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19)
이 3세는 악역입니다 218화.(219/390)
218화.
발자크가 씩씩거리며 내게 말했다.
“이런 건 말이야! 혼자서 깊게, 어? 깊게 반성을 해야 한다고! 그러니까 가시죠, 아버지!”
잔뜩 화난 체하는데 왜 뒤통수엔 식은땀이 매달린 것 같아 보일까.
발자크가 아빠를 잡고 “가세요! 예?” 하고 씩씩대는 척 말하니, 다른 오라버니들도 가세했다.
“예, 스스로 반성하지 않는다면 결국 같은 일이 반복될 겁니다.”
“아버지.”
아빠는 세 오라버니에게 인상을 썼다.
“놔라!”
그러나 은근히 끌려가고 있었다.
결국 방을 나선 아빠가 소리쳤다.
“정말이지 어쩔 수 없군.”
방에 남은 한지혁과 나, 알렉시스는 침묵했다.
알렉시스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회초리만은 못 들겠다는 모양인데.”
“…….”
나는 슬쩍 눈을 돌렸다.
하인들이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물이나 요깃거리를 내올까요?”
“물만. 다른 건 필요 없으니 쉬게 나가줘.”
“예…….”
하인들이 우르르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이디가 물을 가져왔다.
협탁에 물잔을 내려놓은 하이디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어, 아가씨.”
“응?”
“주인님께서 한 시도 떨어지지 않으셨습니다.”
“…….”
“아가씨의 몸이 좋지 않으실 적에도, 피치 못한 일로 쓰러졌을 적에도…… 언제나 정신을 놓은 사람처럼 울부짖으셔요.”
“…….”
“몸이 좋지 않으신데 이런 쓸데없는 말씀을 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가씨께서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응.”
하이디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나는 아빠가 앉아 있던 자리를 지그시 응시했다.
알렉시스와 한지혁이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 * *
깊은 밤, 아스트라 제 2백작저의 정원.
데이몬드는 벤치에 앉아 어둠에 뒤덮인 정원을 바라보았다.
세상의 모든 색이 잡아먹힌 것 같은 풍경이었으나, 어색한 것은 없었다.
악으로 살던 시절의 풍경은 늘 그러했으니까.
‘삶이 바뀐 것은 언제부터였던가.’
바스락.
풀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살금살금 걷는 기척이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벤치의 남은 자리에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
데이몬드는 말없이 벤치에 고개를 걸친 아이를 바라보았다.
“자지 않고 왜.”
“자려고 누웠는데요. 아빠가 너무너무 보고 싶은 거예요.”
“…….”
“그래서 왔어요…….”
데이몬드의 시선이 딸에게 닿았다.
그가 아무런 말이 없자, 벤치 아래에 쪼그려 앉은 에릴로트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손끝을 문지르다가, 입을 달싹거리다가, 데이몬드를 힐끔거리다가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저기, 오늘 일은요…….”
“벌을 받는 것 같아.”
에릴로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데이몬드를 바라봤다.
“아빠?”
“네 할아버지에게 반항했던 게, 멋대로 살았던 것이 벌로 되돌아오는 것 같구나.”
“그건…….”
“과거에 네 할아버지에게 했던 모든 말들이 이제 쐐기가 되어 되돌아와.”
수없이 싸웠다.
제대로 된 부모 노릇도 하지 못할 거면서 왜 자식을 낳았느냐고.
돈만 주면 부모 역할이 끝나는 것이냐고.
하필이면 왜 나를 아스트라에 태어나게 했느냐고.
이곳에서 태어나길 바란 적이 없는데, 어째서 낳아준 것이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것인 양 말하느냐고.
“이번 전투는 네 상상보다 더 위험하니 참전시킬 수 없다. 헛소리하지 말고 네 방으로 돌아가라.”
“왜요, 이번 전투에선 아스트라 공작가 자손의 목숨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는다더이까?”
“데이몬드!”
“그러지 않으셔도 제 목숨값은 제가 제대로 받아낼 테니 염려하지 마시죠, 공작님.”
“너…….”
“그럴듯한 말은 그만하십시오. 이제 와 부모인 척하는 건 우습지 않습니까.”
제가 뱉어낸 말들이 자식이 되어 되돌아온다.
자식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비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 어떤 험한 전투에서도 패배한 적이 없던 자신이 속절없이 무너져 나뒹굴었다.
“그때는 몰랐어.”
“…….”
“자식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살을 저미는 것보다 아프다는 것을.”
“…….”
“내 손으로 지킬 수 없다는 것이 이만큼이나 절망적이란 것도.”
삶이 송두리째 바뀐 건 이 아이가 태어난 후였다.
겁을 모르던 자신이 바람 한 자락도 두려워졌다.
저 바람에 네가 감기라도 걸릴까 봐서.
행여나 넘어질까 봐.
제가 삐딱하게 나올 때마다 부친은 이런 말을 했다.
“너도 너 같은 자식 낳아서 길러봐. 그래야 내 속을 알 것이다.”
우습지도 않은 말이었다.
그와 같은 부모는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자신은 훨씬 잘 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자식만큼 어려운 문제는 없구나, 에릴로트.”
“…….”
“지키고 싶은 마음에 너를 꿇어 앉힐 수 없으나, 네가 다칠까 두려워.”
“…….”
데이몬드가 한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
네가 행복을 알게 했다.
내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네 입에 들어가는 것이 더 기뻤다.
장난감 하나라도 사면 온종일 설렜다. 기뻐할 네 모습을 보고 싶어서.
유치가 빠지던 순간을 기억한다. 사랑스럽고, 사랑스러워 한참을 손에 쥐고 바라보았다.
귀가할 때가 기대된다. 너는 언제나 헐레벌떡 달려와 안겼으므로.
일하다 고개를 돌렸을 때, 서재의 소파에서 웅크려 자던 너를 볼 때면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단 한 순간도 너를 낳은 것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행복한 만큼 두려워지는 것이다.
너를 잃을까 봐.
네가 좌절할까 봐.
그리하여 괴롭게 될까 봐.
뻣뻣하게 굳어 있던 에릴로트가 “아, 으…….” 어쩔 줄 모르고 신음했다.
“자, 잘못했어요.”
“…….”
“잘못했어요.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어요, 아빠……!”
“…….”
“나, 나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래서, 으, 으으…….”
에릴로트가 어쩔 줄 모르고 부친을 붙잡았다.
“조심할게요. 안 다치게, 걱정하지 않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
“울지마, 아빠……!”
와아아아앙!
데이몬드가 흠칫 딸을 쳐다봤다.
언제나 어른 같던 딸이 어쩔 줄 모르고 엉엉 울었다.
아기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엉망으로 우는 딸은 낯설었다.
아주 어릴 때에도 이렇게 울지 않는 아이였기에.
말도 겨우 할 시절, 넘어지더라도…….
“아얏!”
“아이고, 아가씨—!!”
“누구야! 누가 현관을 이렇게 반질반질하게 닦아놓은 거야!”
“아기야!”
—어른들과 형제들이 난리가 나도 으쌰! 한 번 소리치고 일어나는 아이였다.
해서 징그럽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고작 세 살짜리가 징그럽게 어른인 체해서.
고작 열한 살짜리가 징그럽게 영악해서.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사실 딸은 마음이 여렸다.
좋아하는 사람이 걱정하는 것보다 자신이 참는 게 백 배 더 낫다고 여기는 착한 아이였다.
데이몬드가 온통 젖은 딸의 뺨을 닦아주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해도 돼.”
“으응…….”
“혼자서 할 수 있어도 함께 하자고 해도 되는 거야.”
“응…….”
“너무 그렇게 빨리 자라지 마라.”
“응……!”
“네 고통을 결코 우습게 여기지 말아다오.”
에릴로트가 훌쩍훌쩍 울며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몬드는 딸을 끌어안았다.
“타인에게 착한 아이가 되라는 말은 하지 않으마. 네게 착한 아이가 되어라.”
“그럴게요…….”
“그래. 그거면 돼.”
부녀는 서로를 끌어안았다.
달을 가리고 있던 먹구름이 바람을 타고 지나갔다.
새하얀 달빛이 꽃에 닿아 부서진다.
색을 되찾은 정원 안에서 두 사람은 아주 오래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벤치 뒤에서 숨죽이고 있던 소년들은 씩, 입꼬리를 올렸다.
“봐, 회초리 없이도 반성하잖아.”
“그렇지. 에릴로트는 영리한 아이니까.”
리시먼드가 그렇게 말하자, 요슈아의 눈이 묘하게 빛났다.
발자크가 물었다.
“뭐야. 왜 또 못된 생각을 하는 표정이야?”
“그런 생각 안 했어. 그저…….”
“그저?”
“에릴로트에게 눈물이 꽤 잘 먹히는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이야.”
아.
발자크가 깨달은 얼굴로 씩 웃었다.
* * *
이튿날.
나는 아빠의 곁에 앉아서 종알거렸다.
“그래서요, 마딜로 후작 부인을 낫게 하려면 진짜 축복의 땅이 필요했던 거예요.”
“축복의 땅에 진짜와 가짜가 있을 줄은 몰랐군.”
“응! 어쨌든 이제 진짜 축복의 땅이 어디에 있는지 찾았거든요.”
“네 가호인 <열람>으로 말이지.”
“마딜로 후작 부인과 카인로드 숙부를 모시고 진짜 축복의 땅으로 가려고요.”
아빠의 눈이 가늘어졌다.
“숙부라고 하지 않아도 돼.”
“카인로드 숙부도 아빠를 되게 싫어하시던데, 아카데미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별로.”
없다고 하면서 아빠의 표정이 미묘했다.
내가 고개를 갸웃하니, 아빠가 얼른 말을 바꿨다.
“진짜 축복의 땅은 어떻게 사들이려는 거냐. 아델리크 이시론이 네게 땅을 팔 리 없는데.”
“제게는 팔지 않겠지요.”
“뭔가 있을 거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방법이 있어요. 위험한 방법은 아닌데, 제가 혼자서 해도 돼요?”
아빠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잔뜩 기가 죽어서 웅얼거렸다.
“진짜로 위험한 일은 아닌데…….”
“모든 걸 허락받고 하라는 건 아니야. 다만 위험한 일엔 가족들의 도움을 받으라는 거지.”
아빠가 다정하게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나는 그런 아빠에게 물었다.
“그런데 위험한 일일 줄 모르고서 했는데, 위험한 일이면요?”
“그건…….”
“그런 건 미리 얘기하지 못하니까…….”
“그렇긴 한데.”
아빠와 내가 으음, 신음하며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맞은 편에 앉아 있던 리시먼드가 말했다.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
“무엇이냐.”
리시먼드가 커피가 든 포트를 들며 가볍게 말했다.
“마도구가 있잖아. 황궁에 들어갈 적에 늘 착용하는.”
“아, 위치 추적용 마도구?”
“황야의 마법사라면 그걸 개량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신체 정보를 수치화해서 네 몸에 이상이 생기면 우리에게 바로 연락이 되도록.”
오, 그거 좋은 생각이다.
‘심박이라든지, 혈압 같은 건 수치화하기 크게 어렵지 않잖아.’
아빠와 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였다.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발자크의 말이었다.
“좋은 방법이 뭔데?”
내가 물으니 발자크가 씩, 웃었다.
“나를 늘 데리고 다니면 되지. 황궁에도 늘 함께 가고, 외출할 때도 언제나 함께!”
“…….”
“…….”
아빠와 나는 잠깐 침묵했다.
‘발자크 성격에 일을 다 그르칠 것 같은데.’
위험하지 않아도 위험하다면서 나를 번쩍 들고 도망칠 것 같았다.
“오라버니도 일정이 있으니까 계속 같이 다니는 건 어렵지 않을까.”
말하던 나는 발자크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게…….
“……뭐해?”
“너무 그렇게 빨리 자라지 마라…… 네 고통을 우습게 여기지 마…….”
—하며 갑자기 한 손으로 눈을 가린 것이다.
“…….”
“…….”
아빠와 나는 침묵했다.
‘어제 정원에서 있었던 일을 봤구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전 준비하러 가 볼게요.”
“그래.”
아빠와 내가 각자 할 일을 하기 위해 일어나자 발자크가 움찔했다.
“뭐야. 나 울잖아! 에릴로트, 나 운다고!”
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
등 뒤로 요슈아와 리시먼드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멍청하긴.”
“바보 같구나, 발자크.”
발자크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왜?!” 소리치고 있었다.
* * *
나는 한지혁, 그리고 알렉시스와 함께 외출했다.
허름한 카페에 도착해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으니, 한지혁이 물었다.
“뭐야, 여긴 왜?”
“아델리크의 땅을 빼앗아야지.”
“그럼 이시론 저에 가야 하는 것 아냐?”
“이시론 저에 왜?”
“아델리크 이시론의 재산이면 가주인 이시론 공작이 빼앗아줄 수 있잖아.”
알렉시스는 창 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그건 안 돼.”
“어째서?”
“에릴로트가 노리는 땅은 아델리크가 친모에게 상속받은 재산이니까.”
그렇다.
친모가 가문에서 지급받은 것이 아닌 재산은 가주라 하여도 건드릴 수 없었다.
한지혁은 “아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른 이름으로 빼앗으려고?”
“빼앗는다니!”
나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눈을 부릅 떴다.
“사는 거지. 정식으로.”
“그러니까 어떻게 사려고. 아델리크 이시론은 네게 땅을 팔지 않을 텐…….”
그때였다.
알렉시스가 한지혁의 입을 막았다.
“쉿, 온다.”
나는 재빨리 확 고개를 숙였다.
알렉시스도 사람이 들어오기 전에 결계를 쳤다.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짤랑.
풍경이 울리고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델리크와 마닌 금융의 문양이 새겨진 정복을 입은 사내 둘이었다.
아델리크가 사내들에게 씩씩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니까 며칠만 더 주면 돈을 마련하겠다고!”
“이미 변제일이 수차례 지났습니다, 공자님…….”
“아, 누가 안 갚겠다고 했느냔 말야!”
아델리크는 자리에 앉기도 전부터 통난리를 치는 중이다.
“이따위 허름한 곳으로 날 데려오질 않나. 얼마나 나를 무시하는 것이냔 말야!”
정복을 입은 중년의 사내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매우 곤란한 표정이었다.
그때, 마닌 금융의 정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나섰다.
“자, 자, 공자님께도 좋은 이야기이니 일단 얘기를 들어보시지요.”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한지혁의 눈이 커졌다.
“어?”
그러며 날 쳐다봤는데, 나는 히죽 웃었다.
“아는 얼굴이지?”
“당연하지. 저 녀석은…….”
“그래, 고르고 마닌이야.”
서군의 행정 책임자인 고르고.
그의 집안이 바로 고리대금으로 유명한 마닌 금융이었다.
고르고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