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34)
이 3세는 악역입니다 233화.(234/390)
233화.
나는 마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그 전에 일단…….”
“응, 일단…….”
나와 마리는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쉬자.”
“쉬어야겠어.”
동시에 무릎이 휘청했다.
카인로드가 기겁하고 달려와서 우리 두 사람을 받아 들었다.
그는 기가 막힌다는 듯 소리쳤다.
“그래, 둘 다 오늘 죽을 뻔했으면서 왜 이렇게 괜찮아 보이나 했다, 이놈들아!”
아, 몸은 멀쩡한데 정신력이 엄청나게 소모된단 말이지.
사구가 정신계 공간이라 그런 모양이었다.
‘한쪽만 아프니 이상하게 어쩐지 손해 보는 기분이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마리의 얼굴 위로 글자가 떠올랐다.
[‘아,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후들거리네. 한쪽만 괴로우면 이상하게 어쩐지 손해 보는 기분이란 말이야.’]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웃어버렸다.
마리가 나를 묘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뭐야, 왜?”
“같은 생각하는 얼굴이라.”
“나 참…….”
마리는 어이없다는 듯 굴었지만, 그 애도 곧 웃어버렸다.
카인로드가 꽥 고함을 내질렀다.
“똑같이 독한 것들이 웃긴 뭘 웃어!”
—하고.
나와 마리는 킬킬거렸다.
* * *
마리보다 빠르게 회복한 건 물론 나였다.
난 정신력과 마력을 소모한 거라, 회복도 빠른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마력석과 셀레네 언니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푹 자니 정오부턴 말짱해졌다.
대신에 셀레네 언니가 매우 힘들어했지만.
나 때문에 새벽녘에 불려온 셀레네 언니는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에릴로트…… 대체 무슨 짓을 했어……?”
셀레네 언니는 날 마치 신성력 흡입기를 보듯 했다.
진짜 축복의 땅 덕분에 가호가 상당히 강화된 상태인데도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표정이었다.
나는 언니에게 부채를 살랑살랑 부쳐주며 말했다.
“용…….”
“뭐?”
“요르문간드를 상대해서…….”
“뭐?”
“그리미에 백부님의 실패, 그거 내가…….”
“뭐?”
셀레네 언니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실소를 흘리고 잠깐 천장을 보던 언니가 물었다.
“묻고 싶은 게 많은데…… 일단, 왜 내게 그런 말을 해주지?”
“언니는 믿을 수 있어서?”
“……솔직하게는?”
“어차피 언니가 오늘 신성력을 이만큼이나 소모한 걸 알면, 다들 이상하게 여길 거예요. 알려지기 전에 미리 고백하는 거지요…….”
내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하니, 언니는 또 한 번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곤 눈을 가늘게 떴다.
“사촌 중엔 나만 아는 거니?”
“네…….”
“그럼 됐어. 나도 말하지 않을게.”
“네?”
“둘만의 비밀이잖니. 나 그런 거 좋아해.”
“…….”
이 언니도 참 특이한 사람이란 말이야.
나는 침대에 팔꿈치를 받친 채로 턱을 괴었다.
“언니, 왜 이렇게 저를 귀여워해 주세요?”
“귀여운 동생이 가지고 싶었거든.”
동생이 있잖아?
다른 사촌들도 있고.
그런데 왜 나야?
그렇게 생각하다가 사촌들을 떠올렸다.
머릿속에서 짐승의 날개나 손톱, 꼬리 등등을 단 괴물 같은 사촌들이 뭉게뭉게 머리 위를 날아다녔다.
그 모습을 떠올리니 납득하고 말았다.
“……귀여워할 만한 사람이 없었구나.”
“그렇지.”
나는 헤헤 웃고 말했다.
“그럼 계속 귀여워해 주세요.”
“진짜 언니가 되고 싶은데, 나도 데이몬드 관할령에 입양해줄래? 쌍둥이나 리시먼드처럼.”
“아빠가 조카 수집가라고 불리지 않을까요? 언니의 어머니, 그러니까 바스티나 고모가 난리도 칠 테고.”
“농담이야. 그런 부모라도 아직까진 봐줄 만 하니까.”
셀레네 언니가 쿡쿡 웃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시계를 쳐다봤다.
“아.”
“왜?”
“이제 나가봐야겠어요. 황궁에 갈 일이 있거든요.”
“황궁?”
“황제의 기분을 좀 풀어주러 가야 해서.”
언니는 무슨 뜻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럼 쉬세요.”
말하고서 방을 나섰다.
기다리고 있던 한지혁이 따라붙었다.
“황태후궁과 황제궁의 상황은?”
“황태후궁이야 다들 신이 났고, 황제궁은 뭐…….”
대단히 뿔이 나셨다는 말일 테군.
당연한 일이었다.
라곤은 자정이 지나서 이시론 가로 날아왔다.
즉, ‘황태후의 탄신제’에 황궁의 상공을 날아온 것이다.
황제가 반대했던 일을 내 마음대로 하였으니, 단단히 화가 날 만도 했다.
‘거기다 그리미에의 원정도 대실패고.’
나는 히죽히죽 웃었다.
“아빠는?”
“중앙탑. 네가 벌인 일을 수습해야 하니까.”
“못난 딸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네.”
“꼭 남 얘기하듯이 한다? 네 아버지, 정말로 고생이 많다고.”
“우리 아빠는 나 때문에 고생하는 걸 좋아해.”
내가 어릴 때부터 하도 의젓하게 굴어서.
난 사고 치는 법이 없었다.
사고는커녕 도리어 아빠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가져다주는 엄청나게 대견한 딸이었지.
‘그래서 은근히 서운해하셨거든.’
자식이 너무 기대지 않아도 부모는 서운한 법인 모양이다.
한지혁이 픽, 웃었다.
“어쩐지 기분 좋은 표정이긴 하더라.”
“자, 그럼 황궁으로 가자.”
“예, 예, 아가씨.”
나는 한지혁과 함께 황궁으로 출발했다.
* * *
황궁.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각궁의 시녀 무리가 나를 맞이했다.
“황태후궁의 비올레입니—”
“황제궁의 이스타카입니다.”
황태후궁의 시녀장과 황제궁의 시녀장이 서로를 맹렬하게 노려봤다.
‘주인끼리 사이가 안 좋으니, 저쪽도 난리구나.’
서로를 노려보던 시녀장들은 이내 나를 보며 생긋 미소 지었다.
“황태후 폐하께서 기다리십니다, 서군 원화.”
“황제궁으로 모시겠습니다.”
“황태후 폐하께서 기다리신다고 하였네, 이스타카.”
“황제궁으로 모시라는 시종장의 명이십니다.”
“일개 시종장의 명이 어디 제국 대모의 명보다 우선일 수 있겠는가?”
“시종장의 명이 어디 개인의 뜻이겠습니까. 황제 폐하께서 서군 원화를 찾으시니—”
“어찌 이리 무례한가.”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선배님. 당대의 시녀장은 접니다. 누가 예를 갖춰야겠습니까?”
“네가 감히……!”
오, 이것이 바로 내궁 궁인들의 암투인가.
황비끼리의 암투보다 맹렬하고, 황자끼리의 암투보다 추잡하다는 궁인의 암투.
직접 보니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시녀장들 뒤에 있는 시녀들도 서로를 찢어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또 한 무리의 시녀들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서군 원화. 황비궁으로 모시겠습—”
“순서를 지키게!”
“순서를 지키지 못하겠느냐!”
황비궁의 시녀장이 움찔했다.
‘음, 황비궁 시녀들은 끼지도 못하는구나.’
하기야 한쪽(황제궁)은 권력의 최정점.
또 한쪽(황태후궁)은 경력의 최정점이니.
한지혁이 남몰래 나를 쿡 찌르고 속삭였다.
“이러다 치고받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손뼉을 짝! 쳤다.
“저어!”
말하자, 세 무리의 시녀가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오늘은 황제궁으로 먼저 가겠습니다.”
황제궁의 시녀들 표정이 단숨에 밝아졌다.
반면에 황태후궁과 황비궁 시녀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이대로 나를 빼앗기면 주인에게 면목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다음 순서대로 황태후궁, 황비궁으로 갈 테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슈에흐(황궁의 주춧돌).”
슈에흐란, 암막의 대제라 불린 이자벨라 황후가 시녀들에게 붙여준 별칭이었다.
함께 궁의 행정을 돌보면서, 관료들보다 무시당하는 시녀들을 위해서 붙여준 별명.
황궁의 주춧돌.
‘궁 행정 관료들과 다르지 않은, 황가를 지탱하는 자들’이라는 뜻이었다.
시녀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칭인 셈이었다.
시녀장들의 표정이 단숨에 유해졌다.
“그 단어를 아십니까~?”
“이제는 잊힌 단어인데 어찌 어린 원화께서 알고 계시는지요~”
황태후궁과 황제궁의 시녀장들이 생글생글 웃으며 나를 보았다.
“시녀님들께선 각궁의 예산을 짜고, 집행하고, 재해 시엔 황도의 백성들을 살피는 일도 하시는데 왜 관료들과 달리 관료 명이 없을까 했거든요.”
“어머나~”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그래서 찾아보니까 ‘슈에흐’라는 딱 걸맞은 단어가 있더라고요!”
시녀들이 “세상에나……!” 하며 기뻐했다.
황제궁의 시녀장이 우후후 웃으며 말했다.
“서둘러 모시겠습니다. 봄바람에 귀한 몸이 상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가시죠, 스테마 리도르.(불꽃의 근원, 원화)”
슈에흐라는 경칭이 정말로 마음에 드는지, 이제는 군가에서만 불리는 원화의 경칭으로 답한다.
나는 “네!” 대답했다.
한지혁이 대단하다는 듯, 나를 보며 소리 없이 혀를 내둘렀다.
‘내가 바로 처세왕이라 이거야.’
오직 처세만으로 학연, 지연, 혈연까지 다 밀어내고 출세한 유혜민이 나라고.
난 히죽 웃고 속으로 룰루랄라 흥얼거리며 황제궁의 시녀장을 따라갔다.
한참을 걸어 황제궁 안으로 들어갔다.
시녀장과 함께이니, 출입 심사를 할 것도 없었다.
황제의 집무실에 막 이르렀을 때였다.
“짐을 우롱하는 것이냐—!!”
얼마나 큰 고함인지, 거대한 문이 굳게 닫혀 있는데도 새어 나온다.
시녀장이 흠칫, 나를 쳐다봤다.
그러곤 집무실 앞을 지키는 궁인에게 말했다.
“서군 원화를 모셔 왔네. 고해도 되겠나?”
궁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하겠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궁인이 서둘러 문 안으로 들어가고, 시녀장이 내게 허리를 굽혔다.
“하면 영애,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예, 일들 보셔요.”
시녀들이 사라지고, 나는 슬쩍 문에 다가갔다.
‘황제가 더 소리쳐주지 않으려나?’
그리미에를 아주 혼쭐을 내주라고!
한지혁이 내 옷깃을 검지와 엄지로 잡으며 말했다.
“코 박겠다.”
“소리 들려?”
“너도 못 듣는 걸 들리겠냐?”
“아, 집무실은 결계가 강해서 가호도 소용이 없단 말이야.”
얼마나 대단한 가호인지, 강화된 내 <열람>으로도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내가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을 때였다.
끼익, 문이 열렸다.
나는 후다닥 자세를 바로 하고, 문에서 나오는 사내들을 바라보았다.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근사한 사내들이었다.
‘저들이 바로 황제의 최측근 귀족들이구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익숙한 얼굴이 나왔다.
그리미에 백부였다.
“백부님을 뵙습니다.”
나는 드물게 딱딱하게 굳어있는 그리미에에게 고개를 숙였다.
“에릴로트, 네가 황제궁엔 무슨 일이냐.”
“폐하께서 불러주신 터라.”
“용 때문이냐?”
“글쎄요…….”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서 생긋 웃었다.
“모르겠습니다.”
“…….”
“하면 살펴 가십시오.”
내가 막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그리미에가 말했다.
“어제, 네 용이 황궁을 가로질러서 날아간 일 말이다.”
나는 멈칫하고서 대답했다.
“네.”
“무슨 일을 벌인 것이냐.”
‘요르문간드가 연 사구를 닫은 게 나냐고 묻는 거구나.’
애가 닳긴 닳은 모양이다.
저 특급 내숭쟁이가 검은 속내를 전혀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일부러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리미에를 쳐다봤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
“네? 백부님?”
“……아무래도 너는 데이몬드보다는 나를 더 닮은 모양이야. 널 내 딸로 낳지 못한 것이 아쉽단다, 에릴로트.”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다시 고개만 갸웃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지만…….”
“그래, 너는 몰라야 할 것이다. 결코.”
사구를 닫은 게 내 짓이라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투였다.
나는 다시 걸어가며 말했다.
“만약 뭔가 일이 틀어졌다면 전부 인과응보가 아닐까요?”
“……뭐라고?”
“전 아빠의 딸로 태어난 게 좋다고요. 백부님의 딸은 결코 싫거든요!”
“…….”
“진짜 싫어요. 진짜, 진짜로.”
“…….”
“아우, 너무 싫어.”
그러자 그리미에와 함께 나온 사내 중 몇이 풉, 웃음을 터뜨렸다.
등 쪽이 서늘했다.
돌아보지 않아도 그리미에가 나를 살벌하게 노려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셔요.”
뻥이야!
가다가 넘어져서 뒤통수나 깨지렴!
그렇게 말하며 난 홀랑 황제의 집무실 문을 넘었다.
집무실에 들어간 난 황제에게 고개를 숙였다.
“광영을 누리소서. 서군 원화가 위대한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황제의 곁엔 아직 두어 사람이 남아 있었다.
짙은 쪽색의 머리칼을 가진 단정한 선의 미남과 덩치가 큰 붉은 머리의 사내였다.
“아……!”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황제가 나를 쳐다봤다.
“무슨 일이냐.”
“저어, 아는 분들인 듯하여서요.”
“공들과 안면이 있나?”
황제가 묻자, 쪽색 머리의 사내와 붉은 머리의 덩치 큰 사내가 나를 쳐다봤다.
쪽색 머리의 사내가 말했다.
“유명한 아이이니 마경을 통해서는 제법 보았습니다만…….”
“숙부님들이시죠?”
“숙…… 뭐?”
붉은 머리의 사내가 눈을 크게 떴다.
나는 두 사람에게 무릎을 가볍게 굽혔다.
“두 분과 아카데미 동기인 데이몬드 아스트라의 딸, 에릴로트입니다.”
저 두 사람이 바로 내가 찾던 아빠의 동창들이다.
쪽색 머리의 사내는 첫 번째 삶에서 내게 도움을 준 적도 있어서 나는 줄곧 그를 존경해왔다.
미래의 법무대신, 데본 로체.
미래의 대장군, 레오 탈로프.
저 두 사람이 바로 내가 찾던 마지막 퍼즐조각이었다.
“아아, 데이몬드 아스트라가 자네들과 동기였나.”
황제가 물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쪽색 머리의 데본 님이 울컥 인상을 찌푸린 것이다.
“그런 쓰— 아니, 그런 자는 모릅니다.”
—하며.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