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40)
이 3세는 악역입니다 239화.(240/390)
239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는 잠깐 침묵한 후, 이야기를 이어갔다.
“정원사의 아들이라 종종 일을 도우러 성에 왔는데, 밝은 녀석이라 다들 그 애를 좋아했지.”
“그렇구나……. 아빠도 그 분을 좋아했—”
“난 아주 재수 없었지만.”
넹?
내가 눈을 끔뻑이자, 아빠는 팔짱을 낀 채로 인상을 팍 찌푸렸다.
“나와 리시안의 어머니, 그러니까 네 할머니가 그 정원사와 바람을 피웠거든.”
“……오.”
나도 모르게 탄성을 흘리자, 아빠는 어깨를 으쓱했다.
“애정 없는 부부, 서로 자식을 만들기 위해 이어진 결혼, 살인광이라 불리는 남편. ……어머니는 유약한 분이라 이런 것들을 견디지 못했을 거다.”
“그렇다고 해도 바람피우는데 이유를 붙일 순 없지요…….”
상처받는 사람이 있으니까.
아빠는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래서 난 그 아비와 그놈이 싫었어. 그런데 리시안 그놈은 배알도 없이 벨트리와 자주 뛰어놀더군.”
“그래서요?”
“괴롭혔지.”
“리시안 숙부를?”
“벨트리를.”
아빠도 성격 참…….
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아빠가 낮게 웃었다.
“리시안은 가호가 1단계일 때부터 강한 놈이었어. 덤벼봐야 소용이 없으니, 벨트리를 노렸지.”
“납득은 가는데, 좋은 아이는 아니었군요.”
“그래. 그런데 그렇게 괴롭혔는데도 매일 같이 오는 것이다.”
“네?”
“역겨운 제 아버지가 어머니를 위해 꺾은 꽃을 들고서 매일 우리 방을 오는 거야.”
“…….”
“어머니까지 떠나면 아스트라에 내 자리는 없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는 꽃을 가져오지 못하게 그렇게 괴롭혔는데…….”
“…….”
아빠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하루는 화가 나서 물었지. 왜 그렇게 꽃을 가져오느냐고.”
“네.”
“네가 꽃을 가져온 날마다 어머니는 침실을 비우신다고. 들키면 가신들이 우리 모자를 가만히 두지 않을 거라고. 그래서 난 네가 싫다고.”
“…….”
“그러니까 저도 그렇다는 거야.”
“아빠가 싫대요?”
“아니, 자기 자신이.”
아빠가 쓰게 웃었다.
그렇게 말하며 벨트리는 울었다고 했다.
그제야 보였단다.
벨트리의 목 안에 있는 멍자국들이.
감히 마님과 바람을 피우는 놈은, 아들에게까지 손찌검을 하는 쓰레기였던 거다.
“그 애가 그렇게 말했지. ‘나도 알아. 그런데 무서워서…… 아버지가 너무 무서워서.’”
“그래서 아빠는 뭐라고 하셨어요?”
“……나도.”
“…….”
“나도 무서워.”
나는 아빠에게 손을 뻗었다.
아빠는 가만히 내 손을 받아주었다.
아빠의 목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조금 전, 아빠가 그랬듯이.
“그랬구나. 아빠도 어른들이 너무너무 무서웠구나.”
“……응.”
아빠가 나를 꽉 끌어안았다.
“그 후로 나와 리시안, 벨트리는 친구가 되었어. 처음으로 가지는 친구였지.”
“응. 즐거웠겠다.”
“그래, 매일 붙어 다녀서 그 녀석이 형제들에게 괴롭힘도 많이 당했지.”
“데콘스 숙부나, 발데릭 숙부? 내가 혼내줄 테야.”
“괜찮아. 그즈음 가호를 2단계로 발전시켜서 다 혼이 빠지게 되돌려줬거든.”
“잘했다!”
나는 양팔을 번쩍 들고 헤헤 웃었다.
아빠가 그런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뺨을 쓰다듬었다.
“리시안은 착한 녀석이라 네 할아버지에게 반항할 줄 몰랐어. 하지만 나는 달랐지.”
“혈족 교육을 거부하셨잖아요.”
“그래. 그리고 황도 아카데미로 갔다. 벨트리와 함께.”
“아빠의 다른 동창들이 아빠를 되게 싫어해요. 왜 그래요?”
“데본 녀석은 내가 번번이 벨트리를 끌어들여 규칙을 어겨서 싫어했고, 카인로드는 한 방을 썼어.”
“한 방을 쓴 거로 싫어해요?”
“밤마다 실험하는 소리가 짜증 나서 몇 번 실험기구를 전부 망가뜨렸거든.”
“……우와.”
“카인로드가 울면서 치우던 게 기억난다. 감히 대항은 못 했지만.”
싫을 만했네.
나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아빠를 쳐다봤다.
“친구를 괴롭히면 안 돼요.”
“하지만 그 녀석도 나를 괴롭혔다고. 매일 밤 수도 없이 폭발하는 소리가 났다.”
“그건 좀…….”
“위아래층, 옆방 녀석들이 모두 원수 보듯 했지.”
“……으으음.”
“카인로드는 마법 외엔 전부 젬병인데, 황도 아카데미는 학생들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엄히 금했지. 그래서 끌려가서 얻어맞을 뻔한 걸 구해준 적도 있다.”
“뭐, 그렇다면야…… 벨트리는요?”
“중간에 벨트리가 나와 방을 바꿔주지 않았다면, 카인로드와 나 중 누구 하나는 죽었을 테지.”
아빠의 표정이 음산했다.
죽일 생각이었나 보다.
“벨트리는 인기가 많은 녀석이었어.”
“사려 깊고 밝아서.”
“그래. 데본, 카인로드, 그리고 레오까지 모두 그 녀석을 좋아했지. 특히 레오 녀석은 벨트리를 여자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그랬어요?”
“곱상하게 생겼거든. 가슴이 떨리도록.”
나는 흠칫, 아빠를 쳐다봤다.
“좋아했어요?”
“그때는 몰랐지만. 혼란스럽고, 또 혼란스러워서…… 아마 다른 녀석들도 나처럼 혼란스러워했을 것이다.”
“…….”
“그 녀석이 여자란 걸 알게 되기까지.”
아빠의 동공이 떨렸다.
아빠는 나를 끌어안은 채로 속삭였다.
“아스트라 인근에서 전투가 있었어. 난 데이몬드 아스트라가 아니라 그냥 데이몬드라는 인간으로 살고 싶었고, 해서 공이 필요했지.”
“……떠날 수 있도록.”
“그래.”
“그 녀석과 살고 싶었다. 그때는 남자인 줄 알았지만, 난 이미 내 감정을 인정한 후였어.”
“응…….”
“함께 살자고 말했을 때 벨트리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아빠는 그가 당혹스럽고, 화를 내는 것 같아 보였다고 했다.
하지만, 눈빛에서 미미한 기쁨을 읽어냈다고.
그것이 가슴 떨리도록 기뻤다고 하였다.
“벨트리도 전투에 참전하겠다고 했어.”
“왜요?”
“너처럼 당찬 녀석이었거든.”
“…….”
“그 녀석은 말했지. ‘너처럼 성격 더러운 남자를 감당할 수 있는 건 나뿐이니 같이 살아주겠다.’고.”
“멋지네요.”
“그리고 ‘하지만 너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함께 참전하겠다.’…… 그렇게.”
아빠의 표정이 흐려졌다.
나를 잡은 손이 가늘게 떨릴 만큼.
나는 아빠의 목을 끌어안았다.
“혹시 벨트리는 그 전투에서…….”
“그래, 나를 지키고 죽었지.”
아아, 이제 알겠다.
아빠가 말했던 자신을 위해 죽은 친구가 벨트리였구나.
아빠는 내 어깨에 이마를 맞대고 말했다.
“검상을 치료하려고 갑주를 벗겼을 때 알게 되었다. 벨트리가 여자라는 것을.”
“그랬구나…….”
“하지만 결국 살려내지 못했고, 제대로 시신도 수습하지 못했다.”
아빠는 아주 지쳐 보였다.
그 사람이 아빠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아빠의 품에 파고들어서 말했다.
“나도 만났으면 좋았을걸.”
“좋아했을 거다. 너와 그 녀석, 똑 닮았거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오래.
* * *
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저택에 돌아와서도 축 처져 있으니, 한지혁이 내 눈치를 보았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아닌 게 아닌데?”
“그냥 아빠의 슬픈 첫사랑 얘기가 마음 아파서…….”
그런 삶이었으니 그렇게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아왔던 거겠지.
한숨을 내쉬자, 한지혁이 “아아.”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에 말해줬던 그 얘기.”
“응. 아, 그보다 그 정원사 가족은 찾았어?”
“정원사는 벨트리가 죽기도 전에 술 마시다 굴러서 저세상으로 갔고, 남아 있는 가족은 여동생 하나.”
“그래……?”
“그런데 그 여동생, 귀족과 결혼했더라고.”
“응?”
“……로슈펭 백작의 아들.”
나는 흠칫, 한지혁을 쳐다봤다.
“로슈펭? 블라썸 로슈펭?!”
“그래, 블라썸이 그 여동생의 딸이야.”
“귀천상혼(신분 차이가 있는 결혼)이잖아. 로슈펭은 그래도 명문가인데, 어떻게 허락했지?”
“네 할아버지가 언니인 벨트리의 죽음의 대가로 엄청난 돈과 귀족 신분을 줬으니까.”
“아아.”
“대신 다시는 데이몬드와 연락하지 말라고 당부했지. 아스트라 공작의 이름을 걸고.”
순간, 블라썸 무리가 내게 했던 부탁들이 떠올랐다.
“저희 부모님이 꼭 아스트라 제 2백작님을 모시고 싶다고 하셔서요! 이모님이 아직 혼자신데, 아이를 아주 좋아해서 재취 자리도 괜찮으시다고……!”
“좋아요. 어디로 갈까요? 아스트라 제 2백작저는 어때요? 네, 블라썸양?”
그렇게 우리 저택에 오고 싶어 했던 이유가 그럼…….
‘아빠를 보기 위해서였어.’
“할아버지 때문에 아빠와 따로 만나지는 못하고, 나를 이용해서 만나려고 했던 거야.”
“그래, 아마도 동부 예비 원화전 때문이겠지.”
그 애가 내 앞에서 그렇게 당당했던 이유도 알겠다.
‘아빠와 제 이모의 관계를 알고 있었구나.’
그래서 제가 내게 아무리 날뛰어도, 아빠가 나서지 못할 거라 여긴 거야.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마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아가씨.”
“손님?”
나와 한지혁이 시선을 교환했다.
그럴 예정이 있었나?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니, 한지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예정 없이 찾아오는 건 무례한 일이었다.
누가 그런 짓을 한단 말이야?
나는 곧장 방을 나섰다.
중정으로 내려가니, 집사와 대화를 나누는 귀부인이 보였다.
그 귀부인 뒤에 있는 아이는…….
“블라썸 로슈펭?”
블라썸이 흠칫,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귀부인이 앞서 나서며 생긋 미소 지었다.
“처음 보는군요, 아스트라 백작 영애. 로슈펭 백작가의 벨라입니다. 이 아이의 어미지요.”
그럼 벨트리의 여동생이구나!
그녀는 쿠키 상자로 보이는 것을 집사에게 넘기고 내게 인사했다.
나도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예. 이 아이가 큰 실수를 했다고 들었어요. 아스트라 공작님께선 좋아하시지 않겠지만, 사과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들렀답니다.”
‘이 아줌마 봐라?’
은근히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드러낸다.
때마침 아빠가 중정으로 나섰다.
블라썸의 모친과 마주친 아빠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벨라.”
“……오랜만이어요, 데이몬드 오라버니.”
“…….”
“‘그 사람’이 죽고 벌써 세월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군요.”
“…….”
“괜찮다면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오라버니.”
“…….”
아빠가 침묵하자, 블라썸이 제 모친의 뒤에서 튀어나왔다.
“부탁드려요. 사과도 사과지만, 삼촌, 아니, 이모, 아니, 아니…… 아무튼 ‘그 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다 난다.
‘벨트리 님을 이용하잖아.’
소금이라고 뿌리고 싶지만, 진정하기로 했다.
‘여기서 돌려보내면 벨트리 님한테 미안해져서 아빠가 마음 아파할 거야.’
블라썸이라면 얼굴도 못 본 이모지만, 모친에겐 소중한 자매였을 테고.
자매를 이용할 만큼 딸의 행복이 소중할 수도 있다.
아빠가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응접실로 모셔라.”
명 받은 하인들이 일시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블라썸이 얼른 말했다.
“저어, 공자님들도 뵐 수 있을까요? 이모의 사진에 백작님의 아이들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서…….”
수줍은 표정의 딸을 본 벨라는 난처한 얼굴이었다.
“제 이모 사진에 대고 매일 같이 종알거리는 것이 이 아이 낙입니다. 부탁…… 드릴 수 없을까요?”
아빠는 벨라를 빤히 쳐다봤지만, 곧 집사에게 말했다.
“리시먼드와 요슈아, 발자크를 데려와라.”
“예, 주인님.”
아빠가 먼저 응접실로 발길을 돌렸다.
블라썸의 모친인 벨라가 종종걸음으로 따라붙어서 말했다.
“정말로 오랜만에 뵙죠? 사실 몇 번이나 편지를 썼는데, 차마 부치지는 못했어요.”
“…….”
“공작님도 두렵고…… 공께서 혹 언니를 떠올리실까 염려되기도 하고요.”
블라썸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제 엄마의 곁에 붙어서 말했다.
“어머니에게 이모 이야기를 잔뜩 들었어요. 그래서 사실은 백작님을 만나 뵙길 기도하고 있었답니다.”
어쩌다 보니 나는 외부인처럼 멀찍이서 그들을 지켜보게 되었다.
마리가 내게 속삭였다.
“너도 어서 가봐.”
“응? 왜?”
“너 몰라?”
마리가 황당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나는 무슨 일이냐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왜?”
“로슈펭 공자 부부가 곧 이혼할 거라는 얘기 말이야.”
“……뭐?”
“이시론 공작가의 하인들은 모두 알고 있었어. 이시론 공작이 로슈펭 백작과 막역해서.”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마리를 쳐다봤다.
“혹시 블라썸이 동군 원화가 되려는 것도…….”
“제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혼해서 끈 떨어지기 전에 동군 원화 자리라도 가지고 있으려는 거지.”
“굉장한데.”
“더 굉장한 건 뭔 줄 알아?”
마리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더욱 목소리를 낮추었다.
“저 벨라라는 여자가 네 새어머니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거야.”
“……뭐?”
“마부가 들었대. ‘언니를 대신해서 내가 그의 곁을 지켜주고 싶구나’라던 말을.”
나는 멀리 가고 있는 블라썸의 모친을 쳐다봤다.
그때, 뿌리의 힘이 거의 다 가셔서 요새는 통 보이지 않던 글자가 떠올랐다.
나는 굳은 얼굴로 벨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
“예, 아가씨.”
“벨라 로슈펭을 다시 조사해봐. 철저하게. 필요하다면 할아버지의 이름까지 써서.”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