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90)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90화.(190/390)
190화.
실린은 기둥에 깔리는 충격으로 백수정 목걸이를 놓쳤다.
그 애가 백수정 목걸이를 집으려고 안간힘을 다해 손을 뻗었을 때.
팟─!
나는 시원한 소리가 나게 목걸이를 발로 차버렸다.
그리고 어깨를 으쓱했다.
“어쩌나. 목걸이가 이제 완전히 경기장 밖으로 나갔는데.”
“당신……!”
실린의 눈에 살기가 가득했다.
나는 저 애가 내게 했듯 생글생글 웃으며 말해줬다.
“지금이라도 항복하겠어?”
자랑하던 백수정 목걸이는 사용 불가.
저 애의 힘으론 기둥을 들어 올릴 수 없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러니 심판의 도움도 받을 수 없겠지.
완전히 사면초가의 상황인 셈이었다.
실린이 이를 악물었다.
나는 한쪽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
“자랑하던 가호도 이제는 쓸 수 없잖아?”
“…….”
“항복밖엔 답이 없다는 걸 알잖아?”
실린이 눈에 독기를 품고 나를 노려보았다.
관중들은 흥미진진한 표정이었다.
귀족들의 앞에서 원화군의 자웅을 가리는 공개 전투 훈련 어쩌고 하지만, 사실 대대로 우승자는 중앙군이었다.
그야 중앙군은 원화군의 5군 중 특히 실력 있는 자들이 뽑혀가는 곳.
마찬가지로 중앙 원화란 원화 중 가장 뛰어난 자였다.
원화군 중 가장 뛰어난 자들이 모인 중앙군이 다른 군에게 패배할 리 없지.
‘그런데 여기서 내가 이긴다면, 실린은 역사에 기록되어 죽어서도 망신을 당하겠지.’
그러니까 실린의 입장에선 절대로 패배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빨리 날 찍어누르고 있는 이것을 치워요! 날 죽일 셈이에요?!”
“전쟁 중에 적군이 죽을까 봐 힘을 모아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
“이……!”
“그러니까 항복해. 치워줄 테니까.”
그러나 실린은 시간만 끌고 있었다.
‘바보 같긴.’
나 같으면 백수정 목걸이가 장외로 떨어진 순간, 곧장 패배를 인정했을 것이다.
어차피 질 거라면 ‘상황 파악이 빨라서 패배했을 때의 손해도 최소한으로 줄인 거다’라는 평이라도 얻어야 하니까.
‘하지만 쟤는 그렇게 못하겠지.’
실린한테 난 ‘더러운 피’니까.
고귀한 자신보다 한참 못한 더러운 피에게 패배를 인정하는 건 죽기보다 싫을 거다.
그것도 이 많은 사람 앞에서 항복을 선언하는 것이다.
온 세상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거라고 생각해서 치가 떨리겠지.
‘속내야 알 바 아니니까 빨리 좀 끝내줬으면 좋겠네.’
벌써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내 가호인 <열람>은 마력 소모량이 엄청나다.
거기다 본래 내 것도 아닌 2단계의 힘을 스토리의 도움으로 낸 것이니, 진이 쭉 빠졌다.
‘상태를 보아하니 경기장에서 내려가자마자 기절할 것 같은데…….’
내가 이래서 가호를 잘 안 쓴 거다.
벌써부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왔다.
하지만 빙글빙글 웃는 척 간신히 버티고 있던 찰나.
텁─!
실린이 내 발목을 잡았다.
그래봐야 할 수 있는 것은 없겠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저렇게 큰 기둥에 깔렸으면서 뭘 하겠다고…….’
실린이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었다.
“이대로 끝날 줄 알고?”
“뭐?”
“이 시합에 뭐가 걸렸는데…… 난 절대 안 버려져. 날 버릴 수 있는 건 없어. 절대, 절대…….”
실린이 계속해서 무어라 중얼거렸다.
감이 나쁘다.
나는 황급히 실린의 손을 떼어냈다.
그런데 그때였다.
* * *
파아아앗─!
실린과 에릴로트 사이에 반딧불이 같은 황금빛이 몰려들더니 이윽고 하나의 선이 되었다.
실린과 에릴로트를 잇는 황금색의 선.
샤토브리앙 공작이 흠칫, 실린을 쳐다봤다.
‘복제……!’
에릴로트의 가호를 복제하고 있는 것이다.
가호 <복제>의 조건은 세 가지였다.
1. 복제할 가호의 소유자와 접촉해 있을 것.
2. 소유자의 가호 단계가 실린과 동일하거나, 그보다 낮을 것.
3. 육체를 방어(결계나 마력막 등으로)하고 있지 않을 것.
실린의 입매가 오만하게 비틀렸다.
부친은 말했다.
‘시합에서 지면 실린을 버리겠다’라고.
아마도 그건 황제의 뜻일 터다.
‘누가 그렇게 쉽게 버려질 줄 알아?’
시합에서 패배한다면, 자신을 버리지 못할 조건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에릴로트 아스트라에게서 용을 빼앗아서─!
‘저 더러운 피도 용 때문에 아스트라에 붙어 있는 거잖아.’
그런데 생각해보라.
에릴로트 아스트라보다 훨씬 뛰어난 자신에게 용이 생긴다면?
황제도, 부친도 결코 자신을 버릴 수 없었다.
도리어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겠지.
저 사악한 아스트라에게서 거대한 힘을 빼앗은 거니까.
에릴로트에게서 용을 빼앗았다고 아스트라가 항의를 해도 뭐 어떻단 말인가.
‘그때는 이미 내가 용을 테이밍한 다음일 텐데.’
저 더러운 피는 용만 없으면 결국 평범한 계집애였다. 그러니 자신이 용을 차지하고 처리하면 그만.
그땐 아스트라도 제힘을 두려워할 테니, 쓸모없어진 더러운 피 따위는 미련 없이 버릴 것이다.
“실린 샤, 토브리, 앙!”
에릴로트가 가슴께를 움켜쥐며 물러났다.
이 ‘복제의 선’에 붙잡힌 사람은 마력까지도 상대에게 빼앗긴다.
아마 지금 마력이 미친 듯이 빠져나가고 있을 테니 엄청나게 고통스러울 터다.
그러나 복제의 선은 피할 수 없었다.
실린이 입꼬리를 올렸다.
“어디 잘난 힘을 잃어 봐!”
이제 대외적으로 보이던 가면까지도 벗어던졌다.
용만 내 손에 들어오면 다들 고개를 숙일 텐데, 더는 이미지를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관중들이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했다.
“뭐, 뭐지?”
“지금 대체 뭘 하고 있기에 두 사람이 갑자기 저러는 거요?”
“복제의 선……. 복제의 선이다─!”
“복제? 설마 가호를 복제하고 있다고? 그럼 <마물 조련>의 가호를 복제한단 말이오?!”
아스트라 공작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의 휘하 귀족 또한 얼굴이 새파래졌다.
‘저러다 정말로 용을 빼앗기면…….’
그러나 샤토브리앙 당파 귀족의 표정은 밝았다.
‘용만 손에 넣는다면 이 제국은 우리의 세상이다.’
아스트라 공작의 당파 귀족이 고함을 내질렀다.
“시합을 중지하셔야 합니다! 이미 다 끝난 시합에서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거요! 중앙 원화를 끌어내시오─!”
샤토브리앙 공작의 당파 귀족 또한 지지 않고 목청을 높였다.
“시합 중입니다!”
“이미 패배는 예정되었어! 시합에서 질 것 같으니 가호라도 약탈할 셈인 게야─!”
“중앙 원화에게 어떤 책략이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시합 중엔 결코 끼어들 수 없는 것이 규칙입니다!”
샤토브리앙 공작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라도 용을 빼앗을 수 있다면 살 구멍이 생긴다.
에릴로트는 빠져나가는 힘을 막지 못하고, 결국 바닥에 주저앉았다.
“으윽…….”
“에릴로트!”
데이몬드가 희게 질린 얼굴로 딸의 이름을 불렀다.
실린은 황홀한 표정이었다.
‘더러운 피지만, 과연 반은 데이몬드 아스트라의 핏줄이구나.’
쏟아져 들어오는 마력이 엄청나다.
시합 중에 꽤 힘을 소모한 것 같은데도 이토록 엄청난 양이라니.
‘마력에 취할 것만 같아.’
생명력을 마력으로 전환할 수 있듯, 마력 또한 다른 힘으로 전환할 수 있다.
괜히 군사 중 괴력을 가진 자가 많은 것이 아니었다.
실린은 에릴로트에게 빼앗은 마력의 일부를 근육으로 밀어 넣었다.
자신을 깔아뭉개고 있던 기둥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기둥을 떨쳐내고 몸을 일으킨 실린이 무릎 꿇고 있는 에릴로트를 향해 사뿐사뿐 걸어갔다.
“어차피 패배할 거라면 관중들께 좋은 구경이라도 시켜드려야겠죠?”
제 입으로 항복 선언을 하는 것보단, 규칙 위반으로 탈락하는 쪽이 나았다.
실린이 머리칼을 매만지며 말했다.
“으음, ‘그 아이’의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너…… 그만, 으윽…… 그만둬…….”
“아아, 생각났다.”
“이건 정말로, 네 생각을 해서 하는 말…… 이야. 여기서 그만둬─!”
“그래, 맞아. 그런 이름이었어.”
실린이 쿡쿡 웃곤 소리쳤다.
역사상 최초로 사람에게 테이밍 된 그 용의 이름.
“라곤─!!”
테이밍한 자가 불렀으니 이제 그 거대한 날개로 상공을 가르며 오겠지.
‘아아, 나의 용…….’
나의 용, 이라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단어였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어……?”
실린이 우뚝 멈춰서더니 허공을 향해 눈을 깜빡였다.
샤토브리앙 공작까지 의자에서 반쯤 일어나 딸을 살폈다.
“실린이 왜 갑자기 멈춘 것인가.”
잔뜩 흥분해 있던 샤토브리앙 공작의 당파 귀족들이 하핫! 웃으며 말했다.
“너무 엄청난 힘인 터라 몸에 무리가 온 게 아니겠습니까?”
“용이 부름에 응할 때 생기는 현상일 수도 있지요.”
“한데, 황궁에 용을 불러들여도 되겠습니까? 폐하께서 노하시기라도 하면…….”
누군가 걱정 어린 투로 말하자, 다른 귀족이 히죽 웃었다.
“노하셔도 어찌하시겠나. 폐하께서도 당신의 눈으로 보실 필요가 있지. ……세상이 이제 우리 손에 달렸다는 것을.”
게다가 변명하려면 못 할 것도 없었다.
서군 원화에게 겁을 줘서 항복시키려던 것인데, 처음 복제한 능력이다 보니 실수했다…… 뭐 그런 변명 말이다.
관중들도 바짝 긴장했다.
“정말로 용이 황궁에 오면 어찌합니까.”
“설마 폐하께서 계시는 황궁에 용을 불러들이겠는가. 허풍이겠지…….”
좌우지간에 에릴로트 아스트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다 이긴 싸움을 놓친 게 되어버렸다.
‘복제의 가호를 가진 아이를 상대하면서 어찌 결계도 펼치지 않았단 말인가?’
그런데 점점 더 이상했다.
금붕어처럼 뻐끔거리던 실린의 입이 종국엔 쩍 벌어졌다.
“뭐, 뭐, 뭐……가, 대체 뭐가…….”
으응?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실린에게 집중했을 때였다.
“괴, 괴물……. 괴물…… 몬스터…… 꺄아아아아아아악─!!!”
실린이 비명을 내지르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한 것이다.
에릴로트는 가슴께를 쥔 채로 헐떡였다.
‘그러니까 복제하지 말랬잖아, 이 멍청아.’
에릴로트에겐 <마물 조련>의 가호 같은 건 없다.
그건 다 뻥이란 말이다!
스토리의 힘으로 운 좋게 용을 얻었을 뿐이다.
‘내 진짜 가호는 <열람>이라고……!’
게다가 라곤을 얻었을 때처럼 운 좋게 스토리의 힘으로 가호가 2단계가 되었다.
상위 단계의 가호는 복제하지 못할 테니 당연히 이상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복제의 선이 이어진 걸 보면…….’
자연적으로 생긴 힘이 아니라, 스토리의 힘으로 억지로 틀어서 끌어올린 힘이라 이상이 생긴 것이다.
그런 상태로 제힘이 뭔지도 모르고 사용했으니…….
에릴로트가 새파란 얼굴로 겨우 실린을 쳐다보았다.
실린은 정말로 괴물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왜냐면…… 정말 괴물이 보였으니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이게 뭐야. 난 <마물 조련>을 사용했는데 왜……!’
처음엔 에릴로트 주변에 검은 연기가 잔뜩 몰려 있는 것이 보였다.
저게 뭔가 하여 쳐다보고 있는 틈에 연기들이 몇 개씩 뭉쳐 들었다.
그리고 괴물 같은 형태가 되더니, 저 괴물 떼들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윽…… 그, 그긋…….]“오,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마……!”
[그그그극, 극…….]“에릴로트 아스트라, 네 짓이지! 이 더러운 피! 규칙을 어기고 몬스터들을 데리고 있었던 거야! 그렇지?!”
[그아아아아…….]“오지 마, 오게 하지 마. 에릴로트 아스트라! 더러운 피, 어서 몬스터를…… 몬스터를……!”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니었다.
크림슨 구울, 심지어 고대 몬스터를 봤을 때도 멀쩡하던 몸이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
실린이 점점 장외로 몰려가던 순간, 몬스터들이 일시에 자신을 덮쳤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실린의 비명이 날카롭게 메아리쳤다.
죽어. 죽어. 죽어. 놀자, 언니. 죽어. 제이미, 너 또 닭장에 들어갔니. 놀자.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엄마, 살려줘요. 죽어. 죽어. 죽어. 신이 우리를 버렸…… 어. 죽어. 만들어진 것들 주제에. 죽어. 죽어. 죽어. 살려주세요, 신님. 살려주세요. 죽어. 죽어. 미워, 인간이 미워. 어째서 우린 영혼이 되어서도 고통받아야 하는 거야. 죽어. 죽어. 죽어. 진짜 신의 창조물은 우리인데. 죽어. 죽어. 저것들은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일 뿐인데. 죽어. 죽어. 다시 기회를 주세요, 신님. 다시는 오만하게 굴지 않고, 그리고, 그리고. 죽어어어어어어어─!!
머릿속으로 끔찍한 소리들이 밀려들었다.
그 사이로 보이는 백발을 가진 인간들의 평온한 얼굴.
태풍에 삼켜져 고통스러운 듯 신을 부르짖고 있는 얼굴.
끔찍한 비명이 살려달라 애걸하고 있는 얼굴들 사이로 메아리친다.
실린의 목이 뚜둑, 소리를 내며 꺾였다.
하늘을 쳐다본 눈에 실핏줄이 터져 동공이 온통 새빨개졌다.
혈관이란 혈관은 모두 불타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눈꼬리를 타고 피눈물이 뚝, 뚝, 흘러내린다.
그 순간.
[내 아이의 것을 탐했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구나, 노예의 아이야.]어딘가에서 미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림자들 사이로 나타난 백의를 입은 장발의 사내가 나타났다.
빙하처럼 시린 눈을 한 남자는 눈이 녹아내릴 듯 아름다웠다.
“사, 살려주세요……. 살려…….”
이런 공포는 처음이었다.
열등감, 질투, 미련, 악의…… 모든 끔찍한 감정이 고인 웅덩이에 버려진 기분이었다.
그때, 실린의 그림자에서 등이 한껏 굽은 깡마른 남자가 나타났다.
백의의 남자와 달리 엄청나게 추레한 차림새였다.
저 귀족에게도, 다른 귀족에게도, 또 다른 귀족에게도 모두 그림자들이 붙어 있었다.
백의의 남자는 그중 가장 강력하고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실린의 그림자에서 나타난 추한 남자가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제, 제사장이시여! 제 잘못이 아닙니다.] [한데.] [감히 당신의 아이의 힘을 탐한 건 제, 제가 아니라, 저는 아니고……!] [해서.] [주, 죽이십시오. 이 아이의 육신과 혼을 모두 드릴 테니 제발 저는…… 저만큼은……!] [안타깝군. 수호성에게 이토록 쉽게 버려지다니.]백발의 남자가 고개를 가볍게 젓고, 에릴로트를 쳐다봤다.
[어찌할까.]묻자, 에릴로트가 인상을 찌푸렸다.
“뭘 봐……요! 나도 죽겠는데……!”
백발의 남자가 겁에 질린 실린을 향해 빙그레 웃었다.
[그렇다니 도리가 없구나, 노예의 아이야.]실린이 흠칫, 에릴로트를 쳐다봤다.
“사, 살려줘.”
“웃기는 소리…… 하네.”
“사, 살려줘! 다 고백할게! 전부 다! 장막을 끌어들인 건 나야! 내가 사주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