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92)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92화.(192/390)
192화.
실린이 궁인들을 노려보았다.
수군거리던 이들이 눈을 피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만약 평소에 저런 꼴을 자신이 봤다면, 저들은 납작 엎드려서 벌벌 떨었을 것이다.
눈도 마주치지 못했을 것들이…….
‘대체 뭐야, 이게.’
5대5 공개 전투 때의 일 때문인가?
그래서 날 저렇게 무시하는 거야?
실린이 이를 악물었다.
‘가만두지 않겠어.’
실린은 빠르게 몸을 옮겼다.
서둘러 부친을 만나 오늘 일을 해결해야 했다.
걷는 곳마다 시선이 느껴졌다.
“그렇다니까. 외궁에…… 폐하께서…… 응.”
“다른 원화들에게도 견제…… 이전의 서군 원화가 급히 퇴직한 것도…….”
“원화가 되기 전에도…… 네, 기가 막히는 일이죠.”
황제궁 앞에선 경비병들에게 가로막혔다.
“출입하실 수 없습니다.”
“폐하를 뵈려는 게 아니에요. 저는 아버지를─”
“송구합니다.”
경비병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중에도 주변에선 야멸찬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수군거리는 소리까지도 끊이지 않는다.
“남군 원화가 명을 받고…….”
“세상에나.”
“서군 원화가 가엽…… 그래, 동경의 시선을 가로채서 싫다고…… 어이가…….”
참다못한 실린이 소리를 내질렀다.
“그만들 지껄이지 못해─!!”
고함을 내지르자, 황제궁의 궁인들이 나섰다.
중년의 시종이 앞에 나서 인상을 찌푸렸다.
“황제궁 앞에서 소란은 곤란합니다, 원화.”
“저는─”
“해가 졌습니다. 출궁하시지요.”
“아버지를 만나서 함께 출궁하겠다니까요! 왜 말도 전하지 않고 가로막는 거예요?!”
“원화.”
“저들의 입이나 막으라고─!! 감히 내 앞에서 저따위 소리를 지껄이잖아!!”
실린이 옷자락을 꽉 틀어쥐며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이 무슨 난리인가!”
궁 안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중앙탑의 거두들이었다.
소리친 것은 노클랑 선후작이었다.
등 뒤에선 그들을 기다리던 귀족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요?”
“누가 감히 황제궁 앞에서 소란을 벌이는 것이지요?”
하나같이 불쾌한 표정들이었다.
실린이 흠칫, 어깨를 좁혔다.
“그게 아니라…… 궁인들이 무례했던 터라…….”
“아무리 무례했다고 쳐도 어디 감히 황제궁 앞에서 악을 내지르는 것이냐.”
“어, 어르신…….”
원화가 된 후로 항상 인자한 미소로 대해주던 노클랑 선후작은 노기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원화’ 혹은 ‘영애님’이라고 부르며 손바닥을 비비던 이들도 한순간에 바뀌었다.
제 어머니의 치마 뒤에 숨었던 미성년의 귀족들은 입매를 비틀고 있었다.
‘저것들이…….’
실린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수그렸다.
“부, 불쾌하게 하였다면 송구합니다. 하나, 전 원화로서 궁인들의 방종을 단속하려 했을 뿐입─”
그때였다.
누군가 풋, 웃으며 말했다.
“핑계는 늘 그럴듯하군.”
그러자 등 뒤에 있던 귀족 아이들이 킥킥 웃었다.
“외궁에 괴한을 들인 것도 폐하의 안위를 위한 일이라 변명하겠어요.”
“혹시 모르죠. 다른 원화의 방종을 단속하기 위해서라고 할지도.”
“핑계조차 성의가 없군요.”
“성의라는 게 뭔지 알기나 할까요. 중앙군에서 공주 놀음이나 하던 분이 말이에요.”
실린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사리문 아이가 귀족 아이들을 노려봤다.
“더 이상의 무례는 용납하지 않겠어요, 영애.”
“사실을 말하는 것도 무례인가 싶군요. 아, 말이 나온 김에 묻지요. 외궁에 괴한은 왜 들이셨습니까?”
“……가호의 대미지로 혼미했습니다. 해서 망상을 아무렇게나 떠든 모양인데, 오해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폭소가 터졌다.
귀부인들은 입가를 가리고 웃었고, 사내들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입매를 비틀었다.
아이들이 키득키득 소리를 내며 서로를 쳐다봤다.
귀족 소년이 말했다.
“서군 원화의 말이 맞군요.”
“네?”
“이렇게 변명할 거라 했거든요.”
“……!”
귀족들이 키득키득 웃으며 속삭였다.
“하여간에 서군 원화는 영리하다니까요.”
“그러니 중앙 원화가 질투에 미쳐 감히 외궁에 괴한을 들였겠지요.”
“다른 원화들을 이용해서 사교계에서 고립시키려 한 것은 어떻고요.”
실린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에릴로트 아스트라. 이 영악한 게……!’
실린이 귀족 아이들을 쏘아보았다.
“설마 그 말을 믿으세요? 저를 더 오래 보셨잖아요.”
“오래 봐왔기에 더 실망스럽죠.”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그러던 찰나, 귀족들의 시선이 일시에 황제궁 앞으로 쏠렸다.
문을 통해 잔뜩 굳어진 샤토브리앙 공작이 나오고 있었다.
그제야 실린의 표정이 풀어졌다. 아이들을 한 번 더 노려본 아이가 한달음에 제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아버지, 얘기를 나눠야겠어요. 서군 원화가 제게 이상한 짓을 해서요.”
“그 입 다물어라.”
“……아버지?”
샤토브리앙 공작이 딸을 쳐다도 보지 않고 지나쳤다.
묵묵히 걷는 공작에게 노클랑 선후작이 소리쳤다.
“이번에도 폐하의 아량에 기대서 넘어갈 생각은 하지 마시오.”
“…….”
“난 공이 황군에 손을 대온 것을 결코 용서할 수 없소. 내 성정은 알겠지. 이 늙은 몸이 부서지는 순간까지도 물고 늘어질 거요.”
“…….”
실린이 싸늘한 귀족들을 쳐다보곤, 잔뜩 긴장해서 제 아버지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
“입 닥치라고 하지 않았어─!”
“……!”
“너는 따로 와라.”
“그, 그런…….”
샤토브리앙 공작이 먼저 자리를 떠나고, 귀족들이 흩어졌다.
삼삼오오 모인 이들이 사라질 때까지 오늘의 일에 관해 떠들었다.
“해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아버지?”
“샤토브리앙 쪽은 큰일이겠지. 도와줄 폐하께선 등을 돌리셨고, 아스트라 공작이 손녀의 일에 크게 노해서…….”
“아버지, 진정 좀 하십시오.”
“진정?! 황군이 이따위로 돌아가고 있는데 어찌 진정을 하겠느냐! 전우회를 소집해라!”
“제발 좀…….”
“이제 실린 샤토브리앙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게 문제가 아냐. 저 애의 맹랑한 거짓말에 속았던 아이들이 만약 서군 원화에게 실수라도 했다면 우리까지…….”
실린은 완전히 무리에서 낙오된 갈매기 같았다.
홀로 남은 그녀를 보던 궁인들이 픽, 실소를 흘렸다.
‘이, 일을 수습해야 해.’
수습하면 다시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노클랑 선후작이 전우회를 소집한다고 했지?’
전우회는 역대 대장군으로 이루어진 회합이다.
아직도 황군에 영향력이 지대했다.
특히 현 대장군은 전우회의 신임을 받고 있으니, 그들의 말을 넘어가지 못할 터.
‘화, 황군을 조사하려 들면…….’
이 상태로 원화 자리에서까지 쫓겨나면 끝이다.
서둘러 원화들과 군사들을 단속해야 했다.
실린은 황급히 횃불의 궁으로 달려갔다.
제 사무실에서 서류들을 점검하려 했는데, 온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원화들이 아직 있는 거야.’
잘 됐다.
만나주지 않으면 어쩌나 했는데, 이참에 얘기를 나눌 수 있겠다.
실린이 온실 안으로 들어갔다.
동군 원화 세바스티아와 남군, 북군 원화가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었다.
남군 원화는 실린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전 이만 가보겠어요.”
“리카!”
실린이 얼른 남군 원화의 팔을 잡았다.
“그러지 말고 얘기 좀 해요.”
“나눌 말이 있나요?”
“노클랑 선후작이 전우회를 소집한대요.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원화군이 조사를 받을 것 같아요. 나를 밀어내려는 거겠지요.”
“그래서요?”
“곤란한 건 나만이 아니잖아요?”
실린이 어색한 표정으로 남군 원화를 쳐다봤다.
“리카, 당신도 내 도움을 받았잖아요. 안 그래요? 북군 원화도 그렇고요.”
“…….”
“남군 예비 원화전에서 승리하게 해준 사람이 누구예요? 이 일이 알려지면 큰일이잖아요.”
“…….”
“그러니까 다들 군을 단속해주세요. 제겐 문제가 없었다고 말하도록요. 이상한 건 서군 원화였다고, 그러니까 신뢰할 수 없다고…… 리카, 벤야, 세바스티아…….”
“…….”
“우, 우리 잘 지냈잖아요. 생각해봐요. 서군 원화가 오기 전까지 얼마나 다정했었는지 잊은 건…… 아니죠……?”
“기가 막혀.”
남군 원화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곤 실린을 거칠게 떼어내고 소리쳤다.
“단속? 이미 벌써 군사들이 조사실로 들어갔어─!”
“뭐, 뭐라고?”
“네가 네 입으로 토설했으니 조사가 빠를 수밖에! 아스트라에서 단속할 시간을 줄 것 같았어?!”
“그런…… 말도 안 돼…….”
“아스트라 양이 깨어나자마자 바로 원화군의 출입을 막고 조사를 시작하게 했다고─!!”
실린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 야멸찬 시선으로 봤는지 이제야 알겠다.
그들은 원화 자리에서 쫓겨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남군 원화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실린을 노려봤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뭐?”
“그날 외궁 경비는 남군과 중앙군이 맡았잖아! 너 때문에 나까지 괴한을 끌어들이는 것을 도운 것이 되었다고! 난 몰랐는데도─!!”
남군 원화가 엉엉 울며 실린의 어깨를 흔들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원화에서 쫓겨나면…… 그러면 난……!”
“……내 탓이 아냐. 이건 전부, 전부 에릴로트 아스트라의 탓이잖아.”
“당신이잖아요─!”
이번엔 북군 원화가 소리쳤다.
북군 원화도 울먹이고 있었다.
“무, 문제가 없다고 해서 당신이 준 것들을 받았는데…… 난 그냥 북군을 위한 건 줄 알고…….”
“…….”
“아버지가 엄청나게 화를 내셨다고요. 이게 언니 귀에까지 들어가면 난 죽었어…… 허엉……!”
남군 원화는 계속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책임져! 잘난 아버지한테 말해서라도 책임지란 말야!”
“이제 어떻게 해요? 아아앙……! 언니가 날 죽일 거야……!!”
팔짱을 끼고 있던 세바스티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몸을 일으켰다.
실린이 흠칫, 세바스티아를 쳐다봤다.
“어, 어디 가요?”
“전 세 분과 엮인 일이 없는데요. 논의하시려거든 세 분이 하세요.”
“그렇다고 이렇게 가버리는 게 어디 있어요?! 의리도 없는 거예요?”
“범법자에게 의리를 지켜야 하나요?”
세바스티아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실린을 쳐다보고 걸음을 옮겼다.
막 문을 나서려던 그녀가 뒤를 쳐다봤다.
“범법자에겐 지킬 의리가 없지만, 그래도 남군 원화, 북군 원화까지 빠지면 원화군을 통솔하는 데 무리가 있겠군요.”
“그럼……!”
“도, 도와주시겠어요?”
남군 원화와 북군 원화의 표정이 밝아졌다.
세바스티아가 말했다.
“살고 싶은 주제에 대체 뭘 미적거리고 있는 거예요?”
“네?”
“무슨…….”
“지금 이 일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이 누구겠느냐고요.”
남군 원화와 북군 원화가 서로를 쳐다봤다.
두 사람이 동시에 핫, 숨을 들이켰다.
그러곤 헐레벌떡 뛰어가기 시작했다.
“에, 에릴로트 양이 어디에 있다고 했죠?”
“그게 그러니까…… 아스트라 공작님과 백작님께서 황제 폐하와 독대 중이시니 아직 가지는 않으셨을 테고…….”
“병동! 병동이에요!”
“앗! 같이 가요!”
실린이 저를 두고 미친 듯이 달려가는 두 사람에게 소리쳤다.
“날 두고 간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제까지 함께 한 건……!”
두 사람은 실린의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에릴로트에게 달려갔다.
세바스티아는 픽 웃고서 말했다.
“앞으로 볼 일이 없을 것 같으니까 조언 하나 하죠.”
“……필요 없어.”
“왜요? 조언 좋아하면서.”
“당신…….”
“내일이면 세상이 뒤집힐 거예요. 그 전에 떠나는 게 좋지 않겠어요?”
“…….”
“떠날 수 있다면 말이지만.”
세바스티아가 문을 나섰다.
기다리고 있던 동군의 상장군이 고개를 숙였다.
그가 문 안을 살피곤 물었다.
“이제 어찌하시겠습니까?”
“글쎄. ……잘 보이는 것?”
“잘 보인다고요?”
“에릴로트가 이제 원화군을 손에 넣을 듯하니까.”
“이미 그 아이를 의동생으로 두시지 않았습니까.”
세바스티아는 후훗 웃었다. 그러곤 흥얼거리듯 말했다.
“에릴로트에게 줄 문병 선물을 준비해둬. 장미꽃이면 좋겠는 걸.”
“아스트라의 장미이시니.”
“장미는 짙은 흑색이면 더욱 좋겠고.”
“예.”
세바스티아가 실소를 흘렸다.
‘일이 재밌게 됐는걸.’
조윅 샤토브리앙이 그 손에 있다.
아마 처음부터 원화군의 조사를 염두에 두고, 중앙군에 영향력이 상당한 조윅을 서군에 들인 거겠지.
‘똑똑하다니까.’
그만큼 영리하니 이 일을 결코 쉬이 넘어가지 않을 터.
세상이 바뀔 것이다.
그리고 세바스티아의 생각은 적중했다.
다음날, 세상이 뒤집어졌다.
* * *
이르게 입궁한 나는 황제궁으로 향했다.
한지혁이 염려되는 표정으로 날 보았다.
“아직 몸 상태도 좋지 않은데 굳이 오늘 해야겠어?”
“속전속결. 상대가 준비할 틈을 주지 않는 게 포인트야.”
“대단하다, 정말.”
한지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한 번 씩, 웃어주고 황제궁 앞에 냅다 무릎을 꿇었다.
“폐하! 아스트라의 23대손이자 데이몬드 아스트라의 장녀,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청합니다─!”
소리치자 궁인들이 당황하여 달려왔다.
“어찌 이러십니까, 원화. 일어나십시오.”
아냐, 이럴 땐 일어나면 안 돼.
대한민국 사극에서 항상 이렇게 곡하더라고.
나는 눈을 감고 결기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소란을 벌여 송구합니다. 하지만 폐하께 말씀드릴 기회를 주시지 않겠어요?”
“그건…….”
나는 궁인의 손을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다시 소리쳤다.
“중앙 원화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사람들이 황당해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날 죽이려 한 사람에게 기회를 달라니.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무, 무슨……!”
사람들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고, 나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실수하였으나, 폐하를 향한 충심은 진심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폐하, 부디 실린을 용서해 주십시오!”
“…….”
“폐하, 실린 샤토브리앙을…… 중앙 원화를 용서해 주셔요!”
“…….”
“원화들에게 충정을 증명할 기회를 주십시오!”
그렇게 소리치자, 다들 감격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정작 나는 속으로 영악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도.
‘친황제파를 치지 않아도 되게 해 줄게. 그러니까 누구의 손을 잡아 줘야 하는지 알지?’
데이몬드 아스트라.
우리 아빠가 있다고.
‘그렇다고 진짜 실린을 용서하면 넌 죽는다.’
이건 다 연기야.
당신도 짐작하지?
딱 친황제파가 빠져나갈 기회만 주는 거야. 응?
“폐하……!”
“너란 아이는.”
황제가 중얼거리며 걸어 나왔다. 황태후도 함께였다.
황태후가 내 손을 잡고 일으켜 주며 말했다.
“그리 선한 마음으로 이리 거친 세상을 어찌 헤쳐 나가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