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18)
이 3세는 악역입니다 217화.(218/390)
217화.
손을 뗀 세일론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대체 네 머릿속엔 뭐가 들은 것이냐.”
나는 코를 문지르며 뚱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한 곳에 빨려들어 왔는데, 거울에 비치는 모습도 다르고, 또 모르는 사람들이 반가워하니까 그럴 수도 있지요.”
벽 거울 속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일단 나이부터가 달랐다.
열한 살이긴커녕, 적어도 스무 살은 되어 보이는 여자가 보였다.
금발과 적안은 어디로 가고 은발과 청안이다.
곱슬머리도 아니고, 직모인 것이 얼핏 보면…….
‘응?’
나는 세일론을 홱, 돌아봤다.
“왜 제 얼굴에서 세일론 님 혈육의 향기가 느껴지나요?”
거의 아빠와 본래 내 몸 급으로 닮았다.
‘역시 부녀 관계나 남매 관계였던 것 아냐?’
내가 미심쩍은 눈으로 쳐다보자, 내게 손을 내밀었던 다정한 인상의 남자가 쿡쿡 웃었다.
세일론은 “저걸 쥐어박을 수도 없고…….”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정한 인상의 남자가 말했다.
“인간의 육신은 이곳을 견디지 못한단다. 세일론이 너를 이곳으로 데려오기 위해 피와 살을 나눠주었지.”
“아, 그래서 비슷한 얼굴이…… 소름 끼칠 뻔했네.”
내가 중얼거리자 세일론이 인상을 팍 썼다.
다정한 인상의 남자와 내게 일어나지 못하느냐고 소리치던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차.’
예의를 잊었다.
‘세일론의 앞에선 너무 솔직해진단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니, 다정한 인상의 남자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야 아이가 부모 앞에서 편해지는 것과 같지.”
“네?”
“수호성은 인간을 점지하고, 병마와 불운에서 보호하는 부모와 같은 존재거든.”
“뭐, 그렇게 보호하신 것 같진 않지만…… 그렇군요.”
세일론이 내 뺨을 콱 잡았다.
“윽!”
“보호했어. 네가 그만큼 몸을 혹사하고도 과로사하지 않은 건 모두 내 덕이야. 알기나 해?”
“이에 아아써요. 아아요, 나조! (이제 알았어요. 아파요, 놔줘!)”
“아프긴. 수호성은 수호하는 인간에게 결코 고통을 줄 수 없어.”
그게 그런 법칙도 있구나.
나는 뺨을 문지르다가 눈을 번쩍 떴다.
‘어? 그러면 이제 세일론을 무서워하지 않아도……!’
“내 영혼의 대미지를 감수한다면 또 모르지만. 응?”
세일론이 무시무시한 눈으로 날 쳐다봐서 난 에헤헤, 하고 어색하게 웃었다.
‘수호성들은 생각까지 읽을 수 있어서 불편하단 말이야.’
다정한 인상의 남자가 말해 주었다.
“불편하다면 너희들이 말하는 가호를 개발하여—”
“미카엘.”
세일론이 경고하듯 말하자, 미카엘이라 불린 다정한 남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나 세일론이 잡은 내 뺨을 문지르는 척 속삭여 주었다.
“난 네 아버지의 생각을 읽을 수 없단다.”
“……네?”
“무슨 뜻일까. 영리한 아기는 알지도 모르지.”
“……가호의 단계를 올리면 수호성이라 하더라도 생각을 읽을 수 없다?”
그러자 세일론이 울컥 인상을 썼다.
“알려 주지 말라지 않았어! 내 아이는 영악해서 어디로 튈지 모른단 말이다!”
미카엘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과연 영리하구나. 사랑하는 아이야.”
아, 난 미카엘의 손길이 너무 기분 좋아.
꼭 그런 기분이 든다.
햇빛에 말려서 상쾌해진 솜이불에 파묻혀 뒹굴뒹굴하는 기분.
안심이 되고, 따뜻해서 마치 아빠를 보듯…… 아빠?
나는 양손으로 미카엘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빠의 생각을 읽을 수 없다고 하고, 사랑하는 아이랬지요?”
“그래.”
“그럼 혹시 미카엘 님이 우리 아빠의…….”
그러자 세일론과 내게 일어나지 못하느냐고 소리치던 남자가 나를 묘하게 쳐다봤다.
미카엘이 곤란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건…….”
“그만, 그만.”
일어나지 못하느냐고 소리치던 남자가 손을 가볍게 들며 일어났다.
“하계의 정보도 감당하지 못하는 아이다.”
“바키라.”
바키라라 불린 남자가 내게 얼굴을 불쑥 내밀고, 눈을 좁혔다.
“감당할 수 있는 것에만 호기심을 가져라. 영혼에 균열을 만들 셈이 아니라면.”
“…….”
“이리 천방지축으로 날뛰니 저 세일론도 감당을 못하는 것이지.”
“…….”
“살고 싶어 아등바등하는 녀석이 정작 제 목숨을 위협하는 일엔 겁이 없으니 문제라는 것이다. 내 말이 틀리냐?”
“……그런데요.”
나는 바키라라 불린 남자를 빤히 쳐다보며 갸웃했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지요?”
“……뭐?”
“뭐가 위험한지는 말해 주고 조심하라고 하셔야지…….”
“뭐, 뭐라고!?”
“아니…… 아무것도 모르는 애가 불이 위험한지, 가로등이 위험한지 어떻게 알아요?”
“이 녀석,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러니까 저는 누군지 모른다니까요…….”
바키라는 열이 받아서 뒤로 넘어갈 것 같았다.
세일론이 픽 실소를 흘렸고, 미카엘이 쿡쿡 소리 죽여 웃었다.
세일론이 눈썹을 까딱, 들어 올리며 말했다.
“말로는 도무지 이길 수 없는 녀석이라니까.”
바키라가 씩씩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슬쩍 미카엘의 어깨 뒤로 숨었다.
‘바키라가 날 때리려고 하면 도와주겠지?’
미카엘은 착해 보이니까.
“안 때려—! 날 여자애나 때리는 파렴치한 놈으로 여기는 것이냐!!”
바키라가 씩씩대며 소리쳤다.
세일론과 미카엘은 기어이 소리 내서 폭소하고 말았다.
바키라가 “너 이리와!” 하고 소리치자, 미카엘이 양손을 들어서 막아줬다.
“자, 자, 그만하자.”
“누가 내 영…… 아이…… 니라고…… 다니까……!”
삐이이이이이익—!!
엄청난 이명이 머릿속을 가로질렀다.
“아악!”
나는 비명을 내지르며 머리를 잡았다.
세일론이 바키라의 어깨를 잡고 내던지듯 밀어내며 내게 달려왔다.
‘아파, 아파, 아파……!’
머릿속이 온통 쪼개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축복의 땅의 뿌리를 열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고통이었다.
“아아아아악……! 아파, 아파……!”
세일론이 침대에 웅크려서 머리를 붙들고 있는 나를 살폈다.
“나를 보아라.”
“아파, 아파! 아빠……!”
1회차 삶에서 죽을 때도 이렇게 고통스럽진 않았다.
엉엉 울며 시트를 비틀자, 피가 뒤섞인 혼탁한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에릴로—”
“비켜!”
미카엘이 나를 안아 들었다.
“아빠, 아, 윽…… 아빠……!”
나는 첫 번째 삶의 어릴 때부터 엄마를 부르지 못했다.
아이들이 넘어져서 으레, 엄마! 하고 울어도 나는 한 번도 엄마를 부른 적이 없었다.
물론 일찍 돌아가신 아빠도 마찬가지였지만, 더러운 피라 불렸던 내겐 엄마는 금기어였던 것이다.
두 번째 삶에서도 은연 중엔 엄마는 ‘세은이의 엄마’라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엄마를 부르며 운 적이 없었다.
세 번째 삶에서도 엄마의 얼굴을 구경조차 못 했다.
그래서 엄마를 부르며 운 적이 없었는데…….
“엄마…… 어헝…… 아파…… 엄마!”
머리뿐만이 아니라 온몸이 찢어발겨지는 극심한 고통엔 나도 모르게 엄마를 찾게 된다.
세일론의 등 뒤로 얼어붙어 있는 바키라의 얼굴이 보였다.
이렇게 아픈데도 바키라의 눈에서 당황과 더불어 기묘한 감정이 읽혔다.
미카엘이 축 늘어진 나를 안고서, 커다란 손으로 눈가를 감쌌다.
“아가, 내 숨소리에 집중해.”
“아파, 으으으, 아빠…….”
“그래. 네 곁에 있다.”
미카엘이 내 이마에 올린 손 위로 자신의 이마를 붙였다.
터질 듯 뜨거워진 머리가 조금씩 식어가기 시작했다.
“괜찮아.”
“아빠…….”
“그래, 네 곁에 있어.”
폐가 꽉 옥죄여서 밭아지던 숨이 천천히 제 속도로 되돌아왔다.
내 울부짖음이 사그라지자, 곁으로 다가온 세일론의 기척이 느껴졌다.
미카엘이 천천히 손을 떼었다.
세일론이 내 뺨을 잡았다.
“내 눈을 봐.”
나는 멍하니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속을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청안을 바라보고 있자 고통이 조금씩 가셨다.
“아가야.”
“에릴로트.”
“…….”
나를 부르는 세일론과 미카엘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중얼거렸다.
“아, 죽는 줄 알았네…….”
미카엘이 빙그레 웃으며 식은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넘겨 주었다.
세일론은 한숨 놨다는 듯, 이마를 잡았다. 그러곤 여전히 굳어 있는 바키라를 노려봤다.
“감당하지 못 할 일은 알려고 하지 말라고 하더니 내 아이의 영혼을 박살 낼 뻔하셨군.”
“…….”
바키라는 금세 시무룩해졌다.
미카엘이 “자, 자.” 하며 축 늘어진 나를 반쯤 일으켜 주었다.
그러곤 희게 질려 있는 내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영혼에 균열이 생기진 않았구나.”
“이게 뭐예요?”
세일론이 내 턱을 돌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아직은 알 것 없어.”
“왜요?”
“아직 세계의 진실을 알기엔 네 영혼은 너무나도 연약하니까.”
“…….”
“네가 자라 감당할 수 있게 된다면 언제든 알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세일론을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중2병 화법은 어떻게 안 될까?’
세일론이 나를 빤히 바라봤다.
“중2병이 뭔데.”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서 말을 피했다.
미카엘이 날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네 아버지의 속이 문드러지겠구나.”
“아빠의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인간만이 수호성에게 동화되는 것은 아니지. 아주 강렬한 감정이라면 수호성에게 옮겨지기도 하거든.”
“…….”
“내가 이토록 아기가 사랑스럽고, 애틋한 것처럼 말이야.”
내 발밑에서부터 빛무리가 생겼다.
몸이 환히 빛나며 부유하는 기분이 들자 세일론과 미카엘, 그리고 바키라가 조금씩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또 보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혼이여.”
미카엘과,
“날뛰지 말고 얌전히 있어. 그만 다쳐, 알겠어?”
세일론이 내게 인사했다.
그리고…….
내가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바키라가 달려왔다.
황급히 나를 붙잡던 그가 소리쳤다.
“다치지 마라!”
—아주 간절한 목소리로.
가슴이 쥐어짜이는 듯한 표정의 바키라가 나를 정신 없이 바라봤다.
세일론, 그리고 미카엘보다도 절절한 눈빛이었다.
나는 미카엘의 말을 떠올렸다.
인간의 감정이 수호성에 옮는다.
해서 미카엘이 나를 그토록 사랑하게 되었듯, 바키라도 나를 사랑한다면…….
“……엄마?”
바키라가 쓰게 웃었다.
나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엄마의 수호성이지! 그렇지! 잠깐만, 바키라!”
바키라가 내 몸에서 손을 떨구었다.
손목에 묶인 방울이 딸랑, 맑게 울리며 나는 의식을 잃었다.
* * *
아이가 떠난 후, 사내들 사이엔 침묵이 가라앉았다.
미카엘은 아이가 누워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감이 빠른 아이야.”
세일론이 무감한 표정으로 시선을 멀리했다.
“왜 제 얼굴에서 세일론 님 혈육의 향기가 느껴지나요?”
고대인은 불로장생하였으나 단 하나, 인간보다 못한 점이 있었다.
번식할 수 없었다.
자식을 보는 것은 오직 신의 뜻에 달려 있었다.
해서, 신의 뜻에 반하여 생명을 만들었다.
부정한 제사장, 세일론과 그 무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피와 살, 영혼의 반을 바쳐 만들어낸,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사랑스러운 영혼을.
“아버님.”
“압바.”
“아.버.님.”
“아.바.밈!”
“좋아, 아버님.”
“아빠.”
“무엇이 잘못되었던 거지. 내 모든 것을 물려받을 녀석이 이리 멍청하게 만들어졌을 리 없다.”
“아빠!”
짤따란 팔을 번쩍 들던 순간을 기억한다.
조그만 주제에 신전을 내달리던 자그마한 발 또한.
“세에로 압빠, 미카 압빠, 으응…….”
“나는? 난!”
“바보.”
“이게……!”
“옴마, 아가 개로핀다…….”
“아빠야!”
햇살이 내리쬐던 신전을 기억한다.
달리는 너를 지켜보며 웃던 열세 명의 존재를.
조그만 몸으로 최선을 다해 우리에게 달려오던 너를.
“어째서 욕망하였을까. 그 풍경과 아이 외엔 달리 필요한 것이 없었는데.”
미카엘의 말에 세일론과 바키라가 침묵했다.
* * *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러나 의식을 찾자마자 깨달았다.
‘현실로 돌아왔구나.’
바키라가 엄마의 수호성인 줄 알았다면 물어볼 게 많았는데.
‘엄마는 어째서 수호성이 있을까.’
가호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귀족이란 것인가.
아니면 만들어진 존재?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떴다.
그런데…….
“아빠.”
방이었다.
주변에선 아빠와 오라버니들, 그리고 알렉시스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내 곁에 있던 아빠를 쳐다봤다.
그리고 대번에 마른침을 삼켰다.
아빠의 표정이 무시무시했으니까.
“아빠…….”
“몸은.”
“멀쩡해요!”
“…….”
아빠의 표정이 엄청나게 무서워서 나는 우물쭈물하며 답을 바꿨다.
“머리가 조금 어지러워요…….”
“…….”
아빠가 몸을 일으켰다.
“회복 후에 얘기하자.”
“아, 아빠!”
나는 얼른 아빠를 잡았다.
“화났어요?”
“내가 너를 잘못 가르쳤구나.”
“……!”
나는 깜짝 놀라서 아빠를 쳐다봤다.
“네?”
“깨어난 직후에 물은 것이 고작 화가 났느냐라는 말이 전부이냐.”
“……잘못했어요.”
발자크가 아빠의 눈치를 보다가 일부러 소리쳤다.
“그래! 아주 잘못했다고. 다들 엄청나게 걱정했단 말이야!”
그러며 자꾸만 아빠를 힐끗힐끗 쳐다봤다.
요슈아와 리시먼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 그런 곳에 가면 걱정되는 게 당연해, 에릴로트.”
“그래.”
다들 아빠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큰일 난 거구나.’
“자, 잘못했어요. 그런 큰 일인줄은 모르고 그랬어요. 그렇게 위험할 줄 알았다면 아빠에게 허락을 받고……!”
“에릴로트.”
“네! 아빠!”
“나는 네 생각보다 너를 잘 알아.”
“네?”
“너는 위험하다고 인지했어도 내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
“가족을 지키기 위해 위험은 혼자서 끌어안았겠지.”
맞는 말이다.
나는 아랫입술을 물었다.
아빠가 냉랭한 얼굴로 말했다.
“스스로 잘못을 깨달을 수 있는 아이라 여겼기에 그간 네게 벌을 내리지 않았다.”
“……네.”
“오늘로 알았구나. 믿음만이 전부가 아님을. 네게 무슨 벌이 필요하겠느냐.”
나는 우물쭈물 하다가 아빠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회…… 초리……?”
그 순간 오라버니들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발자크가 버럭 소리쳤다.
“회초리로 되겠어? 내가 진짜 화가 나서 안 되겠단 말이야!”
그러면서 물건을 확, 확, 걷어차기 시작했다.
목검, 옷을 걸 때 쓰는 얇은 나무 막대, 레슨 때 쓰는 지휘봉 등등…….
요슈아와 리시먼드도 길길이 분개했다.
“아주 화가 났어, 에릴로트!”
“그래!”
그러며 두 사람도 길쭉한 것이란 길쭉한 것은 모두 부러뜨리기 시작했다.
……회초리로 쓰일 것 같은 물건들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아빠도 움찔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