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16)
이 3세는 악역입니다 215화.(216/390)
215화.
나와 알렉시스, 한지혁은 카인로드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카인로드의 집은 골목에서도 아주 깊숙한 곳이었다.
집 앞에 이른 한지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집은 거의 쓰러져가고 있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약간 벽이 기울어 있었다.
대문엔 이끼가 잔뜩 펴있고, 문고리엔 온통 녹이 슬었다.
고인 빗물이 내내 마르지 않았는지 썩은 내가 나기도 했다.
한지혁이 마른침을 삼켰다.
“굉장하네.”
나는 팔꿈치로 한지혁의 옆구리를 찔렀다.
“쉿.”
“……그래.”
입을 다물라고 하긴 했지만, 내 눈에도 놀라운 곳이긴 했다.
외관 때문이 아니라, 결계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결계가…… 하나, 둘, 셋, 넷…… 맙소사, 열 겹이 넘어가잖아.’
무려 십이중의 결계였는데, 심지어는 한 겹에도 초고도의 술식이 쓰였다.
‘왜 황야의 마법사라는 이름이 그렇게 널리 퍼지게 되는지 알겠다…….’
카인로드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서 말했다.
“들어와.”
“네!”
나는 얼른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한지혁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그러곤 내 귀에 속삭였다.
“내가 너희 아버지 관할령의 병사 기숙사보다 더러운 곳은 처음 본다.”
“실례야.”
“그렇긴 하지만…… 솔직히—”
“병사 기숙사는 속옷에서 버섯이 핀다며. 그런 생화학시설까진 아니야. 그냥 쓰레기장과 비슷한 모습일 뿐.”
나와 한지혁이 그렇게 쑥덕이고 있는데, 앞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내 집엔 버섯은 피지 않으니까.”
카인로드는 그렇게 말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한지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좀 치워드릴까요……?”
“신경 꺼. 얼핏 더러운 것처럼 보여도 다 질서가 있으니까!”
그것참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다.
카인로드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쓸데없는 말은 됐으니 아무 데나 앉아.”
나는 치맛자락을 들고 살살 걸어서 식탁 의자로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알렉시스와 한지혁이 내 주변에 자리를 잡았다.
카인로드는 주방 찬장을 마구잡이로 뒤졌다.
얼마나 거칠게 뒤지는지, 쾅! 와르르르륵! 하고 집기를 때려 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주전자가…… 여기 있군.”
그러는 동안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지저분하긴 한데…….’
몇몇 구역만은 다른 세상인 듯 깨끗하다.
주방에서 멀리 떨어진 책상 위가 특히 그랬다.
실험 도구가 잔뜩 있었는데, 먼지 하나 없이 청결했다.
‘결계를 쳐서 세균이 들어오지 못하게 관리하는 것 같고.’
또 하나 깨끗한 곳은 침대 옆 협탁이었다.
책 한 권과 액자, 그리고 음식이 든 상자 외에 그 어떤 물건도 올라가 있지 않다.
심지어는 전등 대신 사용하는 램프도 협탁 아래에 두었다.
‘저 액자는 뭐지?’
회보라색의 직모를 가진 여성의 초상화였다.
30대쯤 되어 보인다.
현대적으로 생긴 여성의 뒤에 그려진 물건들이 모두 고풍스러워서 어울리지 않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카인로드가 내 앞에 달칵, 쟁반을 내려놓았다.
쟁반엔 코코아가 두 잔, 그리고 한지혁의 몫인 듯한 진한 홍차가 한 잔 놓여 있었다.
“감사합니다.”
카인로드는 대답 없이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서 의뢰가 뭐야.”
“네?”
“이렇게 지겹게 찾아오는 건 의뢰를 맡기고 싶어서인 것 아냐?”
카인로드가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돈은 제대로 받는다. 내 의뢰비는 비싸.”
“…….”
“데이몬드 아스트라의 딸이면 그만한 돈이 없진 않겠지만.”
“그런데 숙부님은 왜 이런 곳에서 사세요?”
“……뭐?”
나는 “아.” 하며 얼른 말을 덧붙였다.
“집이 허름해서가 아니라요. 보안에 결코 좋은 곳이 아니잖아요.”
“4단계 가호를 가진 놈도 내 결계를 쉽게 뚫을 순 없어.”
“그만큼 엄청난 마력이 필요하잖아요.”
“…….”
십이중 결계를 보는 순간 알았다.
‘마력의 양으로 최고라는 아빠나, 셀레네 언니도 이만한 결계를 쉽게 유지할 순 없어.’
걷는 것만으로도 죽을 것 같은 기분이겠지.
온몸이 찢어발겨지는 기분일 테니.
‘말 한마디에 엄청나게 예민할 만큼 유지하는 게 힘들고 아픈 거야.’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저라면 땅의 흐름이 좋은 곳에 거처를 마련할 거예요. 그러면 땅의 흐름을 이용해서 저 엄청난 결계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카인로드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졌다.
“……너, 내 결계를 읽은 것이냐?”
“대충은요.”
“말도 안 돼. 애들 중엔 그나마 똑똑한 테데리올스도 내 결계는 해석할 수 없었어!”
카인로드가 벌떡 일어나서 인상을 썼다.
“읽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마탑의 권위자에게 내 거처를 살피게 했다는 게 더 신빙성 있지.”
“그런 일은 하지 않았어요!”
“하면 어떻게 열 살 남짓한 녀석이 내 결계를 읽는다는 거야!”
억울해 죽겠네.
난 진짜로 카인로드의 결계를 해석할 수 있다.
‘첫 번째 삶에서 진짜 죽기 살기로 익혔으니까.’
가호가 없으니 다른 것에 매달려야 했던 거다.
그렇게 무능력자로 3세 서열권 안에 들었지.
그래서 난 술식 읽는 데엔 거의 선수였다.
나는 협탁을 가리켰다.
“협탁 위 상자! 저기에 음식이 들었지요?”
한지혁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상자 안에 들어있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 점쟁이야 뭐야.”
“결계에 헤스티아의 술식이 쓰였으니까.”
“헤…… 뭐?”
“음식을 상하지 않게 보존해주는 술식이야. 렉토 기호가 쓰인 걸 보면 유제품, 형태 유지 마법에 자주 쓰이는 토그드 식을 섞어뒀으니 음식은 아마도 케이크.”
첫 번째 삶의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여섯 살 때부터 평균 수면 시간이 고작 대여섯 시간이었다고.
하루 두 끼 식사를 제외하곤 책상에서 떠난 적이 없다.
카인로드는 딱딱하게 굳어졌다.
허……, 실소를 흘린 그가 중얼거렸다.
“데이몬드가 딸 하나는 물건으로 낳았군.”
“아빠가 낳은 건 아니지요. 엄마가 낳아주셨어요.”
“혹시 파훼법도 알겠나?”
“렉토 기호가 쓰인 술식은 플렌테 식에 약하니까…… 음, 하지만 헤스티아 술식이 기본이 되는 결계엔 그대로 대응하긴 힘들고…….”
“그래, 그럴 땐 요슈그다.”
“하지만 요슈그를 써도 별 소용은 없을 거예요. 워낙 견고하니까.”
“오……!”
한지혁은 외계어를 듣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알렉시스도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반면에 카인로드는 신이 났다.
내가 하는 말을 듣는 동안 내내 눈이 반짝였다.
“저라면 마법으로 파훼하진 않겠어요.”
“어째서?”
“식이 심술 맞으니까. 얼핏 렉토 기호인 듯하지만, 저거 칼리스토의 알파벳이죠? 공격 마법을 전개한 순간, 역공격이 들어올 것 같아요.”
하하하하하!
카인로드가 처음으로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말이 통하는 녀석은 오랜만인데.”
“감사합니다.”
“세상에 온통 멍청한 것들만 있어서 속이 답답했는데 말이야.”
킬킬 웃은 그가 “아.” 하며 뒤를 돌아봤다.
“연구 기록을 보여주지. 재밌는 결과가 있었는데—”
눈까지 초롱초롱했다.
왠지 익숙한 느낌이다.
‘대학원을 제안받았을 때 딱 이런 상황이…….’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저러다 같이 연구라도 하자고 하면 큰일이다.
‘말을 돌려야 한다.’
긴장한 얼굴로 머리를 팽팽 돌리고 있던 순간이었다.
침대맡 새장에 있던 앵무새의 부리가 사람의 입처럼 변했다.
“왜 통신은 안 받는 게냐! 내가 우스우냐! 쌍X의 자식! 쌍X의 자식!”
카인로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통신 종료.”
“우라질 놈! 늙은 부모보다 먼저 관짝에 눕고 싶지 않으면 당장 통신을 받아야 할 것이다! 내가 어쩌자고 저 우라질 놈을 키워서! 우라질! 우라질!”
“통신 종료!”
“노톤(장거리 소통 마법)도 무시한다면 내 당장에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리러 유로생에! 우라질 놈! 쳐맞을 놈!”
“……저놈의 새 새끼를 진작에 튀겨 먹었어야 했는데.”
카인로드가 인상을 찌푸리며 침대 위에서 쓰레기와 함께 굴러다니는 통신석을 집었다.
“뭡니까.”
[약만 덜렁 보내고, 아픈 어미에게 소식이 한 자 없는 놈이 뭐 잘했다고 대뜸 ‘뭡니까’야, ‘뭡니까’는!]“아프다더니 정정하기만 하군요.”
[왜! 죽었다는 소식이 아니라 아쉬우냐? 너는 어떻게 된 놈이 어른에게 예를 갖추긴커녕……. 내가 너를 그리 가르치더냐?]“…….”
[어른이 가르치실 때 그저 ‘네’하고 고개만 조아리라고 몇 번을 말해!]‘우와…….’
처음 카인로드와 만났을 때 들은 얘기와 엄청나게 비슷하다.
말투가 어디서 유전되었는지 알겠다.
[네 아비에겐 언제 편지를 보낼 것이야!]“어머니나 챙기십시오. 아버지는 없는 사람 셈 친지 오래되었습니다.”
[이놈 새끼가 아직도 정신이 덜 들어서……!]“아직도 사생아를 보고 다니는 남편이 뭐가 예쁘다고 피 안 섞인 아들에게 안부 편지를 종용하십니까?”
[야, 이놈 새끼야!]“끊습니다.”
[돈 가져가! 보내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돈이 넘쳐나서 적선한 것이니 신경 끄세요.”
[이놈이……! 떠났으면 네 인생이나 살든가, 못 살 것 같으면 다시 들어오든가 해야 할 것 아냐!]카인로드의 손에 붉은빛이 떠올랐다.
마력 차단 마법이었다.
그가 통신석을 잡기 전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놈아! 생일 케이크는 받았…… 이놈! 카인로드!]치지직, 노이즈와 함께 통신이 끊겼다.
카인로드는 통신석을 침대에 휙, 내던졌다.
그리고 다시 나를 쳐다봤다.
“어디까지 얘기했지?”
“……마딜로 후작 부인이시지요? 숙부님의 어머님이요.”
“연구 기록을 찾아오마.”
카인로드는 내 말을 무시하고,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딜로 후작가가 어땠더라.’
현 후작은 그린 듯한 쓰레기다.
예순이 넘는 나이에도 술과 여자, 도박을 즐겼다. 약을 한다는 소문도 있고.
돈을 벌어오긴커녕, 가문의 기둥뿌리를 뽑는 무능력한 가주의 정석.
그래서 집안을 유지하는 건 후작 부인이라고 했다.
카인로드도 후작의 사생아로 들어와 후작 부인에게 키워졌다.
‘후작 부인은 회보라색 머리칼에…… 어?’
나는 액자를 쳐다봤다.
회보라색 머리카락을 가진 젊은 여성.
등 뒤에 물건들은 최근에는 보이지도 않는 고풍스러운 것이다.
‘후작 부인의 초상화구나!’
후작 부인의 정보가 더 있었는데, 뭐더라.
나는 <빙.흑.손>을 읽었던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니까 무너져가는 마딜로 가문을 유지하는 여걸 중 하나고 또…….
‘아.’
나는 양피지 묶음을 가지고 나오는 카인로드를 쳐다봤다.
카인로드가 말했다.
“연구 기록이다. 재미 삼아 읽어봐. 그리고 의뢰는 크게 위험한 일이 아니라면 맡겠…….”
“후작 부인이 병을 앓고 계시지요?”
“……!”
카인로드의 눈이 커졌다.
얼마쯤 뒤, 그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물었다.
“황도에 소문이 난 것이냐?”
“……아직이요.”
“아스트라의 정보력이 대단하긴 하군.”
입매를 삐뚜름하게 올린 그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쾅! 거칠게 식탁을 짚었다.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
“나를 적으로 돌렸다간 아스트라 공작가의 영양이라도 결코 무사할 수 없을 테니.”
그의 동공이 사납게 일렁였다.
아빠가 분노했을 때와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다.
과연 최강의 마법사라 불리는 남자였다.
나는 그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마병(魔病)이 맞군요. ……금술을 썼을 때 오는 대미지로 생기는 병이요.”
“……닥쳐.”
금술은 법으로 금한 마법이기에 금술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썼다는 것이 발각되면 극형에 처할 것이다.
“마병을 고치기 위해 실험을 하고 계셔서 삼색초가 필요했던 거예요.”
“…….”
“실험 자금 때문에 음지의 의뢰를 받으시는 거고요.”
“…….”
“그 와중에 마딜로 가문에 거액을 보내시니 이런 집에 사실 밖에요.”
“닥치라지 않았어!”
내게서 떨어진 카인로드가 소리쳤다.
“내 집에서 나가. 다시 얼굴을 보였다간 용서치 않는다!”
카인로드의 주변으로 마력이 고여 들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 잔뜩 날카로워졌으니 마력이 멋대로 고여 드는 것이다.
쿠구구구구구……!
집이 크게 흔들렸다.
알렉시스와 한지혁이 재빨리 내 앞을 막아섰다.
“꺼지라는 말이 들리지 않는……!”
“돌아가실 거예요.”
알렉시스와 한지혁이 흠칫, 나를 쳐다봤다.
카인로드의 눈빛이 소름 끼치도록 어두워졌다.
나는 알렉시스의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여름이 오기 전에 눈을 감고 마세요.”
첫 번째 삶에서도, 내가 읽었던 <빙.흑.손>에서도 똑같았다.
내 나이 11세의 여름이 오기 전 마딜로 후작 부인이 눈을 감는다.
“에릴로트, 그만해!”
알렉시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카인로드의 기세가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챙—!!
마력의 소용돌이에 기어이 창문이 깨지고 말았다.
알렉시스가 외투로 내게 날아드는 파편을 막아주었다.
카인로드는 마력을 다스리지 못할 정도로 흥분했다.
나는 무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최강의 마법사가 마력을 다스리지 못할 정도로 몸이 상했어요.”
“시끄…… 러워.”
“여기서 금술까지 쓰다간 아무리 카인로드 마딜로라 해도 후작 부인처럼 마병에…….”
말하던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거였구나.’
달리아가 카인로드를 얻을 수 있던 이유.
달리아가 가진 엄청난 가호 중 하나인 <치유>덕이었다.
‘그 애는 마병까지도 치유할 수 있었으니까.’
목숨을 구해줘서 그 애의 사람이 된 거야.
나는 카인로드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의뢰하지요.”
“너, 나를 얼마나…… 우습게 보기에……!”
카인로드가 가슴께를 쥔 채로 나를 노려봤다.
“내 사람이 되어주세요. 하면, 대금을 대신해 후작 부인의 마병을 치유해드릴 테니.”
“……뭐?”
카인로드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혹시 너 치유의 가호를 가졌느냐?”
“아니요! 그런 거 없어요!”
“……뭐?”
나는 히죽, 웃었다.
‘치유의 가호 없이도 온갖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최근에 들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