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78)
이 3세는 악역입니다-277화(278/390)
277화.
* * *
며칠 후.
본가만의 월말 만찬회가 열렸다.
만찬장에 들어간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전보다 규모가 훨씬 커졌는데?”
발자크가 대답했다.
“성인이 된 사촌들도 보좌관을 하나씩 데려오니까. 본가 만찬회라곤 하지만 할아버지의 측근들도 들어오고.”
“그렇구나.”
“게다가 본래도 사람 수는 많았지. 2, 3세만 해도 서른 명이 넘어가잖아. 네가 없는 동안 다들 몸집이 커져서 그래.”
그렇게 얘기하는 와중에, 다른 사촌들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게 아니라 장소가 대만찬장인 것에 놀랐겠지.”
“행사가 없는 날엔 제2 만찬장에서 하잖아.”
밀란도 다른 사촌들에게 말을 보탰다.
“이번엔 무시할 수 없는 귀빈들이 성에 잔뜩 있어서 1, 2부로 나뉘어 진행한다더라고.”
“아아.”
1부는 직계들만의 식사 자리.
2부에선 술을 곁들여 귀빈들과 함께 하는 모양이었다.
그 증거로 쇼뱅 산 위스키가 준비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특히 좋아하는 술이라 월말 만찬엔 빠지지 않았는데.
“안녕, 에릴로트!”
“디오네라 언니.”
“좋은 밤이야.”
“네, 셀레네 언니.”
나는 사촌들과 인사를 나누며 자리에 앉았다.
할아버지까지 도착해 만찬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던 중에, 바스티나 고모가 입을 열었다.
“방계들 말이에요.”
최근 직계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화제로 떠오르자, 모두가 그녀에게 집중했다.
“언제까지 까불게 놔두실 건가요, 아버님.”
나이프로 고기를 썰어내던 할아버지가 흘낏 바스티나를 쳐다보았다.
무미건조한 눈빛에 바스티나가 흠칫했다.
“아, 아니, 저는 무언가 뜻하는 바가 있어 놔두시나 싶어서…….”
할아버지의 최측근인 드뷔시 자작이 큼, 헛기침했다.
“2세들께서 지나친 관심을 주지 않는다면 사그라들 일입니다.”
“뭐?! 방계들의 방종이 우리 탓이란 말이냐!”
바스티나가 울컥 소리쳤다.
그러자 다른 2세들도 가세했다.
“애초에 경쟁이 과열된 이유가 무엇인데!”
“관할령의 순위를 매겨서 상벌을 정하는 게 문제잖소!”
“후일을 위해선 타지역과 협력해 관할령을 발전시켜야 한단 말이야!”
그러자 할아버지의 측근 가신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건 관할령의 폭정을 제재하기 위한 방안이 아닙니까.”
“해서 아스트라 장원이 이만큼 발전한 것이고요.”
2세들은 다시 울컥 반론을 펼쳤다.
분위기가 경직되었다.
할아버지의 미간이 미미하게 꿈틀거렸다.
그때, 내가 입을 열었다.
“방계들의 자치권을 빼앗으면 될 일입니다.”
“뭐?”
“뭐라고?”
순식간에 내게 시선이 쏠렸다.
나는 입가를 닦으며 할아버지를 보았다.
“할아버지께서 집권하신 뒤, 아스트라의 토지가 이전과는 비할 수 없이 커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아가씨.”
“해서, 직계만으론 다스릴 수 없기에 소지역을 방계에게 맡겼지요.”
“예.”
“문제는 구조입니다. 그 지역에서 나오는 세금으로 통치하고, 세금의 일정 부분을 공작성으로 보내는 구조.”
할아버지가 식기를 놓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그러나 10년 전만 해도 방계들은 본가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생활했습니다.”
“…….”
“그때는 그들이 감히 본가의 그림자라도 밟을 수 있었습니까?”
“…….”
“그게 비단 본가의 위세에 짓눌렸기에 그랬을까요?”
“…….”
“지원금이 줄어들까, 혹여 끊기기라도 할까 두려웠던 게지요.”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나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방계의 방종을 막고 싶으면 군소 지역의 자치권을 회수하시면 될 것입니다.”
다들 내 말에 동의하는 표정이지만, 선뜻 동조하진 못했다.
“방계들의 저항이 엄청날 것인데…….”
“소지역이라곤 하지만, 그들을 모두 합하면 장원의 3할이 넘는 규모야. 작정하고 반기를 들면…….”
“그걸 또 언제 처리하겠어. 장원 밖에도 견제해야 할 세력이 수두룩한데.”
다들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운데, 드뷔시 자작이 쿡쿡 웃었다.
데콘스 숙부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자작은 혼자 뭐 이리 즐거운 표정인 게요?”
“에릴로트 아가씨와 공작님의 견해가 같은 것이 놀라워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공작님께서도 자치권을 회수할 방안을 궁리 중이셨습니다. 해서…….”
드뷔시 자작이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곧 월말 만찬회의 자리를 바꿀 것이다.”
“……!”
“……!!”
직계 모두가 눈을 홉뜨고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만찬회의 자리는 정해져 있다.
할아버지의 자리는 상석.
장남과 차남이 각각 오른쪽과 왼쪽 자리를 차지한다.
그 뒤로는 태어난 순서대로 자리하는 것이다.
즉, 저 말은…….
‘이 일을 해결하는 자를 후계로 삼겠다.’
—는 뜻이었다.
벌써부터 2세들의 눈빛에 욕망이 일렁였다.
전쟁의 시작이었다.
* * *
월말 만찬회의 1부가 끝이 났다.
각각 일가끼리 모여 무언가를 떠들었다.
부모와 그리 화기애애하지 않은 셀레네 언니도 모친인 바스티나 고모에게 불려갔다.
내가 앉은 자리로도 요슈아와 발자크가 다가왔다.
발자크가 주변을 매섭게 둘러보며 속삭였다.
“리시먼드 형님에게도 소식 전했다.”
“그래서?”
“황도 저택을 비울 수 없어서 내려오진 못하지만, 확실하게 지원한다더군.”
“아빠는?”
“그게…… 젠장.”
발자크가 인상을 찌푸리자, 요슈아가 말했다.
“통신 불가 지역에서 전투 중이신 모양이야. 당분간 돌아오시긴 힘들겠어.”
“……하면 우리끼리라도 해야 해.”
요슈아와 발자크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래.”
“당연하지!”
친척들이 벌써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2부를 빠지는 친척들도 여럿.
‘분명 방계들을 만나러 간 거겠지.’
눈을 빛내며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황실이나 바란의 도움을 받으려는 걸 거야.’
요슈아가 물었다.
“어떻게 할 거야?”
“일단 요슈아 오라버니가 저들의 동향을 감시해줘.”
“그래.”
“발자크 오라버니는 황도 저택군을 데려와.”
“저택군?”
“이건 전쟁이야.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군사들을 동원하는 자가 생길 수도 있어.”
“알겠어. 넌 어떻게 하려고?”
“나? 나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할아버지와 친하게 지낼 거야.”
“뭐?”
“어?”
발자크가 고개를 갸웃했다.
“조부님은 이번 일을 도와주지 않으실 텐데…….”
그러나 요슈아는 눈을 크게 떴다.
“에릴로트, 너 설마…….”
“자, 그럼 시작!”
우리 남매가 전투에 투입되는 순간이었다.
* * *
며칠 후.
나는 할아버지의 곁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그래서요. 칸시스 대륙에서 빼내 온 기술을 좀 더 연구해보려고요.”
“…….”
“아, 엄청 맛있는 디저트도 있었는데! 요리사를 시켜서 만들어와봤어요.”
나는 에헤헤 웃으며 라탄 바구니를 내밀었다.
할아버지와 드뷔시 자작이 잠시 서로를 쳐다보았다.
드뷔시 자작이 입을 열었다.
“아가씨.”
“네, 말씀하세요.”
“데이몬드 님께서 계시지 않는 지금, 남매가 힘을 규합해 애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도 밖엔…….”
집무실 밖에서 사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오, 게루아 공! 마침 잘 됐군.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그러니까 2년 전에 시실리아 자작 부인이 데려왔던 남자애. 그 남자애가 자작의 사생아일 거야. 아, 정보가 필요하다니까! 공작성에 출입하는 자는 정보를 적어두잖아!”
“미스탄 공 못 봤어요?”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피크닉 바구니를 열었다.
“방계들의 방종을 다스릴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렇지요.”
“한데 저들처럼 방계들을 찾아다니면서 ‘도와줍쇼’ 하면 더 오만해질걸요.”
“그것도 그렇습니다만…….”
“게다가 달란다고 자치권 같은 걸 그냥 주겠어요? 더 똘똘 뭉쳐서 절대 안 주려고 하지.”
“그야 뭐…….”
드뷔시 자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는 내가 내민 음식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말했다.
“그렇다고 내게 붙어 있는 게 방책은 아닐 텐데.”
“아니지요!”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저는 그냥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온 건데…….”
할아버지와 드뷔시 자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할아버지가 물었다.
“뭐?”
“칸시스 대륙에 있을 때, 할아버지가 엄청 엄청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 돌아왔을 땐 바빠서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고요…….”
“……해서.”
“그래서 친척들이 정신없는 동안 할아버지를 독차지하게요.”
나는 할아버지의 팔을 끌어안고 헤헤 웃었다.
할아버지는 큼, 헛기침했다.
“다 커서도 어리광은…….”
못마땅한 척 말하지만, 입꼬리가 실룩샐룩한다.
드뷔시 자작도 그걸 알아채고 히죽히죽 웃었다.
“이야, 이거 잘되었군요. 에릴로트 아가씨께서 칸시스에 가셨을 땐 인생의 재미가 없다고 아랫놈들만 그리 괴롭히시더니.”
“그 입 닫지 못해?”
“아닙니까? 아가씨의 통신이 언제 오느냐고 그렇게 닦달을……!”
“시끄럽다!”
나는 “와!” 하며 눈을 빛냈다.
“정말요?”
“아냐!”
“아쉽다……. 저는 할아버지가 저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봐 기뻤는데요.”
일부러 시무룩한 척하자 할아버지가 움찔했다.
드뷔시 자작이 껄껄 웃었다.
“‘아스트라 공작’에게 살가운 손주는 아가씨 하나뿐일 겁니다.”
“저야 좋지요. 할아버지의 사랑을 혼자 다 받을 거예요.”
내가 샐샐 웃으니 할아버지는 어흠! 커흠! 크흐흠! 헛기침했다.
아닌 척해도 기분이 매우 좋아보였다.
‘사실 살가운 손주를 좋아하시니까.’
달리아를 그렇게 귀여워했던 이유도 애교가 넘치는 손주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할아버지에게 딱 달라붙어 있다가 달이 뜨고 나서야 방에서 나왔다.
기운이 쭉 빠져서 어깨를 두드렸다.
“삭신이야…….”
재주도 없이 귀여운 손녀 노릇을 며칠이나 했더니 힘들어죽겠다.
마침 기다리고 있던 한지혁이 날 발견하고 다가왔다.
우리는 신관을 향해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눴다.
“어떻게 됐냐?”
“할아버지와 화기애애했지.”
“네 계획대로 공작님을 구슬릴 수 있겠어?”
“이대로만 되면 할아버지의 협력을 얻는 것도 곧—”
그때였다.
코너 뒤에서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를 거래의 대가로 드리겠어요.”
……이건 사촌 언니인 리지의 목소리였다.
돌아가신 조슬랭 숙부의 딸이다.
현재 조슬랭 관할령은 그 아내인 칼리아 숙모가 관리 중이었다.
뒤이어 실소가 흘러나왔다.
“그건 내가 너무 밑지는 장사인데.”
이건 헤반의 목소리다.
바란 왕세자의 소꿉친구로, 브리크트 공작가의 도련님인 그.
나는 살금살금 코너 뒤로 다가가 상황을 살폈다.
리지가 머리칼을 한쪽으로 넘기고 우훗, 웃었다.
“속내를 숨기지 말아요.”
“……뭐?”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거든요. 나를 보는 당신 눈빛.”
“부디 내게서 저급한 말이 나가게 하지 마십시오.”
“아닌가요?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잖아요.”
“아는 사람과 닮아서 그렇습니다.”
“나와 같은 금발인가요? 나처럼 아름답고…… 나처럼 매력이 있던가요……?”
리지는 느릿하게 말하며 손끝으로 헤반의 손가락을 잡았다.
헤반이 인상을 찌푸렸다.
“숙녀의 손을 쳐내게 하지 마세요.”
“그 기술, 넘겨주시면 아스트라의 사위가 되는 거예요. 이 나의 남자가 되는 거라고요.”
헤반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너.”
“……벌써 당신 여자가 된 건 아닌데 성급하시군요.”
“헛소리 말고 꺼져.”
“뭐, 뭐라고요?”
“당신을 봤던 건 인정. 바란에선 당신처럼 괴상한 드레스를 입지 않거든.”
“아, 아니, 무슨 그런 무례한……!”
“또 아는 사람과 닮아서 그 사람도 여기선 이런 드레스를 입나 궁금해서 시선이 머물렀던 것도 인정하지.”
“이봐요!”
“그러니까 제발 좀 꺼져.”
헤반이 리지를 지나쳐 걸었다.
‘리지 언니의 드높은 패션 자존심을 건드렸으니 이제 적이 되겠네.’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상했다.
리지 언니가 소리쳤다.
“그래요, 내가 좋아해요!”
“……뭐?”
“어머니는 나를 유리 왕자와 이어주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내가 싫다고 했어.”
“…….”
“처음 봤을 때 당신 눈빛이…… 나를 보는 당신 눈빛이 너무 절절해서.”
“그쪽을 보는 눈이 아니었습니다.”
“날 보며 누굴 생각하고 있었겠죠. 하지만 그 눈빛, 이제 내가 받고 싶어요.”
리지가 헤반의 손을 잡았다.
그때, 내 뒤에서 몸을 기울이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한지혁이 “으억…….” 하고 비틀거렸다.
무게 중심이 쏠린 모양이었다.
덕분에 나도 중심을 잃고 콩, 콩, 콩, 한 발로 뛰어서 리지와 헤반 쪽으로 향했다.
리지 언니가 나를 발견하고 흠칫했다.
“에릴로트.”
“그, 어, ……안녕.”
어색하게 말하니 리지 언니가 울컥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서 뭐하고 있니.”
“정원 쪽으로…… 가다가…… 어, 나 얼른 지나갈 거야!”
저 자존심에 제가 고백하는 모습을 보았으니, 날 찢어죽이고 싶을 거다.
나는 얼른 등을 돌렸다.
그때, 헤반이 내 손목을 잡았다.
난 흠칫해서 리지 언니를 쳐다봤다.
그리고 헤반에게 얼른 속삭였다.
“뭐하는 짓이야.”
“뺨에 뭐야.”
“뭐. 티끌이라도 붙었겠지. 썩 꺼져.”
“생채기잖아.”
리지 언니가 인상을 찌푸리고 나와 헤반을 쳐다봤다.
“둘이 뭐야?”
나는 당황해서 헤반의 손을 얼른 떼어냈다.
“아무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말하자, 헤반이 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이 3세는 악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