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74)
이 3세는 악역입니다-273화(274/390)
273화.
사촌들과 방계들은 황당해하는 얼굴이었다.
이거로 해결 완료라고?—딱 그런 표정이었다.
‘쉬울 수밖에.’
어차피 라온 무리는 합의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바란 왕은 라온을 왕세자 자리에서 밀어내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총애하는 막내 왕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그러니 이 일이 바란 왕 귀에 들어가는 건 ‘날 좀 폐위시켜주세요’ 하는 거나 마찬가지란 말이다.
‘그런데도 뻗댄 이유는…….’
나는 라온을 힐끗 쳐다봤다.
그는 언제 소리쳤냐는 듯 여상한 표정이었다.
‘……내가 직접 부탁하러 오라고.’
그 이유였을 테니까.
나는 단검을 라온의 호위에게 건넸다.
그리고 셋 중 가장 정상인 3왕자 유리를 쳐다봤다.
“그럼 그런 거로 알고 갑니다.”
유리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사촌들을 둘러봤다.
“그럼 가지요. 살바토레 황자가 기다리니까.”
“으응…….”
“그, 그래.”
난 알렉시스와 함께 먼저 방을 나섰다.
3세들이 라온에게 인사한 뒤, 나를 쫓아 나왔다.
방계들도 뒤늦게 헐레벌떡 따라왔다.
살바토레 황자가 있는 구관으로 돌아가며, 알렉시스에게 물었다.
“여긴 어떻게 왔어?”
“네 조부께서 연락해오셨기에.”
“할아버지가? 왜?”
“글쎄. 이유는 전달받지 못했고, 이 시간에 집무실에서 만나자는 얘기만 들었어.”
“이런 시기에 너를 보자고 하셨다고? 왜지…….”
중얼거리던 찰나.
“아가씨.”
뒤에서 플로렌스 에즐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척척 내게 다가왔다.
“여쭙고 싶은 말이 있어요.”
“나중에 하죠.”
“지금 여쭈어야겠어요. 어째서 그런 위험한 일을 하신 건가요?”
“……네?”
되묻자, 그녀가 눈에 부릅 힘을 주며 나를 쳐다봤다.
“검날을 삼키고서라도 백성들을 지키겠다는 마음이셨을까요?”
리앙틴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걸 굳이 지금 대답할 이유가 있어?”
“있어요. ……만약 맞다면 사과드려야 하니까요.”
“사과?”
플로렌스 에즐로가 나를 쳐다봤다.
“저는 아가씨가 나쁜 분인 줄로 알았어요. 듣자 하니, 관할령의 가신들에게서 억지로 일자리를 빼앗으셨다고 하고…….”
“…….”
“손윗사람에게 무례하시기도 했고, 또 사치가 심하기도 하시고…….”
“…….”
“백성들이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구휼에 힘쓰시긴커녕 영축일에 다른 관할령과 경쟁하느라 재물을 펑펑 쓰셨고…….”
“…….”
“백성들의 소중한 세금으로 생활하면서 엄청난 유학 자금을 쓰기도 하시고…… 기타 등등 다른 이유까지 해서 아가씨가 나쁜 분인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요?”
“만약 아가씨께서 백성을 위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분이라면 제 오해를 사과하고 싶어요.”
플로렌스 에즐로가 내 손을 덥석 잡고 생긋 웃었다.
“하지만 우린 백성 덕에 존재하니까. 그래서 난 이들을 위해 힘쓰고 싶어. 그게 당연한 거고.”
‘이 애, 꼭 달리아 같네.’
달리아의 300배 정도는 머리가 굳어있는 것 같지만.
나는 플로렌스에게서 탁, 손을 빼냈다.
“당신 마음 편하자고, 한시가 바쁜 이때 굳이 사과를 해야 했나요?”
“……네?”
플로렌스 에즐로가 깜짝 놀라서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녀를 무감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런 사과라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 기준에 맞춰서 살았다고 칭찬받을 이유가 없으니까.”
“…….”
그렇게 말한 나는 플로렌스 에즐로를 지나쳐 걸었다.
로레이나와 리앙틴이 쯧, 혀를 차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 * *
플로렌스는 눈을 깜빡이며 에릴로트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방계 귀족들이 플로렌스를 에워싸고 인상을 찌푸렸다.
“무례하긴. 아직도 7년 전 아스트라 같은 기형적인 구조라고 생각하나 봐요.”
“방계가 분가의 그림자도 밟아선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구조 말이지요?”
“전 에레카 길라르 사건 때 직접 봤는데, 그 어릴 때도 오만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방계들이 투덜거리자, 플로렌스가 말했다.
“그러지 마세요.”
“네?”
“저는 이번 일로 소문으로만 사람을 판단해선 안 된다는 걸 배웠어요.”
“아…….”
플로렌스가 생긋 웃었다.
“나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백성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진짜 귀족다운 분시잖아요.”
“하여간에 영애는…….”
“너무 사람이 좋다니까요.”
방계 귀족들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
플로렌스는 양손을 가볍게 들며 말했다.
“또, 제가 화급을 다투는 지금 시간을 빼앗은 것도 맞고요.”
“사과를 위해서잖아요. 사과하는 사람에게 면박을 준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나빠요.”
“절 마냥 아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저를 위해선 반성해야 할 점을 지적해주셔야 해요.”
“나 참…….”
플로렌스는 맑은 얼굴로 에헤헤 웃었다.
“기쁘지 않나요?”
“대체 뭐가요?”
“본가에 존경할 만한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있다는 게요.”
“이렇게 순진하다니까!”
방계 귀족 소녀가 어휴, 한숨을 내쉬곤 팔짱을 끼었다.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정말 백성을 생각해서 검날을 삼키려고 했겠어요?”
“아니면요……?”
방계 귀족 영식이 흥, 코웃음을 치며 대신 대답했다.
“잘난 체를 한 거지.”
“잘난 체라고요?”
“바란의 왕세자가 정치적 이득도 포기할 만큼 자신을 아낀다. 그런 걸 우리에게 보여주려던 게 아니겠어?”
“…….”
방계 귀족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여간에 본가 것들은. 잘난 척할 기회라면 놓치질 않는다니까.”
“방계 가문의 세가 지난 7년간 얼마나 강해졌어요? 그런데도 인정하질 않아요.”
“우리가 연합하면 본가에서도 쩔쩔맬 거면서 말이야.”
“그래요.”
방계 귀족들이 투덜거리고 있을 때, 플로렌스는 치맛자락을 꽉 비틀었다.
‘뭐야.’
그런 거였어?
그런 이기적인 마음이었으면서 어쩌면 저렇게 당당할까.
에즐로 가문 지역의 백성들은 8할이 농사로 먹고 산다.
즉, 이번 가뭄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아스트라의 주인이라는 본가는 저희들 이목을 끄는 것에나 집중한단 말이야?’
플로렌스 에즐로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더는 좌시하지 않을 거예요.”
“예?”
“본가의 폭정, 이제 막아야겠어요.”
그녀가 결기 어린 눈으로 에릴로트가 지나간 자리를 바라보았다.
* * *
본성의 구관, 귀빈 응접실.
살바토레 황자와 라온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벌써 네 시간째.
두 사람의 분위기는 점점 심상치 않았다.
살바토레 황자가 찻잔을 달칵, 소서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해서, 제국의 제안을 물리시는 겁니까?”
“말이 기술 제휴가 아닙니까. 바란에선 칼소이에에서 배울 기술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죠.”
“…….”
“…….”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맹렬히 부딪쳤다.
리앙틴이 내 허리를 쿡, 찔렀다.
내가 ‘뭐?’ 하는 표정으로 보자 그녀가 인상을 쓰며 속삭였다.
“나서보지 그래?”
“내가 왜?”
“바란에서 기술을 배워올 수 있다면 제국에도 좋잖아.”
“황실만 좋은 일이지.”
난 이미 헤반과 마도병 거래를 앞두고 있었다.
바란의 마도력을 집대성한 그 어마어마한 무기.
받아오면 카인로드 숙부에게 해체시켜서, 우리 쪽에서 연구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황궁 좋은 일을 왜 해줘?’
리앙틴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서 이렇게 둘 거야? 곧 치고받을 태세인데.”
“받으라지 뭐.”
“전쟁 나는 꼴을 보고 싶—!”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진 리앙틴이 헙, 입을 다물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리앙틴에게 집중되었다.
리앙틴은 얼른 고개를 수그렸다.
나도 모른 척 앞을 보고 있었다.
다시 사람들의 시선이 떠난 후, 나는 리앙틴에게 속삭였다.
“전쟁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황자와 왕세자가 싸웠다고 날 리가.”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전쟁을 낼 뻔했잖아?”
“그건 왕세자의 목을 정말로 잘랐을 때나 그렇지.”
“그야 그렇긴 하지만…….”
리앙틴이 불안한 표정으로 살바토레 황자를 쳐다봤다.
“평소와 다르셔.”
“뭐?”
“짜증 날 정도로 여유롭던 사람이 오늘은 어쩐지…….”
그러고 보니까 오늘 살바토레는 좀 이상하긴 했다.
어딘지 조급해 보이니까.
‘그런데 나야 원화로 일하면서 살바토레를 겪어서 알지만, 장원에서만 지낸 리앙틴이 그걸 어떻게 알지?’
나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설마 언니, 아직도 황자에게 관심이 있어?”
“미, 미쳤어? 태양회에서 그 꼴을 당했는데. 열받아서 망하길 기원하며 살피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알게 된 거야.”
“마음 접어.”
“아니라니까.”
“알겠으니까 접어.”
리앙틴이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살바토레에게 말했다.
“전하, 곧 밤이 올 겁니다. 남은 이야기는 내일 마저 나누시지요.”
어차피 라온 쪽은 죽어도 제안에 응하지 않을 텐데.
그런 눈으로 바라보자 살바토레가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내 말에 동의하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지.”
“식사는 어찌할까요.”
“방에 준비해줘.”
“예. 하면 바란의 왕세자 전하께선……?”
그때까지만 해도 무뚝뚝한 얼굴이던 라온이 빙그레 웃었다.
“함께 할까.”
“계시는 방에 준비하지요.”
“아쉽네.”
황궁의 사자들은 묘한 표정으로 나와 라온을 번갈아보았다.
기이한 분위기를 느낀 모양이었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혈족들과 가신들은 식사를 위해 지하의 식당으로 향했다.
황궁인들과 바란인들도 각각 숙소에 향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방을 나섰다.
그런 내게 살바토레 황자가 말을 걸었다.
“바란의 왕세자와 막역한 듯싶은데.”
“저쪽에서 일방적으로 막역하게 여깁니다.”
“어떻게?”
“제가 예뻐서요.”
“…….”
살바토레 황자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아직까지 황자의 곁에 남아있던 황궁인들도 당황했다.
“아, 하, 하하, 예, 그, 그렇지요.”
“부친과 똑 닮아 누구나 설렐 외모시지 않습니까.”
“바란의 왕세자도 사내인가 봅니다, 하, 하하.”
그들이 어색하게 맞장구쳤다.
살바토레 황자는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하면 네 설득은 먹히겠군.”
“글쎄요. 여인의 미모에 홀려서 그만한 기술을 홀랑 내줄 멍청이로는 안 보이던데요.”
“세 치 혀도 쓸만하니 구슬릴 수 있지 않겠느냐.”
“제 혀는 분노를 끌어내는 데에 전문인지라.”
“계속 그리 나올 테냐.”
황자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나는 그를 힐끗 쳐다보고서 맞은 편에 앉았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정말로 여인 때문에 기술을 내줄 정도로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거든요.”
“그리 엄청난 기술을 요구하는 게 아니야. 우리가 얻어내고 싶은 것은 바란의 <아사르>다.”
아사르는 쉽게 말해 에너지 변화 장치 같은 거다.
“마철도에 들어가는 에너지 자원이 바닥을 보이고 있어.”
“……그렇다고 하더군요.”
“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더는 국가에서 마철도를 운행하지 못할 만큼.”
“아사르로 마철도를 운행하시려는 겁니까?”
“막대한 자금이 든 사업이다. 이대로 잘만 이어진다면 부황의 치세에 가장 큰 업적이 되겠지.”
“…….”
“부황께선 아사르를 얻길 바라고 계신다. 너는 이 나라의 백성, 나라의 아버지를 위해 나서야 마땅하지.”
“전하, 요새는 말입니다…….”
나는 삐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심부름만 해와도 부모가 아이에게 용돈을 줍니다.”
“……뭐?”
“공짜로 나서라시면 제가 되게 고민이 되는데 말이에요…….”
어쩔래?
그런 표정으로 보니, 살바토레가 헛웃음을 흘렸다.
“너란 녀석은…….”
“해서, 제가 좀 도와드립니까?”
“……무얼 원하지?”
“저도 그리 큰 것은 바라지 않아요. 황자 전하께서 가진 사재 중 하나면 됩니다.”
“해서.”
나는 얼른 한지혁에게 손짓했다.
한지혁이 헐레벌떡 품에서 양피지를 꺼내왔다.
나는 턱을 괸 채로 헤헤 웃었다.
“계약서, 써주시겠습니까?”
황자가 울컥 인상을 찌푸렸다.
황궁인들은 눈을 번쩍이며 황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살바토레 황자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종이에 무어라 휘갈겨 썼다.
내용은 대충 ‘아사르를 얻어올 수 있다면 내가 가진 사재 중 하나를 내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됐겠지.”
나는 계약서를 끌어안고 킬킬 웃었다.
“물론이지요~!”
—하며.
‘잘됐다.’
이 일만 해결 되면 새로운 축복의 땅은 내 거다!
* * *
한지혁에게 계약서를 잘 보관해두라고 말했다.
그리고 난 즉시 신관으로 향했다.
바란인이 머물고 있는 그 신관 말이다.
난 라온의 방으로 향…… 하지 않고, 그 앞에서 빙글 몸을 돌려 코너로 들어갔다.
마침 만나려던 사람이 문을 나서고 있었다.
“유~리~”
내가 코너에 반쯤 숨어서 부르자, 3왕자 유리가 흠칫했다.
“릴?”
“있지, 할 말이 있어.”
유리가 얼른 한발 뒤로 물러났다.
“싫어.”
나는 코너에서 나와서 유리에게 다가갔다.
“왜 이러실까. 우린 친구잖아?”
“…….”
“네가 내게 직접 ‘첫 친구가 되어줘’라고 했던 말을 잊었어?”
“……후회하고 있으니까 물러나.”
“그러지 말고 몇 마디만 나누자, 응?”
“너와 대화를 하면서 말리지 않은 적이 없어서 곤란해.”
유리가 슬슬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나는 헤죽헤죽 웃으며 유리에게 다가갔다.
이제 유리는 거의 괴물을 보는 표정이었다.
“너 아니어도 머리 아픈 일 천지다, 릴…….”
“에이, 내가 두통을 사라지게 해줄게. 네 전문 약이었잖아, 난.”
“더 무섭다고……!”
그때였다.
“아가씨!”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유리의 뒤에서 플로렌스 에즐로가 뛰어왔다.
그녀가 유리와 내 사이를 가로막고서 말했다.
“어째서 또 바란의 왕자님을 위협하십니까!”
얘는 또 왜 이래.
그녀가 입술을 꽉 깨물며 유리를 쳐다봤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지켜드릴 테니까요.”
“……예?”
유리도 ‘이 분이 왜 이러시지?’ 하는 얼굴이었다.
플로렌스 에즐로는 팔을 휙, 펼치고 나를 노려봤다.
“이래봬도 꽤 강력한 가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러나세요, 아가씨.”
이 3세는 악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