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09)
이 3세는 악역입니다 209화.(209/390)
209화.
나는 알렉시스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알렉시스가 검을 정리하곤, 나를 쳐다봤다.
“일단 통신부터 받지?”
“응? 으응.”
통신을 연결하자, 발자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릴로트, 어디야?]“유로생 령으로 가는 중에 잠깐 휴식하고 있어.”
[아아, 그래.]“무슨 일 있어?”
[우리가—]발자크가 무어라 말하려 하는 찰나, 요슈아가 말을 끊었다.
[이동이 힘들진 않았어?]“응.”
[다행이네. 마차로 장거리는 처음이니까 걱정했거든. 이시론 공작이 황자에게 오죽 좋은 마차를 내줬겠냐만.]아빠와 오라버니들은 내가 하녀로 분장했다는 것을 모른다.
최대한 은밀히 유로생으로 간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장거리일 뿐만 아니라, 짐마차를 탔다는 걸 알면 다들 뒤집어지겠구만…….
‘걱정할까 봐 말하지 않았는데…… 역시 말하지 않길 잘했다.’
“으응, 수월하게 왔어. 걱정하지 말고, 쉬어.”
[그래.]통신을 종료한 나는 알렉시스를 쳐다봤다.
“쉬고 있지 왜 왔어.”
“맨몸으로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숲에 들어가는 데 그냥 있으라고?”
알렉시스의 눈썹이 꿈틀했다.
“난 네 약혼자야.”
하여간에 책임감이 강하다니까.
“옴브레.”
말하자, 옴브레가 그림자에서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그 애가 입을 쩍 벌리자, 늪요정 핀과 피피가 양팔을 괴고 우리를 쳐다봤다.
“호위 대책은 완벽하거든!”
데려온 한지혁은 무척 연약해서, 유사시엔 그 녀석까지 지켜줘야 하니까.
알렉시스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옴브레와 늪요정을 노려봤다.
그의 몸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퍼져나갔다.
쏴아아—.
나무에 내려앉아 있던 올빼미와 까마귀들이 일시에 날아올랐다.
스스스슷, 소리와 함께 뱀 몬스터들도 재빨리 도망치기 시작했다.
“키익!”
내 늪요정, 핀과 피피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옴브레의 목구멍 안으로 쑥 숨어버렸다.
옴브레도 바짝 긴장해서 형태가 생기기 시작했다.
알렉시스가 눈썹을 까딱 들어 올렸다.
“단련된 진짜 살수가 붙으면 그림자 몬스터나 늪요정은 상대가 안 돼. <장막>때 겪어봤잖아.”
“…….”
“호위 대책을 말하고 싶으면 적어도 크림슨 구울이나 라곤을 데려와라.”
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옴브레를 쳐다봤다.
“옴브레는 강한 아이지?”
스스스슷.
“그렇게 겁먹지만 않으면 그 어떤 것도 널 공격하지 못한다고 했지?”
스슷…….
옴브레가 시무룩하게 내 발목에 감겨서 늘어졌다.
알렉시스가 내 머리를 꾹 눌렀다.
“형체가 생기는 건 그림자 몬스터의 본능이야. 본능을 조절하기 힘드니까 몬스터인 거고.”
“너 잘났다.”
“알아. 그러니까 이번엔 내가 하자는 대로 좀 하자.”
“…….”
알렉시스가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해주면서 말을 이었다.
“내 옆에 붙어있어.”
“…….”
“그럼 무슨 수를 써서든 지킬 테니까.”
“……남자인 척할 때마다 재수 없어.”
“좋은 현상이네.”
내게서 떨어진 알렉시스가 숲 밖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넌 날 의식할 필요가 있어.”
“이씨…….”
알렉시스가 픽 웃었다.
그런데 그 순간.
멀리서 인기척 소리가 들려왔다.
파삭, 마른 잡초가 밟히는 소리였다.
나와 알렉시스는 동시에 앞을 바라봤다.
“아…… 도련님……!”
블로니가 양손으로 입을 막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애가 수줍은 표정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잠깐 주변을 둘러보려고 했던 것인데…… 혹시 제가 휴식을 방해했나요……?”
둘러보기는 무슨.
묶었던 머리를 풀어서 잘 빗은 데다가, 얼굴엔 화장기가 있었다.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호화로운 머리핀까지 하고 있다.
알렉시스를 쫓아오려고 단장을 한 게 틀림없었다.
블로니는 나를 힐끗 쳐다봤다.
“그런데 릴루는 여기 왜 있니?”
이전에 내게 험악하게 대했던 애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상냥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으니까.
블로니가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도련님의 휴식을 방해하면 못써.”
“…….”
“마사와 마리가 찾는 것 같던데, 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 응?”
“예.”
나는 알렉시스에게 인사하는 척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후다닥 숲을 빠져나왔다.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수줍게 입가를 가린 블로니가 눈을 깜빡이며 알렉시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 * *
숲을 나왔을 땐 정말로 마사와 마리가 날 찾고 있었다.
먼저 날 발견한 마리가 다가왔다.
“이제 출발 준비를 해야 해.”
“응.”
하급 고용인들은 풀었던 짐을 다시 짐마차에 넣어두고,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짐을 올리던 한지혁이 투덜거렸다.
“다시 저 걸레짝 같은 마차를 탈 생각을 하니까 벌써 지치는구만.”
“조금만 참아. 올 때는 중간에 빠져서 이동의 가호석을 사용할 거야.”
“가호석이 있어?”
“응. 리시먼드 오라버니에게 받아왔어.”
“……블로니가 한참 안 오는데? 네 약혼자도.”
한지혁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잿가루를 치우던 난 그를 힐끔 쳐다봤다.
“왜?”
“……진짜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는 표정이네.”
“신경이야 쓰이지.”
“쓰인다고?”
“응. 일단 내 약혼자인데, 함부로 접근하는 건 아스트라 백작가를 무시한 일이잖아.”
“……알렉시스는?”
“응?”
“알렉시스한테는 신경이 안 쓰이냐고.”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한지혁이 안타까운 얼굴로 숲 쪽을 돌아봤다.
“불쌍한 자식…….”
“몰랐던 것도 아니니까 신경 끄지?”
알렉시스의 목소리였다.
한지혁이 흠칫 쳐다보는 것과 동시에 하급 고용인들이 눈을 크게 떴다.
“도, 도련님, 필요하신 게 있으시, 신지요!”
“아니다.”
그렇게 말한 알렉시스가 제 마차 쪽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흘낏, 뒤를 돌아봤다.
“너.”
“예? 저요?”
한지혁이 자신을 가리키며 묻자, 알렉시스가 말했다.
“짐 정리를 다시 해라.”
“예? 다 끝낸 것을 어째서……!”
“네 놈, 생긴 게 마음에 안 들어.”
“……!”
그러고 알렉시스가 자리를 떠났다.
하급 고용인들이 한지혁의 주변에 몰려들어서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었냐?”
“도련님에게 밉보였어?”
“그래도 일단 하라고 하시니까 다시 정리하긴 해야겠다.”
한지혁은 이를 악물고 다시 정리를 해야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픽 웃었다.
그러던 중에 블로니가 돌아왔다.
그 애의 패거리 하인들이 몰려들어 이것저것을 물었다.
“뭐야? 어땠어? 응?”
“뭐, 그냥…….”
“그냥 뭔데, 응? 응?”
“나, 다시 출발할 땐 도련님과 한 마차에 탈지도 몰라.”
블로니가 후훗, 웃으며 말하자 주변에서 탄성이 터졌다.
“본가의 마차를 우리 같은 하인이?! 총집사도 아닌데 말이야?”
“그렇다니까.”
하인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역시 블로니라는 둥.
이제 그럼 작은 마님이라고 불러야 하냐는 둥.
패거리를 제외한 다른 하인들은 못 믿는 얼굴이었다.
“정말로 도련님께서 블로니를 마음에 들어 하시나?”
“설마…….”
“으으윽, 뭐가 됐든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작은 마님이 되면 또 얼마나 괴롭히겠어?”
마사도 불안한 표정으로 마리를 쳐다봤다.
“정말일까?”
“혼자서 착각하는 거겠지.”
“하지만 저렇게 자신하는 거라면…….”
마리처럼 생각하는 하인들도 꽤 많았다.
그런데 얼마쯤 뒤, 정말로 상급 고용인들이 다가왔다.
블로니가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신지요?”
“본가의 마차에서 도련님의 시중을 들 아이가 필요하다. 우리는 도련님의 명으로 들를 곳이 있으니, 꼼꼼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예.”
다른 하인들은 눈이 튀어 나갈 것 같은 표정이었다.
“저, 정말이었어.”
“맙소사……!”
상급 고용인들마저 블로니를 묘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이상할 만도 할 것이다.
상급 고용인들은 다른 곳으로 보내고, 굳이 하급 고용인의 시중을 받겠다고 했으니.
블로니와 알렉시스 사이에 무언가가 있다고 추측하는 모양이었다.
블로니는 오만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럼 저와 톰슨, 마틸다가 본가 마차로 이동하겠습니—”
“아니, 너와 릴루, 마리가 본가 마차로 이동해라.”
“……예?”
“도련님 대신 자료를 읽을 사람이 있어야겠다. 너희 중 유일하게 마리가 입스턴의 언어를 아니 마리를 보내는 것이 좋겠다.”
“그, 그런데 릴루는 왜……?”
하인들도 웅성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지인의 아이라 살펴주고 싶으신 모양이다.”
“…….”
하인들은 “아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스승의 아이라도 되는 모양이지?”
“하기야, 그러니까 이력서 하나 없이 받아주셨겠지.”
……내가 지인의 아이긴 하지.
이시론 공작을 대신해서 알렉시스의 대리인이 되어줄 아빠의 아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블로니의 매서운 시선이 느껴졌다.
‘완전히 견제하는 표정이네.’
귀찮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면 서둘러 이동해라.”
“……예, 집사님.”
“블로니가 도련님의 물건을 잘 알고 있을 테니, 외투와 담요를 챙겨서 이동하고.”
“예.”
블로니가 나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나와 마리는 먼저 본가의 마차로 향했다.
마차에 들어가서 의자에 앉자마자 나는 한숨을 흘렸다.
“으, 이제 살겠다.”
알렉시스는 픽 웃었다.
마리가 알렉시스에게 허리를 굽히고서 말했다.
“하면 서류를 주십시오.”
“됐어.”
“……예?”
나는 푹신한 의자에 몸을 깊게 기댄 채로 마리에게 말했다.
“알렉시스도 입스턴의 언어를 알아. 파이 대륙어, 알리기오사 고대 문자까지 전부. 해석은 나보다 더 정확하게 하거든.”
내가 어릴 때부터 타국 언어를 확실하게 가르쳤다.
혹시 타국으로 대피시켜야 할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마리가 눈을 크게 떴다.
“하면 저를 왜…….”
“이 녀석이 네 몸 상태를 신경 쓰는 것 같기에.”
“……아.”
마리가 나를 쳐다봤다. 그러곤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너 때문에 도련님의 마차에서 마음 불편하게 가야 하잖아.”
난 키득키득 웃으며 마리를 가리켰다.
“이거 나한테 고맙다는 말이야, 알렉시스.”
마리는 나를 흘겨보았다.
알렉시스는 까르르 웃는 나를 보며 픽 웃었다.
얼마 뒤, 블로니가 알렉시스의 짐을 한껏 안아 들고 들어왔다.
마차가 출발했다.
* * *
편한 마차로 이동하니, 남은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마차에서 내린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가 유로생 령이구나.”
훨씬 음지화된 아스트라 같다더니 정말이었다.
새벽인데도 성에서 화려한 불빛이 보였다.
‘여긴 밤이 주 활동 시간이라고 했지.’
우리는 유로생 령 고용인의 안내를 받아서 이동했다.
고용인 숙소까지 손님용 방을 내주어서, 호화로웠다.
마사는 기쁜 얼굴로 펄쩍펄쩍 뛰었다.
“이런 침대는 처음이에요! 와, 멋지다!”
다른 고용인들도 한껏 들뜬 얼굴이었다.
“블로니 덕분에 호강하네. 도련님이 너 때문에 우리까지 신경 써주신 거지?”
“뭐…….”
블로니는 아닌 체 생긋 웃었다.
그러더니 손뼉을 짝! 쳤다.
“상급 고용인들은 아침에야 도착하신다니까 그 전에 우리가 준비를 해둬야지. 서둘러 움직여.”
“도련님의 짐을 풀어야겠지?”
“당연하지.”
“올 때 듣자 하니까 도련님의 환영회를 한다고 하던데. 이 새벽에 말이야.”
블로니가 오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이시론 공작가의 아드님이야. 당연히 새벽에라도 성대한 환영회를 하겠지. 자, 움직여.”
하인들은 이시론의 문양이 새겨진 정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환영회장으로 향했다.
나는 통신석과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한 물건들을 챙기기 위해 가장 마지막으로 방을 나섰다.
복도로 막 나서려던 때였다.
탁!
몇몇 이시론의 하인들이 날 가로막았다.
‘블로니의 패거리잖아.’
가장 앞에 있던 블로니가 나를 쳐다봤다.
“너 말야.”
“…….”
“계속 거슬려. 자꾸 그렇게 거슬리게 굴면 나도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거든?”
블로니는 내 어깨를 탁! 밀치며 말했다.
“얼굴 좀 반반하다고 자꾸 까불다간 좋은 꼴 못 봐.”
“…….”
“이시론은 너처럼 출신을 알 수 없는 천박한 인간이 들어올 데가 아니란 말이야. 알겠어?”
“…….”
나는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어떻게 할까.’
계속 이런 식으로 견제하면 움직이기 힘들어지는데.
그렇다고 뒤집어버리자니, 내게 시선이 너무 집중될 것 같다.
‘어느 쪽의 리스크가 더 클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팔짱을 낀 블로니가 또각, 또각, 소리를 내며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내 자리에 있던 짐가방을 들었다.
“가진 물건 하곤.”
“그거 그대로 내려놓으세요.”
“하?”
블로니의 얼굴이 우그러졌다.
내 가방을 든 블로니가 나를 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그러더니…….
“더러운 가방 좀 만졌다고 네가 날 어떻게 할 건데?”
말하며 가방을 바닥에 거칠게 내던졌다.
가방 안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와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다섯 살 생일 때 아빠가 내게 준 선물이었다.
생일 때마다 아빠와 오라버니들의 선물 전쟁이 펼쳐진다.
아빠는 선물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귀족답지 않은 수를 내었다.
직접 손수건에 수를 놓아준 것이다.
‘나한테는 손수건에 수를 놔줄 엄마가 없으니까.’
엄마를 대신해서 아빠가.
바늘이 잘 잡히지도 않는 커다란 손으로, 온통 손가락을 찔려가면서…….
저건 내 보물 중 하나였다.
그 얼마나 많은 돈을 줘도 절대로 팔지 않을 소중한 보물.
블로니는 너무 많이 써서 헝겊 같아진 손수건을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꼭 저같이 더러운 걸 가지고 다니네.”
그리고 손수건을 콱, 짓밟았다.
“이 꼴 되고 싶지 않으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 알겠니?”
“……선택지를 줄게.”
“뭐라는 거야.”
블로니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고, 나는 무감한 표정으로 그 애를 쳐다봤다.
“첫 번째, 무릎 꿇고 사과한다.”
“돌았구나?”
“두 번째, 나한테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