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36)
이 3세는 악역입니다 235화.(236/390)
235화.
마부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말했다.
“서둘러 정리하겠습니다요, 아가씨.”
“그래.”
마부는 서둘러 창을 닫고, 마부석에서 내렸다.
그런데 이상했다.
‘응?’
시간이 꽤 지나도 마부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한지혁도 이상했는지 창문을 열었다.
“이쪽이 먼저 진입하고 있었으니 그쪽이 돌아가는 게 상식 아니오!”
우리 마부가 소리치고 있었다.
“지금은 못 비킨다니까! 그쪽이 돌아가슈!”
“아, 아니, 이 자가…… 이 마차가 어느 가문의 것인지 모르는 거요?! 아스트라 제 2백작가의……!”
“제 2백작가고, 제 3백작가고 나는 모르겠으니까 그쪽이 돌아가!”
실랑이를 하느라 돌아오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 실랑이 때문에 행로가 가로막혔는지 다른 마부들까지 싸움에 합류하고 있었다.
한지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지? 평소엔 이 마차를 타고 있으면 다른 마차들은 그림자도 밟지 않았는데.”
우리 마차는 대문짝만하게 아스트라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거기다 흑견목으로 만들어진 검은 마차는 아스트라 직계들만이 탈 수 있었다.
한지혁이 말했다.
“내가 나가봐야겠다.”
나는 고개를 젓고, 몸을 일으켰다.
“내가 갈게.”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먼저 마차에서 내려 문을 열어주었다.
그 후에 내가 한지혁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렸다.
몰려있던 사람들이 홍해가 갈라지듯 앞길을 터주었다.
여전히 다른 마부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우리 마부가 나를 보고 식은땀을 흘렸다.
“아, 아가씨…….”
“무슨 일이니?”
“골목에서 마차끼리 마주치면 먼저 진입한 쪽에게 길을 비켜주는 게 맞는데 못 비킨다고 계속 우겨서……!”
우리 마부가 씩씩대며 말했다.
나는 붉은 모자를 쓴 상대편 마부를 바라보았다.
“우리 마부의 말이 맞으니 그쪽에서 마차를 물려야겠네.”
아스트라의 직계인 내가 나서니 상대편 마부가 이전처럼 소리치지 못했다.
그가 우물쭈물하다가 뒤를 쳐다봤다.
그러자…….
“송구하지만, 비켜주셔야 하는 것은 레이디의 마차입니다.”
양쪽으로 높게 묶은 머리를 롤빵처럼 만 소녀가 내게 말했다.
나는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그 마부의 주인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로슈펭 백작가의 블라썸이랍니다.”
블라썸?
나와 한지혁이 시선을 교환했다.
‘마사에게 헛바람을 집어넣어서 나를 만나려고 했던 그 무리의 대장이잖아.’
블라썸은 내 마부를 보고 말했다.
“너는 다른 마차를 방해하지 말고 어서 마차를 비켜주렴.”
“그게, 저, 하지만, 그건……!”
내 마부가 당황해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내 마부의 앞을 가로막고 블라썸을 쳐다봤다.
“이쪽에서 먼저 진입하고 있었으니, 비켜야 하는 쪽은 로슈펭의 마차라고 몇 차례나 말씀드린 것으로 압니다.”
“사소한 규칙보다는 황가를 향한 충성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무슨 말씀이신가요?”
“저는 황제 폐하의 명으로 황궁에 가고 있답니다. 그러니 레이디께서 비켜주셔야겠어요.”
나를 만나기 위해 평민인 마사에게 돈을 열심히 뿌리던 사람 같진 않은 태도였다.
눈빛도, 표정도 모두 오만하다.
마치 나를 무시하듯이…….
‘아하.’
나는 실소를 흘렸다.
‘황제가 내게 엄청나게 화를 냈다는 걸 벌써 들었구나.’
황제에게 찍혔으니 이제 우리 부녀가 몰락할 거라 여기는 것이다.
그 일이 한 시간밖에 안됐는데, 벌써 아는 걸 보면 황궁에 꽤 튼튼한 끈이 있는 모양이다.
여기저기 인맥을 만들고 다니는 사람다웠다.
블라썸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 실소는 무슨 뜻이죠?”
“별 뜻 아닙니다. 콜슨(마부의 이름), 우리가 물러나야겠다.”
“하, 하지만 아가씨……!”
“황명으로 황궁에 가신다지 않니. 더 급한 쪽을 배려해야지.”
마부는 울적한 얼굴로 물러났다.
“……예.”
블라썸은 오만한 표정으로 눈썹을 까딱, 들어 올렸다.
“감사해요?”
“서둘러 황궁에 가시지요.”
“예, 그럼.”
블라썸이 팔짱을 끼고 뒤돌아갔다.
혼자 가고 있던 게 아닌지, 마차 안에서 다른 영애들이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마사가 날 데려갔던 카페에서 본 얼굴들이다.
“어머, 정말로 길을 비켜주었네요.”
한 영애가 속닥거리자, 블라썸이 나를 힐끗 쳐다보고서 말했다.
“내가 뭐라고 했어요. 황제 폐하의 진노가 대단하셨다니까요.”
키득키득 웃는 소리가 뒤돌아서 내 마차로 걸어가는 그림자로 달라붙었다.
한지혁이 미간을 좁히고 내게 속삭였다.
“이대로 둘 거야?”
“황도의 대귀족도 아니고, 지방 귀족과 다퉜다는 소문이 돌면 다들 ‘아, 정말로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추락하는구나’ 싶을 것 아냐.”
“하지만……!”
“뭐, 황도의 대귀족이면 애초에 이런 일은 만들지 않았겠지만.”
황제에게 진노를 산 것만으로 내 위치가 형편없이 추락한다고는 여기지 않을 테니까.
황제가 아무리 등을 돌린다고 해도, 나는 크로노스 아스트라의 손녀다.
이 판에 할아버지가 등장하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걸, 황도의 대귀족들은 알고 있다.
‘게다가 내겐 라곤까지 있고.’
그러니 숨죽이고 결과를 기다리겠지.
“계속 날뛰게 두는 편이 재미있을 거야.”
난 마사 때의 일도 용서해줄 마음이 없거든.
마차 창문에 비치는 내 입가에 악랄한 미소가 떠올랐다.
* * *
며칠 후, 이시론 공작가.
마사는 몸을 회복하고 드디어 일에 복귀했다.
외저에서 빗자루를 쥐고 있으니, 등 뒤에서 수군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전부터 계속 저러고 있어…….’
빗자루를 꽉 쥐고 있던 마사가 힐끔 그들을 쳐다봤다.
“하,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마사를 보며 쑥덕이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마사는 마른침을 삼키고 말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직접 말해요…… 뒤에서 떠드는 건 비겁한 짓이잖아요…….”
“비겁은 무슨.”
하인 하나가 입매를 비틀었다.
마사는 흠칫, 그를 쳐다봤다.
“뭐, 뭐라고요?”
“쿠롱 가에서 네 이름으로 빚 독촉장을 보냈어, 알아?”
“……!”
‘쿠, 쿠롱이라고?’
그렇다면 피네사 쿠롱일 것이다.
블라썸의 오른팔 격인 영애였다.
‘그렇다는 건 블라썸 양이 시켰다는 걸까…….’
마사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하인이 말했다.
“하녀장님이 크게 진노하셨어!”
“……그게 왜요? 하녀장님께 빌린 것도 아니잖아요.”
그러자 하인들이 허……, 실소를 흘리고 마사를 쳐다봤다.
“네가 영애들과 어울리고 다니면서 빚을 졌다는 걸 다 아셨다는 말이야. 다른 가문의 사람과 접촉하는 건 엄히 금해진 일이라고!”
“…….”
사실은 부러워서 그런 거면서.
자기들은 어울리고 싶어도 어울리지 못해서, 그래서 화를 내는 거면서…….
하인 하나가 고개를 푹 수그린 마사에게 다가왔다.
“그렇게 잘난 척하고 다니더니 결국 한 일이 돈을 빌린 거야?”
“…….”
“네가 귀족이라도 된 줄 알았어?”
“…….”
“너 하나 빠져서 우리 외저 하인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기나 해?!”
그가 씩씩거리며 소리치자, 노년의 여성 하인이 손을 내저었다.
“아이고, 그만 해라. 같은 일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도와야지.”
그녀가 말린 후에야 하인들이 칫, 혀를 차고 흩어졌다.
마사는 빗자루를 힘주어 쥐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노년의 여성 하인, 포피가 마사의 등을 토닥였다.
“다른 하인들에게 사과하고 성실하게 일하면 된다, 아가.”
“……언제까지요? 언제까지 일해야 하는데요?”
포피는 마사를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사…….”
“영애들은 그냥 귀족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뿐이잖아요…… 나랑 다를 것도 없는데 왜 저는 평생 일해야 하고, 그들은…….”
“그렇게 불합리한 일이 많단다…….”
“귀족이 미워요.”
“아가, 남과 비교하면 힘들어지는 건 너야. 그러니─”
그때였다.
“그런 조언은 저 애에게 도움이 안 될 거예요, 포피 아주머니.”
마리의 목소리였다.
마사가 흠칫, 마리를 쳐다봤다.
마리는 마사를 알은체하지 않고 포피에게 다가갔다.
“여기 서류를 확인했어요. 별문제는 없겠던걸요?”
“그래? 아유, 고맙다. 나 같은 까막눈이 이런 걸 읽을 수 있어야지.”
“마님이 찾으시던데요.”
“그래. 고맙다.”
포피가 돌아간 후, 마사가 마리에게 달려왔다.
“서류 얘기는 뭐야? 다른 하인들 말대로 마님이 포피 아주머니에게 집을 주신 거야?”
“……넌 아직도 그런 게 궁금하니?”
“궁금해할 수도 있잖아…… 다들 궁금해하는데…….”
마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게 들러붙은 소문은 싫어하면서, 남의 소문엔 눈을 반짝인다.
마사가 “아!” 하며 말했다.
“언니, 몸은 괜찮아?”
“아니.”
“그럼 좀 더 쉬지. 하녀장님이 언니를 좋아하니까 나는 몰라도, 언니는 쉬게 해줄 텐데…….”
“너, 그렇게 말하는 것 좀……!”
“응?”
“아니다, 됐어.”
마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늘은 왜 잔소리가 없어?”
“잔소리도 애정이 있어야 하는 거거든.”
“……뭐?”
“만난 김에 잘 됐다.”
마리가 마사에게 보에 쌓인 무언가를 건넸다.
“그게 뭐야?”
“저금이야. 어머니가 남기신 것. 내가 은행에 넣어뒀어.”
“어, 엄마가 이런 걸 남겼어?! 그런데 왜 내게 말하지 않았어?”
“내가 죽고 나면 혼자 살 너를 위해서 최대한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
“언니…….”
“그리고 내가 필사를 하거나, 서류를 봐주면서 받은 돈도 전부 넣어뒀어. 그거로 빚을 갚아.”
“언니!”
마사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 애가 마리를 끌어안고 기뻐했다.
“다, 다행이다. 그렇게 큰돈을 어디서 구하나 했어……!”
“전액은 못 갚을 거야. 부족한 돈은 네가 영애들에게 받은 것을 팔아서 메꾸고, 그것도 안 되면…… 빚으로 두고 조금씩 갚아야겠지.”
“우리 둘이 같이하면 금방 갚을 수 있을 거야!”
마리는 기뻐하는 마사를 빤히 쳐다봤다.
“너 혼자 해.”
“뭐, 뭐야. 아직도 화가 났어? 너무해, 내가 그렇게 큰돈을 어떻게 혼자 갚아?”
“그래도 혼자 해.”
“나는 아픈 언니 때문에 겨울에도 언 강에서 빨래를 하고 그랬어.”
“…….”
“그러니까 언니도 내게 도움을 줄 수도 있잖아…….”
“그래서 내가 모은 돈과 어머니의 돈을 모두 너에게 주는 거야.”
“……뭐?”
“그거로 없던 것으로 해.”
마사가 떨리는 눈으로 마리를 쳐다봤다.
“뭐, 뭐?”
“네가 나를 위해 한 일을 모두 없던 것으로 치진 않을게. 그 어떤 이유가 있든 나를 돌봐준 건 너니까.”
“그, 그래! 나는 언니를 위해서……!”
“하지만 이젠 싫어.”
마리가 마사를 똑바로 바라봤다.
“나는 내 병을 남이 아는 게 싫어.”
“내, 내가 언니 병을 말하고 다녀서? 하지만 언니가 아픈 건 사실인데……!”
“네가 ‘아픈 언니 때문에 고생했다’고 말해서 남들이 나를 짐짝으로 여기는 시선도 이제는 싫어.”
“나, 나는 그런 뜻으로 한 게……!”
“네가 친 사고들을 수습하는 것도 싫어.”
“언니!”
“그러면서도 항상 내가 악역이 되는 것도 이제는 질렸어.”
마사가 마리를 노려봤다.
“내게 못되게 군 건 맞잖아.”
“그래, 남들 앞에서 못되게 굴수록 너는 사랑 받았지. 근데 이제 그 역할, 하기 싫어.”
“……아퀼라 오라버니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 네가 싫어.”
“……!”
마사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런 말은 너무하잖아……!!”
마사가 꽥, 소리치자 오가던 하인들이 자매 쪽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냐고 수군덕거리는 와중에 마리가 말했다.
“너는 늘 나 때문에 힘들다고 했잖아.”
“왜, 왜 그런 말을 남들 앞에서 해?”
“너도 늘 남들 앞에서 그렇게 말했으면서, 내가 하는 건 싫어?”
“언니─!”
“이제는 그렇게 부르지 마.”
“뭐……?”
“이제 네 언니, 안 하기로 했으니까.”
“그래! 그렇게 해! 나도 언니 같은 짐은 필요 없으니까!”
“……그래.”
마사가 씩씩대며 소리쳤다.
“나는 뭐 언니 때문에 피해보지 않은 줄 알아? 엄마가 돌아가시고 혼자서 일했잖아! 언니 약값을 대면서!”
“나도 네게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돈을 벌어서 남겨뒀어. 너보다 많은 돈을 말이야.”
“돈, 돈, 돈! 그 놈의 돈! 돈이 내 고생보다 중요해?!”
“언제나 내 약값 때문에 힘들었다고 하면서 내가 돈 얘기를 하면 싫어하더라.”
“이제 됐어, 나도 언니는 없다고 생각하고 살 거니까! 언니가 혼자서 살 수 있을 줄 알아?! 다 내가 곁에 있으니……!”
“난 이번 주에 일을 그만둬.”
“……어?”
“아스트라 제 2백작저로 갈 거야.”
“여, 영애님이 받아주신대? 나는?”
“그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고.”
“그, 그건……!”
“다시 보지 말자.”
그렇게 말한 마리가 등을 돌렸다.
마사는 흠칫, 마리를 쳐다봤다.
‘어, 언니만 영애님에게 간다고?’
사람들이 그랬다.
아스트라 제 2백작저는 대우도 좋고, 급료도 좋다고.
그런 좋은 걸 왜 언니만?
마사가 얼른 마리에게 다가갔다.
“나, 나는 어떻게 해?”
“…….”
“이러기야? 나도 여기가 힘들어. 언니가 말해주면 안 돼?”
“…….”
“언니, 내가 잘못했어. 말이 너무 심했지? 미, 미안해. 응?”
“…….”
그러나 마리는 끝까지 말이 없었다.
일을 그만두는 날까지도.
마사는 아스트라의 마차까지 와서 마리를 싣고 가는 모습을 보며 절규했다.
“너무해! 너무하다고!”
* * *
블라썸은 가십잡지를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에릴로트 아스트라에게 초대장이 하나도 가지 않는대요. 이게 다 황제 폐하의 진노를 샀기 때문이 아니겠어요?”
피네사 쿠롱이 칫, 혀를 찼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사 같은 아이를 곁에 둘 필요도 없었겠어요.”
“……우리가 초대해볼까요?”
“네?”
“좋아할 거예요. 갈 데도 없을 테니까.”
블라썸이 씩, 입꼬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