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0)
이 3세는 악역입니다 20화.(20/390)
20화.
눈앞이 아찔해지더니, 어둠이 시야를 뒤덮었다.
숨이 가쁘고, 심장이 말 그대로 터질 듯이 뛰었다.
얼마쯤 뒤에야 새카매졌던 시야에 빛이 스며들고, 끊어질 것 같던 숨이 돌아왔다.
‘뭐야.’
이렇게 고통스럽다는 말은 책에 안 쓰여 있었는데.
나는 당황해서 가슴께를 잡고서 비틀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소설 시작하기도 전에 설정 이렇게 푸는 거 처음 본다ㅋㅋㅋㅋㅋㅋ 3화 내내 아스트라랑 캐릭터 설정만 푸네.
이거 선황비랑 미켈란 러브스토리인가요?
신선하긴 함; 할아버지 남주, 죽은 여주;;
└진짜 주인공 미켈란이에요?
└아무도 모름ㅋㅋㅋ
└????
└3화까지 아직도 주인공이 안 등장했어욬ㅋㅋㅋㅋ
.
.
이게 뭐야.
나는 홀로그램처럼 눈앞에 뜬 창을 쳐다봤다.
‘이거 코코넛페이지 댓글 창인 거 같은데.’
<빙.흑.손>이 연재되었던, 그 무료 사이트의 댓글 창 말이다.
그런데 이런 댓글이 있었나?
워낙 망한 소설이라 대부분 한 편에 댓글이 3개가 안 됐다.
그래서 내용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보통 [잘 보고 갑니다]라는 인사성 멘트였다.
‘그보다 나는 가호를 시동했는데 왜 댓글 창이…….’
굳은 얼굴로 댓글 창을 보던 난 어느 순간 헛웃음을 터뜨렸다.
깨닫고 말았으니까!
이게 내 가호인 거다.
‘댓글 보는 거…….’
단전에서부터 욕이 올라왔다.
겨우 가호가 생겼다 싶더니, 고작 이런 걸 줘?
이 미친 소설아!
* * *
난 침대 위에 널브러지듯이 앉아있었다.
멍하게 허공에 바라보고 있으니, 하녀들이 힐끔힐끔 내 눈치를 봤다.
“아가씨, 혹시 고민이 있으세요?”
“…….”
“뭐 힘든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하이디, 인생은 언래 힝든고야…….”
내가 그렇게 말하자, 하이디와 베티는 당황해서 “어머?!” 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들은 세 살배기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게 매우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차라리 줄 거면 다른 걸 주지.’
아버지처럼 원거리, 근거리를 전부 아우르는 공격계 가호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차라리 귀가 밝아지는 가호를 주든가.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도망칠 수 있게.
나는 혹시나 해서 홀로그램을 조작했다.
뒤로 가기를 누르니, 표지와 책 소개가 있는 페이지가 나온다. 그게 끝이었다.
‘책 소개랑 딱 3화까지의 댓글까지만 보이네.’
인터넷을 이용할 수도 없고, 책 내용은 온통 까매서 하나도 안 보였다.
‘진정하자.’
가호는 전혀 없는 줄 알았는데, 이게 생긴 게 어디야.
그리고 이걸로 한 가지 알아차린 게 있잖아.
‘지금까지 내가 변화시킨 일들이 소설에 적용되었어.’
원래 미켈란 얘기는 소설에 나오지도 않았다.
귀부인들이 소문을 떠든다고 미켈란의 일을 살짝 언급한 게 다였다.
하지만 지금 댓글엔,
선황비랑 미켈란 러브스토리인가요?
신선하긴 함; 할아버지 남주, 죽은 여주;;
‘미켈란의 비중이 확 늘었지.’
나랑 마주치면서 뭔가 변한 것이다.
그리고 난 댓글에서 힌트를 얻었다.
‘선황비와 미켈란의 러브스토리라는 거.’
두 사람이 서로 좋아했구나.
그래서 선황비가 죽고서도 그렇게 열심히 지켰나 보다.
‘그래도 댓글은 많네.’
3화까지 주인공을 등장시키지 않은 거로 어그로는 끈 것 같았다.
분량 짱짱한데 3화까지 주인공 이름도 안 나온다고 해서 왔습니다.
미켈란이 오지긴 하네. 주인공 조력자되나?
└ㄴㄴ미켈란이 주인공임
└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
‘미켈란이 그렇게 대단해?’
물론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긴 했다.
그래서 혼란한 이 관할성에 집사로 있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하지만 악역을 제외한 주조연의 능력이 좋은 건 소설에선 당연하잖아.
‘이렇게까지 좋다고 할 정도면 뭔가 있는 건데.’
곰곰이 생각하던 난 몸을 일으켰다.
‘확인해봐야겠어.’
방을 나가서 정원으로 향했다.
미켈란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비료 포대를 옮기고 있었다.
흰머리가 성성한 노인이 저렇게 고생하는 모습이 보기 짠했다.
“미케란. (미켈란.)”
부르자, 미켈란이 비료를 내려두고서 날 쳐다봤다.
“안넝.”
“예, 몸은 어떠십니까?”
“조아요.”
“다행입니다.”
“미케란이 도와조써요. 고마어!”
내 말에 그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아가씨와 같은 증상을 앓던 아이가 있었거든요.”
“가호?”
“발현하셨습니까?”
어떻게 대답할까 하다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가 소설 속 세계고, 나는 그 소설의 댓글을 보는 게 가호다!
─라고 하면 미친 애인 줄 알 거다.
‘게다가 일단 힘은 숨겨두는 쪽이 좋고.’
“몰라.”
“아가씨가 모르는 가호일 겁니다. 이를테면 <성장>같은 가호 말입니다. 빠르게 성장시킬 뿐인 가호 같은 건 알아내기 어려우니까요.”
“으응.”
‘그거 괜찮은데. 혹시 발현병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있으면 내 가호가 <성장>이라고 해야겠다.’
좌우지간에 난 미켈란에게 바짝 다가갔다.
“아이고. 이쪽으로 오시면 냄새가 날 것인데…….”
“갠차나요. 그리구 냄새로는 미케란 머찐 거 가릴 수 엄쓰니까. (괜찮아요. 냄새로는 미켈란 멋진 거 가릴 수 없으니까.)”
나는 사회생활 할 적에 배운 손바닥 비비기 기술을 발휘했다.
어떻게든 마음에 들어서 미켈란이 왜 굉장한 캐릭터인지 알아내려고 했는데,
“…….”
─그가 뚫어지게 날 바라봤다.
내가 고개를 갸웃한 뒤에야 그가 “아…….”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잠시 그리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웅?”
“똑같은 말을 어떤 분께 들은 적이 있어서요.”
“어디서?”
“황궁에서 들었습니다.”
“항궁?”
“예, 저는 젊었을 적에 황궁에서 일했거든요. 이곳처럼 아름다운 장미가 가득 핀 궁이었지요.”
미켈란은 무언가를 떠올리듯 가라앉은 눈으로 장미 덤불을 쳐다봤다.
그 순간이었다.
댓글 창에 새로운 댓글이 달렸다.
ㅠㅠㅠㅠㅠ선황비 유언이 너무 슬퍼요. “살아서는 함께 할 수 없었으니, 죽어서 시체로라도 함께 하고 싶어.” 라니ㅠㅠㅠㅠㅠㅠ
‘……!!’
미켈란이 나와 대화를 하면서 선황비와의 일을 떠올린 모양이다.
소설 내용이 바뀌어서, 새로운 댓글이 붙은 것이다.
여기까지 정보가 들어오자,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미켈란이 고리대금까지 써서 지키고 있는 땅이 선황비와 같이 묻힐 장소였어.’
자신이 죽으면 선황비와 함께 묻히려고.
그는 선황비의 유언을 들어주기 위해서 지금까지 노력하고 있는 거였다.
‘하지만 어떻게?’
선황비는 현재 황가의 묘에 묻혀있다.
황가의 묘는 황궁 내 숲에 있는데, 거긴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황태후가 질색하는 미켈란이라면 더더욱.
당연히 관을 파오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렇다는 건…….’
미켈란이 선황비의 관을 가져올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미케란, 가호가 모야?”
“……!”
미켈란은 눈을 크게 떴다.
‘그래. 관을 가져올 수 있는 가호가 있으면 가능하지.’
땅만 지키면 언젠가는 함께 묻힐 수 있잖아.
내 물음에 미켈란은 매우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제게 가호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미켈란이 유명한 이유는 뛰어난 능력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평민 출신 주제에 황비궁의 시종장이 될 만큼’ 뛰어난 능력.
가호는 거의 귀족에게만 발현된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평민은 가호가 없었다.
미켈란이 몹시 놀라서, 나는 눈을 도르륵 굴렸다.
“미케란 머시써. 머싯는 사람 기족래써. 기족은 가호 있는 고야. (미켈란 멋있어. 멋있는 사람은 귀족이랬어. 귀족은 가호가 있는 거야.)”
“아아……. 그리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전 귀족이 아닙니다.”
“구론데 가호 이써?”
“……!”
“방금 가호가 있다는 거 어떠케 아냐구 해써. 미케란 가호 있는 고지?”
미켈란은 믿을 수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 나이에 정말 놀라운 분이시군요. 역시 <성장>이 가호이신 걸까요…….”
그는 혀를 내둘렀다.
그러곤 주변을 둘러보고, 목소리를 바짝 죽였다.
“제 가호는 <텔레포네이션>입니다.”
“테레포……?”
“300미터 이내, 30킬로그램 이하의 물체를 가져올 수 있죠. 이렇게.”
미켈란의 손 안에 장미꽃이 생겼다.
무덤 가까이에만 가면 황비의 뼈를 이동시킬 수 있다는 말이네.
난 치맛자락을 꽉 비틀었다.
‘대박─!’
듣도 보도 못한 이런 엄청난 능력이라니.
‘이런 능력이면 활용처가 무궁무진하잖아.’
예를 들면 나를 들어가지 못하는 공간으로 이동시켜줄 수도 있다.
반대로 탈출시켜줄 수도 있었다.
나는 아직 30킬로그램이 안 되니, 감옥에 갇혀도 미켈란만 있으면 어디서든 탈출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로또 맞았다!’
아무도 없다면 양팔을 번쩍 들고 펄쩍펄쩍 뛰었을 것이다.
‘꼭 손에 넣어야겠어.’
난 눈을 번쩍 빛냈다.
유혜민으로서 지옥의 사회생활을 했던 나는 알고 있었다.
사람을 얻는 건 어렵지 않다.
가장 원하는 걸 내주면, 내 사람이 되어주거든.
미켈란이 가장 바라는 것은 뻔하다.
‘황궁 숲에 가게 해주는 것.’
한 궁의 시종장이었던 그라면, 데려다주기만 해도 황궁 안에 있는 ‘황가의 묘’에 들어갈 수 있을 거다.
나는 미켈란을 쳐다봤다.
“미케란, 항궁 가고 시퍼?”
“정확히 말하면 황궁의 숲이죠.”
“그러몬 내가 미케란 소언 들어주께!(그러면 내가 미켈란의 소원을 들어줄게!)”
미켈란은 하하 웃었다.
아무리 아스트라의 직계라지만, 고작 3살짜리인 나다.
그런 난 자신을 황궁에 들여보낼 수 없을 거라고 여기는 듯했다.
‘그렇지만 정말 방법이 있는데?’
난 다정하게 미소 짓는 미켈란을 보고 남몰래 히죽 웃었다.
* * *
방으로 돌아온 난 청소 중이던 하녀 베티를 쳐다봤다.
내가 헤헤 웃자 베티는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따라 웃었다.
“베티, 나 조아해?”
“그럼요! 아가씨는 제 은인이고, 존경하는 분이시고, 또─”
베티의 아가씨 찬양이 이어지려는 순간, 나는 손뼉을 짝! 쳐서 끊어냈다.
“그러몬 베티가 나 도와주 쑤 이써? (그러면 베티가 나 도와줄 수 있어?)”
“당연하죠. 말씀만 하세요.”
“그짜 써 주세요. (글자 써주세요.)”
“글자요?”
“응. 그리고 이고는 베티랑 나만의 비미리야.”
비밀이라는 말에 베티의 귀가 토끼처럼 쫑긋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날 쳐다보던 그는 이내,
“하아아아…….”
─하며 뺨을 감싸 쥐었다.
“저 이런 거 너무 좋아해요. 귀족의 수족이 되어 활약하는 거. 꼭 소설에 나오는 얘기 같지 않나요?”
그럴 줄 알았다.
‘내 음식에 독이 있는지 매일 같이 검사할 때부터 그런 냄새가 나더라고.’
“얀피지 가꾸와. (양피지 가져와.)”
“네!”
베티는 신이 나서 종이를 가져왔다.
난 의자에 앉은 그녀에게 써야 할 것을 알려주었다.
“고발장.”
“고……발…… 네?!”
베티가 깜짝 놀라서 나는 씩 웃었다.
그래, 지금부터 쓸 건 고발장이다.
고발의 상대는 미켈란이었다.
* * *
며칠 후.
아스트라 장원의 데이몬드 관할령엔 황군이 들이닥쳤다.
정원으로 성큼성큼 걸어온 황군은 잡초를 뽑고 있던 미켈란을 붙잡았다.
당황한 미켈란이 소리쳤다.
“무슨 일입니까.”
“죄인, 미켈란 로그는 황태후궁의 명을 받들라!”
“황태후궁에서 저를 왜……. 죄인은 또 무슨 말인지요.”
“역당 모의를 했다는 고발이 들어온바, 황태후 폐하의 명으로 죄인을 수송한다.”
“예?!”
역당 모의라니.
그런 건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미켈란은 “그럴 리 없습니다. 뭔가 오해가─” 하고 소리쳤으나, 황군들은 그를 수송 마차에 욱여넣었다.
그때, 에릴로트가 뽀짝뽀짝 뛰어왔다.
“미케란! 미케란!”
막 수송차에 들어가던 미켈란이 아이를 보고 흠칫했다.
에릴로트는 유난히 그를 잘 따르던 아이였다.
혹여나 자신을 잡아가는 황군을 막아선다면, 데뷔탕트 전부터 황태후에게 찍히고 말리라.
“아가씨, 저는 괜찮으니─”
“이제 항궁 간다!(이제 황궁에 간다!)”
“예?”
“미케란, 항궁 가고 시퍼해써. 잘대찌? (미켈란, 황궁에 가고 싶어했어. 잘됐지?)”
점잖은 미켈란도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설마 아가씨가 날 황궁에 보내주려고……!’
물론 황궁에 가고 싶긴 했다.
그래야 황궁 숲에 있는 황족의 묘에서 그분을 데려올 수 있을 테니까.
‘이런 방법이 있을 줄은…….’
감히 상상이나 했겠는가.
역당 모의로 고발당해서 황궁에 가는 것을─!
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미켈란은 당황해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서 들어가!”
황군이 미켈란을 거칠게 밀어 넣었다.
창살 밖으로 보이는 해맑은 에릴로트를 보고 미켈란은 이마를 쥐었다.
아이는 활짝 웃고서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
.
황궁까지는 사흘이 걸렸다.
<이동>의 가호를 담은 가호석 덕분이었다.
미켈란은 수송 마차에서 내렸다.
황금으로 쌓아 올린 듯 호화로운 궁들.
신의 재단에서 정오에 한 번, 자정에 한 번 피우는 향로의 향기.
‘아아.’
황궁은 변함이 없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이후로 줄곧 이곳의 세월은 고여있었다. 결코 흐르지 않고.
마치 미켈란 자신처럼 말이다.
“가자.”
병사가 말했다.
미켈란은 순순히 그를 따라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병사는 옥사로 곧장 가지 않고,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이보십시오. 여긴 옥사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 이곳은 숲으로 이어지는─”
숲?
미켈란이 흠칫해서 병사를 쳐다봤다.
병사는 주변을 살피곤, 은밀히 속삭였다.
“나는 아스트라의 사람이오.”
“예?”
“콘라드 님께서 명하셨소.”
“콘라드라면…….”
콘라드 마르시알.
미켈란도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공작의 부관으로, 아스트라 성의 정보를 다룬다는 남자였다.
그러면 아스트라에서 심어둔 세작에게 명을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병사는 목소리를 바짝 죽이고 말했다.
“콘라드 님께선 말씀하셨소.”
“무슨…….”
“황궁 숲으로 들어가면, 당신이 무엇을 가져올 거라 말했소. 나는 그것을 황궁 밖으로 옮겨줄 것이오.”
미켈란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자신의 가호를 알며, 아스트라 공작의 부관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딱 하나뿐이었다.
‘에릴로트 아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