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04)
이 3세는 악역입니다 204화.(204/390)
204화.
* * *
그날 밤.
장원 공작성에서 머물고 있던 이시론 공작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 크로노스 아스트라가 꼼짝을 못 했단 말이지!”
[뭐가 좋다고 그리 웃으십니까.]차남 세리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시론 공작은 킬킬거리며 술잔을 잡았다.
“어찌 유쾌하지 않겠느냐. 제 2의 암막의 대제가 알렉시스를 택한 것이다.”
개의 목이나 끌어안고 다니던 유약한 막내 황자를 황위에 올린 것이 암막의 대제였다.
그 아이가 정말 암막의 대제와 같은 명안을 가졌다면…….
‘알렉시스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다.’
통신석에선 세리안의 못마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심장이 쪼그라드는 줄 알았습니다. 언질이라도 주셨어야지요!]“하면 네 놈이 저택에 붙어 있었겠느냐. 진작에 도망쳤겠지.”
세리안이 헛웃음을 흘렸다.
아스트라 공작이 올 것 같자, 홀라당 도망친 부친이 할 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건 좀 차남이 아니라 장남에게 맡겨주시면 안 되겠습니까?]“아델리크에게 말이냐. 허! 차라리 돼지에게 여물을 맡기지.”
[……숨겨놓은 장남은 없으십니까?]“아쉽게도.”
세리안은 울적한 한숨을 내쉬었다.
‘나의 장래 희망은 권력자의 거머리이건만.’
능력 있는 형님이 주시는 콩고물이나 얻어먹고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형님은 능력은 개뿔도 없는 주제에 야심만 만만했다.
[아델리크 형님이 길길이 날뛰고 있습니다. 아스트라 공작이 저택을 침범해 장남을 죽이려 하였으니 아스트라와 영지전을 시작해야 한답니다.]“헛소리하다 죽을 뻔한 주제에 또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
[형님께도 알렉시스가 안나마리아 누님의 아들이란 것을 알려주시면 어떻겠습니까?]“술이나 약에 취해서 사실은 제게 황가의 핏줄을 이은 조카가 있다는 것을 떠벌리고 다닌다는 것에 가문의 인장을 걸마.”
세리안이 고통스럽다는 듯 신음했다.
‘형님이 등신 정도만 되어도 어떻게 가문을 떠맡길 텐데, 등신에 쓰레기이기까지 하시니.’
형님은 참 써먹을 데가 없으시다.
그냥 뒤졌— 아니, 회복 불가능한 영구적인 손상이 남았으면…….
세리안이 우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하면 이제 어찌합니까? 다행히 아스트라에선 잠잠하긴 합니다만…….]“당연한 것을 묻는구나.”
[예, 역시 아스트라 공작에게 논의 없이 약혼을 진행한 점은 유감스럽다고 가신을 파견하여…….]“신문에 대서 특보를 내보내야지!”
[……예?]“아, 호사가 놈들이나 보는 삼류 신문사에도 홀랑 소문을 흘려라.”
에릴로트 아스트라는 이시론의 며느리로 예정되어 있으니, 코를 들이밀면 아주 죽여 버리겠다고 광고를 해!
껄껄껄껄.
이시론 공작이 폭소를 터뜨렸다.
역시 손주는 잘생기고 볼 일이었다.
미모가 받쳐주니 주먹만 한 천연 다이아몬드가 알아서 굴러들어와 주지 않는가.
‘아스트라의 늙은이가 배 좀 아플 것이다.’
술잔을 잡은 이시론 공작이 히죽히죽 웃었다.
통신석에선 세리안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 *
며칠 후, 황궁.
나는 주변을 힐끗 쳐다봤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이들이 쑥덕이고 있었다.
“서군 원화가 이시론 공자와…….”
“어쩐지, 공개 전투 훈련에서도 두 분께서 서로를 보는 눈빛이…….”
“코나벨랑 공자가 식음을 전폐하셨다고…….”
저 앞에선 서군 군사들이 쿵쿵쿵쿵, 달려왔다.
“정말이십니까? 예?!”
“정말로 약혼하십니까?!”
횃불의 궁 복도를 지나던 원화들마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나는 해탈한 얼굴로 터덜터덜 걸었다.
“원화! 정말로 약혼—”
“그래. 했어!”
“……!”
나는 충격을 받은 듯한 군사들을 헤집고 빠져나왔다.
약혼 한 번 했다고 난리가 따로 없다.
할아버지와 결판을 낸 다음 날 새벽에 바로 호외가 뿌려지더라니.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저, 저, 정말입니까? 정말 약혼하십니까?!”
—하고 묻는다.
피곤하기 그지없었다.
“원화, 정말로 이시론 공자와 약혼—”
“했어!!”
무심결에 소리치자, 등 뒤에서 흠칫하는 인기척이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북군 원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북군 원화뿐 아니라, 세바스티아 언니, 그리고 남군 원화도 있었다.
‘또 호사가인 줄 알았네.’
북군 원화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나는 얼른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북군 원화.”
“네…… 불편하게 했다면 죄송해요…….”
“북군 원화인 줄 몰랐어요. 축하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오늘 옷차림이…….”
원화임을 상징하는 케이프를 두르고 있지 않았다.
북군 원화가 “아!” 하며 말했다.
“이제 벤야라고 불러주세요. 오늘 퇴직했거든요!”
“벌써요? 후임은…….”
“북부에선 합동 전투 훈련이 빈번하답니다.”
그렇다고 들었다.
척박한 땅이라 외적의 침입이 잦아서.
북군 원화, 아니, 벤야 몬테규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가문의 자제들끼리 모의전을 벌이는 경우도 많고요.”
“아아, 그래서 따로 예비 원화전을 치르지 않아도 되는군요.”
“네! 퇴직 전에 모의전에서 승리했던 가문의 영애가 북군 원화로 임명되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벤야가 내 팔에 착, 팔짱을 꼈다.
“그래도 황도에서 생활할 테니 자주 어울려주셔요.”
“그럼요.”
대답하고서 세바스티아 언니와 남군 원화를 쳐다봤다.
“안녕, 리카.”
“네……. 약혼…… 축하드려요…….”
“고마워.”
“제게 직접 말씀해주실 줄 알았는데…….”
남군 원화는 섭섭한 얼굴이었다.
“가문에서 결정되자마자 다음 날 호외로 퍼지더라고.”
“아…….”
남군 원화가 손끝을 매만졌다.
나는 세바스티아 언니를 쳐다봤다.
“중앙 원화를 뵙습니다.”
“그렇게 예의 차릴 필요 없단다. 그런데 남군 원화와 많이 친해진 모양이야?”
“옛일은 털어버리기로 하였답니다. 말을 편히 하라고 했는데도, 통 못 놓더라고요.”
리카는 완벽한 매미 스타일이었다.
찰싹 달라붙을 보스가 필요한 타입.
그래서인지 말을 편하게 하라고 해도 싫단다.
‘내가 동생인데 나만 반말하는 건 좀 그런데.’
이래 봬도 한때 동방예의지국에서 지냈던 터라.
세바스티아 언니는 픽 웃었다.
“잘 됐구나.”
“네. 아, 동군 원화는 어떻게 되나요? 언니는 중앙군으로 가시잖아요.”
“곧 동부에서 예비 원화전을 할 거야. 동군 원화가 정해지기 전까진 내가 동군까지 함께 이끌기로 했고.”
“바쁘시겠어요.”
“뭘, 하던 일인데. 그리고…….”
세바스티아 언니의 눈썹이 꿈틀했다.
“난 매일 모여서 차나 마시는 것보다 차라리 일이 많은 쪽이 낫거든.”
이전의 원화군이 진짜 별로였나 보다.
세바스티아 언니가 어깨를 으쓱했다.
“퇴궁해?”
“네. 백합 정원 파티에 가거든요. 세 분도 가시지요?”
“그래. 같이 가겠니?”
“좋아요.”
나는 원화들과 함께 복도를 벗어났다.
세바스티아 언니의 마차를 타고 함께 백합 정원이 있는 살롱 거리로 향했다.
벤야가 신이 나서 말했다.
“올해부터 백합 정원 파티에 영식들도 정식으로 초청된다죠?”
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원래는 레이디의 파트너로만 들어올 수 있었는데요.”
“즐겁겠어요. 우우, 원화가 아니더라도 계속 초청받을 수 있을까요?”
성인 귀족들에겐 파앙테 후작 부인의 연말 파티 초청이 최고로 명예로운 일.
그리고 미성년 귀족들에겐 백합 정원 파티가 최고로 명예로운 일이다.
가문과 영향력을 따져서 초청장이 오기 때문이었다.
‘작년에 사교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아이가 호스트를 맡게 되고.’
나는 빙그레 웃었다.
“그럴 거예요. 벤야의 언니도 늘 초청되시잖아요?”
“그렇긴 해요. 언니는 ‘저스티스 회’의 일원이기도 하고요.”
마차에선 두런두런 수다가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 나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작년 백합 정원 파티에선 알렉시스를 소개하고, 아나톨리 선황녀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지.’
평소엔 보기 힘든, 권위 있는 모임 회원들도 있을 테니 올해는 잘 어울려 봐야겠다.
‘달리아는 여기서 맺은 인연으로 돈벼락을 맞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결론을 내렸을 때였다.
마차가 멈추었다.
마부가 문을 열어주었다.
우리는 백합 정원 파티 고용인의 손을 잡고 내렸다.
중년의 고용인이 허리를 깊이 숙였다.
“황궁의 수호자, 황제 폐하를 지키는 불꽃의 근원을 뵙습니다.”
이곳이 바로, 마정석을 이용해 사시사철 백합을 탐스럽게 피워두는 곳.
미성년 귀족들에겐 꿈의 파티장.
—백합 정원이었다.
* * *
안으로 들어가자 파앙테 영애가 손을 들었다.
“에릴로트 양, 여기예요! 비페리 양도 어서 오세요!”
다가가자 루멜리사 파앙테가 내 손을 잡았다.
“잘 오셨어요.”
“올해도 백합 정원 파티의 호스트가 되셨군요.”
“원래라면 에릴로트 양이 하셨어야 했는데 말이에요. 원화는 백합 정원 파티의 호스트가 될 수 없으니까 아쉬워요.”
“무슨. 루멜리사보다 훌륭한 파티를 할 수 있을까 봐요?”
“기뻐라~.”
나는 루멜리사 파앙테, 그리고 세바스티아 언니와 함께 걸었다.
루멜리사가 데려간 테이블엔 지난번에 내 황궁 사무실에 왔던 영애들이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들도 있었지만.
“어서 오세요.”
“앗, 비페리 영애의 브로치, 클렘린의 것이지요?”
“저도 예약을 했었는데, 대기 순서가 너무 길어서 아직 받지 못했어요.”
“안녕, 비페리 양. 자리는 이쪽으로 하겠어?”
“처음 뵙죠? 반가워요, 아스트라 백작 영애. 저는 사라사의 의언니인…….”
나와 세바스티아 언니는 아이들과 인사를 나눴다.
‘응?’
그런데 이상했다.
북군 원화, 아니, 벤야와 리카는 다른 테이블로 가고 있었다.
“리카, 벤—”
부르려고 하자, 붉고 탐스러운 곱슬머리를 가진 16세 정도의 소녀가 내 손을 잡았다.
“안녕, 아기 고양이?”
“……넹?”
“안녕, 아기 고양이—라고 했어.”
“아, 네!”
그건 캐서린 트랑이 리시먼드를 부르는 별명이 아니었나.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자, 소녀는 후후 웃었다.
그리고 내 귓가에 속삭였다.
“저쪽이 저들이 갈 수 있는 테이블이란다. 아무리 원화라고 하더라도 말이야.”
“네?”
“그리고 아기 고양이는 이곳이지.”
아아, 암묵적인 서열 순으로 테이블이 나뉘어 있다는 거구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소녀가 생긋 웃었다.
“난 헤라 레비쟈라고 해.”
“아! 중앙 원화 출신의……!”
헤라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또 한 손으론 내 뺨을 매만졌다.
“내가 중앙 원화일 때 아기 고양이가 있었다면 무척 어여뻐했을 텐데.”
“감사…… 합니다?”
“귀여워라. 정말 아쉬워. 내 때엔 살쾡이들 뿐이었던 터라.”
그러자 세바스티아 언니가 내 양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탐내지 마세요. 제 의동생이니까요.”
“그럼 세바스티아를 의동생으로 두면 이 아기 고양이도 덤으로 따라오는 건가?”
그때였다.
“곤란해. 이 자매는 내가 노리고 있거든.”
헤라의 표정이 구겨졌다.
“올해는 너도 왔구나. 아살린.”
아살린?
아살린이라면 헤라 시기에 남군 원화이던 레이디다.
벤야의 언니인 카티야가 최강의 북군 원화였다면, 아살린은 최강의 남군 원화로 불린다.
“귀여운 서군 원화를 볼 수 있다기에.”
“아아, 언니들 곤란해요. 서군 원화라면 제 후배인 거잖아요?”
이번엔 은발에 보라색 눈, 그리고 뺨에 점이 있는 소녀가 등장했다.
은발 소녀가 내 손을 잡았다.
“반가워요, 현 서군 원화. 전 지젤 유스로티아랍니다.”
“최강의 서군 원화……!”
“다 옛날 말이지요. 이젠—”
내 뺨을 콕, 찌른 지젤이 말했다.
“귀염둥이가 최강의 서군 원화아니겠어요?”
36기, 38기의 원화들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원화들이 루멜리사를 쳐다봤다.
“‘뿌리’는 언제 열리나요?”
루멜리사가 후후,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 곧 열릴 거예요.”
헤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쉬워라. 사랑스러운 고양이들 곁이 좋았는데 말야.”
그러자 테이블에 있던 영애들이 울상을 지었다.
“헤라 님~ 언제 또 뵐 수 있나요?”
헤라는 찡끗, 윙크하고 나의 어깨를 감쌌다.
“그럼 갈까? ‘뿌리’가 열린다니까.”
“뿌리……?”
“작년에도 왔다고 들었는데, 작년엔 못 봤던 모양이구나.”
“네.”
“기대해도 좋아.”
그녀의 말이 끝났을 때였다.
치이이이이익—!!
소란한 소리와 함께 중앙에서 불꽃이 일었다.
그러자마자.
“아아.”
“굉장해!”
“이게 백합 정원 파티의 그 ‘뿌리’로구나.”
사람들이 잔뜩 흥분했다.
하나 같이 기분 좋은 얼굴이다.
그도 그럴 게 정말로 기분이 좋았으니까.
‘이게 뭐지? 뭔가가 고조되는 느낌인데.’
세바스티아 언니가 내 귀에 속삭였다.
“축복이야.”
“축복이요?”
“축복의 땅에만 흐르는 ‘축복’말야.”
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호를 강화시켜주는 특별한 공기였다.
‘굉장하네.’
이래서 사람들이 축복의 땅이라면 거금을 주고서도 사들이는 거로구나.
‘그럼 내가 묵혀둔 축복의 땅도…….’
그때였다.
“벌써 뿌리가 시작되었어?”
멀리서 익숙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