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83)
이 3세는 악역입니다-282화(283/390)
282화.
그런데 이상했다.
나는 멈칫했다.
“뭐야, 왜?”
내가 움직이지 않자 한지혁이 물었다.
하지만 난 대답할 겨를조차 없었다.
“아웬! 아웬—!!”
황급히 크림슨 구울, 아웬을 불렀다.
몹시 다급한 목소리에 아웬이 빠르게 옴브레의 속에서 튀어나왔다.
“뿌리를 오염시켜! 빨리!”
내 말에 아웬이 그르륵, 그륵, 기묘한 소리를 내며 점점 몸을 불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크림슨 구울의 흉악한 본체로 돌아간 그가 크게 포효했다.
그아아아아악—!!
소름 끼치는 포효에 한지혁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귀를 틀어막았다.
나 또한 얼른 귀를 틀어막고 축복의 땅의 중심에서 뛰쳐나갔다.
한지혁이 그런 나를 쫓아오며 물었다.
“대체 뭐 하는 거야!”
“뿌리를 닫아야 해! 하지만 뿌리의 힘이 워낙 강력해서 마력을 끊을 수 없다고!”
그래서 뿌리의 힘을 오염시켜서 이 파동을 진정시키려는 것이다.
“겨우 연 뿌리를 왜 닫겠다는 거냐고……!”
“마도구에 반응이 없어! 마리를 찾을 수 없단 말이야!”
“뭐?!”
이공간을 넘나드는 건 까다로운 일이었다.
이 땅은 가호가 제대로 발동한다.
하지만 이공간에선 마력이 들쑥날쑥 변해서, 제대로 가호를 사용할 수 없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여기서 이동의 가호를 사용해서 이공간으로 가는 건 가능.
-하지만 돌아오는 건 운이 따라야 한다.
……라는 뜻이다.
그런데 내가 당당히 마리를 찾아가겠다고 한 건, 믿을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애의 가호가 <이공간을 넘나드는 힘>이니까!’
그래서 마리는 이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마리를 찾을 수 없다면, 이공간에 빨려들기 전에 뿌리를 닫아야 해.’
지금까지는 이 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수호성의 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생을 본 후로 세일론을 전혀 보지 못했다고!’
세일론이 없는 한 이 땅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
나는 아웬을 쳐다봤다.
‘아웬만으론 저 엄청난 힘을 오염시킬 순 없겠어.’
“나나!”
소리치자 나나가 소매 속에서 미끄러져 나왔다.
“뛰어들어!”
내가 중심을 향해 소리치자, 나나가 재빨리 빛이 뿜어져 나오는 곳으로 향했다.
나나는 질퍽이는 몸으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곳을 막았다.
몸이 점점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빛 또한 함께 사그라들고 있었다.
과연 고대 몬스터.
아웬과 힘을 합치자 뿌리마저 오염시킬 수 있었다.
뿌리의 힘이 오염되니, 예상대로 마력을 끊어내는 것이 가능했다.
나는 신음하며 주저앉았다.
나와 뿌리를 번갈아보던 한지혁이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에라, 모르겠다!” 하며 나를 둘러메고는 후다닥 축복의 땅에서 멀어졌다.
“아웬…… 나나, 돌아와…….”
난 한지혁에게 둘러메진 상태로도 아웬과 나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웬과 나나가 잽싸게 내 쪽으로 달려오자, 그림자 속에 있던 옴브레가 쩍 입을 벌리고 그들을 제 안에 숨겨주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축복의 땅에서 한참 멀어진 뒤, 한지혁이 나를 땅에 내려놓았다.
“어떻게 된 건데, 허억, 헉…… 마도구…… 고장 나기라도 한 거냐?”
한지혁이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분명히 작동의 신호를 느꼈는데…….”
“그럼 대체 왜…….”
제기랄.
일회성 마도구라 다른 머리카락을 넣어서 확인할 수도 없다.
“그 마도구, 다시 구할 수 없어?”
“있겠어?! 이건 고대의 보물이야! 이걸 구하려고 브리크트 가에 들어간 거잖아!”
“…….”
“이 추적 장치가 작동을 안 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마리의 마력이 이공간에도 없다는 소리라고!”
“…….”
“마리가 죽었을지도 모른단 말이야! 아니면 달리아가 몸에 들어와서 마력이 신성력으로 변환된 걸 수도 있어! 달리아는 신성력 소유자였으니까!”
내가 고함치자, 옴브레가 발밑에서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호통 소리에 놀란 모양이었다.
한지혁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그의 시선을 피했다.
“미안…… 네게 소리칠 일이 아닌데.”
“됐어. 네 마음을 이해하니까.”
한지혁이 픽 웃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봐, 에릴로트.”
“……응.”
“언제, 어디에서도 해결책을 찾아내는 약삭빠른 애가 누구지?”
“…….”
“수도 없이 위기에 빠지고도 늘 자신만만하게 웃던 사람은 누구야?”
“……나야.”
그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래, 너야.”
나는 마력 추적기를 꽉 말아쥐었다.
소란스럽게 뛰던 심장이 진정된 것이 느껴진다.
“그리미에 무리와 거래 예정이던 부족 마을로 가자.”
“거긴 왜.”
“마리가 사라졌다는 건, 그리미에가 나보다 먼저 축복의 땅을 열었다는 거야. 확인해야겠어.”
“그리미에와 부딪치면 목숨이 위험할지도 몰라.”
“백경목 피리를 꺼내.”
“……너 설마.”
나는 살벌하게 주먹을 말아쥐었다.
“라곤을 데려간다.”
* * *
라곤의 네스트에 들러 그 애를 끌어냈다.
영리한 라곤은 몇 년 만에 만나는 나를 금세 알아보았다.
나와 한지혁은 라곤의 등에 탄 채 이동했다.
“으아아아아—! 처, 천천히 날라고!”
“라곤, 여기야.”
라곤이 쿵! 땅에 내려앉았다.
그 애는 몇 년 동안 훨씬 더 커져 있었지만, 착륙하기 어렵지 않았다.
……이미 부족 마을이 온통 불바다라 피해를 생각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한지혁이 “으…….” 신음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미에 놈, 네가 먼저 축복의 땅을 손에 넣을까 봐 급하게 움직였구만.”
“그래, 거래를 포기하고 부족을 공격했어.”
피 냄새가 지독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사람이 전혀 안 보인다는 것이다.
시체라도 있어야 할 텐데, 머리카락 한 올 찾을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나와 한지혁은 마을을 둘러보며 걸었다.
얼마쯤 걸었을까.
나무 기둥 뒤로 옷깃이 보였다.
다가가자…….
“시,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웬 어린아이가 머리를 감싸 쥔 채로 떨고 있었다.
“너, 이 마을 아이니?”
“시, 싫어요. 싫어. 형아…… 형아……!”
나는 무릎을 굽혀서 아이와 시선을 맞추었다.
“걱정하지 마라. 나는 너희 마을을 공격한 사람이 아니야.”
그제야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검댕과 눈물로 온통 엉망이었다.
“아, 아니에요……?”
“그래. 어떻게 된 거니? 왜 사람이 하나도 없지?”
“나, 나쁜 사람들이 끌고 갔어요. 조, 족장님과 전사들을 죽이고 마, 마을 사람들을…….”
나와 한지혁은 시선을 교환했다.
‘실험체로 쓰려고 데려갔구나.’
한지혁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혀, 형아가 나를 숨겨줬어요. 그, 그리고 형아도 도망치려고 했는데 그 여자가…… 얼굴이 불탄 여자가……!”
아일라구나.
아일라가 이 애의 형을 끌고 간 모양이었다.
“아이야, 이름이 뭐니?”
“마호칸이에요…….”
“그래, 마호칸. 여긴 위험해. 여기 이 사람을 따라가렴. 용이 너를 지켜줄 거야.”
“용……?”
한지혁이 인상을 썼다.
“혼자 가겠다고? 위험해, 바보야!”
“널 지키면서 움직이는 것보다 덜 하겠는데…….”
“누누이 말했지. 내가 약한 게 아니라 너희 집안 사람들이 괴물 같은 거라고…….”
“어쨌든 간에.”
한지혁이 칫, 혀를 찼다.
제 생각에도 본인이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모양이었다.
차라리 방해되면 방해되었지…….
“백경목 피리를 주고 가. 정말 위험해지면 라곤에게 신호할 테니까.”
“그래.”
나는 피리를 받아들고 일어났다.
그러는 동안 한지혁은 아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조심해라.”
“응.”
그렇게 서로 등을 돌렸다.
“저, 저기요!”
아이가 나를 불렀다.
“응?”
돌아보니 아이가 우물쭈물 나를 쳐다봤다.
“나쁜 사람들 찾아요?”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어?”
“나쁜 사람들이요. 신목의 호수가 어디인지 말하라고, 족장님을 고문했어요…….”
“신목의 호수?”
“네에, 우리 마을을 지켜주는 소중한 나무인데요…… 제가 알고 있어요. 거기가 어딘지.”
나는 얼른 아이에게 다가갔다.
“거기가 어디야?”
“저 산의 입구로 들어가서 패랭이꽃을 따라 걸으면요. 동굴이 나오는데, 거기예요…….”
“그래, 고마워.”
“……누나는 착한 사람인 거지요?”
아이가 울먹이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언젠가 네 마을 사람들의 복수를 해줄게. 너와 난 증오하는 대상이 같거든.”
아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나는 아이의 머리를 휙휙, 쓰다듬고 산으로 향했다.
길은 걷기 쉬웠다.
그리미에가 먼저 산을 올랐는지 덤불이며, 몬스터들을 죄다 베어놨거든.
막 동굴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통신석이 빠르게 깜빡였다.
‘긴급 코드!’
나는 황급히 통신을 연결하고 속삭였다.
“무슨 일이야.”
“급보라니.”
[네가 감시시켰던 마사라는 애 말이야. 감쪽같이 사라졌단다.]“……뭐?”
[무슨 일이 이렇게 잔뜩 터지냐고…… 젠장할.]발자크가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나는 표정이 밝아졌다.
‘마사가 사라졌다는 건, 저들이 마리를 찾지 못해서일지도 몰라.’
저들이 마리를 찾아냈다면, 마사의 존재도 알게 된 거겠지.
마사도 그리미에의 실험체였던 모친의 몸에서 나온 아이.
마리의 대체품으로 쓰기 위해 마사를 데려갔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마리는 아직 살아있다는 거야!’
나는 통신석을 꽉 그러쥐었다.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얼마나 악바리인지 나는 알아.”
“하고자 한 일을 모두 이뤄내는 것을 보았어.”
“그러니까 너를 믿고 기다리겠어.”
오직 나를 믿고, 허무의 공간으로 향한 아이였다.
‘찾아낼게.’
약속한 대로 널 찾아내겠어, 마리.
“알겠어. 오라버니들은 관할령의 전군에게 경계령을 내려줘.”
[그래. 그런데 용이 나타났다던데 너 혹시…….]나는 뚝, 통신을 종료했다.
통신석을 주머니에 잘 넣어두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깊은 곳으로 향할수록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융합은 성공…… 신목의 힘…… 합니까?”
“예…… 눈을 뜨지 않는 건…….”
사람들의 말소리였다.
저 속에 섞인 목소리를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아일라의 목소리다.’
나는 백경목 피리를 쥔 채로 조금씩 더 가까이 갔다.
그리고 바위 뒤에 숨어 최대한 숨을 죽였다.
“어째서 귀인께선 눈을 뜨지 않는 거요!”
아일라가 후드를 뒤집어쓴 자들에게 버럭 성을 내고 있었다.
‘저 후드의 문양…… 장막이다.’
발자크만큼이나 키가 큰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융합은 성공했다.”
“한데 어째서……!”
“육체에 억지로 혼을 쑤셔 넣은 것이다. 쉬이 눈을 뜨는 것이 이상한 일이지.”
또 다른 장막의 사람이 말했다.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뿌리를 열어놓았으니 금세 회복하실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신목에서 엄청나게 순도 깊은 힘이 느껴진다.
나는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저 중심에 있는 쓰러져 있는 몸을 보고 싶었다.
‘마리인 거야, 마사인 거야?’
마사여야 해.
마리가 내게 소중한 친구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마리는 그리미에가 준비한 제대로 된 육체. 반면에 마사는 스페어에 불과하지.’
마리의 몸처럼 달리아의 영혼을 안정시킬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마사는 가호가 없는 몸이다.
즉, 마력이 없다는 것.
‘마력이 없는 연약한 몸에선 영혼을 뜯어내지 못해.’
영혼을 뜯어낸 순간, 보호해줄 마력이 없어서 육신이 가루가 될 테니까.
‘영혼을 뜯어내지 못하고 달리아의 영혼을 억지로 넣었을 터.’
달리아의 영혼만 쫓아내면 마사는 무사하다는 것이다.
‘좋아, 그럼…….’
나는 품에서 기록용 마도구를 꺼냈다.
이대로 영상을 기록해서 금술의 증거로 써야겠다.
마도구를 작동시키고 그리미에의 끄나풀들을 쭉 기록하기 시작했다.
장막의 후드를 입은 자가 말했다.
“한데 확실히 의식을 찾는 게 좀 늦는 것도 같은데요.”
아일라가 소리쳤다.
“문제가 생긴 게 아닙니까?”
그러자…….
“조급해하지 마라.”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미에……!’
그의 목소리였다.
금술을 행한 데다가 유배지를 벗어났다.
‘황명을 제대로 어겨주셨으니, 한 번 더 황제의 진노를 사겠구나.’
그리미에는 예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그토록 고대하던 순간이지 않으냐. 기쁘게 맞이하려무나.”
“하지만…….”
“함께 축배를 들어줄 손님께서도 도착하셨고.”
“……예?”
“오랜만이구나, 에릴로트.”
나는 흠칫 어깨를 좁혔다.
그리미에가 천천히 등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아일라가 매섭게 소리쳤다.
“너……!”
‘어쩔 수 없겠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결계용 마도구를 소지하고 있었는데 어찌 아셨는지요.”
“기척을 숨길 셈이라면 네 그림자 안의 아이들도 동반하지 말았어야지.”
“……몬스터의 기척을 기민하게 느끼시는군요. 마치 수도 없이 몬스터를 겪으신 것처럼 말이에요.”
그리미에가 쿡쿡 웃었다.
“무슨 답을 해주어야 네 마음을 흡족하게 할 수 있을까.”
“일단 그 뒤에 아이부터 설명해주시겠어요?”
“뒤에 아이라…….”
“금술로 자리를 잃고도 또 다시 금술을 행하시다니요, 백부님.”
그때였다.
화아아아아악—!
그리미에의 등 뒤로 빛무리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의 사람들이 황급히 눈을 가리며 물러났다.
그리미에 또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개하마, 에릴로트.”
“…….”
그리미에가 무릎을 꿇고 부스스 일어난 여성에게 손을 뻗었다.
“너를 만나는 날을 고대했단다. ……달리아.”
“여기는…….”
커다란 눈을 깜빡이자 기다란 속눈썹이 흔들렸다.
그 애가 나를 쳐다봤다.
“여, 여긴 어디에요?”
……드디어 등장하고 말았다.
<빙.흑.손>의 주인공.
달리아가.
이 3세는 악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