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41)
이 3세는 악역입니다 240화.(241/390)
240화.
* * *
블라썸은 발그레한 얼굴로 맞은편에 앉은 오라버니들을 쳐다봤다.
오라버니들이 온 후로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입이 쉬지를 않으니까.
“……그런 이유로 동부에서도 세 분의 이야기는 유명하답니다. 뵙게 되어서 정말로 기뻐요!”
“…….”
“…….”
“…….”
오라버니들은 매우 심드렁한 얼굴이었지만.
매너 좋은 요슈아마저 웃는 표정이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아빠가 불렀으니 자리에 있기는 한데, 엄청나게 귀찮은 듯했다.
무엇보다…….
“로슈펭 영애와 막내 사이에 일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그 이야기 때문에 적의도 있었을 테고.
요슈아의 말에 블라썸이 흠칫했다.
“저, 그건……!”
그 애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곤 나를 쳐다봤다.
“오해를 풀어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에릴로트 양…….”
“…….”
“혼자서 물을 뒤집어쓰신 거잖아요…….”
‘저 바보.’
나는 속으로 웃었다.
블라썸은 어려서 그런지 한 수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
내가 혼자 물을 뒤집어썼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황제의 진노를 샀다고 날 괄시하던 일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그러니까 애초에 마찰이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언니가…….”
블라썸의 모친 벨라가 글썽글썽한 눈으로 우리를 둘러보았다.
“언니가 이 광경을 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사랑스러운 조카와 데이몬드 오라버니의 근사한 자식들이 마주 보고 앉은 모습을 말이에요.”
‘이 아줌마가.’
나는 이제 벨라 로슈펭에 대한 호의가 조금도 없었다.
그러니까 보인다.
저 검은 속이.
‘확실히 어린 블라썸보다 수준이 높네.’
제 딸의 만행이 드러날까 봐 재빨리 벨트리 님의 이야기를 꺼낸다.
아빠가 무감한 표정으로 벨라를 쳐다봤다.
“그래서 본론은.”
그렇게 묻자마자 벨라의 눈에서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블라썸도 글썽이며 “어머니…….” 하고 벨라의 치맛자락을 잡았다.
벨라는 애써 웃으며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았다.
“죄송해요. 최근에 언니 생각이 많이 나서…….”
“…….”
“오라버니를 뵈니 그때가 더욱 선명해져서 참을 수 없었어요.”
벨라가 떨리는 숨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힘들 때 늘 의지가 되었던 건 언니였거든요. 아시잖아요? 전 가족이라곤 언니밖엔…….”
“네 남편은.”
“그이는…….”
벨라는 쓰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른 여자가 생겼어요. 이혼 얘기를 꺼내더라고요.”
“…….”
“제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귀족이 된 것도 전부 오라버니 덕인데. 그것도 단승작위.”
“…….”
“남편은 그 여자에게 완전히 빠져버렸어요. 아이도 필요가 없다고 해요.”
나는 블라썸을 힐끔 쳐다봤다.
‘이런 걸 자기 애 앞에서 말한다고?’
나는 엄마가 없지만, 과거에서 보았던 것으로 말미암아 알 수 있었다.
우리 엄만 내 앞에서 저런 이야기는 하지 않을 터였다.
“어미가 줄 수 있는 것이 이름뿐이니, 부디 아이의 이름을 내가 선물하게 해주시오.”
“…….”
“에릴로트. 이 아이의 이름은 에릴로트라고 해주시오. 어미가 미안하다고, 너무나 미안하다고 전해주시오.”
몸이 다 썩어들어가면서도 내게 미안하다고 하던 어머니.
나의 이름을 ‘에릴로트(신께 선물)’라고 붙여주었다.
블라썸은 제 모친의 곁에서 같이 훌쩍이고 있었다.
벨라가 딸을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이 아이, 얼마나 기특한지 몰라요. 제 어미가 쫓겨나면 길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다며, 그 전에 원화가 되겠다지 뭐예요.”
원화는 명예직이긴 해도, 공직인 만큼 급료가 지급된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자신이 퇴직 의사만 비치지 않으면 쭉 할 수 있는 일.
‘게다가 원화가 되면 혼처 수준이 달라진다는 말까지 있지.’
벨라가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오라버니의 딸과 마찰이 생겨서 황도에서 매장될 판이라고 하더군요.”
“에릴로트가 이유 없이 네 딸에게 피해를 줄 리 없다.”
아빠가 단호하게 말했다.
블라썸은 움찔해서 “그게 아니라……!” 하고 입을 열려 했다.
하지만 벨라가 딸의 손등을 꽉 누르며 선수 쳤다.
“물론 이유가 있었겠지요. 뭐가 됐든 이 아이의 잘못이 있었을 거예요.”
“그래.”
“하지만 오라버니…… 저희 모녀를 가엾게 여겨주세요…….”
“말을 돌리지 말고 말해.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물었다.”
벨라가 눈물 고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어떤 일이 있었든 어미인 제가 사과하겠습니다, 영애. 그러니 딸을 용서해주실 수 없을까요?”
나는 하마터면 손뼉을 칠 뻔했다.
‘대단하네!’
이 정도라면 유혜민일 때 처세력으로 정평이 났던 나와 쌍벽을 이룰 수도 있겠다.
‘이렇게 되면 내가 블라썸의 잘못을 말할 기회가 사라지잖아.’
심지어 그 어머니가 와서 이렇게까지 사과를 했는데, 풀어지지 않는다면 내가 못돼먹은 사람이 된다.
벨라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데본 오라버니께서 자선 파티에서의 일을 보셨나 봐요.”
“…….”
“블라썸이 누구인지 확인하다가 제 딸인 걸 알게 되셨대요. 그리고 처지를 말씀드리니 안타까워하셨어요.”
“…….”
“직접 나서주신다고 하셨지만, 어미인 제가 사과드리는 게 도리이니 제가 온 거여요.”
‘데본 님까지 끌어들였네.’
벽 가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지혁은 복장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이었다.
잘못은 저쪽이 했는데, 왜 사과를 받아주지 않으면 내가 나쁜X가 되는 상황이 되었냐는 것이다.
벨라가 제 딸을 다그쳤다.
“어서 사과드리렴.”
“하, 하지만 어머니…….”
“어미가 뭐라고 했어. 뭐가 됐든 네 잘못이라지 않았니!”
진짜 대단했다.
내 입을 막기 위해 딸을 다그치기까지 한다니.
하지만 이 영악한 아줌마가 모르는 게 하나 있다.
‘나도 처세력으론 꽤 한다, 이거야.’
나는 냉큼 블라썸의 손을 잡았다.
“사과하지 않아도 돼요.”
“뭐, 그렇다면…….”
“황제 폐하의 진노를 사서 가엾다느니, 몬스터를 달라며 내게 과한 요구를 하느니 했지만, 이제 와서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그 말에 오라버니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성격 급한 발자크가 울컥해서 말했다.
“우리 어린이를 대체 얼마나 무시한 거야!”
리시먼드의 표정도 차가워졌다.
요슈아는 눈썹을 까딱 들어 올리며 다리를 꼬았다.
블라썸이 엄청나게 당황해서 “그, 그게, 그게 아니라…….” 하며 오라버니들을 쳐다봤다.
벨라도 흠칫해서는 얼른 아빠의 표정을 살폈다.
아빠의 표정도 좋지 않다는 것을 보곤, 얼른 딸에게 소리쳤다.
“세상에, 블라썸! 그런 일을 한 거니?”
“제, 제가 말한 게 아니에요. 피네사 양이…… 다른 영애들과……!”
“아무리 그랬어도! 네가 제지를 했어야지!”
블라썸의 눈이 글썽글썽했다.
벨라가 벌떡 일어나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쪼그려 앉아선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정말, 정말 미안해요. 제가 이렇게 사과할 테니 마음을 풀어주셔요, 영애.”
나도 얼른 일어나서 몸을 낮췄다.
“그러지 마세요.”
“어쩌면 이렇게 상냥하실—”
이대로 사과가 마무리된 거로 하려고?
절대 안 되지.
“아빠와 인연이 있던 벨트리 님도 아니고, 그 ‘동생일 뿐인’ 로슈펭 작은 부인께서 직접 찾아오실 만큼 괴로우셨군요.”
“……네?”
“이해할 테니 염려하지 마세요. 그러니 이제 ‘다시는’ 저택을 찾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일순 벨라의 눈이 험악해졌다.
내가 보통이 아니란 걸 깨달은 것처럼.
그러나 얼른 표정을 풀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주신다면 정말로…….”
“네. 아버지와 ‘로슈펭 작은 부인의 언니’의 인연을 생각해서 이해하겠어요.”
“감사…… 합니다.”
“황도 영애들에게도 말씀드릴게요. 로슈펭 작은 부인이 그렇게나 힘들어하셨다는 걸요.”
“……!!”
약속도 없이 찾아와서 죽은 언니를 운운하여 억지로 사과를 받아냈다는 것을.
블라썸이 움찔, 제 어머니를 쳐다봤다.
“어, 어머니.”
벨라가 마른침을 삼켰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언니 일은 밝힐 수 없답니다. 황도 아카데미에 남장을 하고 들어갔다는 걸 알면 큰일이 날 거예요.”
“괜찮아요. 이미 돌아가신 분을 처벌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 그래도 언니의 이름이 더럽혀지는 건…… 그렇죠, 데이몬드 오라버니?”
“아뇨. 저는 아빠의 첫사랑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원해요.”
“네?”
나는 뺨을 감싸며 말했다.
“아빠는 무성애자가 아니냐는 말을 듣잖아요? 한 번도 연인이 없었기에.”
“…….”
“하지만 아빠에게 그렇게나 훌륭한 첫사랑 상대가 있다는 걸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
“또, 저는 벨트리 님이 좋거든요. 혼자서 동생을 지켜온 훌륭한 분이고, 여자의 몸으로 아카데미에서 늘 일등을 하시던 인재잖아요.”
“언니가…… 그렇게나…… 대단했군요.”
응?
표정이 이상했다.
물론 아빠의 첫사랑이 밝혀지면, 언니의 남자였던 사람에게 접근하는 건 천박한 일이 된다.
그래서 당황할 수도 있지만, 꼭 그것만이 아닌 표정이었다.
저 표정은 마치…….
나는 한지혁의 곁에 서 있는 마리를 힐끔 쳐다봤다.
‘마리가 칭찬 받을 때 마사의 표정이야.’
자매를 질투하는 얼굴.
마리도 말투에서 이상한 걸 느꼈는지, 표정이 묘했다.
벨라가 몸을 일으켰다.
“그럼 사려 깊으신 말씀에 감사하며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아빠에게 인사한 후, 나를 쳐다봤다.
벨라는 아빠와 오라버니들 모르게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마차가 아스트라 제 2백작저를 벗어났다.
블라썸은 창밖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내가 왜 저런 계집애에게 사과해야 해요?!”
“조용히 해라.”
“어머니가 친해지래서 평민 하녀 따위에게도 잘해줬는데, 이제 보니까 저렇게 재수 없는 계집애가 없다고요!”
“블라썸.”
벨라는 씩씩대는 딸을 조용히 쳐다봤다.
“오후 세 시의 간식이 어째서 맛있는지 알고 있니?”
“네? 갑자기 그게 무슨…….”
“그 시간이 올 때까지 인내해야 하기 때문이야. 인내 뒤에 먹는 파이는 더 달거든.”
벨라가 딸의 머리칼을 귀 뒤로 꽂아주며 말했다.
“이대로 로슈펭에서 쫓겨나면 너는 평민이 되는 거야. 내겐 단승작위뿐이니까.”
“그, 그런…….”
“아스트라에서 받은 돈도 지참금으로 전부 네 할애비 주둥이에 처넣었어.”
“…….”
“그러니 우리에게 방법은 네가 원화가 되고, 내가 아스트라 제 2백작 부인이 되는 것뿐이란다.”
“하지만 아버지가 정말로 어머니와 저를 쫓아내실까요……?”
벨라가 팔짱을 끼며 깊은숨을 내쉬었다.
“쫓아낼 것이다. 네 출생을 들켰으니까.”
“…….”
그녀가 로슈펭 공자와 결혼할 수 있던 것은 아스트라 공작의 비호와 임신 때문이었다.
하지만 블라썸은 로슈펭 공자의 딸이 아니었다.
당시에 만나던 무명 기사의 자식이었지.
즉, 벨라는 딸을 로슈펭 공자의 딸이라 속이고 결혼한 것이었다.
“산파를 죽이지 않았다니, 내 실책이었어.”
“제가 석 달이나 먼저 태어난 걸 산파가 말해버렸다면서요?”
“남몰래 너를 낳기 위해 갖은 핑계를 대서 성을 떠났었는데, 산파 단속을 못 해서 들켜버리다니.”
“아버지도 너무해! 핏줄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블라썸이 부루퉁, 입술을 내밀었다.
벨라가 딸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 들어라, 블라썸.”
“네, 어머니.”
“내가 널 벨트리와 닮게 만들기 위해 얼마를 썼는지 모른단다.”
갈색에 가깝던 머리를 흑발로 물들이게 했다.
이국의 마도구로 어려서부터 검은 눈을 적보라색으로 보이게 했다.
웃는 모양, 걷는 포즈, 심지어 들고 다니는 향낭마저 벨트리를 따라 했다.
“너를 보던 아스트라 제 2백작의 표정을 기억하니?”
“네?”
“순식간이었지만, 난 보았지. 추억에 잠긴 것을.”
“그, 그래요?”
“머리까지 자르고 사내아이 차림을 하면 완벽해.”
“그, 그건 싫어요!”
벨라가 딸을 엄히 다그쳤다.
“하면 이대로 로슈펭에서 쫓겨나 평민이 되려는 거니?!”
“하지만…….”
“머리는 언젠가 자라는 것이야. 하지만 데이몬드가 가장 외롭던 시절, 곁을 지켜준 첫사랑의 환상은 너만 줄 수 있지.”
블라썸이 으음, 신음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할래요.”
“그래, 그래. 착한 내 딸.”
벨라가 딸을 안아주며 말했다.
“우리가 저 저택에 들어가면 꼴 보기 싫은 계집애는 멀리 이국으로 치워버리자꾸나.”
“정말요? 신난다!”
“아스트라의 후광을 등에 업고 네가 이 황도를 손아귀에 쥐는 거야.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니?”
“돌아가는 즉시 머리를 자르겠어요.”
벨라는 까르르 웃는 딸을 사랑스럽게 보다가,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에릴로트 아스트라…….’
재수 없는 계집애.
하필 눈빛이 벨트리와 꼭 닮았다.
‘벨트리를 닮은 계집에게서 자식을 본 모양이지?’
재수 없는 그 눈을 다시 보게 되다니.
떠올릴 때마다 역겨워진다.
다정한 눈빛으로 벨트리를 바라보던 데이몬드.
수면에 비치는 데이몬드를 훔쳐 보며 미소짓는 벨트리.
그리고 이를 악문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자신.
‘죽어줘서 고마워, 언니.’
하지만 염려하지 마.
데이몬드는 다른 여자에게 넘기지 않을 테니.
그는 다시 봐도 황홀한 남자였다.
벨라가 소리쳤다.
“마차를 돌려라. 로체 후작저로 간다.”
데본의 도움을 받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