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30)
이 3세는 악역입니다 229화.(230/390)
229화.
* * *
이튿날 오후.
마사는 허둥지둥 거리를 뛰었다.
‘어떻게 해…… 늦었어!’
에릴로트와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퇴근 전에 일이 생기고 말았다.
이시론 공작가의 둘째인 세리안의 손님으로 남작이 찾아온 것이다.
세리안은 고용인들까지 대동해서 손님을 환대했다.
‘세리안 님은 가끔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어…….’
듣자 하니 손님은 단승작위의 남작이었다.
그것도 평민을 상대로 장사를 해서 부를 축적한 사람.
엄청난 흉년에 재산 대부분을 기부해서 고향의 백성들을 먹여 살렸다고 했다.
그 공으로 황제로부터 단승작위를 받았단다.
‘돈으로 작위를 산 거잖아. 교양 없이…….’
그런 사람을 접대하느라 아스트라 공작의 손녀와 한 약속에 늦다니.
블라썸 양이 들었더라면 펄쩍 뛰었을 것이다.
약속 장소로 황급히 달려간 마사가 소리쳤다.
“아, 영애!”
시계탑 아래에 서 있던 에릴로트가 마사를 쳐다봤다.
“안녕, 마사.”
마사가 치맛자락을 넓게 펼치고 무릎을 가볍게 굽혔다가 폈다.
“고귀한 분을 뵙습니다.”
에릴로트와 함께 있던 한이라는 사내가 눈을 크게 떴다.
마사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에헤헤, 웃었다.
평민인 자신이 귀족의 인사법을 아는 건 놀라운 일일 터다.
제가 이 인사법을 배웠을 때, 블라썸 양 무리의 영애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부채나 장갑 낀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으니까.
에릴로트도 꽤 놀랐는지 대답이 조금 늦었다.
“……그래.”
“오래 기다리셨지요? 죄송해요. 남작이 갑자기 찾아오는 바람에 퇴근이 늦었어요.”
“그렇구나.”
“안으로 들어가요, 영애.”
마사는 에릴로트의 팔을 끌어안고 헤헤 웃었다.
그 모습을 본 한이라는 하인은 흠칫,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그가 마사에게 다가오려 하자, 에릴로트가 저지했다.
“괜찮아.”
“……예, 아가씨.”
한이라는 하인이 물러난 후, 마사는 에릴로트를 보며 수줍게 미소 지었다.
‘그것 봐. 영애는 아무렇지 않으시잖아.’
다들 그랬다.
이렇게까지 해주는 건 보통 사이가 아닌 거라고.
에릴로트 영애가 마사를 엄청나게 좋아할 때나 가능한 일이라고 말이다.
마사는 영애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런데 이상하죠…….”
“뭐가 말이에요?”
“아무리 절친하다지만, 집을 내준데다가 생활비까지 지원해준 것 말이에요. 마사 양이 살았다던 곳, 땅값이 어마어마한 곳이던 걸요?”
“뭐, 준 것도 아니고 빌려준 정도라면…… 놀리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요? 관리도 대신해 줄 테고.”
“관리가 아까운 집안이겠어요? 더군다나 생활비까지……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적선이라고 보긴……”
“영애……!”
“아, 아니…… 내 말은 후원이라고 하기엔 너무 과하다는 거죠. 그만큼 서군 원화가 마사 양을 좋아한다는 거고요.”
그 말에 블라썸 양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런 게 아닐까요?”
“그런 거라면……?”
“아스트라는 좀…… 살벌한 데가 있잖아요? 학술원이나, 신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요. 혈족 교육 때문에 외부엔 나가기 힘들잖아요.”
“그러니 ‘친구’라는 말이 서군 원화에게 특별한 단어가 아닐까 해요. 첫 친구인 마사 양은 더 특별하고요.”
“아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생각보다 귀여운 구석이 있는 분이시지요?”
그리고 영애들은 다 함께 까르륵 웃었다.
‘나는 아스트라 백작 영애에게 특별한 사람이야.’
마사는 후훗, 웃으며 한이라는 하인을 힐끗거렸다.
에릴로트는 그런 마사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거니?”
“아, 저 카페예요.”
마사가 가리킨 곳은 3층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는 카페였다.
이 어마어마하게 크고 화려한 곳의 주 고객은 거부나, 대귀족이었다.
“……저기를?”
“아, 처음 가 보세요?”
“그렇긴 한데…….”
오늘 만남을 요청하면서 마사는 ‘차를 대접하고 싶다’라고 했다.
값을 치르는 건 이 애가 될 텐데, 겉보기에도 마사의 급료로는 감당할 수 없는 곳이었다.
“최근에 내 취미는 찻잎의 특색을 잘 살리는 티 마스터를 찾는 거야.”
“네?”
“저렇게 큰 곳보다는 고즈넉한 곳의 티 마스터가 더 재미있는 차를 끓이거든.”
마사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돌려 말한 것이다.
골목 안의 저렴한 찻집이라도 괜찮다고.
그러나 마사는 손을 휘휘, 흔들며 까르르 웃었다.
“그래도 좋은 찻잎보다는 못할걸요?”
“응?”
“아, 영애는 모르시나 봐요. 알레그로이라고, 굉─장히 훌륭한 찻잎을 유통하는 곳인데요! 저곳은 무려 알레그로이를 들여놓는 곳이래요.”
“…….”
“저는 최근에 자주 마셨는데, 아주 훌륭해요.”
“…….”
“좋은 것을 즐길수록 교양이 생기는 법이더라고요.”
한지혁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저 애는 본인이 하는 말이 무슨 뜻으로 들리는지 모르는 거야?’
좋은 것을 즐기지 못하는 너는 교양이 없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들려도 할 말이 없을 터였다.
마사는 아무렇지 않게 웃고는 에릴로트를 데리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카페의 종업원이 마사와 에릴로트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자리는 어느 곳으로 하시겠습니까.”
“물론 창가지! 괜찮죠, 영애? 창가에서 보이는 경치가 끝내주거든요!”
에릴로트가 “……그래.” 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종업원은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창가 자리는 이미 모두 차 있는 터라 무리입니다.”
“어…… 그럼 비워주면 되잖아? 지난번엔 그랬는데……?”
“다른 손님께 폐가 되므로 무리입─”
“이쪽은 아스트라 공작의 손녀이신 에릴로트 님이시다. 서군 원화를 모르느냐?”
“……!!”
종업원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가 에릴로트를 빤히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소, 송구합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종업원이 헐레벌떡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몇 분쯤 지났을까.
지배인 복색의 사내가 허둥지둥 나와서 에릴로트와 마사를 맞이했다.
“환영합니다, 영애.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마사가 에릴로트의 팔을 끌어안고 생글생글 웃었다.
“잘 됐어요, 영애!”
“…….”
에릴로트는 마사를 힐끗 쳐다보고서 지배인을 따라 걸었다.
지배인이 데려간 곳의 테이블은 정리 중이었다.
“자리를 급히 마련하느라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지배인이 손을 싹싹 비비며 웃었다.
원래 창가에 있던 사람으로 보이는 노부부가 불편한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지배인은 아무렇지 않게 노부부를 무시하고 말했다.
“차는 저희 가게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내오겠습니다.”
그러며 허리를 숙이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마사는 생긋 웃고 자리에 앉았다.
“여기 앉으세요, 영애.”
에릴로트는 마사가 가리킨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고도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노부부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사는 에릴로트를 따라 노부부를 쳐다보다가 “아아.” 하며 말했다.
“신경 쓰이셔서 그래요?”
“그래.”
“에이,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조금 안됐긴 하지만요.”
“안됐다고?”
“여긴 귀족들만 오는 곳은 아니거든요. 평민들이 정말, 정말 큰맘 먹고 오기도 한 대요. 아쉽게도…….”
그래, 에릴로트의 눈엔 저 노부부는 정말로 아쉬워 보였다.
노년의 사내가 아내로 보이는 여인에게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으니까.
“50주년 결혼기념일에 이런 일이 생겨서 미안하오…….”
─하고.
그런데 마사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종알거렸다.
“신분을 따져가면서 받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요?”
“……그게 아쉽다는 거니?”
“네?”
“…….”
에릴로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서? 상담할 일이 뭐지?”
“아, 일단 차부터 마셔요. 아주 근사한 차거든요. 영애 님께 어울리는…… 마침 왔네요!”
지배인이 직접 트레이를 끌고 나타났다.
티팟에 물을 채워준 그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알레그로이의 차는 아시겠지요? 저희 가게에서 가장 좋은 차입니다. 향을 음미해주십시오.”
마사는 티팟을 데운 물을 한 번 버리고, 새 물을 따르지도 않고 홀랑 찻잎을 털어 넣었다.
“아, 잠깐 기다리세요! 향이 더 진하게 올라와야 하니까.”
그러며 에릴로트와 자신의 찻잔에 우유와 크림을 잔뜩 넣었다.
차는 20분이 넘게 우려서 수색이 엄청나게 짙었다.
그 찻물을 찻잔에 쪼르륵 따랐다.
마사가 차를 탕탕탕, 저은 티스푼을 입에 물었다.
“드세요!”
“……그래.”
호록, 차를 마신 마사가 생글생글 웃었다.
“알레그로이의 차는 처음이시지요? 역시 훌륭한 차는 다르다니까요!”
차를 맛본 에릴로트가 힐끗 마사를 쳐다봤다.
알레그로이는 대귀족 위주로 선착순 예약을 받는 곳이었다.
그러나 아스트라와 황가의 몫만큼은 꼭 주인이 직접 챙겼기에, 에릴로트는 어린 시절부터 알레그로이 차를 물처럼 마셔왔다.
‘이건 알레그로이가 아니야.’
시중에서 파는 그럴듯한 차에 알레그로이와 비슷한 향을 첨가한 것이다.
그러나 에릴로트는 별 말 없이 마사를 쳐다보았다.
“그럼 이제 얘기를 할까?”
“아, 저, 그게…… 음, 제가 하고 싶은 말은요…….”
마사가 당황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벽시계를 초조하게 보며 웅얼거리기까지 했다.
“마사.”
“저기, 그게…… 아! 언니 말인데요.”
“마리?”
“네, 좀…… 다퉜거든요. 뭐랄까, 저를 조금…… 음, 질투…… 한다고 할까…….”
“질투라니?”
“제가 최근에 알게 된 좋은 친구들이 있어요. 귀족이다 보니 언니에게 부러움을 산 모양이에요…….”
“…….”
“영애라면 이런 일을 어떻게 해결하시겠어요?”
에릴로트가 찻잔을 소서에 내려놓고 마사를 빤히 쳐다보았다.
마사는 눈썹을 늘어뜨리며 웅얼거렸다.
“저도 언니가 질투하지 않도록 친구들을 소개하고 싶지만, 친구들의 말이…… 제가 아닌 평민은 만나고 싶지 않다고…….”
“…….”
“언니를 어떻게 설득하면 좋을까요? 어떻게 말해야 상황을 이해할는지…….”
“내가 보기에 상황을 이해해야 하는 사람은─”
그때였다.
“어머, 마사 양!”
목소리를 들은 마사가 벌떡 일어났다.
“쿠롱 양!”
“여기서 다 뵙네요~ 아, 그런데 함께 계신 분은……?”
“아스트라 백작 영애셔요!”
“어머!”
개나리꽃처럼 노란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에릴로트에게 인사했다.
“처음 뵈어요, 피네사 쿠롱이랍니다~ 세상에, 그 유명한 서군 원화를 뵙다니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군요!”
마사는 냉큼 옆자리로 이동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잠깐 앉으세요!”
한지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례도 이런 무례가 없었다.
그러나 피네사 쿠롱은 냉큼 자리에 앉아서 말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마사 양과는 절친한 사이거든요.”
“네.”
“영애, 쿠롱 양은 커다란 제과 회사를 가진 쿠롱 백작님의 조카예요. 마들렌이 환상적인 곳이랍니다.”
“어머나, 칭찬 감사해요.”
마사와 피네사 쿠롱은 에릴로트를 앞에 두고 아무렇지 않게 떠들었다.
피네사 쿠롱이 말했다.
“저어, 영애, 황군 입단 시험은 정말로 이것이 끝인가요? 사실 제가 실수를 해서 떨어졌거든요. 본 실력은 그게 아닌데 말이에요.”
그때였다.
“어머, 마사 양!”
이번엔 진달래 같은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등장했다.
마사가 이번에도 무척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루리 양!”
“피네사 양도 있었군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잠깐 자리에 앉아도 될까요?”
“물론이죠.”
상황이 비슷하게 반복되었다.
저들끼리 수다를 떨다가 은근한 표정으로 에릴로트를 쳐다봤다.
“영애, 혹시 요슈아님의 혼처는 정해졌나요?”
“아직이요.”
“어머! 너무 잘됐다~ 저희 부모님께서 요슈아 도련님이 제 짝으로 잘 맞을 것 같다고 하셔서─!”
“어머, 마사 양!”
이번엔 초록색 드레스를 입은 영애가 등장했다.
“저희 부모님이 꼭 아스트라 제 2백작님을 모시고 싶다고 하셔서요! 이모님이 아직 혼자신데, 아이를 아주 좋아해서 재취 자리도 괜찮으시다고……!”
“어머, 마사 양!”
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영애까지 등장했다.
에릴로트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고 있었다.
마사는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아, 영애,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살롱으로 이동하시는 게 어떨까요? 쿠롱 양의 살롱인데…….”
“상담을 하려는 게 아니었구나.”
“……네?”
“그럼 나는 여기 더 있을 필요가 없겠어. 친구분들과 좋은 시간 보내렴.”
에릴로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사가 당황해서 “어, 어!” 하며 벌떡 일어났다.
“저, 저기 영애……!”
아직 블라썸 양이 오지 않았는데……!!
이대로 가 버리면 자신이 아주 곤란해진다.
에릴로트는 미련 없이 카페를 벗어났다.
마사가 허둥지둥 달려가서 에릴로트를 붙들었다.
“영애, 그러지 마시고 잠깐……!”
“벌써 세 시간째야. 네 ‘친구들’을 소개받은 지.”
“아, 카페가 불편하셨어요? 살롱은 그렇지 않을 테니까 그러지 마시고 잠깐만 계셔주세요. 네?”
마사가 애써 웃으며 에릴로트의 팔을 끌어안았다.
마사의 눈이 반짝였다.
‘부탁하면 계셔주실 거야. 우린 특별한 친구이니─’
에릴로트가 마사를 빤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내가 왜?”
“……네?”
에릴로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애들이 너를 정말로 친구로 여기는 것 같니?”
“무슨…….”
“저 애들이 원하는 건 나야. 내게서 이득을 얻기 위해 네게 잘해 주는 거라고.”
“……말씀이 심하세요.”
“여기까지 말했는데도 모른다면 더는 할 얘기가 없는 것 같구나.”
에릴로트가 마사의 손을 떼어 내고 등을 돌렸다.
마사는 우두커니 서서 돌아가는 에릴로트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왜 말을 저렇게 하는 거야?’
이제 보니까 마냥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잘난 척이 심한 것 같기도 하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보지 못했으면서 왜 말을 함부로 하는 거야?
마사가 입술을 꾹 깨물고 카페로 돌아갔다.
안 보이는 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블라썸이 영애들과 함께 있었다.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알고서 온 모양이다.
마사가 울상을 지었다.
“블라썸 양…… 저, 너무 속상해서…… 들어주시겠어요? 아스트라 백작 영애가 말이에요…….”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언제나 상냥하던 쿠롱 양이 벌떡 일어나서 마사를 노려봤다.
다른 영애들도 마찬가지였다.
“……네?”
“서군 원화가 당신에게 뭐든 다 해 준다면서! 말이 다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