라고.
한 번도 누군가 자신을 반가워한 적이 없어서, 그는 그런 아이가 마냥 이상해 보였다.
“……지치지도 않고 쫓아다니는구나.”
아이는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곤 한참을 우물쭈물하다가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이다.
“아밤미, 기차나……? (아버님, 귀찮아요……?)”
“…….”
“그러면은요. 하루에 한 범만 가께요…….”
“…….”
“아밤미 안 기찮게 몰래 보께요.”
“…….”
“쪼꼼 보고 빤니 가께요.”
‘어떻게 너는 사람을 그토록 좋아할 수 있지?’
나는 답할 말을 찾지 못해 결국 이번에도 말을 삼켰다.
몬스터와 전투를 치를 때조차 아이가 신경 쓰였다.
그리고 병사가 정화석을 떨어뜨린 순간.
아이는 그 작은 몸으로 절벽까지 달려가 정화석 위에 웅크렸다. 몬스터가 제게 달려드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눈이 뒤집혔다.
아이를 공격한 몬스터를 걸레짝으로 만들고도 좀처럼 분이 풀리지 않았다.
“너, 이게 무슨─!”
“내, 내가 잡았어요.”
“…….”
“아, 아밤미 피료한 거 내가 잡았어.”
“…….”
“이제 나 안 기찮지……?”
아이는 우둔했다. 바보 같고, 멍청하다.
대체 왜.
너는 어째서.
올 적마다 한 번을 반겨주지 않는 아비가 뭐라고.
아주 기묘한 감정.
덜덜 떨리는 아이를 안은 순간 알았다.
‘아, 그래.’
애틋하다는 게 이런 감정이었다고.
어쩌면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그 오랜 시간을 견뎌왔는지도 모르겠다고.
“아밤미…….”
약을 먹고 잠든 아이의 손을 지켜보던 데이몬드가 흠칫했다.
“몸은 어때.”
“…….”
아이는 조그만 손을 꼼지락거리다가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 아밤미야.”
“……그래.”
“그러니까 내가, 에리로트가요. 아밤미를 조아해도 돼요?”
“…….”
아이로 인해 몇 번이나 사무치는지 알 수 없었다.
울컥 치민 무언가를 어렵게 삼킨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응.”
“…….”
“맞아, 에릴로트.”
우리는 서로를 마음껏 사랑해도 괜찮아.
쓰다듬은 뺨이 따뜻했다. 온기가 저 깊은 곳까지 스며들도록.
울면서 웃는 아이가 가슴 저미도록 사랑스러웠다.
* * *
잠에서 깬 나는 끙, 신음했다.
몸이 불편하다.
‘아픈 건 아닌…… 엥.’
눈을 뜨니 보인 건, 웬 단단한 가슴팍이었다.
고개를 번쩍 들자, 햇살을 받아 그림처럼 근사한 미남이 보였다.
‘맞다, 나 아버지랑 같이 잤지.’
저 긴 다리를 아이용의 침대에 쑤셔 넣느라 아버지는 아주 불편한 자세였다.
‘밤새 간호까지 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새벽에 잠깐잠깐 눈뜰 때마다 아버지는 내 침대맡에 있었다.
암 투병 중일 때도 밤새도록 누가 날 지켜봐 주는 일은 없었다.
엄마가 가뭄에 콩 나듯이 자고 가긴 했지만,
‘오히려 내가 시중들었지.’
필요하단 걸 사다 주느라 편의점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도 이제 간호해주는 사람 있다!’
어디 가서 자랑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배를 깔고 누워서 아버지의 얼굴을 구경했다.
‘내 아버지야.’
동생과 차별하던 새아버지 말고, 진짜 아버지.
까딱 잘못하면 이히히, 웃음이 나올 것 같아서 나는 조그만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러고 있는데.
“몸은 어때.”
약간 쉰 듯,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가 나른히 눈을 뜨고 날 보고 있었다.
“갠차나.”
“더 자지 왜.”
“쪼꼼 전에 일어나써요. 아밤미가 자.”
나는 벌떡 일어나서 아버지의 옆구리를 팡팡 두들겼다. 내 쪽을 보고 누워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픽, 웃고 몸을 일으켰다.
“힘을 보니까 이제 다 나은 것 같네.”
“녜.”
“가서 식사하자.”
아버지는 나를 번쩍 안아서 1층으로 내려갔다.
시무룩하게 청소 중이던 하녀들이 날 보고 얼굴이 밝아졌다.
식당의 하인도, 다이닝룸의 하인도 마찬가지였다.
“아가씨.”
“아가씨─!”
……왜들 이래?
쓰러지기 전과는 다른 반응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마침 아버지가 씻고 올 테니, 식당에 가 있으라고 해서 나는 아빠의 품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러자 아버지가 가는 걸 확인한 하이디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손엔 웬 꽃다발이 들려있었다.
“정원에서 보냈어요. 아가씨의 무사 쾌유를 빈다고요.”
베티도 신이 나서 말했다.
“어제도, 그제도 왔어요. 아가씨 방에 장식했어요!”
“마구간에 제임스는 그림을 샀대요. 아픈 사람이 낫는다는 소문이 있는 그림이래요.”
“주방의 칼리하고요, 세탁실의 리지도─”
그러고 보니까 코너 벽이라든지, 기둥에 하인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표정이 다 울먹울먹했다.
“……?”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서 물었다.
“하잉들이 나 조아해?”
“당연하죠! 아가씨는 귀엽고, 사랑스럽고, 또─”
“저희의 영웅이니까요!”
‘아하.’
레이첼 부인을 쫓아내 준 걸 가지고 엄청나게 고마웠나 보다.
하긴, 사람이 말인 것처럼 채찍질하고 다닌 사람이었으니.
‘그리고 이제 내가 무섭기도 할 테고.’
경외를 호감으로 착각하는 사람은 꽤 많다.
나는 하이디에게 꽃을 받았다.
“고마어.”
“꺄─, 귀여워!”
“사랑스러워!”
……근데 좀 부담스럽긴 하다.
식당으로 걷는 동안에도 과하게 반짝반짝한 시선들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성이 어수선했다.
뭐랄까, 딱 정리된 느낌이 아니라 우왕좌왕하는 것 같은 느낌?
‘총 집사가 없으니까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거야.’
관리자의 부재.
거기다 하인들 절반이 우르르 잘려 나갔으니.
‘미켈란은 어떻게 되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테이블에 앉아있으니, 아버지가 식당에 들어왔다.
물기 어린 머리칼, 촉촉한 얼굴, 단추 몇 개를 풀어서 드러난 목덜미.
식사 시중을 들던 하녀들이 몽롱한 표정으로 “하아아…….” 하며 신음했다.
남자 하인 몇도 붉어진 얼굴로 쟁반을 끌어안고 있었다.
응? 남자 하인은 왜?
‘……뭐, 그럴 수도 있지.’
그 후, 식사가 나왔다.
아버지와 나는 맞은편에 앉아서 식사했다.
메뉴는 먹기 편한 밀 죽과 채소구이였다.
나는 구워서 나온 피망을 보고 의기양양해졌다.
피망은 어린이의 적이었지만, 공작성에서 극복했다 이거야.
오물오물 피망을 먹던 중에 아버지의 접시가 보였다.
아버지의 메뉴도 동일했다. 채소구이가 비어 있었는데, 브로콜리만 덜렁 남아있었다.
“아밤미, 브로코리 안 머거?”
아버지의 손이 흠칫했다.
잠깐 침묵하던 아버지가 말했다.
“……아니.”
“시러해?”
“……난 브로콜리를 아주 좋아해.”
그러더니 아버지가 브로콜리를 입에 넣었다.
왜인지 모르게 턱이 기계처럼 움직였다.
“……봐, 난 브로콜리를 좋아하잖아.”
“하나 남았눈데.”
“…….”
아버지가 남은 브로콜리를 쳐다봤다. 찌를 듯한 시선이었다.
그는 다시 기계처럼 브로콜리를 집었다. 그리고 얼마쯤 뒤에야 입에 넣었다.
‘좋아해서 아껴뒀나 봐.’
나는 내 접시에 있는 브로콜리 세 개를 쿡, 쿡, 쿡, 꼬치처럼 찔러서 아버지의 접시로 옮겨주었다.
“마니 머거.”
“……응.”
내가 준 것을 잘 먹는 아버지를 보고 난 흐뭇해졌다.
‘이런 건 처음 해봐.’
가슴이 간질간질하다.
그때였다.
엔조가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손엔 서류가 들려있었다.
“무구 교체 요청입…… 아니, 장군이 브로콜리를……!”
“닥쳐.”
엔조가 헙,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의 기분은 왜인지 아주 많이 안 좋아 보였다.
엔조가 희멀건 얼굴로 아버지의 앞에 서류를 내려놓았다.
“아, 그리고 알아보라시던 것을 조사했습니다. 미켈란 님이 아가씨께 주신 약 말입니다.”
“그래.”
“발현병 약이었습니다.”
“발현병?”
“예.”
발현병이라면 가호가 발현할 때 갓난아이들이 앓는 열병을 말한다.
‘나한테 그 약을 왜 줬지?’
심지어 효과가 있었…… 어?
‘내가 앓았던 게 가호 발현병이었다면…….’
나는 스푼을 든 채로 굳어졌고, 아버지와 엔조는 계속해서 대화를 나눴다.
“발현병은 대천문(아기 머리의 숨구멍)이 닫히기 전에 발현할 텐데.”
“예, 심지어 아가씨는 이미 가호를 발현하셨죠.”
아니.
남들은 고대어를 읽는 게 내 가호인 줄 알지만, 아니다.
나는 가호가 없다.
그렇다는 건…….
‘발현병을 앓은 게 가호가 생기려고 그랬던 거야.’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다 머거써요. 나, 방에 갈래.”
“그래.”
아버지와 엔조에게 인사한 뒤에 헐레벌떡 방으로 돌아왔다.
방 안에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문을 꼭 닫았다.
그리고 내 서재에 있는 책을 뒤졌다.
‘지난번에 여기 있는 걸 봤는데…… 아, 여기 있다.’
나는 <가호 사용의 시작>이라는 제목의 책을 펼쳤다.
─가호에는 수백 가지 종류가 있다.
크게는 공격 계열의 <불꽃>부터 작게는 <현재 시각을 정확히 알리는 능력>까지, 종류와 힘이 다양하다.
대부분 부모와 같은 종류의 가호를 물려받으나, 드물게 확인이 안 된 특이한 가호를 발현하는 자도 있다.
(중략)
가호 시동법은 단전에 마력을 흘려보내고─
‘찾았다.’
나는 가호가 없어서 시동법을 배운 적이 없다.
고대어가 가호라는 게 알려진 후에는, 사람들이 내가 자연스럽게 시동법을 익힌 줄 알았다.
나는 책의 내용을 따라 했다.
‘단전에 마력을 흘려보내서…….’
그리고 그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