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62)
이 3세는 악역입니다-261화(262/390)
261화.
저택 외곽의 작은 건물.
그곳이 내가 마련해준 카인로드의 거처였다.
물론, 마리를 치료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사람들을 따돌리고 그곳에 뛰어들었다.
쿵!
다급히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카인로드와 마리가 흠칫 나를 쳐다봤다.
실험 중이었는지, 실린더 비슷한 것을 들고 있던 카인로드가 인상을 썼다.
“이 녀석아, 실험 중일 땐 조심히 들어와야 한다는 걸 모르는 거냐!”
“마리의 상태는 어때요?”
마리는 침대에 앉아 있었다.
핏기가 하나도 없는 얼굴이었다.
“난 괜찮아.”
“괜찮기는. 오늘만 해도 두 번이나 혼절했으면서.”
“카인로드 님.”
“저 녀석 말은 믿지 마라. 한계까지 참는 데에 익숙한 듯하니.”
카인로드는 쯧, 혀를 찼다.
“육체가 감당할 수도 없는 힘을 지녔어. 그런데 당최 무슨 가호인지 모르겠단 말이야. ……역시 신성 가호인가.”
“네, 그렇다면 신성 가호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 신성 가호의 소지자는 워낙 적은 데다가 활용도가 높아서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거든.”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말을 이었다.
“네 백부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카인로드에겐 마리를 전담시키기 위해, 이 애의 정체를 알려줬다.
“그리미에 백부의 딸일 수 있어요. 아니, 딸이에요. 태어나기도 전부터 모체를 실험해서 이 아이의 몸이 약한 거예요.”
나는 다급히 카인로드를 붙잡았다.
“축복의 땅! 진짜 축복의 땅의 뿌리를 열면 어때요?”
“내 어머니를 치료했던 그 뿌리 말이구나.”
“네!”
카인로드는 잠깐 고민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힘은 마력이나 신성력을 강화시켜 불순물을 밀어내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만병통치약은 아니란 거군요.”
“그래. 내 생각에 이 애가 이만큼 고통스러워하는 이유는 말이다.”
카인로드가 마리를 힐끗 쳐다봤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애초에 가진 힘은 마력인데, 네 백부가 신성 가호를 몸에 넣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신성 가호를 마력으로 쓸 수 있다고요? 가능해요?”
두 힘을 쓰는 방법은 전혀 다른데.
“나도 방법을 모르겠으니, 치료를 못 하고 있는 것이지.”
카인로드는 매우 자존심이 상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내 추측이 맞다면, 저 애에게 뿌리는 약이 아니라 독이야.”
마력과 신성 가호가 충돌해서 일어나는 일.
그렇다면 마력을 강화시키면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카인로드가 말했다.
“당장은 치유될지 모르나, 깨어있는 한 곧 다시 마력과 신성력이 충돌할 것이다.”
“생체 활동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일이란 말이군요.”
‘그럼 역시 방법은 그것뿐인가.’
“뿌리는 천계에서 흘러나오는 힘이에요. 즉…….”
“축복의 땅은 천계와 이어진 공간이다?”
“맞아요.”
나는 마리를 쳐다봤다.
“마리를 가사 상태로 만들어서 틈새에 있게 한다면?”
예를 들면, 냉동인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치유법을 발견할 때까지.
“……!!”
“……!”
두 사람이 매우 놀라 눈을 홉떴다.
카인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육체는 뿌리의 힘으로 지켜질 테지. 재생과 충돌을 반복하면서.”
그래, 미카엘이 말했던 것이 이것이다.
‘살리려 하지 말라’는 건 죽음과 같은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카인로드가 마리를 힐끔 돌아봤다.
“모든 건 저 애의 선택에 달렸구나…….”
그때, 마리가 소리쳤다.
“할래. 하겠어!”
카인로드가 흠칫했다.
“그리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야.”
“어째서요?”
“이공간으로 갈 수야 있겠지. 듣자 하니, 네 가호가 에릴로트를 이공간으로 보냈다지.”
“네.”
“네 가호가 있으면 너 홀로 이공간에 갈 수는 있어. 하지만 가사 상태인 너를 끄집어내올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그 말이 맞다.
마리는 ‘이공간의 <어디>로 가겠다’고 지정해서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즉, 어떤 역인지 모르고 내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본인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찾아갈 수 있겠는가.
내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자, 마리가 말했다.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얼마나 악바리인지 나는 알아.”
“……!”
“하고자 한 일을 모두 이뤄내는 것을 보았어.”
“……마리.”
“그러니까 너를 믿고 기다리겠어.”
“위험할 수도 있어.”
“지금까지 죽음을 기다리며 살았어. 죽음보다 너를 기다리는 게 훨씬 좋잖아?”
마리가 픽 웃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그 애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잡았다.
“치유법을 찾을 거야. 찾아서 널 데리러 갈게.”
“그래. 마사에겐…….”
“응.”
“내가 죽었다고 해.”
“……그래도 되겠어?”
마리가 눈을 감았다.
“그래.”
나와 마리가 침묵했다.
카인로드가 짝, 손뼉을 쳤다.
“좋아. 결정되었으면 빠른 시일 내로 움직이자. 사실 네 친구,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거든.”
“시간이 얼마나 있겠어요?”
“적어도 이번 주 안엔 움직여야 해.”
나와 마리가 손을 잡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다음날, 오후.
라온트라로 향한 한지혁에게 통신이 왔다.
“어떻게 됐어?”
[입국까지는 성공…… 해서 지금은 여관에서 지내고…… 있어!] [으하하! 자, 자, 쭉 들이키시오!] [주인장! 여기 안주를 더 내오시오!]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가 너무 커서 한지혁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왜 이렇게 시끄러워?”
[라온트라엔! 외국인이…… 많이 들어와서! 젠장, 어느 국경 여관에 가든! 이따위로 시끄…… 다고!]“1년이야. 1년 안에도 벨트리 님을 찾지 못한다면 일단 돌아와.”
[그래. 그런데…… 너는 일 년 동안 나 없이 살 수…… 겠냐?]얘는 왜 이렇게 자존감이 높은 거야?
내가 설마 한지혁 하나 없다고 아무것도 못할까.
나는 픽 웃고서 말했다.
“난 잘 지낼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황도의 소문을 물어다 줄 사람이 없잖아?]“이제 황도 소문은 네가 물어와 주지 않아도 돼.”
[왜?]“아스트라로 돌아갈 거거든.”
아빠가 황도에 있다.
그렇다면 아스트라 장원에서 관할령을 지키고 있을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미에가 없는 동안 마리의 치유법도 찾아야 하고.’
“아무튼 소식 자주 전해줘.”
[그래.]통신이 종료되었다.
마침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잔느입니다.”
“응, 들어와.”
방에 들어온 잔느가 말했다.
“마리의 짐을 가져왔습니다. 마리, 들어와라.”
방문 앞에서 뭔가 꾸물꾸물 대더라니, 마리였나 보다.
“뭐해?”
내가 말하자, 마리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가.”
들어온 마리는 아주 예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마치 귀족 영애처럼.
“와, 예쁘네!”
잔느도 후후 웃었다.
“그렇지요?”
마리는 칫, 혀를 찼다.
“……이런 것까지 필요 없다니까.”
“필요해, 필요해.”
“방도 왜 갑자기 옮기냔 말이야. 그것도 네 방으로.”
“이틀 뒤에 갈 거잖아? 그 전에 추억을 잔뜩 쌓아두려고 그러지.”
말이 이틀 뒤지, 또 쓰러지면 곧장 축복의 땅으로 가야 한다.
“별 걸 다해, 정말.”
“넌 내 첫 친구니까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다고. 일단…… 짠!”
나는 히죽 웃으면서 파자마를 들었다.
“이거 입고 베개 싸움해.”
“……반드시 하고 싶어?”
마리가 눈을 가늘게 뜨며 샤랄라한 파자마를 쳐다봤다.
파자마에 엄청나게 달린 프릴이 재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반드시는 아니긴 한데. ……나도 또래 친구는 없어서 이맘때 여자애들이 뭘 하는지 잘 모르겠네.”
그러자 잔느가 말했다.
“승마는요?”
“승마? 초보자한테는 힘들지 않을…… 아!”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벌떡 일어났다.
‘초보자도 쉽게 탈 수 있는 말이 있지.’
난 마리의 손을 잡고 우다닥 달려 어떤 방으로 향했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발자크와 요슈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일이야? 그쪽 영애는 누구…… 엥? 너 막내의 놀이 친구 아니냐?”
마리가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예쁘게 차려입은 게 엄청나게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맞아. 마리야.”
내가 말하자, 곁에 있던 요슈아가 물었다.
“그런데 이 밤에 발자크의 방엔 웬일이야?”
“제너! 설원마 제너를 빌리러. 리시안 숙부님이 오라버니들을 위해 만들어준 마구도 함께.”
발자크가 눈을 끔뻑였다.
“그거야 괜찮지만, 여름이라 그 녀석이 사나워져 있는데. 언제 가려고?”
“지금.”
“……뭐?”
“지금!”
이미 해가 지고 있다.
곧 어둠이 깔릴 텐데 어딜 가느냐는 얼굴이다.
발자크가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절대 안 돼.”
“그럼 발자크 오라버니가 요슈아 오라버니가 아끼는 만년필을 부숴버렸다는 걸 이를 거야.”
“……!”
발자크의 어깨가 흠칫했다.
그의 뒤에서 탁! 책이 접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무시무시하게.
발자크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뻣뻣하게 고개를 돌렸다.
“요, 요슈아.”
“왜 부서졌는지 절대 모른다더니 네놈 짓이었구나.”
“자, 잠깐, 잠깐!”
요슈아의 손에서 마력이 일렁이자 발자크가 팔로 머리를 가리며 꽥 소리쳤다.
“막내 너……!”
“이를 거야.”
“이미 일렀잖아!”
“아직 리시먼드 오라버니의 검을 부러뜨린 게 발자크 오라버니라는 건 안 일렀어.”
책장에서 책을 뒤지던 리시먼드의 손이 멈추었다.
리시먼드가 발자크를 돌아봤다.
그의 손에도 마력이 일렁이고 있었다.
“너……!”
“아빠의 무구를 팔아서 제너의 마구를 새로 장만했다는 것도 안 일렀잖아.”
“뭘 이렇게 많이 알고 있어?!”
“그러니까 고용인들에게 잘해.”
날 봐라.
내가 잘하니까 고용인들이 보는 족족 내게 말해주지.
발자크가 흠칫해서 날 쳐다봤다.
“이……!”
“빌려줄 거야?”
“빌려줄 테니까 이제 그만 말해!”
“고마워.”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서 마리를 끌고 등을 돌렸다.
등 뒤에서 리시먼드가 손목시계를 벗는 소리가 났다.
요슈아가 책을 내려놓는 소리도 들렸다.
타작이 시작되었다.
* * *
곧장 마구간으로 향했다.
마구간 안에서 말 관리인의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발 여물 좀 먹어주라……! 냉동 창고는 멀어서 이 시간엔 얼린 당근을 가져올 수 없단 말이야!”
푸르르르르!
신경질적인 울음소리까지 들린다.
나는 마구간 안으로 들어가서 제너를 쳐다봤다.
“또 관리인들의 속이 타게 하는구나.”
“아, 아가씨!”
관리인이 흠칫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러기 무섭게 설원마 제너가 그의 목덜미 깃을 물어서 홱, 던져버렸다.
그러곤 푸릉! 푸릉! 기분 좋게 울었다.
“안녕, 제너.”
푸르르르!
“인사해, 마리야.”
마리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제너를 쳐다봤다.
“이, 인사해도 돼? 사나워 보이는데.”
“몬스터라 약간 무서워 보이지만, 속은 아주 착해.”
“그, 그래?”
“제너, 내 친구가 인사할 거야. 뼈를 씹거나, 머리를 박살 내면 안 된다?”
“진짜 만져도 되는 거냐고!”
나는 쿡쿡 웃고 마리의 손을 잡았다.
그 채로 제너의 뺨을 잡자, 푸르릉! 기분 좋게 웃었다.
“넌 손의 온도가 낮아서 제너가 기분이 좋은가보다.”
“와…… 털이 비단같아. 아, 안녕, 제너?”
제너는 신이 나서 앞발을 높이 들었다.
말 관리인이 펄쩍 뛰며 다가왔다.
“위, 위험합……!”
그러면 안 될 텐데.
기분 좋은 자세를 방해해서 뿔이 난 제너가 말굽으로 관리인을 노렸다.
관리인이 으아아! 소리치며 재빨리 도망쳤다.
기둥 뒤에 철썩 달라붙은 그가 울상을 지었다.
“으으, 사내놈한텐 가차 없다니까.”
“제너는 신사거든. 그렇지?”
내가 생긋 웃자 제너는 다시 한번 기분 좋게 웃었다.
나와 마리는 제너를 쓰다듬으며 리시안 숙부가 만든 마구를 제너에게 감아주었다.
그리고 내가 먼저 제너의 위에 올랐다.
마리는 관리인의 도움을 받아 내 뒤에 탔다.
“자, 그럼 간다.”
“처, 천천히 가으아아악!”
제너는 다른 말과 속도가 천지 차이다.
살살 달리는 것도 다른 말의 최대 속력으로 느껴질 거다.
“이 마구는! 아스트라 최고의 마법사가! 만든 거야! 엄청난! 마법이! 걸려있으니까 안심해! 날 꽉 잡기나! 해!”
“제발 천천히 좀! 가…… 어?”
마리가 깜짝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는 모양이었다.
놀랍기도 할 것이다.
설원마 제너의 갈기에서 생성된 얼음 결정이 흩날렸다.
어둠 속에서 마치 별처럼.
“와아……!”
“기분 좋지?”
“응!”
나와 마리는 신이 나서 길을 달렸다.
“어디로 갈 거야?!”
마리가 물었다.
“저 산 뒤로! 밤에 물결이 반짝거리는 게 엄청 예쁘다!”
“난 가본 적 없어!”
“다음에! 건강해지면! 네 발로 이곳저곳을 다니자!”
“그래!”
우리는 산 뒷길에 있는 호수, 벚꽃 모양의 조명이 설치된 길, 심지어는 황도가 한눈에 보이는 산 위까지 올랐다.
“와아아아—!”
마리는 아주 신나 했다.
몸이 약해서 많은 곳을 다니지 못했지만, 어딘가를 가고 싶은 마음은 남들과 똑같았을 것이다.
“마리!”
“응!”
“우리가 다 크면 펍에 가자! 아스트라 장원에서 제일 큰 펍으로!”
“그래!”
“아빠의 관할령 도서관도 보여줄게! 좋아할 거야!”
“좋아.”
“또 바다에도 가자. 바다는 안 가봤지?”
“……래.”
“네가 다 나으면 하고 싶은 게 많아.”
“…….”
“그러니까 우리 꼭 다시 만나서…….”
“…….”
마리의 손이 내 허리에서 스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얼른 마리의 손을 잡았다.
기묘한 분위기를 눈치챈 제너가 천천히 멈추어 섰다.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마리의 손을 꽉 잡았다.
“꼭 다시 만나자, 마리.”
그날, 깊은 밤.
나는 카인로드, 알렉시스, 그리고…… 쓰러진 마리와 함께 축복의 땅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애의 힘을 이용해 이공간으로 이동시켰다.
물론 알렉시스의 가호인 <지배자의 위세>를 이용해서.
그 애의 몸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나는 펑펑 울며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알렉시스가 그런 날 끌어안았다.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저 애도…… 나도.”
“……응.”
“네가 바라는 모든 것을 이뤄줄 사람이 되어서 돌아올게.”
“…….”
나는 눈물에 젖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내 이마에 이마를 맞댄 채로 속삭였다.
“그때는 울게 두지 않을 거다.”
나는 알렉시스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응!”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흐르고 흘러 내가 열일곱이 될 때까지.
에릴로트 아스트라, 17세의 봄날이 찾아왔다.
이 3세는 악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