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6)
이 3세는 악역입니다 26화.(26/390)
26화.
발자크와 요슈아는 이란성 쌍둥이다.
그 쌍둥이가 <빙.흑.손>에서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보았던 나는 오싹해졌다.
‘침착하자.’
그들이 <빙.흑.손>의 에릴로트에게 적대적인 건 맞다.
하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에릴로트가 달리아를 떨쳐내겠다고, 온갖 술수를 다 부렸기 때문이다.
거기에 쌍둥이가 말려든 게 여러 번이다.
‘그리고 달리아는 쌍둥이에게 소중한 사람이었으니까 더 분노한 거겠지만.’
하지만 나는 지금 아무 짓도 안 했잖아?
쌍둥이가 날 혐오할 이유는 없다.
‘어차피 만날 사람을 일찍 만난 것뿐이야.’
게다가 난 지금 어리잖아.
적대할 필요가 하등 없는 어린이다.
‘그러니까 그쪽에서 날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
—까지 생각하던 와중에 내 방이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께 돈을 벌어온 뒤에 더 호화로워진 것 같다.
“…….”
너무 열심히 살아버렸다.
직계들이 신경 쓰게…….
‘지금부터라도 최대한 눈에 띄지 말자.’
나는 조그만 양손을 불끈 쥐며 결심했다.
* * *
아스트라 본성 평가단의 마차가 도착했다.
데이몬드 관할성 관리들의 대표인 두옹 남작이 그들을 맞이했다.
그리고 난…….
“꼭꼭 숨으셨나요, 아가씨?”
—하녀들과의 숨바꼭질에 진심이었다.
눈에 안 띄려면 성안에 없어야 하니까.
그리고 숨바꼭질이면 숨어있을 명분도 되고 얼마나 좋은가.
“아가씨, 찾았어요!”
“꺅!”
……근데 좀 재밌긴 해.
하이디가 나를 끌어안고 간지럼을 태워서 난 까르르 웃었다.
그러자 베티가 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다른 팔을 번쩍 들었다.
“이번엔 제가 술래를 할게요!”
“그러몬 나 저기 멀리까지 가서 숨으꺼야. (그러면 나 저기 멀리까지 가서 숨을 거야.)”
“좋아요.”
베티가 눈을 감고 숫자를 세는 동안 난 더 멀리, 더 열심히 달렸다.
‘재밌지만 좀 더 외진 곳으로 가야겠어.’
숨어있다가 저녁때쯤 돌아가면, 눈에 안 띄겠지.
숨을 곳을 찾아서 성의 구석까지 들어갔다.
거의 성벽까지 다다르자, 처분하려고 모아둔 가구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번에 돈이 생겨서 낡은 가구들을 바꿨지.’
잘됐다.
옷장 안으로 들어가서 낑낑 문을 간신히 닫았다.
어둡고 조용한 옷장 안에서 쪼그려 있노라니 슬슬 눈이 감겨왔다.
열심히 뛰어놀아서 그런가, 최근에 일이 많아서 피곤했나.
머리를 털어내며 잠을 참았지만, 어느 순간 시야가 좁아졌다.
암막이 찾아왔다.
.
.
그리고 얼마쯤 지났을까.
몽롱한 와중에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데!”
“목소리 높이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을 텐데.”
‘싸우는 소리?’
밖에서 일어난 소란 때문에 나는 부스스 정신을 차렸다.
그제야 내가 지금 옷장 속이라는 게 기억났다.
‘시간이 꽤 지났나 봐.’
옷장의 부서진 부분에서 스며들던 빛이 현저히 준 것으로 알 수 있었다.
나가기 위해 아까 들어왔던 옷장 문을 밀었다.
‘응?’
……왜 안 열려?
두 발로 더 세게 힘주어 밀었는데도 요지부동이다.
‘맞다, 망가진 가구니까 문이 잘 안 열릴 수도 있었어!’
베티가 아직도 안 온 걸 보면 못 찾은 게 분명하다.
여긴 외져서 사람들이 잘 안 들르고, 가구 처분은 평가 위원들이 돌아가고 나서 할 테니…….
잘못했다간 약 3일이나 갇혀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저 사람까지 가버리면…… 안 돼!’
죽을지도 모른다.
나는 두 주먹으로 문을 쾅쾅! 두드렸다.
“살랴주세요! 살랴주세요……!”
열심히 외치는데도 주변이 조용했다.
‘벌써 가버렸나?’
등에서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쾅쾅!
“나 여기 이따! 살랴조요!”
덜컥 겁이 나니까 정신이 불안해져서 조연 페널티까지 오나 보다. 훌쩍훌쩍 눈물이 났다.
“살랴조요! 으허엉……!”
그때였다.
끼익.
옷장 이음매에서 마찰음이 들리더니, 문이 열리고 노을빛이 쏟아져 들어와 눈이 부셨다.
눈물에 콧물까지 흘려서 엉망인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역광을 받아서 부서지는 실루엣이 두 개였다.
붉은 머리와 금발 머리.
“뭐야, 너.”
“너는…….”
……발자크와 요슈아였다.
저 사납게 생긴 인상의 붉은 머리 소년이 발자크.
그리고 달콤한 블론드와 청안을 가진 소년이 요슈아였다.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곤 이 쪼꼬미 야수 둘.
날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본능적으로 헤헤 웃었다.
“에리로트야. 안넝…….”
난 공격할 마음이 전혀 없는 선량한 어린이야. 제발 죽이지는 말아주라.
—라는 의미로.
‘대박 망했어요.’
* * *
난 두 사람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휘적휘적 걷던 발자크가 홱,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왜 따라와.”
“에리로트 방 가는곤데…….”
“네 방이 어딘데 내 방까지 쫓아오냐고.”
“요기.”
붉은 머리는 내가 가리킨 방과 그 옆 방을 번갈아 보다가 왈칵, 인상을 찌푸렸다.
보아하니, 내 옆방이 발자크의 방인가 보다.
요슈아가 발자크의 방보다 하나 앞에서 멈춘 걸 보면 저쪽은 요슈아의 방인 듯싶고.
즉,
요슈아—발자크—에릴로트.
방이 이렇게 나란히 있는 것이다.
발자크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시끄럽게만 해봐. 죽는다.”
목소리가 몹시 살벌해서 화들짝 놀란 난, 얼른 대답했다.
“녜!”
“꺼져.”
“녜!”
나는 바짝 길이 든 군인처럼 척! 척! 뒤돌아서 얼른 내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 전에 엔조에게 잡히지만 않았더라면.
“아가씨!”
엔조가 병사들과 함께 내 쪽으로 달려왔다.
“대체 어디에 계셨습니까. 얼마나 찾았는데요. 하녀들이 울면서 병영까지 왔습니다.”
“구게…….”
내가 꼼질대고 있는데, 엔조의 뒤에서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아밤미!”
말하자, 성큼성큼 걸어온 아버지가 미간을 좁혔다.
“세 시간이나 어디에 있었지.”
“숨바꼭질 해써요. 옷장 들어갔는데요, 자버려써. 잘못해씀미다…….”
말하자, 병사들과 엔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버지 또한 숨을 깊게 쉬고 말했다.
“다음부턴 외진 곳은 조심해.”
“녜.”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 등 뒤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발자크와 요슈아였다.
엔조가 그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잘 지내셨습니까. 발자크 도련님, 요슈아 도련님.”
“그래.”
“덕분에.”
발자크와 요슈아가 순서대로 말했다.
엔조가 두 사람을 내게 소개해주었다.
“아가씨의 오라버님들이십니다. 쌍둥이시죠. 발자크 도련님이 첫째, 요슈아 도련님이 둘째십니다.”
요슈아가 빙그레 웃었다.
“안녕, 에릴로트. 얘기는 많이 들었어. 요슈아야.”
“…….”
“형도 소개해야지?”
요슈아의 말에 발자크는 마지못한 표정으로 말했다.
“발자크다.”
요슈아는 빙그레 웃고, 내 쪽으로 허리를 굽혀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잘 지내보자, 에릴로트.”
‘응?’
나는 두 눈을 깜빡이면서 요슈아를 쳐다봤다.
방금 성으로 들어올 때만 해도 요슈아는 내게 한 마디도 걸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 앞에선…….
‘아하.’
이놈, 속성이 뱀이었지.
보통 소설의 오빠들이란 두 가지 성격이다.
호랑이와 뱀.
호랑이는 발자크처럼 난폭한 오빠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뱀은 다정하게 생겨서 속에 검은 게 득시글한 계락남 오빠였다.
<빙.흑.손>에서 달리아는 외동이었다.
그래서 친척 오빠들로 속히 말하는 ‘오빠캐’를 채웠던 것이다.
이 오빠 캐릭터는 주인공에게 한없이 무른 팔불출이라 나도 참 좋아했지만…….
‘적이 되면 다르지.’
에릴로트가 달리아를 괴롭혔다고 길길이 날뛰던 두 사람이 기억나자 등골이 오싹했다.
요슈아는 원래 상대를 탐색한 뒤에 적과 졸개(아군도 아니다)를 결정한다.
그런데 아깐 내겐 말도 걸지 않았으면서, 아버지 앞에서만 상냥한 척했다.
그걸로 보아 나는 이미 적으로 결정 난 듯했다.
발자크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던데.
아까도 느꼈지만, 역시…….
‘망했네.’
역시 공작성에서 너무 설치고 다녔던 것 같다.
할아버지의 눈에 든 건 좋지만, 오히려 그건 3세들에겐 경계심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그때, 미켈란이 병사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만찬 준비가 끝났습니다.”
아버지는 평가단과 식사할 예정이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인 아버지가 말했다.
“온실에 아이들의 식사를 마련해줘라.”
예?!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휘둥그레진 눈으로 아버지를 쳐다봤다.
평가단과 식사 자리에 자식들까지 있을 필요는 없었다.
도리어 없는 쪽이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을 것이다.
나도 만찬까지 가서 평가 의원들의 눈치를 살피는 일은 귀찮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쪼꼬미 야수들과 식사하고 싶은 건 절대 절대 아니었다.
‘눈에 띄면 안 되는데……!’
나는 황급히 말했다.
“에, 에리로트 식사 혼자 해요. 오라바미들 오늘 와서 힝드니까.”
그 말에 아버지가 슥, 쌍둥이들을 쳐다봤다.
“힘든가.”
그걸 그렇게 물어보면 어떡해.
요슈아 성정이라면─!
“그럴 리가요. 동생과의 식사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것 봐라.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주목됐다. ‘괜찮다는데?’ 하는 표정이었다.
여기서 내가 다시 싫다고 하면, 꺼리는 거로 보일 거다.
“와─! 그러면 나 신나!”
사람들은 잘 됐다는 듯이 웃었고, 나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나와 발자크, 요슈아는 함께 온실로 향했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으니 음식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발자크는 팔짱을 낀 채로 뚱한 표정이었고, 요슈아는 신경도 안 쓰고 식사에 집중하고 있다.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저 쌍둥이들은 사이가 안 좋나 봐.’
나한테라면 몰라도, 저 둘 사이에도 대화가 없다.
그러고 보면 내가 옷장 안에 있을 때도 싸운 듯했고.
‘뭐, 나랑은 상관없지.’
원래 형제는 다 싸우면서 크는 거랬다.
그렇게 생각하던 중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러고 보니까 쌍둥이가 온다는 얘기를 듣고서 놀란 바람에 아침을 제대로 먹질 못했다.
숨바꼭질하다가 잠들어서 점심은 아예 걸렀고.
‘얼른 먹어야지.’
배가 고프면 조연 페널티가 더 강해진다.
쪼꼬미 야수들의 기세에 잔뜩 움츠러든 걸 보면, 조연 페널티가 이미 시작된 것 같았다.
나는 얼른 스푼을 들었다. 고소한 향기가 나는 감자 그라탱을 막 뜨려는 순간, 발자크가 말을 걸었다.
“너, 가호가 고대어를 읽는 거라면서.”
갑자기 말을 거는 바람에 깜짝 놀라서 쭈뼛쭈뼛 대답했다.
“녜…….”
발자크는 삐딱하게 날 쳐다봤다.
“별 해괴한 가호네.”
“…….”
‘저는 얼마나 대단한 가호가 있 ……지. 그렇지, 참.’
발자크의 가호는 <강화>였다.
그리고 그 강화를 베이스로 이른 나이에 오러를 개화시켰다.
그래서 최연소 오러 사용자라는 이명까지 붙었다.
“그럼 이것도 읽을 수 있냐?”
발자크가 작은 책 하나를 내밀었다. 발자크 손과 비슷한 크기의 책이었다.
난 눈을 깜빡였다.
“고대어로 대이써?”
“……그래.”
발자크에게서 책을 받아 펼쳐 봤다.
확실히 고대어, 그러니까 한국어가 맞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놈의 조연 페널티.’
어린애들이 가나다라마바사, 하듯이 읽을 수는 있는데, 이게 머릿속에서 이해가 안 됐다.
발자크는 큼, 헛기침하며 말했다.
“뭐, 읽어보든가.”
“으음, 음…….”
“제한 서고에서 찾은 거야.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내용일 거다.”
발자크는 어디 가서 발설해선 안 된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떠듬떠듬 책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낭창한, 허리를, 타고, 물끼가, 흘러내려따. 마님, 저를 유혹하는, 검니까. 찰쓰의 목소리는…….”
쾅!
발자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났다.
“뭐, 뭐, 뭐라는 거야!”
요슈아도 눈을 크게 뜨고 날 쳐다보고 있었다.
“요기 써인는데. (여기 써있는데.)”
“거짓말하지 마!”
쓰여 있는 대로 읽은 건데 억울하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책을 쫙 펼쳐서 보여줬다.
“요기 이러케 써이짜나.”
“그, 그럴 리가 없어! 다시 읽어!”
“찰쓰는, 말해따. 마님, 저는 오늘 빰, 한 마리, 진승이어라, 마님의 슬립이…….”
쨍그랑, 와장창─!!
이번에도 다 읽지 못하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식사를 옮겨오던 하인이 쟁반을 떨어뜨리는 소리였다.
“무, 무, 무슨, 아가씨께서 무슨 책을 읽, 읽……!”
온실에 휘잉, 바람이 불었다.
* * *
나와 발자크, 요슈아는 만찬을 끝내고 온 아버지 앞에 쪼르륵 일렬로 섰다.
아버지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책을 들었다.
“그러니까…… 동생한테 저질 문학을 읽게 했다고?”
“…….”
발자크는 고개를 푹 수그린 채로 별말이 없었다.
나는 쭈뼛쭈뼛 아버지의 눈치를 보았다.
온실에서 배를 채워서 그런지 이제 조연 페널티가 가셨다.
상황 파악이 절로 됐다.
‘발자크는 그게 야설인지 모르고 가져온 건데.’
그런데 왜 변명을 안 하지?
아버지가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다시 질문했다.
“인정하는 것이냐.”
“…….”
“발자크 아스트라.”
“벌을 주시면 받겠습니다.”
그 말에 아버지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내게 해명할 가치가 없다?”
아버지는 저 책을 열어봤으니 고대어인 걸 알 것이다.
발자크가 일부러 내게 야설을 읽으라고 하진 않았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상황 설명을 조금도 하지 않으니 화가 난 것일 거다.
“벌을 주십시오. 완전군장으로 병영 서른 바퀴면 됩니까?”
“너…….”
“체벌하실 거라면 채찍을 가져오겠습니다.”
발자크가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아버지를 쳐다봤다.
“정 그리하겠다면─”
“아냐!”
나는 얼른 양팔을 벌리고 발자크의 앞을 가로막았다.
봄이라지만 꽃샘추위가 와서 아직 매우 춥다.
이런 날씨에 어린애가 완전군장으로 그 넓은 병영을 서른 바퀴나 돌면 어떻게 되겠는가.
채찍으로 맞는 것도 당연히 안 된다.
발자크가 입을 열었다.
“너는 끼어들지 말고─”
“마님이랑 찰쓰가 잘못해써. 발쟈쿠 잘못 안 해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