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70)
이 3세는 악역입니다-269화(270/390)
269화.
“알렉시스!”
소리치기 무섭게 챙─!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려왔다.
알렉시스의 검날이 라온의 목가에 향했고, 문 쪽에서 날아온 무언가가 막아낸 것이었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건 헤반이었다.
“이 자식, 바란의 왕세자를 정말로 죽일 셈이었냐.”
헤반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손가락 사이로 무언가를 잡고 있었다.
‘락시클이다.’
쉽게 말해서 미니 결계.
하지만 칸시스에서 개발한 마도구인 만큼 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붉은 달이 뜨는 날에도 쓸 수 있도록 마도병을 개조한 것이었다.
알렉시스와 라온에게 던졌던 것도 락시클이었나?
‘그런데 방어한 락시클이 깨졌잖아?!’
거짓말 조금 보태 다이아몬드 급의 강도를 자랑하는 결계를 깼다고?
눈을 휘둥그레 떴을 때였다.
“잡아라!”
헤반에 이어서 들어온 바란의 제3 왕자 유리가 소리쳤다.
바란의 살수들이 빠르게 쏟아져 들어왔다.
‘왕세자 직속 정예병들이다!’
특히 저 입가에 상처가 난 놈은 바란 제일검이라고 불리는 엄청난 자였다.
난 황급히 소리쳤다.
“이쪽은 이시론 공작의 아들이야! 생채기 하나라도 났다간 국제 문제라고!”
살수들이 움찔했다.
그러자 헤반이 헛웃음을 흘렸다.
“왕세자를 암살하려던 자가 이시론 공작가의 아들이라면 문제가 더 크지 않겠어? ‘아스트라 영애’.”
“먼저 날 납치한 건 그쪽이잖아, ‘브리크트 공자’.”
나와 헤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맹렬히 부딪쳤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알렉시스를 가로막았다.
“어느 쪽의 잘못이 큰지 내 나라의 황제 폐하께 따져달라고 할까?”
“하면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바란 왕국까지 들어왔다는 것도 밝혀질 텐데?”
“어쩔 수 없지. 그게 무서워서 바란까지 끌려갈 바에야 얌전히 제국 황궁에 구금되겠어.”
나는 입매를 비틀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괜찮겠어?”
“뭐?”
“날 또 납치하려면 황궁에까지 쳐들어와야 할 텐데. 그건 전쟁이라고?”
“이게 진짜…….”
헤반이 울컥 인상을 썼다.
유리가 힐끗 라온을 쳐다봤다.
“칼소이에 황궁에 들어간다면 두 번 다시 우리 손이 닿지 않을 거야, 형님.”
“해서.”
라온은 물러날 기색이 아니었다.
헤반과 유리가 난처한 듯 창밖을 쳐다봤다.
이러다 달이 지기라도 하면 가호 싸움이 될 것이다.
‘라온의 가호가 무시무시하니까 혹시 이시론 공자를 해치기라도 할까 염려하는 거겠지.’
하지만 알렉시스의 가호도 엄청난 것이다.
칼소이에의 시황제가 나라를 건국할 수 있었던 최강의 능력, <지배자의 위세>.
헤반은 공격계 가호 사용자, 유리는 엄밀히 말해 서포트 계열이긴 하지만 위험한 가호를 가지고 있다.
알렉시스가 <지배자의 위세>로 가호를 복제하면 이 주변은 초토화가 될 것이다.
‘여긴 우리 관할령일 텐데……!’
안 돼!
가뜩이나 가뭄으로 세수가 터무니없이 부족한데!
초토화가 되면 복구 비용이며 민가에 보상까지…….
금화들이 덜그럭덜그럭 춤추며 멀어지는 상상이 들었다.
나는 사색이 된 얼굴로, 급히 입을 떼었다.
“여기서 끝내면 없던 일로 해주겠어요.”
나로서도 일이 크게 번지는 걸 바라지 않는다.
일이 번지면 본성에서 알게 될 테고, 그러면 내가 바란에 있던 것도 드러날 터.
칼소이에 황궁에서 살면 된다고 으름장을 놓긴 했지만, 딱 싫다.
헤반의 표정은 밝아졌다.
“그렇다잖아!”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물러나면 납치는 없던 일이에요!”
“없던 일이 될 수 있어, 전하!”
하지만 정작 라온과 알렉시스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알렉시스가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뒤로 물러나라. 위험해.”
라온이 말했다.
“그 손 놔.”
“너야말로 더러운 시선 그만 떼지 그래.”
“죽고 싶어 환장한 것이냐, 이시론의 후예.”
“얻어맞고 나서도 지껄일 수 있는지 볼까.”
라온은 제게 다가온 헤반의 허리에서 순식간에 검을 빼 들었다.
“전하─!”
“알렉시스, 그만해!”
빨리 끝내고 돌아가야 한단 말이야!
그렇지 않으면……!
쿵! 쿵! 쿵! 쿵!
깨진 창문 아래로 정연한 군홧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창밖을 내다봤다.
군사들이 이 건물을 빼곡히 에워싸고 있었다.
그 사이로 보이는 검은 까마귀가 새겨진 붉은 깃발.
적오기(赤烏旗).
공작 직속군의 기였다.
즉, 도착하고 만 것이다.
내가 납치되었다는 하이디의 말을 듣고 온 할아버지가……!
“감히 내 손녀를 납치한 겁 없는 무뢰배는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라.”
그 소리에 헤반과 유리가 재빨리 달려와 창밖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군사들의 앞에 선 위풍당당한 노인을 보고, 기가 질려 중얼거렸다.
“크, 크로노스 아스트라…….”
“아스트라 공작이 왔어. 대체 어떻게…….”
나는 빡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나 빨리 놔주라고 했잖아.”
“뭐?”
“이제 어떡할 거야, 이 웬수들아! 할아버지가 나섰으니 전쟁이잖아!”
사태를 수습할 걸 생각하니 머리가 다 아프다.
* * *
본성.
발데릭이 군사들에게 에워싸여 본성으로 들어온 날 보고 새파랗게 질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할아버지의 외투를 걸친 내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아, 아니, 전하! 아버님, 어찌 바란의 왕세자를 구속하신 겁니까─!!”
오늘만 사는 할아버지가 라온을 쇠사슬로 묶어서 온 것이다.
발데릭과 구스타프, 바스티나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달려왔다.
구스타프가 꽥 소리쳤다.
“당장 구속을 풀지 못하겠느냐!”
바스티나도 날카롭게 동조했다.
“왕세자 전하께 이 무슨 짓─”
쾅─!
할아버지가 검집으로 바닥을 거세게 내리쳤다.
멍청한 숙부들과 고모가 움찔, 어깨를 움츠렸다.
“아, 아버님.”
“아버님……?”
할아버지는 무감한 표정으로 단상 위에 있는 금좌를 향해 걸어갔다.
금좌에 앉은 그가 묶여 있는 바란의 사람들을 쳐다봤다.
헤반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발데릭 공에게 협조한 것뿐이오. 그의 부탁으로 공의 손녀를 구금했을 뿐, 관계가 없소.”
“아, 아니, 공자님……!”
딱딱하게 굳은 발데릭이 흠칫 소리쳤다.
‘하여간에 멍청하긴.’
저쪽에서 그럼 제 목숨이 위험해졌는데 의리를 지켜줄 줄 알았냐?
어떻게든 발데릭에게 덮어씌우려고 하겠지.
발데릭이 비명이나, 고함을 지르든 말든 헤반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정식 초청은 아니나, 우리는 바란의 왕족과 귀족이오. 그런 우리를 죄인인 양 묶는 것이 아스트라의 대접이란 말이오!”
가신들과 행정관, 혈족들마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헤반을 쳐다봤다.
“아스트라 공은 어서 구속을 풀고 전하께 죄를 청하시오.”
“목소리가 높구나.”
“뭐, 뭐요?”
“감히.”
“……!”
가신들, 행정관, 혈족들이 다 굳어있던 건 바란의 항의가 겁나서가 아니었다.
“닥쳐. 우리 할아버지가 너희를 싹 죽일까 봐 심장 떨리니까.”
내가 속삭이자 헤반이 흠칫했다.
“……뭐?”
“우리 할아버지의 위명을 못 들어봤어?”
“네 조부는, 그러니까, 크로노스 아스트라…….”
그래, 크로노스 아스트라.
단신으로 본성에 쳐들어가 선대 공작의 목을 딴 자.
피가 식지 않은 수급의 머리채를 잡아 질질 끌고 가던 자.
해서 인간 도살꾼이라는 별칭까지 있던 사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나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내 증조부가 누구의 핏줄이야.”
“그야 아스트라 가의…….”
“그래, 부친은 아스트라 공작. 모친은!”
“……!”
“타 대륙의 황족이었다고. 즉, 증조부는 황위 계승권까지 가진 황족이었단 말이야. 그런 사람까지 단숨에 죽였어.”
“…….”
“끄나풀들은 어떻게 되었게? 물론, 그 중엔 타 대륙의 귀족들도 있었지.”
“어, 어떻게…….”
“산채로 싹 땅에 묻었어.”
“……!!”
한 번 화가 나면 황제도 말릴 수 없는 인사가 우리 할아버지였다.
숙부, 고모, 가신들과 행정관들. 모두가 그런 할아버지의 성미를 알고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눈치를 보고 다시 속삭였다.
“알았으면 말 높여라, 응?”
“아스트라 공작…… 님, 일단 전후 사정을 들어주십시오.”
헤반의 말씨가 공손해졌다.
“무슨 사정.”
할아버지의 말에 헤반이 마른침을 삼켰다.
“저희는 진정 발데릭 공의 요청에 협조한 것뿐입니다. 무슨 일로 손녀 따님을 잡아두라 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헤반 브리크트.”
“예, 예, 공작님……!”
“나는 거짓말을 일삼는 자를 싫어해.”
“……예?”
“일단 겁 모르고 날뛰는 세 치 혀부터 베어주마. 드뷔시.”
말하자 드뷔시 자작이 헤반의 턱을 잡았다.
우리 가문에서 유일한 정상인인 바실레 고모가 황급히 나섰다.
“아버님!”
“너 또한 벌하여야겠느냐, 바실레.”
좌중들이 모두 움찔했다.
바실레 고모가 흠칫, 치맛자락을 쥐었다.
“아버님이 아스트라에서 난동을 부린 자를 처벌하시려면, 저들의 증언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잘한다, 고모님!
“혀를 자르는 것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너희는 나를 우습게 보는구나.”
할아버지의 말에 성이 얼어붙었다.
할아버지는 싸늘한 표정으로 라온의 무리와 발데릭을 둘러보았다.
“발데릭이 내 뒤에서 바란과 무기를 거래한 것을 모를 줄 알았더냐.”
“아, 아버님……!”
“아니면 바란의 왕세자가 어떤 목적을 위해 발데릭을 이용해 에릴로트를 납치하려는 것을 모를 줄로 알았느냐.”
“……!!”
“내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 내가 진정 모를 줄로 알았냔 말이다.”
발데릭과 헤반, 유리 등의 낯빛이 흙빛이 되었다.
“우습구나, 왕세자여.”
“…….”
“너는 그 오만으로 기인하여 이곳, 아스트라에서 죽는다. 남길 말이 있느냐?”
라온의 입매가 삐뚜름히 올라갔다.
그가 나를 쳐다봤다.
“하면 혼으로 남아 그녀의 곁에 자리할 것이다.”
“뭐라.”
“지금 죽이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를 죽여 손에 넣을 것이니.”
“…….”
“기회는 한 번뿐이야, 아스트라 공작.”
사람들이 눈을 꽉 감았다.
바란과의 전쟁이 목전까지 와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저 미친놈이…….’
할아버지가 픽 실소했다.
“하면 그 기회, 놓치지 말아야지. 무엇하느냐, 드뷔시.”
“예, 공작님.”
드뷔시 자작이 한숨을 삼키고, 검을 치켜들었다.
바실레 고모까지 포기하고 눈을 꽉 감았다.
그때였다.
“안 돼요!”
내가 소리치며 할아버지에게 달려갔다.
“할아버지, 죽이지 마세요, 네?”
“너를 납치하여 끌고 가려던 자야. 널 가두고 끔찍한 실험의 실험체로 삼아 내 힘을 약탈하기 위해─”
“아니에요!”
할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나도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지만……!
“라온 왕세자는 그냥 저를 좋아하는 것뿐이에요…….”
“……뭐?”
“뭐라고요?”
“예?”
“무슨…….”
나도 진짜 내 입으로 말하기 창피해 죽겠다.
나는 수치심 때문에 눈을 꽉 감은 채로 왕세자를 척, 가리켰다.
“쟤가 제가 좋대요.”
“…….”
“왕비로 삼고 싶어서 데려가는 거예요. 실험체로 삼으려는 게 아니라.”
할아버지는 선대의 실험체로 젊은 시절 끔찍한 실험을 당했다.
아마 그래서 ‘에릴로트를 실험체로 삼으려는 줄 알고’ 더욱 분노했겠지.
할아버지의 눈동자가 도르륵 굴러서 라온에게 향했다.
라온이 뻔뻔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랑하고 있어, 릴을.”
“이…….”
“나의 비로 삼아 평생을 함께할 것이다.”
“이, 이 미친놈이……!! 내 검을 가져와라!!”
번개처럼 일어난 할아버지가 라온의 멱살을 잡고 분개했다.
나는 할아버지의 허리에 매달려 소리쳤다.
“왕세자 무리를 죽이고 전쟁을 벌이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있어요!”
“놔라! 죽여버릴 것이다!”
아니, 실험체로 삼으려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왜 더 흥분했어!
나는 꽥 소리쳤다.
“죽이면 미워─!”
“……뭐?”
거짓말처럼 할아버지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어?’
뭐지?
이게 먹혀?
나는 할아버지의 몸에 손을 떼고, 슬쩍 그를 쳐다봤다.
“미워……?”
“너, 너…….”
“할아버지, 미워요……?”
“어찌 그런 말을……!”
먹힌다!
‘이거 확실히 먹히잖아.’
어릴 때나 먹히는 줄 알았는데, 오랜만에 본 손녀가 해도 먹히는 말인가 보다.
라온이 정신없이 나를 쳐다봤다.
“나를 구해주려는 것이냐, 릴.”
나는 그런 라온을 쳐다도 보지 않고 할아버지에게 소리쳤다.
“바란에서 보상금을 받아내야 하는데, 못 받으면 미워요!”
할아버지와 라온이 동시에 침묵했다.
좋아.
* * *
나는 한숨을 내쉬며 본성의 소응접실 소파에 앉았다.
이번 일을 정리하기 위해 헤반, 유리와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청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징그러운 라온은 어딘가에 처박아두고.
일단 첫 번째 대담자는 헤반이었다.
나는 양손이 묶여있는 헤반을 빤히 쳐다봤다.
“나도 나지만, 너도 너다.”
“헛소리 말고 손이나 풀어주지, 그래?”
“5억 골드에 마도병 100갑. 납치의 보상으로 받아야겠어.”
“헛소리하고 있군.”
헤반이 흥, 코웃음 쳤다.
나는 소파 팔걸이에 팔을 걸친 채로 턱을 괴었다.
“헛소리 같아? 봤잖아, 우리 할아버진 정말로 너희를 죽일 셈이셔.”
“마도병 100갑이 어린애 이름인 줄 아는 거냐? 왕께서 눈엣가시 같은 왕세자를 위해 잘도 그만한 수를 내어주시겠구나.”
“너희 가문에서 비밀리에 제작한 마도병이 있잖아?”
“……너!”
그걸 어떻게 아느냐는 표정이었다.
왜 모르겠는가?
‘내가 그런 정보를 얻으려고 왕궁에 들어간 건데.’
나는 헤반을 쳐다봤다.
“내놔. 그리고 발데릭과 거래했다는 증거품이 필요해.”
“내가 왜. 왕세자께서 자리를 잃는다면 내 가문에서도 그를 버리면 그만이야. 여자에 미친 왕세자를 위해 그만한 손해를 감수하는 미친놈으로 보여?”
“하지만 너, 나를 좋아하잖아.”
“……뭐?”
나는 빙그레 웃었다.
“너 같은 셈 빠른 남자가 왜 왕세자를 쫓아왔는지 모를 것 같아?”
“……헛소리.”
“다시 날 보고 싶었던 거잖아?”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헤반의 턱을 손끝으로 들었다.
“난 왕궁에서 늘 네 시선을 느껴왔어.”
“…….”
“지긋하고, 애타는 시선. 언제나 고개를 돌리면 네가 있었지.”
“…….”
“인정해, 헤반. 그렇다면 내가 눈 한 번 맞춰줄지도 모르잖아?”
나지막하게 속삭이자, 그가 이를 악물었다.
“너, 그걸 알고도…….”
“그래, 헤반. 난 나쁜 년이야. 그래서 넌 날 좋아하잖아.”
“…….”
“줄래? 마도병.”
이 3세는 악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