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42)
이 3세는 악역입니다 241화.(242/390)
241화.
* * *
그날 저녁, 아스트라 제 2백작저.
아빠의 팔을 괴고서 종일 뒹굴뒹굴하던 나는 쩍, 하품을 했다.
아빠가 쿡쿡 웃으며 말했다.
“졸리면 가서 자.”
“아빠랑 조금 더 있을래요.”
“어리광이 없는 녀석이 무슨 일이지.”
아빠가 한 손으로 머리를 괴곤, 나를 사랑스럽게 쳐다봤다.
이상한 일이긴 했다.
늘 내가 먼저,
“아빠가 일을 안 하면 아기는 누가 키우지요?”
—하며 아빠를 일터로 몰아넣던 나인데.
‘하지만 오늘은 아빠 표정이 너무 안 좋으니까.’
벨라와 블라썸 모녀를 보고, 아니, 블라썸을 본 뒤로 아빠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픈 첫사랑이 생각나서인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빠가 나를 “자.” 하며 일으켜주었다.
“가서 씻고, 식사를 하고, 쉬도록 해.”
“하지만…….”
내가 뾰로통한 얼굴로 중얼거리니, 아빠가 내 뺨에 입을 맞췄다.
“따님께서 걱정을 해주신 것만으로도 아비는 날아갈 듯 기쁩니다.”
달콤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제국의 미혼 여성, 기혼 여성…… 남성까지 아빠만 보면 설레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니까.
나는 아빠의 목을 끌어안고 얼굴을 비볐다.
“응, 일 열심히 하세요.”
“……일은 해야 하는 거냐?”
“그럼요. 아기는 누가 키우지요?”
“내가 키워야지.”
아빠가 픽 웃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아빠와 함께 방을 나섰다.
내 유모인 잔느가 마리와 함께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가 늦어져서 걱정했답니다. 우리 아가씨께서 더 홀쭉이가 되시면 잔느는 가슴이 아파요.”
“응, 먹을게.”
그런데 이상했다.
아빠가 아주 오만한 표정으로 잔느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더 이상한 건…….
“하면 아가씨를 모셔가겠습니다.”
아빠를 쳐다보는 잔느의 눈빛도 어딘가 날카로웠다.
마치 황제를 사이에 둔 황후와 애첩처럼…….
‘에이, 설마.’
아빠라면 몰라도, 잔느까지 저런 유치한 암투를 할 리 없다.
아빠가 내 앞에 한쪽 무릎을 굽히고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네!”
나는 아빠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잔느를 쳐다봤다.
“식사는 방에서 할래.”
“예. 방으로 올려보내겠습니다. 마리, 아가씨의 식사 준비법을 가르쳐주마.”
“네, 유모님.”
나는 아빠에게 손을 팔랑팔랑 흔들어 인사한 뒤, 방으로 향했다.
방 앞에선 한지혁이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와.”
말하고서 먼저 방으로 들어가니, 한지혁이 날 쫓아서 들어왔다.
“벨트리 님의 조사는?”
“그게…….”
한지혁이 난처한 듯 목덜미를 긁적였다.
나는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아스트라 령에 살던 사람이고, 평민인데 어려운 것도 없잖아.”
“대강의 일이야 알아냈지.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한 게 있어서.”
“뭐?”
한지혁이 티테이블에 서류를 펼쳐두었다.
“자, 이걸 봐.”
나는 한지혁이 가리킨 부분을 읽었다.
[로빈, 사라가 그 딸(3세)과 함께 앨로스터 령에서 이주해옴.]“이게 뭐?”
“로빈이 벨트리의 부친인 정원사다. 사라는 모친이고.”
“그래.”
“즉, 벨트리 님은 가족과 함께 3살 때 이주했다는 거야. 그런데 3인이라고 적혀있잖아. 그럼 동생은?”
벨라는 벨트리 님과 한 살 차이라고 했다.
‘이상해.’
나는 미간을 좁혔다.
한지혁이 말했다.
“세금을 덜 내려고 딸 한 명을 숨겨서 데려온 것일 수도 있어. 그런 경우는 많으니까.”
“그래도 이상하지. ‘딸’이잖아.”
벨트리 님은 어려서부터 남장을 했다고 들었다.
심지어 아스트라 공작성에 남장을 하고 정원사 보조로 들어왔지.
‘아스트라는 워낙 적이 많은 가문이라 사람을 들일 때 꼼꼼하게 조사해.’
아무리 아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데도 남장을 할 수 있었던 건, 서류에도 남자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일 거다.
나는 한지혁을 쳐다봤다.
“어떻게 된 거야?”
“그걸 모르겠어. 여자애를 남자로 서류를 올리는 경우가 있긴 해. 장원 일에 동원되는 건 거의 남자애들이니까.”
“돈을 받고.”
“그래. 일자리를 찾기도 좋으니, 가난한 집에서 딸을 아들로 키우긴 하지만…….”
“수지가 안 맞아. 세금은 여자보다 남자가 더 많이 내니까.”
평균 수입에서 차이가 크기 때문이었다.
“맞아. 그래서 남자 세금을 못 견디고 보통 서류를 정정한단 말이야.”
“정원사 집은 가난하다고 했지?”
“그래. 그런데도 서류를 정정하지 않았어.”
확실히 이상하다.
한지혁이 말했다.
“네 의심병이 내게도 옮았나 보다. 콘라드는 평민들이 탈세를 위한 행동이라고 판단한 것 같은데, 난 아무래도 이상해.”
“아니, 맞아. 이건 이상해.”
나는 턱을 문지르며 말했다.
“당시 집사는? 사람을 들일 때 관여했으니까 기억할 수도 있잖아.”
“선대 공작의 잔당을 찾을 때, 숙청되었어.”
“이런…….”
나는 서류를 가만히 쳐다봤다.
-로빈, 사라, 그 딸 3인 이주.
-딸을 남자로 둔갑시켰다.
‘서류를 어떻게 정정했지?’
관리에게 엄청난 뇌물을 줘야 했을 텐…….
생각하던 난 흠칫했다.
“이 ‘딸’이 벨트리 님이 아니라면?”
“뭐?”
“벨라라면!”
“……!”
애초에 벨트리 님의 서류를 정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지혁이 눈을 크게 뜨고 서류를 쳐다봤다.
“그럼 나이가 안 맞잖아. 벨라는 한 살 어리다고…….”
“어린 게 아닌 거야. 벨트리 님과 동갑이야.”
“그럼 벨트리는……? 이주 기록엔 그 가족의 내역은 더 이상 없었어.”
“입양 기록을 알아봐!”
“어?”
“입양 기록은 이주 기록과 따로 관리되잖아!”
한지혁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러곤 서류를 후다닥 정리하더니 말했다.
“아스트라 령에 다녀온다.”
“이동의 가호석을 가져가.”
“그래.”
* * *
한지혁은 이동의 가호석을 통해 아스트라 령으로 이동했다.
장원의 경계문을 지키는 경비병이 물었다.
“신분을 밝히시오.”
“데이몬드 관할령의 한 지헤크입니다. 에릴로트 아가씨의 명으로 공작성에 갑니다.”
“잠시 기다리시오.”
경비병이 데이몬드 관할령에 연락했다.
통신석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켈란의 목소리였다.
[우리 관할령 소속이 맞소. 아가씨의 전담 하인이오.]“예, 남작님.”
경비병이 깃발을 올리자, 거대한 성문이 열렸다.
한지혁은 질린 얼굴로 생각했다.
‘8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문을 열어주는구만.’
요새는 에릴로트의 이름 하나면 통과하지 못하는 곳이 없었다.
경계문을 막 통과한 후, 즉시 가호석을 이용해 성으로 이동했다.
성 앞에선 콘라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켈란 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벨트리의 신상이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아가씨께서 입양 기록을 조사하라 명하셨습니다.”
“그러십니까. 가시죠.”
공작의 부관인 콘라드와 함께라면 가지 못할 자료실이 없었다.
두 사람은 즉시 입양 기록이 있는 제 4자료실로 향했다.
한지혁은 자료를 보며 기함했다.
4층으로 된 황궁 도서관도 이만큼 커다랗진 않을 터였다.
“이, 이게 다 기록입니까?”
“예. 해서 연도를 알아야 합니다.”
“아, 연도는…….”
콘라드가 수첩을 펼쳐서, 연도를 확인해주었다.
“아아, 그럼 이쪽입니다.”
한지혁은 콘라드가 안내한 곳에서 책을 뒤졌다.
……무수히 많은 책을.
‘이걸 언제 찾냐고!’
비명을 지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창고들에서 자료를 찾아온 콘라드가 대단해 보일 지경이었다.
“이런 걸 어떻게 그토록 금방 찾으셨습니까?”
한지혁이 묻자 콘라드가 순진한 눈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왜 어렵냐는 듯이…….
‘……괴물들이라니까.’
에릴로트는 알려나.
그 애가 부려 먹고 있는 인력들이 하나같이 세상에서 손꼽히는 인재들이란 것을.
일단 저 콘라드란 괴물부터가 엄청났다.
* * *
8시에 도착해서 벌써 동이 트고 있었다.
한지혁은 핼쑥한 얼굴로 다 읽은 책을 책장에 꽂아 넣었다.
“이러다 사람 죽겠네…… 얼마나 남았습니까?”
“제가 읽고 있는 게 마지막입니다.”
한지혁은 으그그, 소리를 내며 일어나 허리를 툭툭 쳤다.
“저는 차라도 타오겠습니다.”
“아, 서고에 음식은 엄금…… 찾았습니다!”
“찾았어요?!”
한지혁이 서둘러 달려갔다.
[무명/6세/남아비페리 령 보육원 출신.
키트리 거리 232번지 로빈에게 입양]
“무명?”
한지혁이 중얼거리자, 콘라드가 말했다.
“이름 없는 아이는 무명이라 기재합니다. 아, 찾았군요. 이제 아가씨께 전하면…….”
“그런데 서류의 사인이 다릅니다.”
“예?”
한지혁이 앞장을 펼치며 말했다.
“여긴 하첸 에토가 서명했잖습니까.”
“그 시기엔 하첸 공이 입양 기관을 담당했으니까요.”
“뒷장도 하첸 에토의 서명이 들어갔는데, 이 <무명> 아이만 로스톡 남작이 서명했습니다.”
콘라드가 굳은 얼굴로 서류 책을 살폈다.
파르르륵, 서류를 전부 넘겨본 후 그 시기의 다른 서류들도 전부 확인했는데…….
“무명 아이만 로스톡 남작이 서명했군요.”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두 남자가 서로를 쳐다봤다.
콘라드는 매우 놀란 얼굴이었다.
‘허허실실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매우 날카로운 시선을 가진 남자다.’
생각해보면 놀라울 정도로 일을 잘하는 자였다.
언제나 이중 확인을 잊지 않는 미켈란도, 한지혁이 처리한 일이라면 안심할 만큼.
‘아가씨께선 엄청난 사람을 심복으로 두셨구나.’
한지혁이 물었다.
“로스톡 남작이 누굽니까?”
“돌아가신 분인데…… 2세들 중 한 분의 후견인이었습니다.”
“누구의……?”
콘라드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리미에 님이십니다.”
“……!!”
여기서도 나왔다.
그리미에의 이름이.
한지혁은 생각했다.
‘에릴로트, 너…… 대체 그리미에와 무슨 악연인 거냐?’
* * *
이튿날.
나는 졸음 가득한 눈으로 황궁에 들었다.
‘너무 늦게 자서 졸려 죽겠다.’
황제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새벽까지 카인로드 숙부와 통신해서 목까지 칼칼했다.
‘오늘 일을 끝내고 얼른 가서 자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마차에서 내렸다.
“아, 에릴로트 양~”
뒤에서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군 원화인 리카 델프르의 목소리였다.
“안녕, 리카.”
“안녕하세요.”
리카가 생글생글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횃불의 궁에 가시나요?”
“아니, 황제궁에. 백기사단(황제 직속 기사단)에 남는 자금을 서군에게 넘겨달라고 부탁하러 가.”
“작년 하반기 대 훈련의 여파로 아직 예산이 적군요…….”
나는 눈을 반짝 빛냈다.
“상반기 대 훈련에선 무조건 이겨서 예산을 잔뜩 받고야 말겠어.”
“잘하실 거예요.”
“리카는 왜 이렇게 일찍 입궁했어?”
“볼프강 때문에요.”
볼프강?
‘아, 잊고 있었는데.’
장막과 얽혔던 망할 놈의 자식이라 리카에게 처리를 명했었다.
리카는 한쪽 뺨을 감싸며 한숨을 내쉬었다.
“온갖 소문으로 평판을 바닥까지 떨어뜨렸는데, 죽지도 않고 계속 살아나네요.”
“살아나?”
“대장군 자리가 공석이 되었잖아요.”
“응, 퇴직하셔서.”
“신임 대장군에게 볼프강이 잘 비벼놨는지 또 자리를 하나 주었더라고요.”
“자리?”
“동부 예비 원화전의 심판이에요.”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동부 예비 원화전이면 블라썸이 참여하지 않던가.
‘나랑 지겹게 얽히네.’
리카가 산뜻하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볼프강에겐 계속 사람을 붙여놨거든요~ 뇌물 좋아하는 쥐새끼는 이번에도 뇌물을 받을 테니, 그거로 이번엔 확실히 쫓아내죠!”
“의지가 되네.”
“저, 정말로요? 기뻐라…….”
리카는 깍쟁이이긴 하지만, 주인을 아주 좋아하는 깍쟁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황태후 폐하께서 간식을 보내주셨어. 나눠줄 테니 이따 횃불의 궁에서 봐.”
“어머나…….”
리카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기뻐해서 난 속으로 좀 당황했다.
‘저렇게까지 기뻐할 일인가.’
“아무튼 이따 봐.”
“네! 꼭!”
리카에게 인사하고, 황제궁을 찾았다.
‘백기사들은 황제궁에 있어서 찾아가기 불편하단 말이야.’
백기사 말고 다른 군의 자금을 뺏으면 좋은데.
하필 원화가 2명이나 없어서 넘겨줄 사람이 적다.
세바스티아 언니는 중앙군에 동군까지 맡고 있느라 허리가 휘는데, 그것까지 부탁하기 힘들고.
백기사들의 거처를 향하며 생각했다.
‘아, 이쪽에 데본 님의 집무실이 있는데 잠깐 들려서 인사라도 할…….’
그때였다.
데본 님의 집무실 앞에서 낯선 뒤통수가 보였다.
낯선? 아니, 어딘지 익숙하기도 한데…….
복도 반대편에서 데본님이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아.” 하며 입을 열었다.
“데—”
“데본 님!”
그런데 집무실 앞을 서성이던 아이가 빨랐다.
그 애의 목소리를 들은 난 흠칫했다.
‘블라썸의 목소리?’
하지만 이상하다.
남자애처럼 머리가 짧고, 남자 정장을 입고 있었으니까.
블라썸이 얼른 데본 님에게 다가갔다.
나도 그 애의 뒤에서 데본 님에게 향했다.
부관으로 보이는 사내와 대화하던 데본 님이 나를 먼저 쳐다봤다.
“아스트라 영애로군.”
“안녕하세요, 데본님.”
“그리고 이쪽…… 은…….”
데본 님의 눈이 커다래졌다.
시간이 멈춘 듯 딱딱하게 굳어진 그는 정신없이 블라썸을 쳐다봤다.
블라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블라썸이에요. 어제 어머니와 함께 뵈었는데, 기억하시나요?”
“…….”
“데본 님?”
“……아.”
“저, 어디 불편하신가요?”
“아니다. 그냥 좀…….”
“잠깐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어서 들렀는데 혹시 실례일까요?”
“……아니다. 잠시라면 짬을 낼 수 있으니 들어와라.”
예법에 철저한 데본 님이 이렇게 순순히 예고 없이 찾아온 사람을 들인다고?
데본 님이 문을 열었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블라썸은 오만한 얼굴로 나를 힐끗 쳐다봤다.
픽, 웃으며.
“저, 데본 님. 에릴로트 양도 할 말이 있는 모양인데 같이 들어가고 싶어요.”
“……그래.”
“그럼 들어가세요, 에릴로트 양~”
나는 블라썸을 빤히 쳐다봤다.
속내가 훤히 보인다.
이건 ‘데본 님이 날 얼마나 특별하게 여기는지 지켜봐’ 라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