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14)
이 3세는 악역입니다 213화.(214/390)
213화.
블로니가 겁먹은 얼굴로 떠듬떠듬 말했다.
“서, 서군 원화이시잖아요. 그럼 아실 텐데요.”
“황궁 사람이라는 거야? 누군데?”
굳은 얼굴로 묻자, 블로니는 마른침을 삼키고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듀만스 경이에요.”
듀만스? 듀만스라면…….
이름을 곱씹던 난 오만상을 찌푸렸다.
“볼프강 듀만스?!”
5대5 공개 전투에서 심판이었으면서 실린을 몰래 도왔던 그 남자.
내가 리카에게 처리를 명했던 그 볼프강 듀만스?
블로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아요.”
기가 막힌다.
‘그놈이 <장막>의 일원이었다고?’
그래서 실린을 도왔던 건가?
생각하던 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나중에 알아볼 일이고, 급한 건 마사와 마리다.’
“고용인의 정보는 얼마나 넘겼지?”
“저, 정보를 넘긴 건 릴루, 아, 아니, 아가씨가 처음이에요!”
“이 상황에서 거짓말까지 하면 정말로 걷잡을 수 없다는 걸 알지?”
“아, 알아요. 정말! 정말이에요!”
블로니는 새파란 얼굴로 말을 쏟아냈다.
“하인들의 짐을 뒤졌던 건 약점을 잡으려고 그랬던 거예요!”
“약점은 왜?”
“약점을 잡아서…… 듀만스 경이 가져오라던 것을 빼 오게 하려고…….”
“가져오라던 것?”
블로니는 알렉시스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곤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떠듬떠듬 말했다.
“14년 전 이시론 영지민들의 이주 기록을…….”
“……영지 기록 무단 반출은 징벌방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닐 텐데.”
“…….”
그건 정말로 죽을죄다.
타국에 정보가 넘어가면 악용될 소지가 있으니까.
그 때문에 반세기 전만 해도 구족을 멸할 죄였다.
얘가 왜 헐레벌떡 내게 정보누설죄를 뒤집어씌웠는지 알겠다.
들키면 진짜 죽을 테니까.
‘어쨌든 저 말을 믿을 순 있겠어.’
이 엄청난 죄까지 토설했다는 건 가진 패를 전부 내보였다는 거다.
‘그런데 14년 전?’
왜 굳이 14년 전 기록을 열람하려고 하지?
14년 전이면 이시론 공작이 공작들의 우두머리였을 때다.
지금도 대단한 가문이긴 하지만, 황제에 준하는 권력자였던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엄청난 변화가 있다.
그런데 현재 기록이 아니라 14년 전이라고?
‘찜찜해.’
“그 기록은 내가 봐야겠다.”
중얼거리자, 블로니가 흠칫해서 날 올려다보았다.
“저, 저는 이제 더 이상 못합니다. 가지고 나올 수 없어요!”
“누가 너더러 하래?”
미쳤다고 그런 기록을 빼 오게 하겠는가?
이제 하인들 사이에서 입김도 없을 텐데.
나는 통신석을 들었다.
‘정면승부지.’
코드를 입력하고 기다리자, 곧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무슨 일이냐.]“이시론 장원의 영지민 이주 기록을 좀 보고 싶은데요. ……이시론 공작님.”
[…….]그는 한참 말이 없었다.
곧이어 [허…….] 하는 실소가 들려왔다.
[황명 없이는 그 어떤 외부인도 결코 열람할 수 없는 기록이다.]“영주의 명이 있으면 가능하잖아요?”
[내가 무슨 까닭으로 내 장원의 기록을 넘겨야 한단 말이냐.]“그야 귀여운 알렉시스의 부탁이니까요!”
찻잔을 들던 알렉시스가 움찔, 날 쳐다봤다.
“…….”
[…….]알렉시스와 이시론 공작이 침묵했다.
나는 알렉시스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뭐해?
눈을 부라리자 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기록을 허투루 쓸 아이가 아닙니다. 부탁…… 드리겠습니다.”
[…….]공작 위에 있는 할아버지들은 하나같이 고집이 쇠심줄이다.
이시론 공작도 우리 할아버지만큼이나 고집이 센지, 손주의 부탁에도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되면 하는 수 없다.’
이래 봬도 난 한때 뒷배 없이, 처세만으로 출세가도를 달리던 사람이었다.
두 번째 삶에서 배운 처세력을 기반으로 무려 아스트라 공작이 가장 귀여워하는 손주가 되었다.
나는 손을 착, 모으고 통신석을 바라봤다.
“부탁이에요, 공작님.”
[……뭐?]“제가 이시론에 해가 될 일을 할 리 없잖아요? 왜냐면 우린 이제 ‘한 가족’이니까.”
[허, 참…….]“공작님의 며느리로서 결코 부끄럽지 않은 처신을 보이겠어요…….”
[…….]“공작님…….”
이시론 공작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안 먹히나?’
역시 지난번에 너무 화를 냈나?
이렇게 되면 협박하는 수밖에 없는데.
‘여차하면 우리 라곤이 재채기를 하다가 이시론 성의 첨탑에 불을 지를 수도 있다고 말해서…….’
어떻게 협박할까 생각하던 차였다.
[머리 꼭대기 위에서 노니는 게 훤히 보이는구나.]한지혁이 “안 통하는데?” 하고 입을 벙긋거렸다.
나는 살짝 손을 들어서 한지혁을 제지하고, 통신석을 쳐다봤다.
‘마뜩잖은 것처럼 말하지만, 목소리 톤이 어쩐지…… 우리 할아버지랑 비슷한데?’
이건 내가,
“할아버지랑 평생 살 테야!”
—같은 소리를 하면 나오는 목소리와 비슷하다.
“공작님?”
[나 참.]“공…… 작님?”
[허어 참!]“……아버님.”
[성에 말을 전해둘 테니 가져가라.]이제 보니까 공작들은 쇠심줄인 것만 비슷한 게 아니라 새침한 캐릭터인 것도 비슷한 모양이었다.
이시론 공작 쪽이 훨씬 능글맞긴 하지만.
‘아버님이라는 말이 듣고 싶었네, 뭐.’
사실은 할아버님이라는 말 쪽이 더 듣고 싶었겠지만, 지금은 아버님 정도로 참겠다는 것이 역력했다.
하기야 한참 손주를 예뻐할 나이긴 했다.
하나 있는 손주는 알렉시스처럼 딱딱한 녀석이니 다정한 손주를 꿈꿀 수도 있겠다.
졸지에 할아버지가 하나 더 생겨버린 난 떨떠름해졌다.
하지만 상냥하게 안부 인사까지 해주었다.
“감사해요, 아버님. 식사 꼭 챙기시고요.”
[그래!]하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소리와 함께 통신이 끊겼다.
알렉시스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통신석을 쳐다봤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되게 좋아하시네.”
“…….”
“공작님을 다정하게 좀 불러드려.”
“……차라리 찌르지 그래?”
블로니는 아연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무서운 이시론 공작이 ‘아버님’ 한 방에 허물어진 게 놀라움을 넘어 무서운 모양이었다.
한지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네가 도련님의 첩이 되었으면, 아가씨와 적대하기 전에 이시론 공작님께서 불을 뿜으셨겠다…….”
알렉시스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한지혁을 쳐다봤다.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도련님의 첩 자리를 노리던 아이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한지혁이 블로니에게 눈짓하며 말하자, 알렉시스가 경멸하는 눈으로 블로니를 돌아봤다.
블로니는 새빨간 얼굴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바닥으로 블로니의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그날 밤, 이시론 장원 영지민들의 이주 기록이 내 손에 전달되었다.
수십 권이나 되는 기록을 읽는 동안, 오라버니들과 알렉시스는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어쭈, 눈에 살기가 보이는데?”
발자크의 말에 알렉시스가 입꼬리만 올리며 대꾸했다.
“그렇게 보려는 게 아닐는지.”
“말이 짧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게 좋을 텐데.”
“이 X끼가—”
나는 튀어 나가려는 발자크의 얼굴을 한 손으로 가로막았다.
“그만.”
“하지만 저 새X가—!”
“정신 사나워, 발자크.”
그러고서야 발자크는 조용해졌다.
요슈아가 웃는 얼굴로 물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찾아?”
“수상한 점.”
“혼자선 오늘 밤 내로 찾지 못할 것 같은데. 내가 도울게.”
“아니, 찾았어.”
나는 못된 얼굴로 책을 탁,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한스 벤더 – 유로생 령으로 이주(병환)]장막에서 이시론 장원 영지민의 이주 기록을 애타게 찾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찾았다, 황야의 마법사.’
* * *
이튿날.
나는 알렉시스를 수행하는 하녀로 분장하여 번화가로 나왔다.
물론 목적은 황야의 마법사가 확실한 ‘한스 벤더’를 찾기 위해서였다.
한지혁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눈을 찡그렸다.
“한스 중에 누가 황야…… 아니, 네가 찾는 사람인지 안 것까진 좋아.”
“응.”
“그런데 왜 사는 집을 못 찾는 거냐고. ……한 시간째.”
그야 한스 벤더, 아니, 황야의 마법사에게 일정한 거주지가 없어서 그렇지.
“나도 주소가 없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그래 뭐, 음지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다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우리는 왜 날이 다 풀린 와중에 한파용 복장을 한 거야?”
나는 아유, 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야 장막에서 우릴 알아보고 쫓아오면 안 되니까 그렇지.”
“분장용 마도구가 있잖아.”
“완벽한 분장은 불가능하잖아. 실루엣 정도는 가려줘야 성의 있는 분장이지.”
덥기는 정말 덥다.
이제 봄이 되어 아지랑이가 피어나는 마당에 엄청나게 두꺼운 코트를 입었으니.
한지혁이 으득, 이를 갈며 말했다.
“이게 더 이상해 보여.”
“하급 고용인들에겐 계절별 유니폼이 제일 늦게 돌아간다며? 괜찮아. 개연성 있는 차림이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 뒷골목에 산다고 했는데…….”
“두 바퀴째 돌고 있다. 한스 벤더는커녕 비슷한 놈도 안 보이잖아.”
나는 흠, 신음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내가 보기엔…….”
말하며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알렉시스를 쳐다봤다.
“너 때문이야.”
“내가 왜.”
“귀족 차림을 하고 뒷골목에 들어와서 한스 벤더가 피해 다니는 걸 수도 있어.”
“하인들이 챙겨온 옷 중에 제일 수수한 거다.”
“얼굴이 수수하지 않잖아, 얼굴이.”
귀티가 줄줄 흘러서 지나가는 사람마다 힐끔거리잖아!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좀 떨어져.”
“위험한 놈들 속에 혼자 두라고? 저 연약한 놈을 믿고?”
‘연약한 놈’으로 지목된 한지혁이 인상을 썼다.
그러곤 “너희가 괴물 같은 거야.” 하고 투덜거렸다.
나는 알렉시스에게 말했다.
“너, 더는 내 호위 아니거든?”
“대신 약혼자가 되었지.”
“……한 마디를 안 져. 아무튼 잠깐이라도 어디 가봐. 그래, 검을 손질해야 한다며. 대장간 가, 대장간.”
근처에 있잖아.
내가 떠밀며 말하자, 알렉시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다녀올 테니 통신석을 꼭 소지하고 있어.”
“내가 열 살배기인 줄 알아?”
“열 살배기 맞아.”
칫, 혀를 차자 알렉시스가 내 머리를 헝클이고 걸음을 떼었다.
한지혁이 그의 뒷모습을 보며 픽 웃었다.
“네 말은 잘 듣는다니까.”
“착한 애니까. 자, 그럼 이제 가게 안도 뒤져보자.”
우리는 알렉시스가 다시 오기 전에 서둘러 골목의 상점들을 샅샅이 뒤졌다.
잡화점 실패.
빵집 실패.
전당포 실패.
한참을 돌아다녔는데도 한스 벤더는 정말로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는다.
나와 한지혁은 잔뜩 지친 얼굴로 털레털레 걸었다.
“언제 유로생 령을 떠난다고 했지……?”
내가 음울한 얼굴로 묻자, 한지혁이 마찬가지로 음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일.”
“오늘은 소득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게. 그나저나 골목 풍경 한번 살벌하다.”
나는 한지혁을 따라 주변을 둘러봤다.
정말로 골목은 끔찍한 풍경이었다.
옷인지 걸레짝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너덜너덜한 셔츠 하나만 걸치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이 여럿.
나보다 어린 아이들이 부대 자루를 끼고 동냥하고 있기도 했다.
“…….”
내가 아이들을 빤히 보고 있자, 한지혁이 툭 말을 던졌다.
“행여나 돈 줄 생각은 마라.”
“알아. 다 빼앗길 테니까.”
조금 전에도 길에 잘못 들어온 행인이 동냥하는 사람에게 동전을 던져줬다.
그러자 다 큰 사람들이 동전 하나를 두고 서로 주먹질을 했다.
“그냥 병에 든 것 같아서 그래…….”
얼굴이 온통 흙빛이고 흰자위가 샛노랗다.
“약이나 제대로 있겠냐. 알렉시스가 유로생 영주에게 한마디 해주는 게 제일 큰 도움이야.”
한지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입구에 약방이 있었지?”
“그래. 근데 왜?”
“유로생 영주에게 언질 주기 전에 약 정도는 괜찮잖아.”
“뭐, 그야…….”
나와 한지혁은 슥, 몸을 돌려서 약방으로 향했다.
‘흰자위가 샛노래지는 병이 뭐더라.’
골목 사람들이 대부분 비슷한 안색이니, 약방 주인에게 전염병이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약방에 들어갔다.
나는 무언가를 짝짝, 씹고 있던 주인에게 물었다.
“이 골목 사람들이 죄다 비슷한 안색이던데, 전염병이 돌고 있습니까?”
“아아, 피젠 병이유.”
“피젠……? 못 먹어서 생기는 병이요? 유로생에서 구휼하지 않나요?”
“구휼은 무슨. 죄다 불법 이주민들이유. 죄지어 온 놈들 투성이라 영지민 대접도 못 받는데.”
“……피젠 병에 쓰는 약이 있어요?”
“물망초 뿌리가 잘 듣지.”
“그럼 물망초 뿌리랑…… 어?”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눈이 커다래졌다.
사람처럼 생긴 말린 구근을 구경하던 한지혁이 날 쳐다봤다.
“왜?”
“삼색초!”
“어?”
“삼색초잖아, 삼색초!”
나는 삼색초가 잔뜩 쌓인 매대로 우다다다 달려갔다.
‘대박! 대박이야!’
구하기 어려운 약초라 제국에서 제일 큰 상업 지구가 형성된 아스트라에서도 좀처럼 보지 못하는 건데.
한지혁이 으윽, 하며 나를 쳐다봤다.
“설마 사 가게?”
“당연하지!”
“그래. 당연히 사서 내가 들겠지…….”
한지혁은 포기한 표정으로 주섬주섬 삼색초를 담았다.
나는 얼른 삼색초를 전부 계산했다.
주인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이걸 다 산다고?”
“앞으로 들어오는 것도 전부 거래할 수 있어요.”
“대체 이 많은 삼색초가 왜 필요한 거유? 무좀약에나 쓰이는 건데. 무좀약엔 더 효과 좋은 약초가 많고.”
주인은 기가 막힌 얼굴이었지만, 냉큼 돈을 받긴 했다.
“산다니 팔기야 한다만 후회하지 마슈.”
“삼색초가 더 나오면 무조건 제게 파세요. 연락할 곳을 적어드릴게요.”
“나야 좋지. 농원 주인과 연이 있어서 받아는 주는데 통 사 가는 사람이 없어서.”
“농원? 삼색초 농원이 있어요?”
그런 얘기를 하던 찰나였다.
딸랑, 풍경이 울며 나만큼이나 두꺼운 로브를 뒤집어쓴 사내가 약방 안으로 들어왔다.
“삼색초 일곱 뿌리.”
사내는 대뜸 필요한 것만 말했다.
주인은 헛웃음을 흘렸다.
“한 달 내내 팔리지도 않던 게 오늘은 인기네.”
“여기서 삼색초를 판다던데.”
“팔기야 했지. 저 아이가 다 사 갔지만.”
주인의 말에 사내가 후드를 휙, 벗었다.
“다 사 갔다고?!”
코까지 가리는 덥수룩한 흑발이 엉망으로 엉켜 있었다.
사내는 씩씩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너! 무슨 생각으로 삼색초를 다 사가는 게냐!”
“아, 필요하시면 몇 뿌리는—”
“상도덕이 없어도 정도가 있지! 대체 부모가 어떻게 가르쳤기에……!”
사내가 필요한 만큼 삼색초를 내어주려던 내가 멈칫했다.
“……제국에서 매점매석은 불법이 아닌데요?”
“그래도 약초는……!”
“삼색초는 큰 병에 필요한 약이 아니고요. 무좀약이나, 발 냄새를 잡는 데 쓰이는 약초잖아요?”
“어디서 어른 말에 말대답이야! 네 부모가 그리 가르치더냐!”
한지혁이 흠칫해서 나를 쳐다봤다.
내가 봐주는 상대는 정해져 있다.
갱생 가능한 아이.
죄가 크지 않은 아이.
악의가 없는 아이.
다 큰 어른은 봐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난 이번 삶에선 말싸움에서 져본 역사가 없다.
……전쟁의 시작이었다.
“좋아요. 가정 교육을 잘 받은 제가 삼색초를 나눠드리죠.”
“흥, 일곱 뿌리가 필요하니—”
“‘주세요. 부탁합니다.’ 라고 하세요.”
“뭐, 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