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08)
이 3세는 악역입니다 208화.(208/390)
208화.
알렉시스의 마차가 열리기 전, 그 뒤를 바짝 쫓아오던 두 번째 마차가 먼저 열렸다.
마차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은 상급 고용인들이었다.
나와 짐마차를 타고 온 하급 하인들이 서둘러 그쪽으로 향했다.
꺄악꺄악 흥분하던 것이 언제냐는 듯 바짝 기가 든 모습이었다.
“준비는?”
나와 한지혁에게 짐마차를 안내해줬던 집사가 물었다.
금발의 소녀, 블로니가 허리를 깊이 숙였다.
“예, 집사님. 말씀하신 대로 불을 피우고 주변을 정돈해두었습니다.”
“수고했구나. 다들 정렬해라!”
고용인들이 2열로 정렬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자리를 찾아 이동하였다.
한지혁과 나란히 서 있으니, 집사가 마차의 문을 열었다.
“도련님, 휴식 준비를 마쳤습니다.”
알렉시스가 천천히 마차에서 내렸다.
몸에 딱 맞춰서 제작된 검은 예복.
금사로 이시론의 문양을 수놓은 로브.
흠집 하나 없는 반질반질한 견장.
‘이렇게 보니까 정말 공작가의 귀하신 도련님인걸.’
눈을 살짝 가리는 흑단 같은 검은 머리칼이 가볍게 나부꼈다.
귀태 나는 외모에 호화로운 옷까지 입혀놓으니, 뒷골목에서 살던 소년이란 건 상상도 못 하겠다.
고용인 사이를 걷는 알렉시스와 시선이 마주쳤다.
“…….”
그는 내 모습을 보고 잠깐 눈살을 찌푸렸다.
집사가 얼른 물었다.
“불편한 것이 있으신지요. 서둘러 정리하겠습니다.”
“……아니.”
“저쪽에 의자를 마련해두었습니다.”
알렉시스는 하급 고용인들이 준비한 의자로 향했다.
그가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집사는 얼른 고용인들을 모아서 말했다.
“블로니.”
“예.”
“도련님께서 드실 음료와 간단한 요깃거리를 준비해야겠다.”
“예! 3등 이하 고용인은 나를 따라와라.”
하급 하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러는 동안 두 번째 마차를 타고 온 상급 고용인은 알렉시스 주변에 모여 있었다.
“유로생 령은…… 살피려면…… 할 듯하니, 제가 먼저…….”
멀리서 집사의 목소리가 얼핏 들렸다.
‘상급 고용인들은 다른 할 일이 있는가 보네.’
이동 중에도 이렇게나 일이 많구나.
그러고 보니까 베티와 하이디를 비롯한 내 하인들도 그랬던 것 같다.
이동 중에도 쉴 틈이 없었지.
‘이렇게 힘든데 주인을 챙기려면 고역이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짐을 푸는 하인들에게 다가갔다.
“어, 그러니까, 찻잎이…… 으으음.”
하인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티 케이스를 쳐다봤다.
종류가 너무 많아서 뭘 내가야 할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긴 모를 만도 하지.’
주인의 입에 들어가는 건 상급 고용인들이 까다롭게 관리하니까.
알렉시스는 나를 모르는 외저의 하인들, 즉, 하급에서 최하급 고용인들로 행렬을 구성했다.
상급 고용인들도 주인 가까이에서 일하는 1등 고용인들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상급의 수도 달랑 4명이고.
‘주인을 어떻게 모셔야 할지 모르는 게 당연하네.’
블로니는 성질을 부렸다.
“뭐 하는 거야! 물이 끓기 전에 찻잎을 골라놔야 할 것 아냐!”
마사가 우물쭈물 말했다.
“저, 그게, 어떤 찻잎을 가져가야 할지…….”
“하나하나 일일이 알려줘야 한다는 거야?!”
블로니가 험악한 표정을 짓자, 하급 고용인들이 움츠러들었다.
하급 고용인들이 마사를 끌어당기며 속삭였다.
“더 성질내기 전에 아무거나 골라가자.”
“네에…….”
남자 하인 하나가 “어?” 하며 상자 하나를 가리켰다.
“이거다!”
“이거? 볼폴름의 달맞이 차?”
“내가 살롱에서 짐꾼으로 일할 때 봤는데, 볼폴름만 쓰더라고.”
“그, 그래?”
하급 고용인들이 블로니를 살폈다.
팔짱을 낀 채로 계속 눈치를 주고 있었다.
마리가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지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 주제에.”
“지들?”
내가 물으니 마리가 블로니와 그 곁의 고용인들을 힐끗 쳐다보고서 말했다.
“블로니 패거리들. 하급 사이에선 블로니가 제일 입김이 세서, 저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남의 공만 쏙 빼가거든.”
“흐응…….”
가만 보니까, 블로니가 ‘도련님이 여기서 쉰다고 하신다’라는 얘기를 했을 때 호응하던 하인들이다.
블로니 패거리를 제외한 하급 하인들이 볼폴름의 티 케이스를 꺼냈다.
“그럼 이거로—”
“아…!”
내가 흠칫하자, 하급 고용인들이 날 쳐다봤다.
“왜?”
“볼폴름의 차도 훌륭하지만, 지금이라면 타달로의 로즈마리 티가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뭐어—? 로즈마리 티는 별로 좋은 차가 아니라고. 평민들도 접할 수 있는 차인걸. 타달로는 하품 브랜드고.”
“평민들도 접할 수 있는 브랜드라 하품이라고 여겨지지만, 사실 사주(社主)는 황태후 폐하의 티 살롱에 티 마스터로 있던 분이에요.”
“……그래?”
“네. 평민들도 마실 수 있는 맛 좋은 찻잎을 만드는 것이 사주(社主)의 의지라, 가격만 저렴한 편이랍니다.”
“그럼 타달로의 로즈 티가 낫지 않아? 그나마 이쪽이 더 고가고.”
“로즈마리 티는 몸의 독소를 빼주고, 피로를 회복하는 효과가 있는 데다가, 심신에 안정을 준다고 해요.”
휴식에 딱 어울리는 차인 것이다.
하급 고용인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럼 타달로의 로즈마리 티가 좋겠는걸.”
“그러게. 그런데 넌 이런 걸 어떻게 알아?”
“네? 아, 그게…… 어…… 서군 원화도 즐기신다는 얘기를 들어서…….”
눈을 도르륵 굴리며 변명했다.
마리와 한지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지만, 다른 고용인들이 “아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인이 도련님과 서군 원화를 모두 안다고 했지, 참.”
하급 고용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블로니가 고용인의 손에 들려 있던 타달로의 로즈마리 티 케이스를 확! 빼앗았다.
“굼벵이도 너희보단 낫겠어. 물은 언제 데우려는 거야?!”
“죄, 죄송합…….”
“서둘러!”
블로니 패거리를 제외한 하급 고용인들이 후다닥 움직였다.
얼른 주전자에 물을 받아서 데우고, 이시론의 파티셰가 준비했다는 마들렌을 꺼냈다.
나는 물의 증기로 마들렌을 데웠다.
내친김에 작은 냄비에 초콜릿을 녹여서 마들렌 위에 살살 바르기도 했다.
한지혁이 쪼그려 앉아서 날 구경했다.
“별걸 다 한다.”
“이왕 먹을 거 맛있게 먹는 게 좋잖아? 초콜릿도 피로회복에 도움이 되고.”
“그렇긴 하다만…… 이렇게 하는 건 어떻게 알았냐?”
“옛날에 동생의 간식을 챙겨 줄 때 자주 했거든. 동생은 곱게 자라서 빵도 금방 한 게 아니면 안 먹었으니까.”
금방 한 느낌이라도 없으면 절대 입에 대지 않았다.
하지만 동생의 간식을 먹여놓지 않으면, 할머니가 엄청나게 화를 내곤 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꾀를 내서 간식을 먹여야 했다.
“……그래, ‘옛날’에 말이지.”
한지혁은 ‘유혜민이었을 때를 말하는 거구만.’ 하는 표정이었다.
초콜릿을 바른 마들렌을 그릇에 옮기고 있을 때였다.
성큼성큼 다가온 블로니가 그릇을 확 빼앗아갔다.
“도련님께서 쫄쫄 굶고 계시는데 수다 떨 시간이 있어?! 출신도 미천한 주제에 생각까지 없다니까.”
블로니가 잔뜩 짜증을 내며 로즈마리 티가 든 쟁반에 그릇을 내려놨다.
그러곤,
“집사님~.”
한껏 상냥한 얼굴로 알렉시스 쪽으로 달려갔다.
다른 하인들도 불을 끄고 그쪽으로 향했다.
집사는 쟁반을 보며 말했다.
“로즈마리 티?”
블로니가 수줍은 얼굴로 말했다.
“저어, 그리 고급차는 아니지만 사실 타달로의 로즈마리 티는 훌륭하거든요. 타달로의 사주는 황태후 폐하의 티 살롱에 계셨을 정도예요.”
“황태후 폐하의 티 살롱?”
“네, 티 마스터로 말이에요. 그리고 로즈마리 티는 몸의 독소를 빼주고, 피로를 회복시켜 주는 데다가, 심신의 안정을 주지요.”
내가 한 얘기를 그대로 하잖아?
수다 떨지 말고 빨리하라고 성질을 부리더니.
집사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마들렌도 아직 따뜻한 듯한데. 어떻게 가져온 것이냐?”
“이곳에서 데웠답니다. 주전자의 증기로요. 초콜릿도 녹여서 위에 발랐고요.”
“그런 것을 할 줄 아느냐?”
블로니는 민망하다는 듯 고개를 수그렸다.
“어릴 때 아는 동생의 간식을 이렇게 챙겨줬어요. 동생은 곱게 자라서 빵도 금방 한 게 아니면 안 먹었거든요.”
……허.
정말로 내가 한 말을 그대로 했다.
찻잎이야 그렇다고 치지만, 남의 가정사까지 그대로 베껴서.
뭔가 있어 보이는 얼굴이라, 집사와 상급 고용인들은 블로니를 안타깝게 쳐다봤다.
“과거에 고생이 많았나 보구나.”
“그때는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추억이에요!”
중년의 여성인 상급 고용인이 블로니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어쩌면 이렇게 마음이 아름다운 아이일까.”
“부끄러울 뿐이에요.”
그러며 블로니는 고용인 뒤에 있는 알렉시스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시선이 열렬해서, 알렉시스마저 그녀를 힐끗 쳐다봤다.
다른 하급 고용인들은 어이가 없어 보였다.
‘블로니가 우리에게 한 짓을 봤으면 절대로 그런 말을 못 할 텐데’ 같은 표정이었다.
준비하는 동안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저 애의 살벌한 목소리가 안 들린 게 한인 듯했다.
집사가 알렉시스에게 쟁반을 가져다주었다.
‘나도 배고파 죽겠다…….’
이다음에 장거리 이동을 할 일이 있으면, 꼭 고용인에게도 식사를 세 끼 다 챙겨 주라고 해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알렉시스가 날 힐끗 쳐다봤다.
“고용인들에게도 요깃거리를 내줘라.”
진짜?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알렉시스를 쳐다봤다.
다른 고용인들도 뛸 듯이 기쁜 얼굴이었다.
하기야, 하급 고용인들은 거의 미성년자이니 뒤돌아서면 배고플 나이였다.
알렉시스가 마들렌을 하나 들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난 이것이면 되니, 남은 것은 하인들에게 주고.”
“다들 기뻐할 것입니다.”
“한 시간 후 출발하겠다. 그동안은 자유롭게 쉬도록 해라.”
“예, 도련님.”
알렉시스의 배려 덕에 우리는 이제야 정말로 쉴 수 있게 되었다.
다들 엄청나게 기쁜 얼굴이었다.
우리는 알렉시스가 편히 쉬도록 멀찍이 떨어졌다.
블로니는 마들렌을 가져와 하인들에게 나눠줬다.
상급 고용인들이 저희는 됐으니, 준비하느라 고생한 하급 고용인들끼리 나누어 먹으라며 통째로 내줬기 때문이었다.
마사는 기쁜 얼굴로 마들렌을 받으러 갔다.
그런데…….
“저, 저는……?”
마사 앞에서 마들렌이 똑 떨어지고 말았다.
블로니 패거리의 소년이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개수가 부족하니까 어쩔 수 없잖아. 적게 만든 저 계집애한테 따져.”
마사는 시무룩한 얼굴로 블로니의 패거리를 쳐다봤다.
그 애들 중엔 두세 개씩 들고 있는 애들이 있었다.
다른 하급 고용인들이 마사를 끌어당겼다.
“가자. 우린 빵이나 먹자고.”
“네…….”
그러나 먹을 만한 음식은 블로니 패거리가 모두 가져갔다.
갓 짠 오렌지 주스라든지, 쿠키, 부드러운 카스테라 같은 것은 온통 패거리의 차지였다.
다른 하급 고용인들은 퍽퍽한 보리빵 정도만 돌아왔다.
“우우, 나도 마들렌이 먹고 싶었는데…….”
마사가 우울한 얼굴로 말했다.
마리는 그런 마사에게 물주머니를 주며 말했다.
“물과 넘기면 그런대로 먹을 만해.”
“으응…….”
나도 빵을 떼어먹었다.
맛은 없지만, 그래도 뭔가를 먹으니 속이 편하긴 했다.
블로니 패거리는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하인에게 음식을 내주시다니. 아델리크 님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 아냐?”
“당연하지.”
“원래 하인에게 이렇게 잘해주시는 분이신가?”
“내저 고용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지만도 않으신 것 같은데. 별 관심이 없다셨어.”
“그럼 그거 아냐? 그거.”
“그거?”
“블로니가 마음에 드신 게 아니냐고.”
그렇게 말한 하인이 씩, 웃으며 블로니를 쳐다봤다.
“내가 딱 봤지. 도련님이 블로니를 특별한 눈으로 보시던 것을 말이야.”
블로니는 우후훗, 웃으며 머리를 가볍게 귀 뒤에 꽂았다.
“그런가?”
“하녀 중에 너보다 예쁜 애가 있느냐고. 내가 봤을 땐 확실하다고 본다.”
눈치 없어 보이는 패거리 애들 중 하나가 “응?” 하고 말했다.
“하지만 아스트라 백작 영애와 약혼하셨잖아? 엄청나게 예쁘다고 하던걸.”
그러자 블로니는 눈살을 찌푸렸다.
“도련님은 아스트라 장원에 계셨대. 아마도 백작 영애에게 도움을 많이 받아서 거절하지 못하신 게 아닐까?”
“그래……?”
“게다가 암만 예뻐도…… 더러운 피잖아?”
“아아.”
“그냥 평민도 아니고, 이민족 노예라고 했다고. 성수에 오물이 섞이면 그게 성수야? 오히려 맹물보다도 못하지.”
“그래도 엄청나게 예쁘다던데. 원화군의 신임도 높고.”
“다 소문이야.”
“소문?”
“마경에선 이목구비가 뿌예지니까 되게 예쁜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다던 걸.”
블로니가 마들렌을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게다가 암만 예쁘면 뭐 해? 성격이 중요하잖아.”
“그렇긴 하지. 그런데 아스트라 백작 영애가 별로라고 해서 하녀를 좋아하실까?”
블로니의 얼굴이 왈칵 구겨졌다.
그 애는 눈치 없는 하인을 노려보다가 홱, 고개를 돌렸다.
“가능성이 영 없는 것도 아닐 걸.”
“왜?”
“너희도 알잖아. 지난 번에 내 머리카락을 가만히 쳐다보시던 것 말이야.”
블로니가 생긋 웃고 말을 이었다.
“마들렌을 챙겨 주신 것도 그렇고, 굳이 나를 행렬에 포함하신 것도, 또 휴식하게 해주신 것도 그렇지. 가능성이 있다는 게 아닐까?”
“하기는. 진짜 이상하긴 하지.”
“그렇다니까~.”
패거리가 왁자지껄 떠들었다.
그럼 네가 이시론의 두 번째 공작부인이 되는 거냐느니.
그때 나를 잊지 말라느니.
한지혁은 나를 힐끔 쳐다봤다.
그러던 찰나였다.
주머니에서 통신석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차.’
나는 얼른 주변을 둘러봤다.
통신석을 가진 평민은 없다.
귀족 가문에서 일을 위해 잠시 내준 게 아니라면, 훔쳤다고 오해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잠깐만.”
나는 얼른 빵을 내려놓고 일어났다.
숲속 깊숙이 들어가서 코드를 확인했다.
‘오라버니잖아?’
무슨 일이지?
통신을 연결하려던 때였다.
스스스스스스슷!
기묘한 소리가 들리더니, 눈앞으로 뭔가가 휙! 뛰어올랐다.
그 순간.
챙강!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뭔가가 반 토막이 났다.
“이 숲에 함부로 돌아다니지 마라. 뱀 몬스터 천지니까.”
뱀 몬스터를 반 토막 낸 알렉시스가 인상을 찌푸리고 날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