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25)
이 3세는 악역입니다 224화.(225/390)
224화.
내 말에 요슈아와 리시먼드, 그리고 아빠가 눈을 홉떴다.
발자크만이 “응?” 하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악동 같은 얼굴로 말했다.
“요르문간드를 잠재우든, 제물을 바치든 어쨌든 저쪽에선 용의 심기를 살필 수밖에 없다는 거잖아?”
요슈아와 리시먼드가 서로를 쳐다보며 씩 웃었다.
“반면에 이쪽은 간단하지.”
리시먼드의 말에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르문간드의 심기만 불편하게 해도 그리미에는 접근조차 못 할 것이다.”
그랬다.
원래 요르문간드는 아주 화가 많은 용이었다.
라곤이 제 영역인 서쪽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크림슨 구울의 터전을 엉망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화풀이지, 화풀이.’
그리고 난 상대를 열받게 하는 데에 도가 튼 어린이였다.
요슈아가 쿡쿡 웃으며 찻잔을 들었다.
“어쩌나. 우리 백부님, 일이 아주 어려워지시겠네.”
나는 흥얼거리며 창밖을 쳐다봤다.
“심기를 불편하게 할 방법이 백 개쯤 있는데, 뭘 쓰는 게 좋으려나.”
아빠와 오라버니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며칠 후.
나는 머리를 묶어주는 잔느에게 얌전히 몸을 맡기고 있었다.
내 곁에서 하이디와 베티가 손발을 다 써가며 이야기 중이었다.
“해서요, 그리미에 관할령을 필두로 사라진 보물선 인양 작업을 한답니다!”
나는 픽 웃었다.
‘요르문간드의 둥지로 갈 명분을 만든 거구나.’
선황의 보구를 찾으러 간다고 떠벌리진 못할 것이다.
그럼 황제와 그리미에 사이에 거래가 있었다는 것을 공인하는 꼴이니까.
황제가 거래의 대가로 중앙탑에 한자리를 줬다고 하면, 난리가 나겠지.
나는 거울을 보며 말했다.
“그 바다는 요르문간드의 둥지가 있는 곳이잖니. 군사를 동원해도 떼죽음을 당할 텐데.”
그러자 하이디와 베티가 우후훗! 하며 말했다.
“공작님께서 장원 군사를 동원하지 말라 경고하셨대요!”
할아버지는 황궁과의 거래엔 발을 빼시겠다는 것이다.
‘중앙탑에 들어가고 싶으면 네 힘으로 해라’ 라는 뜻이었다.
내가 미소 짓고 있자, 잔느가 내 머리에 손을 떼었다.
“어떠셔요, 아기님?”
“아주 마음에 들어.”
“기뻐라.”
나는 마지막으로 행색을 점검하며 입을 열었다.
“아스트라 군사를 동원할 수 없으면 용병단을 써야 할 텐데. 상당히 수준급으로 말이야…….”
잔느가 후후 웃었다.
“요르문간드의 바다로 갈 용병이라면 1티어는 족히 되어야겠지요.”
“그럼 용병단에 상당한 대금을 치러야 할 테고.”
“요르문간드가 상대라면 적어도 평소의 5배…… 아니, 10배까지도 요구할 수도 있겠어요.”
“어머나, 백부님이 모아 둔 쌈짓돈이 싹 사라지겠어.”
잔느와 내가 쿵짝이 맞아서 떠들자, 하이디와 베티도 실실 웃으며 장단을 맞췄다.
“안됐네요~.”
“그러게요~.”
아침부터 공기가 꿀맛으로 느껴진다.
나는 룰루랄라 외투를 입었다.
“그럼 다녀올게.”
잔느와 하녀들이 내게 간식거리가 든 바구니를 챙겨 주며 허리를 굽혔다.
그렇게 바구니를 가지고 내가 간 곳은 황궁이었다.
아스트라의 마차가 궁에 도착하자마자, 경비병이 부리나케 소리쳤다.
“서군 원화 드십니다!”
거대한 황궁의 문이 열리고, 우리 마차는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황궁으로 들어갔다.
마차 대기소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오늘은 황궁의 관료들이 모이는 대회의의 날이었다.
게다가 황태후의 탄신제를 앞두고, 사교계의 거두들이 모였다.
익숙한 얼굴들이 내게 다가와 인사했다.
“오랜만에 뵈어요, 아스트라 백작 영애!”
“이곳에선 서군 원화지요.”
나는 파앙테의 파티에서 얼굴을 익혀둔 영애들에게 인사했다.
“궁에서 보니 더 반갑네요. 클레오레 영애, 타실로 영애.”
“기억해 주시는군요! 기뻐라.”
“물론이죠.”
“집무실로 가시는 거라면 중간까지 함께해도 될까요?”
“가는 길이 즐겁겠어요.”
내가 상냥하게 대답하자 영애들의 부친이나 모친이 빙그레 웃었다.
‘클레오레 백작은 동부에 제일 큰 항구를 가지고 있지. 타실로 백작은 황궁 정보부 소속이고.’
역시 귀여운 자식에게 잘해주면 점수가 엄청나게 오른다니까.
나는 호의 가득한 두 백작을 슬쩍 보고서, 속으로 킬킬 웃었다.
나는 영애들과 함께 황궁을 가로질러 걸었다.
“파앙테 양과 트랑 양이 또 크게 다퉜지요.”
“아, 두 분 모두 서군 원화가 다시 병가를 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염려하셨답니다.”
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황태후의 궁 인근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
내가 눈을 크게 뜨자, 곁에 있던 영애들이 “어머나…….” 하며 말했다.
“이시론 공작 부인이시군요.”
알렉시스가 이시론 공자로 있으니, 공작 부인은 내겐 예비 시어머니였다.
‘그런 관계인데 인사하지 않고 가는 것도 이상하지.’
나는 공작 부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부인.”
고용인들이 짐을 옮기는 것을 보고 있던 공작 부인이 나를 쳐다봤다.
“아아, 서군 원화.”
공작 부인의 뒤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마사와 마리네.’
마사가 “앗!” 하며 반가운 티를 내려 했으나, 마리가 얼른 동생의 소매를 잡았다.
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고용인과 사적인 친분을 드러내는 건 좋을 게 없었다.
‘눈치가 빠른 애라니까.’
마리는 고용인 일을 시작한 지 몇 달 되지 않았는데도, 아주 영리하게 행동했다.
나는 공작 부인에게 미소 지었다.
“황태후 폐하의 탄신제 때문에 오셨군요.”
“그래요. 긴 병가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몸은 회복되었나요?”
“염려해주신 덕에요.”
“집무실로 가는 길인가요?”
“그랬는데…….”
나는 말끝을 흐리며 공작 부인을 바라봤다.
[‘황태후 폐하께서 아스트라 백작 영애를 손주 며느릿감으로 눈여겨보신다는 것을 내게 언질 주셨는데, 그 후에 영애가 알렉시스와 약혼하였으니…….’]나와 알렉시스의 약혼 때문에 공작 부인이 곤란하게 되었나 보다.
그래서 탄신제의 선물을 신경 쓴 모양이었다.
나는 생긋 웃고서 말했다.
“함께 황태후 폐하께 인사를 드리러 가도 될까요?”
“네?”
“저도 선물을 준비했거든요.”
공작 부인의 눈이 동그래졌다.
[‘영리한 아이가 자신할 정도의 선물이라면 내게 도움이 되겠구나.’]공작 부인이 빙그레 웃었다.
“물론이에요.”
나와 공작 부인, 그리고 영애들이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며 황태후 궁으로 향했다.
얼마쯤 지나 등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얘, 마사! 조심하지 못하겠니!”
마사가 선물을 들다가 휘청한 모양이다.
그래서 상급 고용인인 하녀가 주의를 준 것일 터다.
나와 눈이 마주친 이시론의 상급 고용인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영애.”
나는 길을 지나던 궁인에게 말했다.
“당신.”
나를 알아본 궁인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예, 원화.”
“황태후 궁에서 수레를 빌려오렴.”
그러며 서군 원화임을 증명하는 신분 패를 건넸다.
궁인이 후다닥 움직였다.
난 공작 부인에게 말했다.
“귀한 선물이 행여 상하기라도 할까 봐 감히 참견하였습니다.”
“기쁜 조언이지요.”
공작 부인과 영애들, 그리고 나는 서로에게 상냥한 미소를 나누었다.
* * *
마사는 멍하니 황태후 궁으로 향하는 에릴로트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마리가 그런 동생을 툭, 쳤다.
“뭐해? 서둘러 옮기고 마님을 쫓아야지.”
“으응…….”
“왜 그렇게 정신을 놓고 있어?”
“저기, 엄청 예쁘지 않아……?”
마리가 점점 멀어지는 에릴로트를 바라보았다.
“저 애가 예쁜 게 하루 이틀 일인가. 제국 최강미라는 데이몬드 아스트라를 쏙 빼닮은 애인데.”
“그게 아니라…….”
에릴로트의 손목에 감겨있는 저 얇은 팔찌.
“저 팔찌는 얼마나 할까…….”
“우리가 평생 벌어도 못 살 가격이겠지, 뭐.”
체인이 아주 얇지만, 척 보기에도 엄청난 고가로 보였다.
어른 손톱만 한 크기에, 산호색으로 된 다이아몬드가 달려 있었으니까.
“저 다이아몬드가 <요정의 눈물>일 걸.”
“요정의 눈물……?”
“마력 전도율이 높은 특별한 다이아몬드. 대부분 마도구로 쓰이는데, 웬만한 저택 한두 채는 우습다더라고.”
“언니는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책에서 봤지.”
마사는 아쉬운 표정으로 손끝을 비볐다.
마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왜, 또.”
“아가씨들은 전부 왜 저렇게 예쁠까.”
“뭐……?”
화려한 레이스가 수 놓인 리본이라든가.
호수의 윤슬처럼 아름답게 일렁이는 치맛자락.
태양의 형태로 보석이 박힌 백금의 목걸이…….
저 모든 것을 착용하고, 맑게 웃는 얼굴엔 그늘 한 점 보이지 않는다.
마리가 표정이 어두운 마사를 지그시 쳐다봤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움직여.”
“으응…….”
마침 궁인이 수레를 가져왔다.
그때, 총집사가 마리를 불렀다.
“마리.”
“예, 집사님.”
“너는 가서 마님의 시중을 들어라.”
“예.”
마리는 서둘러 공작 부인을 쫓았고, 마사는 수레 쪽으로 향했다.
마사가 고용인들과 함께 공작 부인이 준비한 어느 유명한 조각가의 상아상을 들려 했을 때였다.
하녀가 얼른 말했다.
“괜찮으니 물러나렴.”
“네?”
조금 전만 해도 날카롭던 기세가 거짓말처럼 누그러졌다.
그녀가 퍽 다정한 태도로 물었다.
“얘, 너 아스트라 백작 영애의 추천으로 들어온 거지?”
“네? 네…….”
“과거의 인연으로 자리를 추천해주셨다고 들었는데…… 오늘 보니 꽤나 너를 신경 써 주시더구나.”
“아, 뭐…….”
마사는 우물쭈물했다.
언니인 마리가 언제나 주의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에릴로트와의 인연은 절대로 내색하지 마.”
“왜?”
“한낱 고용인이 귀족과 절친하다는 게 소문이 나서 좋을 게 없어.”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다.
‘영애가 정말 착한 사람이란 걸 다들 알면 좋은데, 어째서?’
마사는 늘 에릴로트가 제게 얼마나 잘해줬는지를 말하고 싶어 했다.
얘기가 나오려고 하면 마리가 얼른 말을 돌려버려서 기회가 없었지만.
하녀가 상냥한 체 말했다.
“아스트라 백작 영애와 어떤 사이야?”
“그게, 어, 으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까 살짝 얘기해줘. 우리가 얼마나 입이 무거운지 알지?”
“그게요…….”
마사가 등 뒤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고향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그 후로 이것저것 신경 써주셔요…….”
“왜? 무슨 일로 알게 되었는데?”
“저기, 그러니까…… 고향에서 부모 없이 아픈 언니를 보살폈는데요. 그게 대견해 보이셨는지…….”
“세상에, 네가 아주 마음에 드셨나 보구나.”
“그, 그런가요?”
하인들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마사를 쳐다봤다.
남자 하인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긴 마사는 어딘가 모르게 귀티가 흐르지. 귀족 영애와 어울리는 게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야.”
“그, 그래요?”
귀티?
내가 귀티가 흐르나?
마사가 에헤헤, 하고 수줍게 웃었다.
“영애가 저를 잘 봐주신 것 같기는 해요……. 밖에서 만나 차를 마신 적도 있거든요.”
하인들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공작가의 영양과?!”
“정말로 잘 보신 모양인데…….”
“이야, 동료 중에 귀족과 친구인 사람이 있었다니. 소설에서나 볼 일이잖아.”
하녀가 상냥한 표정으로 마사를 바라봤다.
어쩐지 아양을 부리는 것도 같은 표정이었다.
피오니 님이 저런 표정을 짓는 상대는 주인님들이나 총집사님 뿐이었다.
“아스트라 백작저의 급료가 그리 훌륭하다던데. 알고 있어?”
“아…… 그건 잘.”
“급료 외에도 이런저런 명목으로 엄청난 금액을 챙겨 준다더라고. 듣자 하니 2등 고용인 급료의 서너 배는 되는 것 같던데…….”
“아아.”
“혹시 자리가 있는지 여쭤봐 주겠니?”
마사가 당황해서 말했다.
“그, 그런 건 말하기 곤란한데…….”
“아스트라 백작 영애께서 널 얼마나 귀여워하시니. 아니, 귀여워하시는 게 아니지. 밖에서 만나 차도 마시는 사이잖아.”
“…….”
“그건 친구야, 친구.”
마사의 뺨이 발그레해졌다.
귀족 나리와 친구…….
곱씹을수록 달콤한 말이었다.
하녀는 애교 있게 웃으며 마사의 손을 잡았다.
“슈올레 남작을 알지?”
“네. 아델리크 도련님의 지기 분이신…….”
“그분의 부친이 샤토브리앙 공작과 절친한 사이였단다. 평민이었는데, 공작님께서 작위를 주셔서 귀족으로 만들어 주셨지.”
“정말이요?”
“그럼! 혹시 아니? 너도 작위를 받게 될지.”
그러자 하인들이 껄껄 웃었다.
“그럼 이제부터라도 끈을 대놔야 하는 것 아냐?”
“아가씨! 아가씨라고 불러야지.”
“마사 아가씨.”
아가씨…….
마사가 몽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하인들이 마사에게 달라붙어서 속삭였다.
“백작저에 자리가 있는지 한 번 여쭤봐 줘, 응?”
“우리가 백작저에 들어가면 영애께 잘 말씀드릴 수도 있잖아.”
“그래, 슈올레 남작의 일화 같은 것을 말이야.”
하인들은 정말로 귀족을 대하듯 친절한 표정이었다.
마사가 에헤헤,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한 번 여쭤볼게요…….”
“고마워, 마사!”
“아가씨가 되실 분이라 아랫것들 사정도 잘 봐주시고.”
“귀족이 되면 우리를 잊으면 안 된다?”
마사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수그렸다.
“무, 무슨…… 잊을 리가 없잖아요.”
그때, 멀리 떨어져서 궁인과 이야기하던 집사가 소리쳤다.
“뭣들하는 것이냐!”
하인들이 헐레벌떡 선물을 수레에 옮기기 시작했다.
마사도 움직이려 하자, 하인들은 손을 내저었다.
“아가씨는 쉬셔요.”
“그래, 그래.”
마사가 부끄러운 듯 목을 매만졌다.
‘아가씨…….’
결코 싫은 기분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