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73)
이 3세는 악역입니다-272화(273/390)
272화.
대만찬장에는 방계 귀족과 초청받은 인근 귀족들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이 살바토레 황자, 바란의 왕세자 라온과 연을 맺고 싶어 하는 젊은 귀족들이었다.
황자가 입장하자 귀족들이 일시에 몸을 일으켰다.
“황가에 광영을. 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방계 귀족의 대표인 에즐로 가문의 레이디가 선창하자, 모두가 제창했다.
황자가 상석으로 향하고, 우리는 그 옆자리를 차지했다.
오른쪽 첫 번째 자리는 내 차지였다.
식사가 시작되었다.
사소한 잡담을 나누는 동안 한지혁이 내게 다가왔다.
주변의 눈치를 본 그가 목소리를 바짝 죽였다.
“라온이 합의하지 않았다.”
나도 그에게 속삭였다.
“죽어도 우리에게 위협당했다고 고발하겠대? 날 납치하려고 했다는 걸 제국 황제가 알면 저도 곤란할 텐데?”
“그런 걸 두려워할 놈이던가. ……미친놈이잖아.”
오늘만 사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네.
할아버지와 라온.
그 둘이 붙으니까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는다.
“현재 회유 중이야?”
“그래.”
“식사 후 내가 간다고 해.”
“황자 의전은 누가 맡고.”
“오라버니에게 맡겨야지.”
“……발자크를?”
한지혁이 괜찮겠느냐는 듯 되물었다.
나는 지금도 살바토레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발자크를 응시했다.
“……요슈아도 함께.”
“다행이네. 황자가 아스트라에서 암살될 뻔했어.”
한지혁이 물러났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양고기 로스를 나이프로 베어내며 말했다.
“전하, 관할령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송구하지만 잠시 자리를 비워야겠습니다.”
황자가 나를 힐끗 쳐다봤다.
그러나 다시 식사에 시선을 고정하고 말했다.
“그래.”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발자크와 요슈아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황자가 신관으로 접근할 수 없게 해줘.”
“바란의 왕세자에게 가는 거야?”
“응.”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나는 요슈아와 발자크를 제외한 다른 3세들도 데리고 식당을 나섰다.
“왕세자와 3왕자, 브리크트 공자는 내가 맡을 테니 언니와 오라버니들이 바란의 다른 사람들을 맡아줘.”
“우, 우리가?!”
애덤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숙부님과 고모님들은 감사 준비로 정신이 없으시잖아. 발데릭 숙부와 관련해서 조사받는 분들도 계시고.”
“그, 그야 그렇지만…….”
“우리가 해야 해.”
리앙틴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바란의 국법도 공부해놨어. 맡겨줘!”
“법으로 협박하는 게 먹히겠냐. 멍청하기는.”
“그럼 파비오, 넌 다른 방법이 있어?!”
두 사람이 투닥거리던 찰나, 셀레네가 물었다.
“여전히 고집을 부리면?”
“못 부릴 거야. 함께 온 사람들은 라온 왕세자의 측근들이야.”
“그렇겠지. 사적인 여행에 함께할 만한 사이일 테니까.”
“라온의 안위를 걱정할 테니 더 고집을 부리진 못해. 저쪽에서도 잘못이 있는 만큼 더더욱.”
“응.”
나는 라온의 측근들을 잘 알고 있다.
바란 왕의 눈 밖에 난 라온을 선택한 만큼, 절박해져 있었다.
‘설득만 잘하면 분명히 먹혀.’
우리는 빠르게 걸었다.
그리고 라온이 있는 방에 막 노크하려던 때였다.
“저…….”
등 뒤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대만찬장에서 보았던 방계들이 있었다.
가장 앞에 있는 레이디는 인사를 선창했던 에즐로 영애였다.
리앙틴이 기막힌 얼굴로 물었다.
“여긴 무슨 일이지? 황자 전하와 함께 있지 않고!”
“아스트라에 큰일이 생긴 거지요?”
“뭐?”
“아버지께 들었어요. 공작님께서 바란의 왕세자 전하를 위협하셔서 큰일이라고요…….”
“그게 너와 무슨 상관—”
“아스트라의 위기잖아요. 저희도 힘을 보탤 수 있게 해주셔요…….”
다른 3세들이 헛웃음을 삼켰다.
리앙틴은 부글부글 끓는다는 얼굴로 소리쳤다.
“힘을 보태? 네까짓 게 뭘 할 수 있는데!”
“너, 너무하셔요, 영애…… 저희는 그저 아스트라의 내일을 위해서…….”
에즐로 영애가 울먹였다.
따라온 방계 귀족들은 불쾌한 표정이었다.
그들이 말했다.
“본가의 위기에 분가가 힘을 보태는 것이 무슨 문제입니까?”
“이 아스트라 장원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본가만이 아닙니다. 저희 또한 아스트라의 백성. 충분히 도울 수 있는 입장이란 말입니다.”
로레이나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리앙틴의 말이 틀리지 않지. 너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러자 에즐로 영애가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엎드려 읍소라도 하겠어요……!”
리앙틴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아스트라의 혈족이 타국인들에게 엎드려 빌겠다고? 너희는 가문의 명예를 뭐로 알고……!”
“며, 명예보다 중요한 게 있지 않나요!”
“뭐?”
“전쟁이 나면 가장 고통 받는 건 백성들이에요…….”
에즐로 영애가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명예를 중시하시는 본가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본가의 자존심으로 인해 전쟁에 동원되어야 할 백성들은…….”
로레이나가 날카롭게 대꾸했다.
“조부님께서 자존심으로 전쟁을 벌이는 어리석은 지도자란 말이냐!”
“어, 어리석은 건 공작님이 아니라 바, 발데릭 님이시지요……!”
“……뭐?”
“적어도 발데릭 님의 따님이신 로레이나 아가씨께선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없을 텐데요…… 또…….”
에즐로 영애가 날 쳐다봤다.
이 문제의 시발점엔 나도 있다는 듯이.
그러나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고개를 돌렸다.
“어, 어쨌든 저희는 이 일을 돕겠어요. 바란의 왕세자 전하를 뵙기 전까진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에즐로 영애가 꿋꿋하게 말하자, 다른 방계들도 동조했다.
나는 밀란에게 물었다.
“오라버니.”
“응?”
“저건 뭐야?”
내가 아스트라를 떠나기 전만 해도 분가는 본가의 그림자도 밟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억지를 부리며 당당히 굴고 있었다.
“뭐…… 이것도 다 본가의 탓 아니겠어?”
“빙빙 돌리지 말고 말하지 그래?”
“2세들의 경쟁이 심화되어서 방계들의 영향력이 강해졌거든.”
아하.
후계 싸움에 사람이 필요하니 방계에도 손을 뻗었구나.
2세들이 사람을 뺏기 위해서 싸웠기에 저들이 오만해진 거야.
밀란이 속삭였다.
“다들 후계 싸움의 수혜를 받았지. 에즐로 가문은 특히나.”
“왜?”
“백성들의 신임이 엄청나서 숙부들이고, 고모들이고 죄다 손을 뻗었거든.”
“그렇군.”
“그래서 어쩔 거야?”
밀란의 말에 나는 회중시계를 꺼냈다.
시간이 없다.
서둘러 살바토레 황자에게 돌아가야 한다.
‘방계는 물러서지 않을 것 같으니…….’
“좋아. 함께 들어가지.”
에즐로 영애와 방계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반면에 3세들은 울컥 소리쳤다.
“에릴로트!”
“더 지체할 수 없잖아.”
“하지만…….”
“황자가 이 일을 눈치채기 전에 돌아가야 해.”
“…….”
3세들은 매우 불만 어린 표정이었지만, 저들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방계들을 처벌하느라 더 지체했다간 황자가 문제를 눈치챌 수도 있었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에릴로트 아스트라입니다.”
안에선 대답이 없었지만, 곧 문이 열렸다.
문을 열어준 건 헤반이었다.
그가 내 뒤에 있는 수많은 젊은 귀족들을 쳐다봤다.
“에릴로트 아스트라만이 아니로군.”
“그렇게 됐어.”
“……아니로군요.”
“그렇게 됐습니다.”
“하여간…….”
헤반이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아스트라의 3세들입니다. 그리고…….”
그러자 에즐로 영애가 얼른 말했다.
“플로렌스 에즐로입니다!”
“그래서.”
“네?”
“해서 누구냐고.”
“프, 플로렌스 에즐로인데요…….”
왜 두 번이나 이름을 묻느냐는 얼굴이었다.
로레이나와 리앙틴이 짜증서린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로레이나가 말했다.
“아스트라의 방계 아이들입니다.”
“뭐 방계까지 찾아오시나.”
헤반은 코웃음을 치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왕세자의 허가를 받았는지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에즐로 영애와 방계 아이들은 눈을 끔뻑였다.
아직도 이름을 두 번 물은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리앙틴이 그들을 흘겨보았다.
“아스트라 내에서나 너희 가문이 알려져 있지, 바깥에서도 알려진 줄 알아?”
“아…….”
“아스트라의 방계라고 하지 않으면 저분들께선 너희가 누구신지도 모른다고!”
“…….”
방계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에즐로 영애도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3세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소파에 앉아있는 라온에게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따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3왕자님, 브리크트 공자와 함께 이동해주시죠.”
“정말이지 넌 뻔뻔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구나.”
“네.”
“예의를 몰라.”
“찾아오라고 일부러 억지를 부리시지 않았다면 어느 정도는 예의를 차렸을 텐데요.”
“눈치는 빠르고.”
그가 빙그레 웃으며 잔을 들었다.
안에 든 얼음이 짤랑 소리를 내며 술이 가볍게 흔들렸다.
“안으로 들어가서 말씀 나누시지요.”
“여기서 말해.”
“전하.”
“여기서 못할 얘기라면 단둘이 하거나.”
“전하와 단둘이요? 절대로 싫어요.”
대화를 듣던 3세들과 방계들은 어쩔 줄을 몰랐다.
협조를 얻으려는 건 우리인데, 너무 강하게 나가는 게 아니냐는 표정이었다.
“릴.”
“에릴로트입니다, 전하.”
“내가 점점 참을 수가 없어져.”
“…….”
“점점 너를 참을 수가 없어, 릴.”
“…….”
라온이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아주 지그시.
한지혁이 멜로눈깔이라고 부르던 그 시선이었다.
아주 재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저, 전하!”
에즐로 영애가 납작 엎드려 말했다.
“본가 영애의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
“…….”
라온은 저건 또 뭐냐는 표정이었다.
나는 침묵했다. 아마도 에즐로 영애는 ‘참을 수 없다’는 말이 무례를 두고 보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은 듯했다.
라온은 짜증 섞인 얼굴로 술잔을 내려놨다.
그러곤 에즐로 영애를 본 척도 않고 내게 말했다.
“네가 내게서 합의를 얻을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 그 방법이 무엇인지요……?”
이번에도 에즐로 영애가 말했다.
라온과 유리, 헤반이 쟤는 뭐냐는 표정으로 순진무구한 표정의 에즐로 영애를 쳐다봤다.
나는 에즐로 영애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일어나세요.”
“하지만……!”
“어서.”
에즐로 영애는 휙, 내 팔을 뿌리치고 라온에게 매달렸다.
“부디 본가를 용서해주셔요. 전쟁이 난다면 백성들이 고통받습니다!”
“…….”
“가뜩이나 아스트라의 백성들은 가뭄과 각종 재해로 시름하고 있습니다. 부디…… 부디 그들을 가엾게 여기셔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에즐로 영애를 보고 방계들은 감동 어린 표정이었다.
바란의 3왕자, 유리가 서둘러 에즐로 영애를 떼어냈다.
“그만하십시오.”
“용서해주실 때까지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제 목을 자르셔도, 저는, 전 백성들을 위해……!”
“일어나십시오. 어서요!”
“죽이신다더라도 못 갑니—”
그 순간이었다.
콰과과과과곽—!!
에즐로 영애가 붕 떠올라 벽에 처박혔다.
그리고 온몸의 핏줄이 파랗게 돋아났다.
나는 황급히 소리쳤다.
“전하!”
느른히 자리에서 일어난 라온이 말했다.
“죽여달라지 않아. 하면 죽여줘야지.”
“그만 하세요!”
라온의 가호는 두 가지다.
<사이코메트리>.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
피부를 건너뛰어 내장을 파괴할 수 있는 실로 무서운 공격형 가호였다.
“아, 으, 으극……!”
에즐로 영애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방 안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방계는 물론이고 본가의 3세들, 심지어는 칸시스 대륙인들까지 딱딱하게 굳어졌다.
나는 파비오에게 소리쳤다.
“뭐해!”
“어?”
“결계를 발동해!”
“어, 어어, 그래!”
파비오가 자신의 가호인 <결계>를 펼치고 에즐로 영애와 라온 사이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라온의 힘을 튕겨내는 듯했으나, 곧 쩌저적! 소리와 함께 결계가 파괴되었다.
‘파비오의 레벨로는 상대가 안 되는구나!’
파비오의 가호는 2단계쯤.
하지만 라온은 4단계 이상으로 가호를 개발한 사람이었다.
‘이러다 이 미친놈이 방계 아이를 죽이겠어!’
그렇다면 정말로 전쟁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다급히 고민하던 찰나였다.
챙강—!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라온의 앞에 황금색의 파편이 휘날렸다.
누군가 가호를 파훼한 것이다!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열린 문 밖으로 보이는 사람은…….
“알렉시스…….”
“실례. 열려 있기에.”
그가 파비오의 가호를 복제하여 라온의 공격을 파훼했다.
에즐로 영애가 스르륵, 미끄러졌다.
성큼성큼 걸어온 알렉시스가 나를 등 뒤로 감추었다.
“더 하시겠습니까?”
“계속 거슬리는구나.”
“해서 맞서시려는지요. 아쉽지만, 전 질 자신이 없어서.”
“……너.”
라온의 손에 핏줄이 불거지며, 실금 같은 빛이 모여들었다.
유리와 헤반 또한 그의 앞을 가로막고 알렉시스와 맞섰다.
그들의 손에도 마력 시동의 흔이 맺혀 있었다.
우리 쪽에선 밀란과 파비오, 로레이나가 나섰다.
로레이나의 피부에 짐승 털이 돋아나고, 파비오는 결계를 펼쳤으며, 밀란이 빛의 사슬을 팔에 감았다.
“그만!”
나는 소리치며 알렉시스의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만 하세요, 전하.”
“글쎄. 내키지 않는데.”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렇게 되면 하는 수 없다.’
나는 바란의 호위병이 허리에 찬 단검을 꺼냈다.
그리고 다시 소리쳤다.
“그만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검 따위로 날 막아설 수 없다는 걸 알잖아, 릴.”
“이거 확 삼킨다!”
“……뭐?”
“……!”
“……!!”
라온이 드물게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유리와 헤반, 알렉시스며 사촌들까지 놀란 표정이었다.
“다들 물러나요! 안 그러면 진짜 삼켜버려요!”
“잠깐!”
“뭐 하는 짓이야!”
유리와 헤반이 다급히 말했다.
“에릴로트!”
“너, 너, 이 계집애! 그만 못해!”
“그만해!”
“야, 이 바보야!”
사촌들도 나를 뜯어말렸다.
내가 한다면 하는 사람인 건 저들도 아주 잘 알고 있었으니까.
라온이 칫, 혀를 찼다.
그리고 양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알겠어. 알겠으니까 그만해.”
“……합의는요?”
“그것까지 바라는 건 너무 욕심이 많은데.”
“삼켜요?”
“……젠장.”
헤반이 황급히 라온에게 말했다.
“한다고 해!”
“…….”
“저 성격 몰라? 진짜 삼킬 거라고!”
“…….”
라온은 한참 침묵하다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넌 야비해, 릴.”
“몰랐던 것도 아니잖아요.”
“네 뜻대로 할 테니 그 빌어먹을 검 내려놔.”
나는 씩 웃으며 검을 내려놨다.
그런 나를 에즐로 영애가 굳은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 3세는 악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