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45)
이 3세는 악역입니다 244화.(245/390)
244화.
‘어?’
나는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꼴 좋구나, 데이몬드’라니.
아빠를 알고 있었어?
내가 엄마라 추측하는 여자는 아빠의 침상으로 다가갔다.
‘아빠의 말로는 거래하자고 했다는데.’
거래라는 말을 꺼내긴커녕 그를 빤히 보고 있었다.
“네 죄는 순진한 거야.”
여자가 아빠의 침상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멍청하게 나 같은 걸 믿었으니.”
흘낏, 아빠를 쳐다본 그녀는 입매를 비틀었다.
여기선 여자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서일까.
나는 왠지 그녀가 우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자가 아빠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헉……!’
보라색의 기묘한 연기가 여자의 손에 엉겨 붙기 시작했다.
그 후에 아빠의 표정은 한결 편해졌다.
‘저주야. 저주를 빨아낸 거야.’
순간, 머릿속에 어떤 기억이 스쳤다.
내가 아스트라 성의 과거로 갔을 때.
할아버지가 치유사 필립보에게 엄마를 살피게 했다.
그때, 방에 고여있던 연기가 꼭 저런 보랏빛의 연기였다.
‘역시 우리 엄마야.’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나는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여자, 아니, 엄마는 아빠를 지그시 응시했다.
“깼으면 일어나지 그래.”
“……으……극.”
아빠의 목에선 쇠 긁는 소리가 났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보며 픽 웃었다.
“다 죽어가면서 잘난 척은.”
아무래도 아빠가 엄마를 맹렬하게 노려보는 모양이었다.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두 사람을 쳐다봤다.
왜냐면 자꾸만 내 몸이 투명해지길 반복하고 있으니까.
‘이러다가 나 못 태어나는 거 아냐?’
그런데 그때였다.
“넌…… 누구지.”
아빠가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 하며 물었다.
엄마는 가볍게 답했다.
“이 저주의 근원.”
“무슨 말을…….”
“잘 들어, 데이몬드 아스트라. 나는 당신이 삼킨 내 힘이 필요해. 그리고 당신은 살고 싶겠지.”
“…….”
“그러니까 이건 거래야.”
엄마는 아빠의 이마를 검지와 중지로 툭, 밀었다.
약해질 대로 약해진 아빠는 그런 힘에도 다시 침대에 눕고 말았다.
엄마가 아빠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이번엔 희뿌연 빛이 퍼지더니 아빠가 몽롱한 표정이 되었다.
“너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마.”
“……트리.”
“…….”
“벨트리.”
엄마는 양팔을 끌어안고 힘없이 중얼거렸다.
“멍청한 남자.”
“…… 벨…… 트리.”
“나조차 버린 이름을 넌 여전히 기억하는구나.”
어?
나는 흠칫, 막사의 천을 그러잡았다.
‘방금 뭐라고 했…….’
나도 모르게 막사 안으로 뛰어들려던 순간이었다.
[이제부터 미성년자는 관람 불가다.]세일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며 내 몸이 허공에 붕— 하고 떠오르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만!’
[미성년자 관람 불가.]‘첫 번째 삶부터 치면 나 미성년자 아니야!’
유혜민 때는 다 커서 미성년자 관람 불가 실컷 봤어!
‘세일론!’
세일론!
야, 이 XX야!
이야아아아아—!!
아무리 외쳐도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나는 빛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리고 정신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 * *
“……가씨. 아가씨.”
누군가가 나를 흔들어 깨우는 소리였다.
나는 두 눈을 꾹 감은 채로 물었다.
“여긴 현실이지?”
“네? 물론이지요.”
난 한숨을 푹 내쉬며 슬쩍 눈을 떴다.
잔느가 무슨 소리냐는 듯 순진한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바닥에서 주무시면 안 돼요. 감기에 걸리니까요.”
바닥에서 잔 게 아니라 쓰러진 걸 텐데.
다행히 양탄자가 푹신푹신해서 어디 다친 데는 없었다.
나는 설명하기도 귀찮고, 말해봐야 걱정만 살 것 같아서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그럼 아침 식사를 하러 가실까요? 주인님과 도련님들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아니, 난 나중에 먹을래.”
“배고프지 않으세요?”
“응.”
나는 정말로 괜찮다면서 잔느를 내보냈다.
그리고 얼른 통신석을 들었다.
수신인은 한지혁이었다.
“한지혁, 당장 가서 벨트리 님의 무덤을 확인해. 시체가 있는지 없는지……!”
[없어!]“뭐?”
[내가 이미 확인했다고! 무덤은 개뿔, 아무것도 없어!]나야 과거를 <열람>해서 수상한 것을 알았다.
엄마가 그랬으니까.
‘버린 이름’이라고.
‘그러니까 엄마가 벨트리 님이라는 거잖아!’
만약 벨트리 님의 시체가 없다면 확실해진다.
‘그런데 한지혁은 왜 벨트리 님의 무덤을 확인했지?’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한지혁이 소리쳤다.
[벨트리는 동제국 라온트라의 사람이야!]“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그러니까…… 에이씨! 잘 들어!]한지혁이 마구 흥분해서 떠들기 시작했다.
[벨트리는 입양된 게 맞아.]“그래.”
[그리고 벨트리가 있던 보육원은 라온트라의 황후 호위가 운영하는 곳이었어.]“호위? 흑요회 말이야?”
최강의 여성 검사들로 이루어진 호위대다.
[그래, 그 호위가 보육사가 되면서 데려온 아이가 벨트리래!]“뭐?!”
[그래! 아마도 몰락한 황후 쪽 아이인 거겠지!]“엄마가 라온트라 귀족이었다고?”
[뭐? 엄마?]“내가 과거에서 보고 왔어! 벨트리 님이 우리 엄마야!”
[뭐?!]우리는 서로 ‘뭐?!’만 반복했다.
한지혁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넌 무슨 출생의 비밀이 이렇게 많아…….]“그러니까 말이야…….”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마 한지혁도 통신석을 잡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조사보고서를 가지고 저택으로 와.”
[지금 출발한다.]“응.”
고개를 끄덕인 후, 통신을 종료했다.
* * *
오전 중에 한지혁이 도착했다.
나는 그가 조사해온 내용을 읽다가, 그야말로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나 출생의 비밀이 왜 이렇게 많아?”
“그러니까 말이다.”
했던 얘기를 또 반복할 정도로 기가 막힌 내용이었다.
정리하자면 이랬다.
1. 엄마는 라온트라의 높은 사람.
황후의 흑요회가 몰래 데리고 나올 정도.
2. 신분이 들켜선 안 되기에 벨라의 집으로 입양을 보냄.
3. 이 과정을 그리미에가 도왔고, 엄마는 그리미에의 심복으로 아빠에게 접근했음.
4. 저주를 심는 거래가 끝나고 죽은 척 위장하여 라온트라로 돌아감.
“여기서도 그리미에가 나와?”
한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을 위장한 것도 그자인듯하다. 그러니까 벨트리의, 아니, 네 엄마의…….”
중얼거리던 한지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진짜 네 모친이야?”
“그렇대도. 과거에서 직접 들었어. 아빠가 ‘벨트리’하고 부르니까 엄마가 막—”
나는 엄마처럼 뇌쇄적인 표정으로 양팔을 샥,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 묘한 분위기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했다.
“나조차 버린 이름을 넌 아직 기억하는구나…… 이랬다니까!”
한지혁이 멍하니 날 쳐다봤다. 그리고 몇 초 후에…….
푸하하하하하하핫!
숨이 넘어가게 웃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한지혁을 쳐다봤다.
“그만 웃지?”
“네가, 끅, 얼마나 흥분했으면, 으하학!”
“못 알아듣겠으니까 그만 웃어!”
내가 짜증을 낸 후에야 그는 헛기침했다.
한지혁이 내 머리에 손을 툭, 얹었다.
“이제야 네 나이로 보이네.”
“뭐가?”
“엄마를 만나고 잔뜩 흥분한 거잖아. 이런 웃기는 흉내도 낼만큼.”
쟤는 눈치가 없을 때도 많은데, 어떨 땐 내 속마음을 너무나 잘 알아차린다.
한지혁이 진지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에릴로트.”
“뭐야, 왜 그런 표정을 지어?”
“진정하고서 들어. 네 엄마가 정원사, 아니, 벨라의 집에서 살았을 때 말인데…….”
그는 너무나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정원사 부부와 벨라는 네 엄마의 신분을 몰랐던 모양이야. 누가 돈을 준다니까 키우긴 한 것 같은데…….”
“그런데.”
“…….”
“묻잖아! 그런데!”
불안한 기분에 나는 버럭 소리쳤다.
한지혁이 한참 주저하다가 말했다.
“심한 학대를 당한 모양이야.”
“……뭐?”
“이웃집에서 울면서 비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고 했어.”
“…….”
“흑요회 출신의 보육사에겐 말하지 않았던 모양이야. 아무래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
“이웃집에 살았던 남자에 의하면 벨라의 물건을 훔쳤다거나, 벨라를 괴롭혔다는 누명을 쓰고 자주 얻어맞았다고 해.”
한지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말하지 말까도 했는데 네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알아야지. 나도 그 심정을 아는데.”
유혜민 때의 나도 겪었던 일이었다.
그래서 그게 얼마나 괴롭고 슬픈 일인지 알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온통 무리 지어 다니는데, 나만 홀로 떨어진 기분.
슬퍼도 어디 말할 곳이 없고, 외로워도 기댈 데가 없다.
‘벨라 로슈펭…….’
나는 치맛자락을 꽉 비틀어 쥐었다.
그 순간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손님이 오셨습니다.”
한지혁이 움찔하며 문을 열었다.
“오늘 일정에 손님은 없으신데 무슨 일입니까.”
“로슈펭 작은 부인께서 따님과 함께 아스트라의 물건을 돌려주러 오셨다 합니다.”
나와 한지혁이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벨라…….’
나는 하녀에게 말했다.
“어디 있니, 그자들.”
“막 마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알았어.”
그렇게 말한 나는 복도 밖으로 나섰다.
한지혁이 얼른 내 곁으로 따라붙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바짝 죽인 채로 물었다.
“뭘 어쩌게?”
“어쩌긴. 해야지.”
“그러니까 뭘.”
나는 계단을 내려가다가 한지혁을 쳐다봤다.
“복수.”
엄마의 복수는 딸이 해야지.
* * *
벨라는 마차에서 내리며 딸을 돌아보았다.
목에 겨우 닿는 머리.
걷는 모양.
웃는 모습.
어느 하나 벨트리와 닮지 않은 구석이 없다.
벨라가 후후 웃으며 딸의 등을 토닥였다.
“데이몬드 오라버니가 널 보면 매우 놀라실 게다.”
“네! 데본 님도 놀라셨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던 블라썸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 계집애만 아니었으면…….”
“좋게 생각하렴. 데본 오라버니는 입양아나 사생아를 깎아내리는 것을 혐오하신단다. 본인도 로체 후작의 조카로 본가에 입양되었거든.”
“그, 그래요?”
“한데도 네게 별말이 없으셨다는 건 그 외모가 완벽하다는 뜻이지.”
블라썸이 에헤헤 웃으며 제 모친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정말로 절 보면 키우고 싶어 하실까요?”
“그럼. 그러니 가서 의젓하게 굴어야 한다.”
주변을 둘러본 벨라가 블라썸에게 아주 작게 속삭였다.
“아스트라 백작 영애라고 불릴 날이 머지않았어.”
블라썸이 몹시 기뻐하며 소리쳤다.
“그럴 수만 있다면—”
“있다면?”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칫 놀란 벨라 모녀가 고개를 돌렸다.
에릴로트가 수많은 고용인과 함께 마중을 나온 것이다.
벨라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중까지 나오지 않아도 되는데.”
“아니죠. ‘마중까지 나오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해야 해요.”
에릴로트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정정해주었다.
순간, 벨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영애?”
“로슈펭 부인의 말이 묘하게 틀릴 때가 있어서요. 계속 모르신다면 창피를 당하실까봐 알려드리는 거예요.”
“…….”
“‘미안해요’가 아니라 ‘죄송합니다’ 같은 것들이요.”
에릴로트는 생글생글 웃으며 저를 콕, 찌르고 벨라를 또 한 번 콕, 찔렀다.
“저는 아스트라 공작가의 직계, 부인은 단승 작위의 남작이잖아요?”
“…….”
“아스트라에서 받은 작위이니 본가의 직계인 제게 공손하셔야죠.”
“……하지만 전 로슈펭 공자의 아내예요.”
“이혼 서류가 접수 되었잖아요. 잘잘못이 가려지기 전까지 신분이 상실되지요.”
블라썸이 울컥,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그래도 어른에게 너무한 것 아니에요?!”
에릴로트가 블라썸의 뒤통수를 콱 잡았다.
“……!!”
“뭐, 뭐 하는……!”
블라썸과 벨라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말했다.
에릴로트는 생글생글 웃으며 뒷머리를 푹 눌러서 허리를 굽히게 만들었다.
“본가의 영애께는 인사부터 해야지. 그게 예의란다.”
블라썸이 울컥해서 에릴로트의 손을 뿌리쳤다.
“기가 막혀! 어떻게 이런 짓—”
순간, 블라썸에게 떠밀리다가 비틀거리던 에릴로트가 털썩 주저앉았다.
“아가씨!”
“세상에, 아가씨!”
놀란 하인들이 얼른 에릴로트를 부축했다.
벨라가 흠칫, 딸을 쳐다봤다.
‘이런! 그 정도로 떠밀면 어찌해!’
벨라는 서둘러 에릴로트의 옷에 묻은 흙을 털어주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나 유모인 잔느가 그 손을 매섭게 쳐버렸다.
“아가씨의 존체에 함부로 손을 대지 마십시오.”
“뭐, 뭐라고? 감히 유모 따위가 내게—”
벨라가 굳어지자 에릴로트는 통신석을 꺼내 들었다.
“잔느.”
“예, 아가씨.”
“곧 할아버지에게 통신이 올 때지?”
“주 중 한 번 통화하시는 것을 손꼽아 기다리시니 그러실 겁니다.”
“오늘은 무엇을 말해줘야 할까. 할아버지는 내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잖아. 아아, 그래.”
에릴로트가 벨라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블라썸 로슈펭이 나를 밀쳐서 넘어뜨렸다는 것?”
“……!”
“……!”
블라썸과 벨라가 흠칫, 에릴로트를 쳐다봤다.
“그럼 할아버지께서 저 모녀가 당신의 명을 어기고 두 번이나 아스트라 제 2백작저에 찾아왔다는 것도 알게 되시겠지?”
“여, 영애……!”
벨라가 떨리는 손을 뻗었다.
에릴로트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아스트라 제 2백작부인 자리를 노리고, 딸을 벨트리 님으로 분장시켜온 것도 말씀드릴까?”
“영애! 무슨 말씀을……!”
“아닌가요?”
“아닙니다! 이 아이가 머리를 자른 것은 그저 기분 전환을 위해서고, 저희가 백작저를 찾은 건 사과의 선물을 드리기 위해서예요!”
“그래요……?”
“예!”
에릴로트가 생긋 미소 지었다.
“그래도 그냥 제 생각대로 말씀드릴래요.”
“뭐, 뭐라고요?”
에릴로트는 사뿐사뿐 다가가서 벨라와 블라썸에게 속삭였다.
“너도 이런 식으로 네 부모에게 거짓말을 해서 벨트리 님을 호되게 맞게 했잖아.”
“무, 무, 무슨…….”
“앗, 아빠가 나오시네. 아빠!”
에릴로트가 데이몬드를 향해 달려갔다.
“아빠, 아세요? 저 벨라가요. 벨트리 님에게…….”
“그만—!!”
벨라는 찢어져라 고함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