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69)
이 3세는 악역입니다-268화(269/390)
268화.
헤반과 유리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헤반은 억지로 입꼬리를 말아 올린 발데릭에게 속삭였다.
“마도병을 얻기 위한 수작질이라면, 바란 왕가를 능멸한 죄를 물을 것이오.”
“설마 이 발데릭 아스트라가 그런 아둔한 짓을 하겠습니까.”
유리가 미간을 좁혔다.
“한데 이전까지 릴의 행방을 말해주지 않았던 이유가 뭡니까.”
“저는 고리대금을 하는 몸입니다. 아주 비싼 대가를 받는다는 말이지요.”
“대가 없이는 릴의 행방을 말해줄 수 없다는 겁니까.”
“뭐…… 이해관계가 일치하길 기다린 것이지요.”
헤반이 울컥했다.
“이……!”
묘한 분위기를 눈치챈 사람들이 하나둘 발데릭과 라온의 무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유리가 서둘러 헤반을 막았다.
[왕께선 칼소이에 행조차 마뜩잖아 하신다. 소란을 피우고 돌아갔다간 불호령이 떨어질 거야.] [하지만 저 간사한 자식이……!]그때였다.
“그러지.”
라온이 차분한 투로 입을 열었다.
유리와 헤반의 표정이 굳어졌다. 반면, 발데릭의 얼굴엔 환희가 깃들었다.
‘마도병’이 무엇이던가.
6대륙 중 가장 인구수가 적은 칸시스 대륙이 이 칼소이에가 속한 이라드 대륙과 어깨를 견주게 만든 최강의 무기.
칸시스 대륙의 중심인 바란의 마도력 집결체였다.
[전하, 그건─!] [형님.]한 손을 들어 잔뜩 굳은 헤반과 유리의 입을 다물게 한 라온이 발데릭을 바라보았다.
“다만 약속은 지켜져야 할 거야. 난 그리 자비로운 성정이 아니니.”
“무, 물론입니다.”
발데릭 관할령에도 뛰어난 기사들이 있다.
물 밑에서 암살에 능한 부대를 키웠다.
거기에 마도병이 합세한다면…….
‘데이몬드 관할령, 아니, 공작 직속군조차 뛰어넘는 군사력을 손에 넣게 될 것이다.’
발데릭이 희열에 차 몸을 부르르 떨던 찰나.
라온은 힐끗 마경을 쳐다봤다.
탑 위에 홀로 선 여자가 커다란 챙의 모자를 한 번 더 끌어내리고 있었다.
발데릭에게 고개를 돌린 그가 말했다.
“닷새 뒤 나의 객선을 쫓아 항선이 도착한다. 마도병을 싣고 있지.”
“마도병의 확인이 끝난 후, 릴의 신변을 인계할 것입니다.”
“좋을 대로.”
“예, 전하. 현명한 판단에 실로 감사─”
“단.”
라온이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발데릭을 바라보았다.
“데려온 자가 릴이 아니라면, 아스트라 공작은 아들을 하나 잃게 될 것이다.”
발데릭이 마른침을 삼켰다.
“예, 전하.”
* * *
라온의 무리가 파티장을 떠났다.
아스트라의 혈족들은 영축절 뒤풀이를 위해 만찬장으로 이동했다.
뒤를 쫓던 발데릭을 로레이나가 막아섰다.
“그 여자, 정말로 찾으신 거예요?”
“아비의 앞을 막아서는 건 무슨 예의이냐, 로레이나.”
발데릭이 쯧, 혀를 차자 로레이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왕세자와 나눈 말씀을 들었어요. 마도병을 받고 왕세자가 찾는 여자를 내주지 못한다면 어찌 되겠어요?”
함께 있던 조프리가 흥, 코웃음을 쳤다.
“어찌 되긴 뭘 어찌 돼? 그냥 저쪽이 마도병만 잃는 거지. 여긴 아스트라야. 제깟 놈들이 우리에게 별짓을 할 수 있겠어?”
“이 멍청한……!”
로레이나가 버럭 소리쳤다.
그러나 곧 앞서가던 친척들이 뒤돌아보자, 목소리를 죽였다.
“눈이 돌아간 왕세자가 조부님께 마도병을 넘긴 사실을 말할지도 모르잖아!”
“그건…… 어, 그러니까…….”
“무기, 특히 공격용 마도구의 구매는 본성에 허가를 받아야 해. 허가 없이 그런 것을 사사롭게 소유하는 건 반역이나 마찬가지야.”
그러자 심각성을 인지한 조프리가 마른침을 삼켰다.
“어, 어찌하시려고요, 아버지?”
“걱정할 것 없다.”
“예?”
“지난 3년간 칸시스에서 돌아온 배는 고작 7척. 그 중 확인되지 않은 젊은 여성은 스무 명 남짓이야.”
“하면…….”
“찾는 건 시간 문제라는 말이다.”
“그래도 혹시나 못 찾는다면요……?”
“무슨 수를 써서든 찾아야지. 방법은 그뿐이니.”
“예?”
조프리가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로레이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데이몬드 관할령의 재산을 빼돌리신 거지.”
“뭐?! 에릴로트 남매가 그걸 알게 되면……!”
“그래, 그러니까 그 전에 그 남매를 처리해야 하니 어떻게든 마도병을 손에 넣어야 하신 거야. 그렇죠?”
발데릭이 칫, 혀를 찼다.
조프리가 바짝 겁이 든 표정으로 물었다.
“하, 하지만 에릴로트에겐 용이 있잖아요. 아무리 마도병이라도 용을 물리칠 수 있을까요?”
“그건 걱정하지 마라. 그 계집은 용을 불러내지도 못할 터이니.”
“어째서요?”
발데릭은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곧 붉은 달이 뜨지 않느냐.”
“가호를 사용할 수 없겠군요……!”
“그래, 시기가 좋아.”
마도병의 가장 무서운 점은 이것이었다.
붉은 달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
그 계집은 용을 불러내지 못할 것이고, 이쪽은 바란 마도력의 결정체를 지니고 있다.
승리는 결정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도병을 받는 즉시 확인 겸 그 데이몬드의 재수 없는 자식놈들을 해치운다.”
조프리가 킬킬 웃었다.
“드디어 꼴 보기 싫은 얼굴이 사라지겠습니다.”
“그래, 그러니 너희는 데이몬드 관할령의 아노스 일파를 잘 관리해두어라.”
“예, 납치할 때 써먹어야 할 테니까요.”
부자의 눈빛이 음험해졌다.
* * *
“……아노스 일파를 잘 관리해두어라.”
“예, 납치할 때 써먹어야 할 테니까요.”
“뭐야, 메기수염을 이용하고 있었어?”
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허공에 뜬 텍스트를 쳐다봤다.
내 곁에 있던 발자크와 요슈아가 날 쳐다봤다.
“아노스?”
“응, 발데릭이 아노스를 이용해서 우리를 납치할 모양이야. 붉은 달을 노려서.”
“웃기고 있군. 아무리 가호를 쓸 수 없는 날이라지만, 그냥 당해줄까 봐?”
내 다리를 베고 누워서 빈둥대던 발자크가 한지혁에게 소리쳤다.
“황도에 있는 군사들까지 죄다 소집해. 성문을 통과하는 즉시 밟아 죽이게.”
“예, 도련─”
“잠깐.”
내가 말하니, 오라버니들과 한지혁이 날 쳐다봤다.
“잘만 이용하면 발데릭을 가문에서 도려내고, 그 재물까지 싹 긁어올 수 있겠는데?”
“뭐?”
발자크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날 올려다봤다.
“지금 가서 ‘발데릭이 우리를 노리고 있어요. 아노스를 이용해 관할령 재물을 빼갔어요.’ 하고 말하면 어떻게 되겠어?”
“조사를 하겠지.”
“그 뒤엔?”
“음…… 벌은 받겠지만 미수에 그쳤고, 워낙 가신들에게 뿌려둔 돈이 많으니까…….”
“우리는 보상을 받겠지만, 그걸로 끝일 거야. 운이 아주 좋아야 발데릭이 몇 년간 업무 정지되는 정도겠지.”
“그렇긴 하네.”
요슈아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이 일을 어떻게 이용할 셈이야?”
나는 비열한 표정으로 말했다.
“납치당해주지 뭐.”
“……뭐?”
“뭐라고?”
“……?”
발자크, 요슈아, 한지혁이 그게 무슨 헛소리냐는 듯 인상을 썼다.
“본성에서 군사들이 동원될 만큼 판이 커지게 만들어주는 거야.”
“그래서?”
“그렇게만 되면 마도병을 거래한 것까지 짠! 하고 보여주게 되겠지.”
요슈아가 쿡쿡 웃었다.
“그럼 못해도 발데릭을 완전히 도려낼 수 있겠구나.”
“가해자인 발데릭 관할령에 더 큰 보상을 요구할 수도 있겠지. 운 좋으면…….”
발자크가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발데릭 관할령까지 삼킬 수 있어!”
“좋은 생각이야, 에릴로트.”
그렇지 않아도 우리의 돈줄이던 백수정의 가치가 하락했다.
7년간 각지에서 백수정 광산이 셋이나 더 발견됐거든.
‘발데릭 관할령의 그 재산만 가로채 올 수 있으면 당분간 돈 걱정은 끝이다.’
“자, 그러면 얌전히 당해줄까.”
우리 남매는 낄낄거렸다.
아마도 발데릭 부자보다 더 음험한 표정일 터였다.
한지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며칠 후, 밤.
잠옷을 입은 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좋아, 떴다.’
유난히 큰 붉은 달이 하늘을 장식하고 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벽 가에 서있는 베티를 쳐다봤다.
“준비는?”
“메기수염…… 아니, 아노스에게 넘어간 하녀 아이가 아가씨의 자리끼에 약을 넣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하이디는?”
“벌써 공작성 인근에 다다랐답니다. 암살자가 납치를 시도하는 즉시, 공작님께 소식을 전할 것입니다.”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황도에서 데려온 정예병들도 다 배치해두었어.’
발데릭이 아무리 바보라도 우리를 관할성에서 죽이진 않을 것이다.
어디 산골짜기에서 죽여서 아스트라와 적대하는 가문의 짓으로 만들 것이다.
그래서.
‘암살자가 우리 남매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확인한 다음 구출하라고 명해놨지.’
“자, 그럼─”
내가 말하려던 그때였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아노스에게 넘어간 아이가 확인하려고 오는 모양입니다!”
“숨어!”
베티가 얼른 드레스룸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후다닥 침대에 들어가 눈을 감았다.
이윽고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누군가 내게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다가온 사람이 내 얼굴 위에 살살 손을 흔들었다.
그러곤 살금살금 문 쪽으로 걸어가 속삭였다.
“잠들었습니다.”
곧 또 다른 사람들이 들어왔다.
발소리로 미루어보아 교육받은 군사들이다.
‘시작이구나.’
암살자들이 이불째로 나를 둘러메곤 방을 빠져나갔다.
이제 드레스룸에서 숨죽이고 있는 베티가 하이디에게 상황을 전달할 것이다.
난 암살자가 날 짐칸에 넣을 때까지 열심히 잠든 척했다.
덜컹! 문이 닫힌 뒤에야 슬쩍 눈을 떴다.
‘뭐야, 오라버니들은 없잖아.’
따로 잡아가기로 했나.
하기야 짐칸에 성인 셋을 태울 순 없겠지.
그렇다고 해도 뭔가 이상했다.
‘이 마차 외에 다른 바퀴 소리가 안 들려.’
들리는 건 온통 말발굽 소리뿐이었다.
일이 틀어진 건가?
발자크와 요슈아는 납치하지 못했나?
게다가 가는 방향도 이상했다.
산속으로 갈수록 땅에 요철이 많아서 덜컹대야 하는데, 점점 더 매끈한 길을 달리는 것만 같았다.
‘적대 가문 짓으로 위장하려면 중심가에서 죽일 리 없을 텐데.’
아무리 붉은 달이 뜨는 날이라도 무장 군사들이 장원을 지키고 있다.
중심가까지 들어올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아냐, 아직 불안해하긴 일러.’
황도 정예군이 마차를 미행하고 있을 테니까.
마차는 쉴 새 없이 달렸다. 약 한 시간쯤 흘렀을까.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서 나는 다시 눈을 꽉 감았다.
단단한 팔을 가진 자가 나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얼마쯤 지나서 내가 간 곳은…….
‘푹신?’
등에 푹신한 감촉이 느껴진다.
그리고 어떤 향이 코끝에서 훅, 느껴졌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확 떴다.
이건 익히 알고 있는 향이었으니까!
“오는 길은 편안했나, 나의 릴.”
이 미친 감금범의 향.
그러니까 라온의 향기였다.
어두운 방 안에 붉은 달빛이 스며들었다.
달빛을 등진 그가 달콤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내가 누워있는 침대에 가볍게 앉았다.
“어, 어떻게…….”
“무엇을 묻는 거지. 내가 널 어떻게 알아봤는지?”
“…….”
“어째서 납치한 자가 발데릭이 아닌 나인지?”
“…….”
“그도 아니라면 네 오라비들의 행방?”
“……전부요.”
그가 빙그레 웃으며 내 뺨을 감쌌다.
“내 왕궁에 있을 때부터 네가 신분을 위조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
“어, 어떻게?”
“기품은 숨길 수 있는 게 아니거든.”
그의 손이 뺨을 타고 미끄러져 귓가에 닿았다.
나는 그의 손을 확 뿌리쳤다.
“헛소리 말고요.”
라온이 빙그레 웃으며 손을 가볍게 털었다.
“난 내 소유의 물건엔 철저한 검사를 해. 그건 너도 알지 않나.”
“…….”
“수도 없이 날 독살하려 한 친모가 있으니까.”
“……하여간에 어렵게 말하는 건 버릇이지.”
그가 어깨를 으쓱해서, 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몸을 반쯤 일으켰다.
“왕궁에 있을 때부터 나를 조사했고, 내가 위조 신분으로 칸시스에 들어왔다는 걸 알아냈다고 말하면 되잖아요.”
그는 쿡쿡 웃고 내 어깨에 턱을 걸쳤다.
“두 번 말하게 만들지 않는 것도 취향이라고 말하면 넌 화를 내겠지.”
“알면 비켜요.”
“처음부터 귀족이란 건 알았어. 아스트라가 고향이라니 방계 귀족쯤 되는 줄로 알았지.”
“…….”
“그런데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칸시스 대륙에 유학을 왔다잖아. 못 알아보는 것이 이상하지 않나.”
“그럼 대놓고 만나러 올 것이지 왜 릴을 찾으라고 시키고, 마도병 같은 어마어마한 걸 발데릭과 거래했어요?”
“그래야 네 멍청한 숙부가 네 납치를 뒤집어써 줄 테니까.”
……처음부터 이걸 노렸구나.
발데릭이 내 납치를 꾸미도록 만든 거다.
그래야 날 빼돌리고, 그 죄를 발데릭에게 뒤집어씌울 수 있을 테니.
“난 말이야, 릴.”
“…….”
“네가 다른 놈과 혼약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눈이 뒤집히는 줄 알았어.”
“…….”
“아스트라 공작이 용을 가진 널 바란에 내어줄 리는 없으니, 방법은 이것뿐이잖아.”
“…….”
“그러니까 너무 화를 내진 말아줘.”
“미친놈이…….”
“욕조차 감미롭다고 하면 넌 내게 더 질리겠지.”
“알면 닥치라니까!”
나는 황급히 창문을 쳐다봤다.
‘붉은 달이 떴어. 라온도 가호를 쓰진 못해.’
이 집만 탈출하면 날 따라온 우리 정예병들이 있을 거다.
하지만 위험하긴 했다.
다칠 위험은 물론, 다치게 할 위험까지.
바란의 왕세자가 다친다면 이건 국제문제다.
‘제기랄. 이 자식의 가호 수준이 너무 높아서 <열람>으로도 읽을 수가 없었어.’
역시 몇 년 더 가호를 수련하고 왔어야 했나.
하지만 그랬으면 이놈에게 칸시스 대륙에서 잡혔을 수도 있어.
도주로를 살피던 찰나, 라온이 내 턱을 쥐었다.
“더는 도망가지 못해. 나의 릴─”
그때였다.
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무언가 창을 깨부쉈다.
뒤이어 더 큰 것이 날렵하게 창틀을 넘어왔다.
사람의 형태였다.
역광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는데…….
“그 손 놔.”
익숙한 듯 낯선 목소리에 나는 흠칫 시트를 비틀었다.
‘이거…… 이거 분명히.’
굳은 얼굴의 라온이 물었다.
“넌 누구냐.”
“놓지 않으면 자른다.”
“감히─”
“난 두 번 말하지 않아.”
이 3세는 악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