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12)
이 3세는 악역입니다 211화.(212/390)
211화.
한지혁은 달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젠장, 계속 따라붙고 있잖아.”
역시 타겟은 우리인가 보다.
허겁지겁 달리는 내게 한지혁이 말했다.
“잘못 들어온 것 아냐? 인적이 드무니까 대놓고 따라붙잖아!”
“그럼 계속 번화가에 있어? 우리가 누굴 찾는지 전부 보라고?”
“그래서 이제 어쩔 건데!”
“일단 달려! 에이씨, 무슨 살수가 저렇게 성의가 없어!”
살수란 자고로 들키지 않게 타겟을 처리하는 게 미덕이 아닌가.
대낮에, 심지어 저렇게 대놓고 따라붙다니.
공공연하게 친척들에게 정보원을 붙이는 아스트라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먼저 달려가던 한지혁이 내게 소리쳤다.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와!”
“다리가 짧아서 너만큼 못 달리는 거야!”
한지혁이 “빌어먹을.” 하고 중얼거렸다.
되돌아온 그가 나를 옆구리에 낀 채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저쪽, 저쪽!”
“어둡잖아. 막혀 있는 것 같은-“
“저쪽!”
한지혁이 날 쳐다보다가, 눈을 꽉 감았다.
그리고 냅다 내가 가리킨 길로 달리기 시작했다.
코너를 돌아간 그곳은 가로막힌 길이었다.
한지혁이 사색이 되어 속삭였다.
“역시 막혀 있잖……!”
“옴브레.”
말하자, 내 그림자 속에서 옴브레가 고개를 내밀었다.
한지혁이 “아……!” 중얼거렸다.
그래, 옴브레는 그림자 몬스터.
어둠이 짙을수록 강한 힘을 발휘하는 아이다.
“우릴 삼켜.”
단숨에 커진 옴브레가 한지혁과 나를 감싸고,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얼마쯤 후,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한지혁과 나는 숨을 죽인 채 바깥의 기척을 살폈다.
“뭐야, 이것들이 어디로 사라진 거야?!”
“빌어먹을…….”
살수 하나가 씨근덕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제 어쩔 거야?”
“찾아야지.”
“당연히 찾긴 해야겠지! 겨우 찾은 ‘황야의 마법사’의 단서인데!”
황야의 마법사?
나와 한지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쳐다봤다.
사내들은 한참을 뒤지다가, 우리를 찾을 수 없자 돌아갔다.
그 후에야 우리는 옴브레의 속에서 다시 거리로 나왔다.
“우리가 황야의 마법사를 찾고 있다는 걸 알고 쫓은 모양인데.”
“…….”
“불행 중 다행이네. 네가 아스트라 백작 영애인 걸 알고도 쫓는 거라면 정말 위험한 놈들이란 거잖아.”
“…….”
“내 말 듣고 있어?”
“……쿠말.”
“뭐?”
골목을 샅샅이 뒤지던 저들이 분명 ‘쿠말 님’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이전에 쿠말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다.
“네, 네 년 때문에 쿠말 님께서 화, 화가 나셨다.”
“바, 바보가 아냐. 쿠, 쿠말 님께서 내게 이름을 주셨다. 바, 바보가 아냐. 내 이름은…… 내 이름은 기르타브다─!!”
“장막……. <장막>의 살수가 쿠말이라는 이름을 얘기한 적이 있어!”
“장막이라면 그리미에가 운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집단 말이야?”
“그래, 그 장막.”
한지혁과 내 얼굴이 대번에 굳어졌다.
‘장막이 대체 왜 황야의 마법사를 찾는 거지?’
황야의 마법사와 그리미에가 얽힌 건 달리아 출현 이후다.
달리아가 우연히 황야의 마법사를 수족으로 삼게 되어서…….
“……설마 우연이 아닌 거야?”
“뭐?”
“그래, 우연이 아닌 거야! 달리아가 황야의 마법사를 수족으로 삼게 된 일에 그리미에가 엮여 있던 거라고!”
한지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곤 회중시계를 확인했다.
“일단 돌아가야 해. 곧 오찬이 시작될 테니.”
“……그래.”
나는 살수들이 사라진 쪽을 힐끗 쳐다보며 대답했다.
* * *
오찬은 성주가 준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시론의 고용인들에게 할 일이 없는 건 아니었다.
“도련님의 옷은 다렸니?”
“참석자 명단! 서둘러……!”
“호위병들이 요청한 일은?”
고용인들은 부지런히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나를 제외하면.
‘한 사람도 눈을 안 마주치네.’
나는 알렉시스의 옷을 들고 뛰어다니는 하녀에게 물었다.
“전 뭘 하면 될까요?”
“넌 타이를-”
“얘.”
다른 하녀가 내게 일을 시키려던 하녀를 확 끌어당겼다.
“블로니의 눈 밖에 나고 싶어?”
“아아, 그렇지. 정신이 없어서…….”
“가자.”
하녀들이 블로니 패거리 쪽을 힐끔 보고 얼른 사라졌다.
‘이 익숙한 향기.’
첫 번째, 두 번째 삶에서 지겹게 느꼈던 따돌림의 향기다.
어제 한바탕했더니 블로니가 노선을 바꾼 모양이다.
대놓고 괴롭히지 않고, 남을 이용해서 따돌리기로.
아니나 다를까 블로니 패거리가 과자를 주워 먹으며 깔깔거렸다.
“무서워서 어떻게 말을 건담. 마음에 안 들면 또 두드려 패는 게 아니냐고.”
“블로니가 가엽지.”
“응, 어제 그 사달을 내놓고 누가 홀랑 빠져버려서 오늘 도착한 집사님께 혼자 혼이 났잖아.”
“집사님도 사정을 들으시곤 이해해 주셨는걸. 누구는 눈 밖에 난 모양이지만.”
차원을 막론하고 괴롭히는 방법은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까.
‘내 주먹도 똑같이 불이 붙겠는데.’
주먹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허리춤을 슬쩍 잡아서 나를 방 밖으로 끌어냈다.
“마리?”
“너, 상급 고용인들에게 요주의로 찍혔어.”
“응?”
“그러니까 밖에 나돌아다니고 싶으면 처신 잘하라고. 이번에도 쌈박질을 하면 곧장 황도로 돌려보낼걸.”
블로니가 말을 잘 꾸며냈나 보다.
그런 열정으로 일을 했으면, 벌써 상급 고용인이 되었겠다.
마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고용인 숙소로 돌아가 있어. 오찬이 시작되면 말해줄 테니까.”
“되게 잘해주네. 내가 네 마음에 들었나 봐?”
내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자 마리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빚 갚는 거야.”
“내 어디가 마음에 드는데? 응?”
“짜증 나.”
마리가 쯧, 혀를 차고 걸음을 옮겼다.
나는 킥킥 웃으며 마리에게 손을 흔들어줬다.
‘놀리는 재미가 있는 애라니까.’
어쨌든 숙소로 돌아가 있어야겠다.
‘잘됐네. 오늘 일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숙소로 돌아가며 난 생각에 잠겼다.
걸리는 일이 많다.
장막이 왜 황야의 마법사를 찾으려는 건지.
찾아서 뭘 하려는 건지.
또…….
‘내가 ‘황야의 마법사’의 단서를 가지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저쪽에서도 한스라는 가명의 마법사를 찾던 중에 우연히?
그런 우연에 기대서 자신들을 훤히 드러내며 내 뒤를 쫓는다고?
‘아무래도 이상해.’
그런 생각을 하며 숙소로 들어갔을 때였다.
“……여기서 뭐 해, 블로니?”
숙소에 홀로 남아있던 블로니가 흠칫, 나를 쳐다봤다.
“너, 너야말로 여긴 무슨 일이야?”
“아무도 상대를 안 해주길래. 누구 탓인지는 알지?”
블로니가 흥, 콧방귀를 꼈다.
“고용인 사이엔 질서가 있어. 질서를 망치는 사람을 경계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런데 너 마리 침대에서 뭐 하는 거야?”
“하, 하긴 뭘 한다 그래!”
나는 성큼성큼 블로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블로니의 손목을 확 끌어당겼다.
“마리의 짐을 뒤지고 있었잖아.”
“이, 이거 안 놔? 폴 집사님을 불러야겠어!?”
“안 불러도 놔줄 테니까 네가 손에 쥐고 있는 게 뭔지 보자.”
그러자 블로니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놔! 놓으라고-!! 지, 집사님, 집사님한테……!”
“그래, 말해. 그리고 우리 나란히 황도로 쫓겨나자.”
나는 블로니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나랑 같이 황도로 가는 길이 쉽진 않을 거야.”
“……!”
블로니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마른침을 삼키더니, 곧 꽉 쥔 주먹이 스르륵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언가 툭, 떨어져서 바닥을 데구루루 굴러갔다.
나는 벽에 가로막혀서 멈춘 그것을 들어 올렸다.
“약?”
내 말에 블로니가 빽, 소리쳤다.
“마리가 먹는 약인가 보지!”
“…….”
“난 그냥 짐 구경 좀 했을 뿐이야!”
그렇게 말한 블로니가 도망치듯 뛰쳐나갔다.
때마침 숙소 쪽으로 오던 한지혁이 방으로 들어오며 블로니를 힐끗 돌아봤다.
“저거 도벽도 있는 모양이다?”
한지혁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도벽?”
“그러니까 남의 짐을 뒤지고 있었겠지. 뭐, 블로니가 물건을 훔친다는 소문은 이전에도 있던 모양이고.”
“이전에도 있었다고?”
“하급 고용인은 손에 넣을 수 없는 고가의 장신구가 잔뜩 있다더라고.”
“그래서?”
“다른 고용인들의 물건을 훔쳐서 그런 장신구를 사는 게 아니겠냐?”
한지혁이 “안 좋은 건 다 하네.”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곤 내게 양피지 꾸러미를 건넸다.
“이게 뭐야?”
“한스들을 좀 추려봤어. 최근에 이주해 온 사람은 제외했다.”
“응, 잘했어.”
나는 양피지를 확인했다.
그러다 멈칫, 블로니가 쓰는 침대를 쳐다봤다.
도벽.
고가의 장신구.
……장막에서 내가 황야의 마법사를 찾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점.
나는 핫,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황급히 숙소를 뛰쳐나갔다.
한지혁이 당황해서 나를 쫓아오며 물었다.
“뭐야, 왜 그러는 건데!”
“도벽이 아니야. 장신구도 도벽으로 번 돈으로 산 게 아니라고.”
“뭐?”
“장막에 이시론의 정보를 팔고 있던 거야.”
“무슨…….”
“그러니까 고용인들의 방에 몰래 들어갔던 거겠지. 일기장 같은 것에 주인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을 수 있으니까.”
내저로 들어가려고 애썼던 것도 알렉시스 때문이 아니다.
내저의 정보가 더 고가에 거래되니까!
“우리가 황야의 마법사를 찾고 있던 것도 저 애가 알려준 거야.”
“네 짐을 뒤져서 한스의 명단을 확인한 거구만…….”
“그래, 그러니까 살수들이 그렇게 자신을 다 드러내면서 우릴 쫓은 거겠지.”
“알렉시스에게 돌아가기 전에 잡아서 다른 정보를 캐물어야 하니까.”
한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정확하게 확인을 하고 움직여야-”
“마사와 마리의 정보가 넘어갔을 수도 있어!”
다른 정보는 줘도 상관없다.
하지만 마사와 마리의 정보만큼은 안 된다.
‘마사와 마리 중 한 사람이 그리미에의 친딸이라는 게 드러날 수도 있어.’
잔뜩 긴장해서 새파래진 날 보고 한지혁이 말했다.
“왜 그렇게 마사와 마리에게 신경 쓰는 거야.”
나는 우뚝, 멈춰서서 한지혁을 쳐다봤다.
“두 사람이 그리미에의 손에 들어간다면, 달리아가 올지도 모르잖아.”
“이미 많은 게 바뀌었어. 달리아가 온다고 해서 <빙.흑.손> 때로 돌아가지 않을 수도-”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서 한지혁에게 말했다.
“이 세계는 가장 특별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그건…….”
“주인공 버프로 내가 얼마나 많은 걸 얻었는지 알잖아. 강철 까마귀를 용으로 변화시키는 엄청난 힘이야!”
“…….”
“‘흑막의 손녀’의 몸에 빙의한 소녀. 그것보다 더 특별한 사람이 있어?”
달리아에게 버프가 생기면 <빙.흑.손> 때로 되돌아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마리는 안심할 수 있다.
하지만 마사는 다르다.
실수로라도 제 모친의 이름을 말했다면…….
‘확인해야 해.’
나는 서둘러 마사와 마리를 찾아서 달렸다.
유로생에서 이시론의 고용인들에게 일터로 내준 방에 다다랐을 때였다.
막 문고리를 잡으려 한 순간.
“도련님의 배려로 얻은 자리가 네겐 너무나 과분했구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집사와 이시론의 고용인들이 나를 싸늘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상급 고용인인 중년의 여성이 몹시 노한 얼굴로 소리쳤다.
“초청된 성에서 소란을 벌였을 뿐만 아니라, 가문의 정보를 팔다니!”
고용인 사이에 있던 블로니가 남몰래 입꼬리를 올렸다.
‘저게 선수를 쳤어.’
제가 정보를 파는 게 들켰을까 봐 내게 뒤집어씌운 것이다.
“그런 적 없어요.”
“예, 블로니의 거짓말입니다! 정말로 정보를 판 건……!”
한지혁이 나를 두둔하려 했으나, 고용인들이 나와 한지혁을 제압했다.
거칠게 버둥거리는 우리에게 하인들이 재갈을 물렸다.
상급 고용인이 내 손에서 양피지를 거칠게 빼냈다.
“무엇이냐.”
집사가 묻자, 양피지를 훑어본 상급 고용인이 말했다.
“도련님이 작성을 명하셨던 명단입니다.”
블로니가 눈썹을 늘어뜨리며 집사를 쳐다봤다.
“증거로군요! 그것마저 타가문에 누설하려 했던 게 분명해요!”
한지혁은 속이 터지는 듯한 표정으로 블로니를 노려봤다.
집사가 싸늘한 눈으로 무릎 꿇려진 우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즉시 황도로 이송해라. 징벌방을 열 것이다.”
나는 고용인들 사이에 있는 마사를 쳐다봤다.
‘마사는 있어. 그럼 마리는?’
똑 부러지는 마리라면 알렉시스에게 상황을 전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마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옴브레와 핀, 피피에게 내가 위험하면 즉시 튀어나오라고 해둘 것을…….’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기 위해, 철저히 명 받은 후 움직이도록 교육했다.
집사가 블로니에게 말했다.
“우린 오찬장으로 가봐야 하니, 너희들이 경비병에게 인도하도록 하여라.”
“네, 집사님.”
집사가 돌아간 후, 블로니가 우후훗 웃으며 우리를 쳐다봤다.
그러곤 내 뺨을 두드리며 말했다.
“징벌방으로 가기 전에 우리 빚을 청산할 게 남았지?”
“…….”
“천한 출신의 천박한 계집애가 감히 내게 손을 휘둘렀으니,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 할 거야.”
“…….”
“끌고 가!”
블로니 패거리가 음산하게 웃었다.
* * *
나와 한지혁은 블로니 패거리에게 끌려갔다.
목적지는 이시론의 마차가 있는 마차 대기소였다.
외성을 걸으며 덩치 큰 하인이 한지혁의 허리를 걷어찼다.
“윽…….”
한지혁이 고개를 돌리고 노려보자, 덩치 큰 하인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게 아직도 기가 살아서!”
그때, 하인 하나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조용히 가자. 성문 앞에서 초청객 마중이 있단다.”
“오찬 초청객? 또 누가 오는데 성주가 마중까지 나가?”
“글쎄, 이시론에 필적하는 대가문 사람 아니겠어?”
그들이 히죽히죽 웃으며 떠드는 동안, 나는 생각에 잠겼다.
‘침착하자.’
마리에게도 곧 소식이 들어갈 터.
그 애라면 즉시 알렉시스에게 알릴 것이다.
그럼 이시론에 가기 전에 돌아올 수 있겠지.
‘그 후에 블로니를 잡아서 어디까지 정보를 누설했냐고 물어보면…….’
그래도 마음이 급했다.
하필 일 잘하는 한지혁이 명단을 추려놨다.
그걸 블로니가 봤으니, 저쪽에서 황야의 마법사를 찾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우리는 마차 대기소에 도착했다.
하녀 하나가 나를 퍽! 떠밀었다.
나는 바닥에 엎어져 뒤를 쳐다봤다.
어제 내게 제압당했던 하녀였다.
“이깟 거한테 그 수모를 당했다니.”
“진정하렴. 저 계집애의 재갈을 풀어줘.”
“뭐? 하지만 블로니……!”
“내 말 안 들려?”
“…….”
하녀가 마뜩잖은 표정으로 나와 한지혁의 재갈을 풀어줬다.
나는 날카롭게 말했다.
“당장 족쇄 풀어. 더 실수하지 말고.”
“이제부터 우린 즐거운 시간을 보낼 거야. 무릎 꿇고 사과하고 싶거든 언제든 하도록 해?”
“당장 풀어. 내게 이런 짓을 하다간 너 정말 죽게 될 테니까.”
“왜?”
블로니는 키득키득 웃고서 말했다.
“네가 아스트라 백작 영애라도 돼?”
블로니의 패거리가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덩치 큰 사내가 한지혁을 걷어찼다.
“으윽…….”
“너-!!”
내가 소리치자 블로니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거야? 아쉽네. 쉽게는 못 끝나겠어.”
그래, 쉽게는 못 끝나겠다.
이제 황야의 마법사고 뭐고 그냥 판을 뒤집어버리고 싶어졌으니까.
블로니가 나를 향해 손을 치켜들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뭐야, 그 꼴은.”
상상도 못 하던 인물들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붉은 머리의 소년이 나를 묶어둔 채로 손을 치켜들고 있는 블로니를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뭐 하는 거냐? ……내 동생한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