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26)
이 3세는 악역입니다 225화.(226/390)
225화.
이시론의 고용인들은 황태후궁 앞에서 궁인에게 수레를 인계했다.
“이시론 공작가입니다. 마님께서 각별히 신경 써 달라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리하겠소. 저들은 모두 이시론의 고용인들이오?”
“예.”
“후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시중인은 한 사람으로 제한되어 있소. 남은 이들은 대기실에서 기다리시오.”
총집사는 궁인에게 인사한 후, 품에서 통신석을 꺼냈다.
통신석에서 마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예, 집사님.]“후원엔 내가 들어간다. 마리, 너는 후원 밖으로 나와서 대기하여라.”
[예.]총집사가 들어간 후, 황태후궁의 하녀가 고용인들을 대기실로 안내했다.
궁의 하녀를 따라가던 고용인들이 수군거렸다.
“말도 안 돼, 마리가 통신석을 받았어?”
“2등 이상 집사님들이나, 측근 메이드들 정도만 받는 것을 대체 무슨 수로?”
하인들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나이 어린 하녀가 눈을 빛내며 속삭였다.
“제가 들었는데요. 최근에 총집사님께서 마리에게 초대장 정리를 시키셨다더라고요.”
“그래?”
“네, 마님께서 마리의 일 처리를 마음에 들어 하시더래요. 그래서 다른 서류 정리도 시키셨다더라고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대단한 거죠. 마님의 눈에 쏙 들었다는 거잖아요.”
마사가 흠칫, 수군덕대는 하인들을 쳐다봤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그런데 언니는 어째서 제게 말하지 않았을까.
‘일을 뺏어가는 것도 아닌데…… 동생에게까지 비밀로 할 건 뭐야…….’
마사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동안에도 이시론 고용인들의 수다는 이어졌다.
“이래서 내저 하인으로 들어가야 한다니까. 주인의 눈에 들 기회가 있잖아.”
“내저는 아무나 들어가나요. 마리야 아스트라 백작 영애의 추천을 받아서 들어간 거지.”
“그러게. 암만 외저에서 2등 고용인이면 뭐 해. 내저 녀석들 한마디면 잽싸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데.”
마사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언니보다 계급이 높다고 좋은 게 아니었구나…….’
4등 고용인인 언니와 달리 3등 고용인이 되었을 땐 기뻤다.
집사님께서 자신을 잘 봐주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막상 고용인이 되고 보니 계급이 높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대기실에 도착했다.
대기실 안으로 들어간 이시론의 하인들이 “와…….” 탄성을 흘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황궁은 하인들 대기실도 이렇게 호화롭네. 이야, 내 평생 이런 데를 다 와 보다니!”
“블로니 사건으로 상급 고용인들이 싹 조사받는 중이라 우리 같은 놈들에게도 기회가 온 거지.”
“블로니에게 감사해야 하나.”
으하하!
고용인들이 웃음을 터뜨렸을 때였다. 마리가 대기실 안으로 들어왔다.
마리는 곧장 마사에게 다가왔다.
“궁이 너무 넓어서 찾기 힘들…… 뭐야, 왜 그래?”
“……뭐가.”
“표정이 안 좋잖아. 또 실수했어? 그런 거면 말해. 빨리 수습하게.”
마리의 말에 마사가 울컥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항상 실수하는 사람이야? 난 그냥…… 그냥 언니가 통신석 받았다는 걸 지금 알게 돼서 그런 거야…….”
“통신석이 왜?”
“……어떻게 받았어?”
“마님께서 지시한 일을 하다 보면 필요할 때가 종종 있어서.”
“말해 주지 그랬어…… 난 몰랐는데…….”
마사는 단단히 마음이 상한 표정이었다.
마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통신석이 뭐가 중요해? 내가 사사롭게 통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마님께 인정받았다는 거잖아…… 전에는 내가 더…….”
고향에선 모두 마사를 귀여워했다.
몸 아픈 언니를 홀로 돌보는 갸륵한 아이.
성실하고 싹싹해서 누구나 좋아하는 착한 아이.
모두가 자신을 그렇게 말했다.
좋은 곳으로 이주하게 된 것도 모두 자신을 신께서 어여삐 봐주신 거라고…… 다 그렇게 말했는데…….
‘여기선 매일 혼만 나.’
이곳 어른들은 늘 마리와 자신을 비교했다.
“새 모종이 어째서 오지 않았지? 마사, 내저에 새 모종이 필요하다는 말을 전한 게냐?”
“아! 어떡해요…… 깜빡했어요…….”
“대체 이게 몇 번째냐. 마리는 하나를 부탁하면 둘, 셋을 해 오던데. 자매가 어찌 그리 달라!”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거기, 너. 그래, 마리의 동생 말이다.”
집사님은 자신의 잠재력을 알아주시는 줄 알았는데, 언니에게만 큰일을 맡기셨다.
‘나도 아스트라 백작 영애님이 추천한 사람인데…….’
마리가 고개를 푹 수그린 마사의 손목을 잡았다.
“진짜 왜 그래? 몸이 안 좋아?”
“괜찮아.”
“오늘 아침에도 두통이 있었다면서―”
“괜찮다는데 왜 이래!”
마사가 마리를 거칠게 떨쳐 냈다.
워낙 연약한 마리는 그 정도 힘에도 금세 떠밀려 주저앉았다.
쿵!
난데없는 소리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뭐야?”
“황궁에서 무슨 소란이람.”
이시론의 고용인 외에 다른 가문의 고용인들도 수군덕거렸다.
마사가 크게 당황해서 얼른 제 언니를 잡았다.
“미, 미안, 떠밀려던 것은 아니고…….”
“됐어.”
마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넘어지면서 쏟아진 물건을 주섬주섬 주웠다.
마리가 꼬깃꼬깃 접은 쪽지를 주머니에 넣던 찰나였다.
“그게 뭐야?”
마사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쪽지잖아. 거기 쓰인 이름…… 그거…….”
“별것 아니래도.”
마리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일어나서 비치된 의자로 향했다.
마사가 그런 마리의 등을 노려보았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쪽지에 쓰여 있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성격 나쁜 책벌레에게―아퀼라]
아퀼라…….
고향에서 자매를 돌봐 주던 이웃집의 소년이었다.
마사에겐 오라버니이자, 친구이자, 보호자 같은 사람이었다.
이주해서도 몇 번이나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은 딱 한 번 받았다.
[글자 갖은 거 잘 몰르니까 적당이 보내. 글자 찻아가면서 익기 귀찬아.]마사가 마리를 노려보았다.
‘정말 너무해.’
내가 얼마나 아퀼라의 편지를 기다리는지 알고 있으면서……!
* * *
내가 황태후의 후원에 갔을 땐, 이미 귀부인이 여럿 도착해 있었다.
나와 영애들, 그리고 공작 부인은 황태후에게 예를 갖췄다.
“광영을 누리소서.”
치맛자락을 넓게 펼치고 허리를 깊이 숙인 후, 자세를 바로 했다.
황태후가 후후 웃으며 인자하게 말했다.
“언제 봐도 서군 원화의 자세는 훌륭하구나.”
“좋은 선생님께 배워서 그렇습니다.”
“그리 좋은 선생이 있었느냐?”
“예, 일전에 미술관에서 어느 우아한 귀부인을 뵈었는데 걸음걸이 하나, 손짓 하나 어쩌면 그리 우아한지 꼭 그렇게 되고 싶어서 노력했습니다.”
미술관이란 말에 황태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술관이라…… 어느 귀부인일까.”
“귀부인께서 존함을 말씀하시길 ‘엘리자베트 칼소이에’라고 하셨답니다.”
황태후의 이름이었다.
그러자 황태후가 드물게 소리 내어 웃었다.
공작 부인을 비롯한 귀부인들도 쿡쿡 웃으며 나를 보았다.
황태후는 매우 기쁜 얼굴로 말했다.
“너만큼 말재간이 뛰어난 아이는 본 적이 없구나.”
“그렇습니다, 폐하.”
귀부인 하나가 동조하자 황태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모로 바쁠 터인데 무슨 일로 내 궁에 들른 것이냐?”
나는 공작 부인의 팔을 살포시 잡고 말했다.
“이시론 공작 부인께서 그 무엇보다 효심이 중하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효심이라…….”
“예, 황태후 폐하께선 제국의 어머니이시고, 어머니를 향한 효심은 그 어떤 가치보다 중하다고 하셨지요.”
그럴듯하게 나불거렸지만, 요지는 이것이었다.
[어차피 님이 최강.시할머니가 아니어도 난 님을 따라야 함.
그러니까 굳이 시할머니까지 될 필요가 없음.]
황태후가 픽 실소를 흘렸다.
“하여간에. 네 할애비가 너라면 혼을 쏙 빼는 이유를 알 것 같구나.”
내가 헤헤 웃으니, 황태후가 장난스럽게 눈을 좁혔다.
“해서 더 아까운 것이란다. 본궁의 심경을 이해하시오, 공작 부인?”
그러자 공작 부인은 날 보며 웃곤, 황태후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찌 모르겠습니까. 일이 이렇게 되어 민망하고, 송구합니다.”
“되었소. 자, 다들 앉지.”
황태후가 내게 손짓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황군의 동량을 이끄는 대원화께선 본궁의 곁을 지켜 주시게.”
“영광입니다~!”
나는 거절 한번 없이 홀랑 황태후의 옆을 차지했다.
귀부인들과 영애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폐하, 공작 부인께서 선물을 준비하셨어요.”
“선물?”
“예. 저도 아직 보지 못해서 몹시 궁금합니다.”
공작 부인이 시녀에게 말했다.
“내오게.”
“예, 부인.”
곧 시녀들이 수레를 밀고 들어왔다.
공작 부인이 선물을 가린 천을 끌어 내렸다.
“어머나, 아름다워라…….”
“세상에!”
선물은 상아를 불사조의 형태로 조각한 것이었는데,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깃마다 루비를 촘촘히 박아 넣어 그야말로 불에 휩싸인 것 같았다.
황태후가 자리에서 일어나 불사조상을 둘러보았다.
“킨클람의 조각인가? 훌륭하군…….”
‘센스 있는 분이시구나.’
황태후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킨클람이 활동했던 시기의 작품들을 매우 좋아했다.
공작 부인이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에 드신다면 기쁠 것입니다.”
“말이라고. 그 어떤 선물도 이보다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할 순 없을 걸세.”
귀부인들은 농담조로 볼멘소리를 했다.
“선물을 준비한 제가 민망합니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끼어들었다.
“네, 저도 민망하여 선물을 입에 담을 수가 없어요.”
그러자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선물?”
황태후의 물음에 나는 생긋 미소 지었다.
“탄신제의 밤, 제 용이 황궁의 상공에서 황태후 폐하의 무운을 빌 것입니다.”
“……!”
“……!!”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서 황태후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황태후 또한 눈을 홉뜨고 나를 쳐다봤다.
“정말……이냐?”
“예.”
“맙소사…….”
용이 황가의 상공에 나타난 건 역사상 단 2번 있었던 일이었다.
5대 이자벨라 황후의 탄신제.
11대 아칼리토스 대제의 탄신제.
두 사람 모두 역사상 다시없는 명군주라 불리었다.
그러니까 나는 황태후에게 후대로 쭉 이어질 ‘명군주’의 칭호를 선물하겠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라곤이 황태후궁의 상공을 나는 건 다른 의미도 있지.’
내가 황태후의 손을 잡았다는 의미.
황제도, 황비도, 황자도 아닌 엘리자베트 황태후의 손을 말이다.
황태후가 떨리는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다 늙어서 두말을 하는 것이 우습긴 하다만, 해야겠구나.”
“…….”
“최고의…… 실로 최고의 선물이다, 에릴로트.”
그렇게 좋아하면 살짝 양심에 찔리는데.
‘사실 이건 음흉한 책략이니까.’
이 제국은 요르문간드의 영역에 속해 있다.
그런데 우리 라곤이 버젓이 불을 뿜으며 상공을 날아 봐.
그 성질 나쁜 용이 뒤집어지겠지.
‘그러면 그리미에의 보구 찾기는 망했지, 뭐.’
나는 고개를 숙였다.
“폐하의 기쁨이 저의 기쁨입니다.”
사실이야.
그리미에를 엿먹일 생각에 매우 기쁘다!
* * *
오후.
마사는 어두운 표정으로 앞서 걷는 마리를 쳐다봤다.
자신을 아가씨라 부르던 하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마리에게 철썩 달라붙어 있었다.
“통신석 구경 좀 하자, 응?”
“안 됩니다.”
“쩨쩨하게 그러지 말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언제 통신석을 구경해 보겠어?”
“안 돼요.”
“하여간 똑 부러지긴. 그게 마리의 매력이긴 하지만 말이야.”
하인들이 마리를 둘러싸고 와하하 웃었다.
마사는 치맛자락을 꽉 비틀었다.
‘저 귀찮은 표정은 뭐야…….’
마님께서 황태후 폐하와 말씀이 길어지니 먼저 귀가하라는 통신을 하셨다.
마리는 그 통신을 보란 듯이 남들 앞에서 받았다.
마치 지위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그러면서 무슨…….’
자꾸만 통신석과 아퀼라의 쪽지가 신경 쓰인다.
‘아퀼라 오라버니와 통신도 하나?’
그럴 수도 있겠다.
아퀼라 오라버니는 지금 귀족의 측근 호위가 되었다고 하니까.
통신석을 지급받았을 수도 있지.
‘그래서 내게 통신석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았던 거야.’
자신은 언니를 위해 평생 희생하며 살았다.
그런데 어떻게…….
정말 너무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이를 악물던 찰나, 멀리서 익숙한 머리칼이 보였다.
“아……!”
마사가 반가운 얼굴로 소리쳤다.
“영애님!”
그러자 마리를 둘러싸고 걷던 사람들과 에릴로트가 마사를 돌아보았다.
마사는 에릴로트를 향해 후다닥 달려갔다.
“자주 뵈니 너무 좋네요.”
“……그래.”
“아, 오전에 뵈었을 때도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언니가 말려서…… 죄송해요.”
“아냐.”
하인들의 반짝이는 시선이 다시 제게 모여들었다.
“정말로 친한 모양…… 잘 보여 놔야 하는 건 역시 저쪽일 수도…….”
소곤거리는 소리가 얼핏 들리자, 어쩐지 기분이 고조되었다.
마사가 어깨를 모으며 에릴로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저어, 괜찮으시면 따로 연락드려도 될까요?”
“…….”
“상담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제가 황도엔 아는 사람이 영애님밖에 없는 터라…….”
우물쭈물 말하고 있으니, 마리가 성큼성큼 걸어와서 마사의 손을 떼어 냈다.
“사과드리고 마차로 가자.”
“왜 그래…… 난 영애님이 반가워서…….”
“귀족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선 안 돼.”
언니의 태도가 정말로 이해되지 않는다.
왜 이렇게 제게 날카롭게 구는 것일까?
‘영애님은 좋은 사람이어서 그런 것엔 신경 쓰지 않으신단 말이야…….’
언니가 자꾸만 타박하고 화를 내니 자꾸만 쪼그라드는 기분이 든다.
너무나 서러워서 기어이 눈물까지 흘러나왔다.
마사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에릴로트를 쳐다봤다.
“영애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