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91)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91화.(191/390)
191화.
그 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샤토브리앙 공작이었다.
‘대체 무슨 소리를……!’
다 이긴 시합에서 갑자기 정신이 나간 것처럼 굴더니, 정말로 미친 것처럼 죄를 줄줄 토설했다.
경기장과 관중석이 터질 듯 시끄러워졌다.
“뭐라고?!”
그런 소문이 있었다. 몇몇은 정말로 실린의 짓일 거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자리에서 인정하다니?
사람들이 웅성거리던 와중에 샤토브리앙 공작의 당파 귀족들이 당황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어떻게 된 일이죠?”
“글쎄요……. 무슨 책략이 있는 게 아닐까요.”
“예, 그렇지 않고서야 너무 이상하─”
대화를 나누던 이들이 샤토브리앙 공작을 쳐다보고 흠칫했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뭐야, 저 표정은……!’
‘설마 합의되지 않은 일이란 말인가?’
‘용을 차지할 수 있는 이때에 대체 무슨 생각으로…….’
샤토브리앙 일파가 상황을 파악하는 중에도 실린은 입을 멈추지 않았다.
“제발. 응? 제발, 아스트라 백작 영애…….”
실린에게 있어 이런 공포는 처음이었다.
태어나길 고귀하게 태어났다.
샤토브리앙 공작의 막내딸.
부친이 젊은 시절부터 황제의 측근으로 신임받고 있어서, 황제가 직접 탄생 선물을 전해주기도 했다.
가지고 싶은 것은 모두 다 가졌다.
보석, 신비한 동물, 아름다운 드레스, 사람, 그리고…….
‘가호까지도.’
자신에겐 복제의 가호가 있었으니까.
그 어떤 몬스터 앞에서도 겁먹은 적이 없었다.
원화가 되어 고대 몬스터를 마주했을 때도, 고대 몬스터 급의 크림슨 구울에게 사로잡혔을 때도.
‘그런데 이건…… 이것은…….’
손발이 벌벌 떨린다.
장딴지가 달달 흔들려서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았다.
그림자 괴물들도 무섭지만, 가장 두려운 건 저 남자였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저 장발의 남자.
대륙의 자랑이라는 미모의 데이몬드 아스트라만큼 아름다웠으나, 본능적으로 느꼈다.
‘나는 상대할 수 없어.’
저건 심연이었다.
아니, 어떤 강력한 힘의 결정체 같았다.
“살려줘. 하지 말라고 해. 하, 하지 말라고……!”
“웃기…… 고 있네. 저는 날 죽이려고 했으면서…….”
에릴로트는 끙, 신음하며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 * *
머리가 핑핑 돈다.
나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가까스로 정신을 집중했다.
‘아, 마력이 다 빠져나가는 줄 알았네.’
몸의 연결부위가 다 끊어지는 것 같았는데, 심지어 엄청나게 세게 차이기까지 해서 죽는 줄 알았다.
‘그나저나 저거 세일론을 보고 있는 것 맞지?’
내 가호를 미약하게나마 복제했기 때문인 듯싶었다.
나의 가호 <열람>은 이 세계의 모든 정보를 알 수 있으니까.
세일론을 보는 것도 가호 덕이었으니, 내 가호를 복제한 저 애에겐 모든 게 보일 거다.
‘그런데 왜 저렇게 겁먹었어?’
세일론만 보는 게 아니라 주변을 보며 흠칫, 흠칫, 몸을 떤다.
“제, 제발 저 남자랑 이 그림자들 좀…… 제발…….”
그림자가 대체 뭔데?
그때, 세일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네겐 보이지 않겠지.]‘뭐가요?’
[글쎄. 네가 좀 더 힘을 단련한다면 알 수 있지 않을까.]하여간에 제대로 알려주는 법이 없다.
‘세일론이 무서운 건 알겠어.’
산전수전을 다 겪은 나조차 절로 움츠러들었다.
‘그런데 저렇게까지 겁먹는다고?’
가호의 대미지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중이란 건 알겠는데…….
[수호성은 단지 가호를 빌려주는 존재가 아니니까. 그리고 저 아이는 수호성에게 버려졌지.]아하, 알겠다.
가호의 대미지와 수호성에게 보호받지 못하는 탓에 이성적인 생각이 불가능하다는 거구나.
‘잠깐만…… 그럼 이거 기회잖아?’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그럴 때가 아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거짓말! 넌 알잖아! 아아, 살려줘. 아버지…… 아빠!”
실린이 제 아버지를 보며 눈물을 터뜨렸다.
그 아버지는 멀리서 봐도 새파란 것으로 보아 도움을 주긴커녕, 필요한 모양인데도.
‘잠깐만 앞으로 좀 걸어가 주세요.’
수호성이라 마음속으로 하는 말도 들리는 것 같아서 속으로 생각하니, 세일론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너는 내가 우습게 보이는 모양이구나.]‘걸어가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나는 명을 듣는 존재가 아니야. 내리는 존재이지.]세일론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서 난…….
‘그럼 나 계속 여기서 이렇게 버틴다!’
[……!]이제까지 <열람>의 가호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선, 세일론에게 난 ‘특별한 아이’였다.
내가 죽으면 저 남자도 엄청 곤란하다는 뜻이다.
‘어? 나 아주 지금 죽을 것 같은데 더 버티면 진짜 죽을 수도 있어요.’
협박하듯 말하자, 세일론이 기가 막힌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나 진짜 막 버텨?!’
세일론이 [저 영악한 게…….] 하고 중얼거리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한 발 한 발 실린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는 ‘흐응.’ 하고 웃었다.
‘이게 통하네.’
그렇다면 앞으로도 종종 도움을 받을 수 있겠는데.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세일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필 저런 것이 나를 버틸 수 있는 그릇으로 태어나서…….]‘그래도 내가 소중하잖아요?’
[빌어먹을.]세일론이 다가갈수록 실린은 점점 더 새파래졌다.
흠칫, 흠칫, 물러서며 쥐어짜듯 중얼거린다.
“오, 오지 마…… 오지 마! 아빠! 아빠, 도와줘요!”
샤토브리앙의 당파 귀족들은 이제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들이 꽥꽥 소리쳤다.
“시합을 중지하셔야 합니다!”
“중앙 원화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이미 항복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폐하!”
“직속군은 무엇 하는가! 참가자의 상태를 점검해라!”
진짜 웃기고들 있다.
실린이 <마물 조련>의 가호를 복제한 줄 알았을 때는 내 상태가 이상해도 시합 속행을 부르짖더니.
실린은 이제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내질렀다.
“꺄아아아악─!! 오지 마!! 아빠, 살려주세요! 도와줘……! 뭐 하는 거야, 아빠─!!”
사색이 된 샤토브리앙의 당파들은 발을 동동 구를 태세였다.
“이미 시합을 할 상태가 아닙니다! 서둘러 시합을 종료하셔야─”
나는 소리쳤다.
“중앙 원화는 움직일 수 있습니다─!!”
“……!”
“……!”
가뜩이나 상태가 안 좋은데, 두개골이 깨질 것 같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관중석을 올려다보았다.
“시합이 끝나지 않았어요. 그 누구도 황군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저런, 고약한……! 서군 원화에겐 인정이란 것이 없는가!”
“전쟁에 인정이 있습니까.”
“그, 그건…….”
“폐하의 안위 앞에 인정이 중요합니까?”
“…….”
“우리는 황군. 또한 폐하의 안위를 지키는 자들의 어머니입니다. 나약한 부모가 어찌 자식에게 강해지라 종용할 수 있습니까?”
“…….”
“원화는 군사들의 본이요, 길을 밝히는 등불. 우리는, 우리의 등을 보고 있는 자들 앞에서 넘어져도 일어나는 법을 보입니다.”
“…….”
“이것이 크로노스 아스트라의 가르침이며, 폐하를 향한 충정입니다, 공!”
[하여간에 말은.]세일론이 픽 웃었다.
‘내가 말빨 하나로 그 눈물 나는 인생을 버텨왔다고요.’
좌중은 조용해졌다.
결국 결단은 황제가 내리는 것이다.
황제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윽고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시합을 속행해라.”
“폐하─!”
샤토브리앙 공작이 졸도할 것 같은 얼굴로 황제를 부르짖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실린을 쳐다봤다.
“내가 말했잖아. 너, 죽이겠다고. 죽일 각오로 시합에 임한다고.”
“아아…… 으, 흑…….”
“아스트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실린이 오열하며 소리쳤다.
“내, 내가 조금 지나쳤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지나쳐? 무엇이?”
“너, 너는 더러운 피잖아. 더러운 피 주제에 내가 가져야 할 것들을 가져갔잖아.”
“뭔데, 그게.”
“선망, 시선, 동경…… 그 모든 것!”
“…….”
“네가 잘못한 거잖아! 난 그냥 겁을 주려고 했을 뿐이야. 네가 네 주제를 알고 떨어져 나가게…… 이 황도가 널 환영하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려고!”
“……그래서 종년 축제 전야제에서 외궁에 괴한을 끌어들여?”
“네가 계속 나를 무시하니까. 그건 네 탓이잖아……!”
“외궁이었어. 폐하와 황족들이 계신 곳.”
“폐하가 날 얼마나 아끼시는데. 날 얼마나 귀여워하시는데! 너 같은 건 상대도 안 되게…… 꺄악!”
주변을 둘러본 실린이 또 비명을 내질렀다.
사람들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가호의 대미지지요?”
“예, 아무래도 서군 원화의 가호 수준이 중앙 원화보다 높았던 것 같습니다.”
“해서 정신이 나간 나머지 토설을 한다……. 기가 막혀라.”
“아직 어린 소녀니까요.”
“어린 소녀가 사람을 그리 쉬이 죽이려 합니까?”
“……그 또한 생각이 짧았기 때문이지요.”
“그간 폐하께서 저 아이를 잘못 대했다는 것만은 알겠습니다.”
“예, 폐하의 다정한 눈길에 취해 분간을 못 했군요.”
“샤토브리앙 공작이 황군에 얼마나 개입을 해왔는지도 알겠습니다. 그러니 남군 원화가 그리 겁을 먹고, 중앙 원화에게 휘둘렸던 것일 테지요.”
사람들의 시선이 차가워졌고, 샤토브리앙 공작은 희게 질려 마른침을 삼켰다.
나는 경기장 외곽까지 밀려난 실린에게 다가갔다.
실린이 벌벌 떨며 물었다.
“사, 살려줄 거지. 그렇지?”
“그래.”
“아……!”
실린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때, 나는 실린을 뻥 걷어차서 장외로 떨어뜨렸다.
“듣고 싶은 건 다 들었으니까.”
─말하고서.
심판을 돌아봤다.
“뭐해요?”
“예? 아, 아니, 뭐가 말이오.”
“장외. 시합 끝났잖아요?”
“……아.”
심판 볼프강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실린과 나를 돌아봤다.
그러곤.
“시합 종료! 서군의 승리요!”
승자를 소리쳤다.
이로써 나는 종년 축제에 이어 또 한 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공개 전투 훈련에서 처음 우승을 차지한 서군 원화로 이름을 올리면서.
* * *
시합이 끝나고 돌아가자, 서군의 참가자들이 날 맞이했다.
그 뒤엔 아빠와 할아버지가 있었다.
아빠는 거의 뛰어오고 있었다.
서군 참가자들은 신이 나서 소리쳤다.
“우승입니다. 원화, 우승이에요!”
“시합 중에 잠깐 움직이지 못하신 것. 혹시 누군가에게 제약당했기 때문입니까?”
“서군에서 우승이라. 이거 대대로 칭송받을 이야기로군요.”
다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와중에, 아빠가 참가자들을 밀쳐내며 내게 다가왔다.
“에릴로트.”
“아빠.”
“괜찮으냐? 혈색이…….”
“……아빠.”
“그래. 일단 의사와 치유사에게 진료를 받아야─”
“종년 축제가 끝나고 말씀드린다고 했던 거요…… 그거, 이제…… 아, 이제…….”
목소리가 고장 난 테이프처럼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릎이 휘청 꺾이더니 점점 시야가 좁아졌다.
“에릴로트!”
“원화─!”
“의사……! 아니, 치유사! 누구라도 어서!”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사내들의 고함이었다.
* * *
그날 저녁.
실린이 침대에서 눈을 떴다.
침대가 딱딱하고, 이불은 뻣뻣하다. 기분 좋지 않은 촉감에 인상을 찌푸리고, 주변을 둘러봤다.
소독약 냄새.
어슴푸레한 조명.
작은 침대.
‘병동……?’
에릴로트가 걷어차서 장외로 떨어지자마자 기절한 모양이었다.
기절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전의 내용은 잘 생각이 안 난다.
‘시합이 어떻게 되었더라.’
내가 에릴로트 아스트라의 가호를 복제하려다가…….
“부스럭거리지 좀 마. 잠이 안 오잖아.”
옆에서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렸다.
실린이 흠칫 옆을 쳐다봤다.
얇은 커튼이 쳐져 있어서 옆자리는 안 보였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실루엣이 보인다.
여리여리 마른 몸.
굽이치는 곱슬머리.
기분 나쁜 목소리까지…….
“에릴로트 아스트라? 네가 왜…….”
“왜긴. 네가 복제한답시고 내 마력을 다 빼가서 기절한 거지.”
“뭐?”
“그래도 그렇다. 어떻게 너랑 날 한 병실에 둔담.”
“그게 무슨 소리…….”
중얼거리던 실린이 흠칫, 고개를 들었다.
이제야 점점 기억이 돌아오고 있었다.
다가오던 그림자들.
눈부시게 아름다운 장발의 사내.
목을 조이는 것 같은 공포.
그리고…….
“내가, 내가 무슨 말을…… 대체.”
커튼이 확 쳐졌다.
책을 잡고 있던 에릴로트가 실린을 쳐다봤다.
“그래서? 네가 끌어들인 괴한들이 누군데?”
“무, 무슨 소리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토설했잖아. 외궁에 괴한을 끌어들인 건 너라고.”
“허, 헛소리하지 마! 내가 그땐 네 술수에 당해서…… 아, 그렇지. 네가 무슨 수작을 부린 거지?!”
“수작은 개뿔. 네가 복제하려다 실패해서 대미지를 받은 거잖아?”
“아냐, 네가 무슨 술수를 벌인 거야. 그래서 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말들을……!”
실린이 벌떡 일어났다.
사색이 된 실린이 에릴로트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와는 한방에서 지내고 싶지 않아. 난 저택으로 돌아가겠어.”
“그건 좋은데, 가기 전에 말해주고 가라니까. 그 괴한들, 누구야?”
“너와 할 얘기 없어!”
빽, 소리친 실린이 병실을 달려 나갔다.
등 뒤로 에릴로트의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나한테 말하는 게 좋았을 텐데. 뭐, 좋아.”
정말이지 기분 나쁜 목소리였다.
실린은 복도를 걸었다.
‘빨리, 빨리 저택으로 가서 아빠와 이 일을 상의해야…….’
그런데 이상했다.
마주치는 궁인들마다 수군거리고 있었다.
“뻔뻔하기도 하지.”
“폐하께서…… 샤토브리앙 공을…… 화가…… 응, 엄청나셨거든.”
처음 받는 무시의 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