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86)
이 3세는 악역입니다-285화(286/390)
285화.
한국에서 불행한 삶을 살던 나.
인생에 종지부를 찍으려 했는데…… 눈을 떴을 땐 이세계였다.
심지어 그곳은 즐겨보던 웹소설 <흑막 가문 이야기>의 세계!
‘내가 빙의한 몸이 흑막의 손녀라고?’
이 소설의 무시무시함을 잘 알고 있어서 신이 원망스러웠건만…….
“너를 오랫동안 기다렸단다, 달리아.”
다정한 아빠에,
“난 밀란이야. 이 녀석들은 요슈아와 발자크, 그리고 리시먼드야. 네 사촌 오라비들이지.”
“뭘 봐.”
“이건 위협이 아니고, 발자크의 평소 말씨.”
멋진 오빠들,
“감히 누구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이냐.”
“아, 아스트라 공작님?!”
“이 아이의 이름은 달리아 아스트라. 아스트라의 모든 영광을 누릴 이 나의 손녀이다—!!”
근사한 할아버지까지.
‘아, 이곳이 진정한 나의 집이었던 거구나.’
다짐했다.
‘이 멋진 가문에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살 거야.’
그런데 문제가 좀 있다.
“죽일 각오와 죽을 각오. 그게 없이는 날 무너뜨릴 수 없을 거다, 달리아.”
……원작 여주가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포기할쏘냐!’
아빠가 말한 본래의 내 힘을 찾고, 가정의 문제 덩어리를 없애서 해피해피 라이프를 즐길 테다!
“첫 <빙.흑.손>과 소개문이 달라.”
<빙.흑.손> 소개문에서 원작여주, 그러니까 나는—
[……내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았다고 생각하는 원작 여주를 물리치고,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이렇게 표현되어 있었다.
하지만 바뀐 소개문에선 내 소개에 굉장히 힘이 들어갔다.
게다가…….
“본래의 힘을 찾아야 한다고 쓰여 있어.”
“본래의 힘?”
“아마도 가호를 발현하지 못한 게 아닐까.”
“그리미에는 가호를 부여할 수 있잖아. 그런데 왜 아직…….”
“못 한 거야.”
나는 씩 웃었다.
내가 이공간에서 마리를 끌어내려고 하니까, 그 전에 달리아를 불러오려고 너무 급히 진행한 것이다.
“나 때문에 급히 준비되지 않은 몸에 달리아의 영혼을 집어넣은 거겠지.”
“잘됐잖아……!”
“그래, 잘 됐어. 그놈의 4단계 <치유>는 현재로선 못 쓴다는 소리니까.”
달리아가 살아있는 여신이라고 불리게 된 건, 그 <치유> 때문이었다.
진짜 축복의 땅에 뿌리를 열었을 때와 비슷한…… 아니, 어쩌면 더 강력할지도 모르는 치유의 능력.
그 때문에 귀족이든, 평민이든 달리아에겐 벌벌 떨었다.
그녀가 없으면 치료제가 없는 병을 치료할 수 없을 테니까.
“그 치유가 진짜 엄청났다고.”
“그래, 온 대륙의 귀족들에게 그걸로 은혜를 베풀어서 인맥을 쌓았다고 했지?”
“응.”
나는 문밖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시간을 벌었어.’
힘을 손에 넣기 전이라면, 내가 충분히 활개 칠 수 있었다.
* * *
간식은 정원에 준비되어 있었다.
사촌들은 네 개의 테이블에 각각 앉아 티타임을 즐기는 중이었다.
뒤늦게 정원에 도착한 난 리앙틴에게 물었다.
“달리아는?”
“몰라, 그런 계집애.”
리앙틴은 홱, 고개를 돌렸다.
디오네라가 쩔쩔매며 대답했다.
“저기, 리앙틴의 기분이 좋지 않아…….”
“무슨 일 있었어?”
“그게 달리아가…….”
디오네라가 우물쭈물 정원에서의 일을 설명했다.
“반대파 너희, 조부님께서 나서기 전에 자중하는 게 좋을 거야.”
리앙틴이 그렇게 엄포를 놓자, 달리아가 또 순진하게 속을 뒤집어놨단다.
“너무해요.”
“뭐?”
“모두 살아남을 방법을 열심히 궁리한 거예요. 그래서 일가의 미래와 할아버지에 대한 신의를 저울질하는 괴로운 상황이 된 거라고요.”
“너, 자꾸 헛소리하는데—”
“다른 언니와 오라버니들의 상황을 좀 헤아려보세요. 그렇다면 그렇게 가볍게 협박하실 수 없을 테니까.”
그 두둔으로 달리아는 반대파의 찬사를 받은 모양이었다.
물론 리앙틴은 완전히 멸시를 당하고 있고.
“그래서 그 찬사를 받은 주인공은 어디에 갔는데?”
리앙틴이 눈에 바짝 힘을 주며 말했다.
“케이크가 맛있다고 호들갑이더니 그릇째로 들고 성으로 들어가더라!”
“왜?”
“알 게 뭐야.”
리앙틴이 투덜거리던 때였다.
“할아버지!”
달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원 밖에 있던 그녀가 총총총 뛰어서 누군가에게 달려갔다.
“여기 계시는 줄 알았으면 얌전히 기다릴 것을 그랬어요. 정원에 오시는 거죠?”
“……지나던 길이다.”
할아버지였다.
드뷔시 자작과 함께 걷던 할아버지가 드물게 움찔하셨다.
‘저렇게 발랄한 타입의 손주는 처음이시니까.’
드뷔시 자작은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무슨 일로 공작님을 애타게 찾으셨습니까?”
“그게요. 케이크가 너무너무 맛있지 뭐예요. 이렇게 맛있는 케이크는 처음이었거든요!”
“예.”
“그래서 나누어 먹으려고요! 맛있는 건 나누어 먹으면 더 맛있는 거거든요!”
그러더니 달리아는 들고 있던 티스푼에 케이크를 듬뿍 떴다.
“아, 하세요. 아~”
“…….”
할아버지는 그대로 굳어졌다.
물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촌들도 마찬가지였다.
“미, 미, 미친 거야?”
“저, 저렇게 당당하게 조부님께 들러붙는 녀석은 에릴로트 이후로 처음이잖아…….”
드뷔시 자작은 푸핫! 하다가 입을 틀어막았다.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달리아가 에헤헷 웃으면서 스푼을 더 들이밀었다.
“네? 아~”
“…….”
“자, 비행기 들어갑니다. 슈웅—”
드뷔시 자작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허리를 접고 파르르 떨었다.
사촌들은 거의 경악이었다.
그때.
“그만해.”
내가 나섰다.
달리아가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응? 왜?”
“너무 단 건 몸에 안 좋으니까.”
나도 할아버지에게 음식을 가져갔지만, 하나 같이 관할성의 요리사들을 닦달해서 만든 ‘노인이 먹을 수 있는 간식’이었다.
당 함유를 현저히 줄여서.
달지 않은 게 할아버지의 취향이기도 했고.
“에이, 한 스푼인데 뭐 어때. 에릴로트는 소심하구나?”
“뭐?”
“아니면 질투인가?”
주변의 분위기가 묘해졌다.
달리아는 히히 웃고 “농담.” 하며 손을 내저었다.
드뷔시 자작이 픽, 실소를 흘렸다.
“단 걸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요? 그럼 자작님이 드세요. 아.”
“예?”
당황해서 되묻는 틈에 달리아가 그의 입에 스푼을 쏙 넣었다.
드뷔시 자작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달리아는 생글생글 웃었다.
“어때요? 정말 맛있지요?”
“아, 예…… 뭐…….”
드뷔시 자작이 어색하게 웃었다.
사촌들은 물론이고, 주변을 걷던 하인이나, 경비병들조차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달리아에게 말했다.
“잠깐 얘기 좀 해.”
“응? 왜? 여기서 하면 안 돼?”
“달리아, 그런 짓은 하면 안 돼. 상대에게 알레르기가 있을 수도 있고, 이곳에선 상대의 몸에 함부로 손대는 건—”
“응? 그래? 안 돼요?”
달리아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드뷔시 자작을 쳐다봤다.
“그렇긴 합니다만…….”
“자작님은 괜찮으시죠?”
“뭐…….”
자작이 하하, 곤란한 듯 웃었다.
‘저 바보가.’
상관의 손녀에게 불쾌했다고 말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런 질문은 하는 것조차도 실례다.
그러나 달리아는 해맑게 웃었다.
“그렇대. 다행이다, 그렇지? 다음부턴 조심할게?”
“…….”
“아, 그리고 알려줘서 고마워. 난 여기 예법은 잘 몰라서……가 아니고 잊어버려서. 알지? 사고가 나서 기억을 잃은 것 말이야.”
“…….”
“앞으로도 많이 많이 가르쳐주면 좋겠어, 에릴로트.”
달리아는 지나가던 하녀에게 “이것 좀 받아줄래?” 하고 케이크 접시와 스푼을 넘겼다.
그리고 내게 찰싹 달라붙어 팔짱을 꼈다.
드뷔시 자작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두 분께선 사이가 좋으시군요.”
“저는 에릴로트가 좋거든요. 보세요. 제 눈은 초록색이고, 에릴로트 눈은 빨간색이잖아요. 마치 장미 같지 않나요?”
“예, 그렇습니다.”
“그럼 우리 둘이 세트로 아스트라의 장미다. 그렇지, 에릴로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후후 웃었다.
아스트라에 이런 타입은 전무했다.
순수한 달리아가 귀여워 보이는 모양이었다.
“저기, 사촌들과 함께 간식을 먹는 중이거든요? 할아버지와 자작님도 같이…….”
“에릴로트.”
달리아가 종알거리던 때에 할아버지가 날 불렀다.
“네, 할아버지.”
“따라오너라. 나눌 말이 있으니.”
“예.”
그러자 달리아가 얼른 말했다.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
드뷔시 자작이 점잖게 달리아를 말렸다.
“가문의 일 때문이니 자리를 비켜주시지요.”
“하지만 저도 가문의 일원이잖아요?”
달리아는 그렇지 않으냐는 듯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할아버지의 시선이 차가워졌다.
‘이런…….’
나는 달리아와 할아버지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가셔요, 할아버지.”
“응? 나 아직 할아버지와 얘기가 끝나지 않았는…….”
‘저 바보가.’
살 구멍을 만들어줬는데도 일을 더 귀찮게 만든다.
할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넌 무엇을 할 줄 아느냐.”
“네?”
“네게 에릴로트만한 능력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
“이 아이, 최연소 원화로 머리 굵은 황군을 무릎 꿇렸고, 내 손이 닿은 혈족 교육에서 늘상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지.”
“…….”
“그 어떤 임무를 내려도 능히 수행할 능력이 있는 녀석이란 말이다. 한데 너는 무엇을 할 수 있는 게냐!”
“할아버지…….”
사촌들이 표정 없이 달리아를 쳐다봤다.
드뷔시 자작 또한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흘렸다.
‘바보.’
소설 속의 달리아는 이 정도로 천진난만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아이가 지금 천지분간을 못 한 건 아마도 내가 주인공이었던 <흑막 가문 이야기> 때문이겠지.
나는 할아버지에게 매우 살갑게 굴었다.
‘그것으로만 환심을 산 줄 알았니.’
죽어라 노력했다.
할아버지가 내린 명이라면 목숨을 내놓고 수행했다.
혈족 교육을 받을 땐 제대로 잔 날이 하루도 없다.
해서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다.
‘아스트라 공작의 마음은 살가운 태도만으로 얻을 수 있는 녹록한 것이 아니야.’
결과가 받쳐줬기에 할아버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달리아를 힐끗 쳐다봤다.
그러곤 슥, 그 애를 지나쳐 걸었다.
나는 그를 따라 성 안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
“그래.”
“저 애, 아직 아스트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곧 가문의 영광이란 무게를 실감하게 될 거예요.”
—물론 할아버지에게 흡족한 손녀 노릇도 잊지 않고.
난 할아버지의 팔짱을 끼며 빙그레 웃었다.
할아버지는 큼, 헛기침했다.
“다른 녀석들이 네 반만 내 속을 헤아렸다면 흰머리가 이토록 무성하진 않을 것이다.”
“흰머리가 어디 있어요? 제 눈엔 온통 금빛으로 보이는걸요.”
“입 바른 소리를…….”
“항상 근사하세요.”
어깨에 기대니 할아버지의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드뷔시 자작이 피식피식 웃었다.
“역시 공작님껜 에릴로트 아가씨가 최고인 게지요.”
“헛소리!”
“예, 예.”
두 사람이 또 만담을 하는 동안, 나는 남몰래 히죽 웃었다.
‘고맙다, 달리아.’
덕분에 할아버지에게 내 주가가 더 올랐단다.
* * *
해 질 녘.
공작성에서 일을 보고 온 그리미에가 달리아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누가 따님의 속을 상하게 하였을까.”
“…….”
“어찌 시무룩한 게냐, 달리아.”
“할아버지가 저를 미워하세요…….”
그리미에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달리아에게 붙여두었던 부관을 쳐다봤다.
부관이 곤란한 얼굴로 낮의 일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그리미에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못마땅한 듯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달리아를 바라보다가, 그 애가 고개를 들자 금세 표정을 바꾸었다.
“아버님은 누구에게나 감정을 드러내기 힘든 위치에 계신 분이시다.”
“하지만 소설에선 에릴로트에게…….”
“달리아.”
그리미에의 목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낮아졌다.
달리아가 움찔했다.
“죄송해요…….”
“타인은 소설 속 세계로 왔다는 말을 믿기 힘들 거다. 단지 그 말로 너를 믿기 힘든 아이로 오해할까 두렵구나.”
“네…….”
“아버님께 네 능력을 선보일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럴까요?”
“물론이지.”
그리미에가 빙그레 웃자, 달리아가 에헤헤 따라 웃었다.
“할아버지한테 떼쟁이처럼 굴어서 죄송하다고 할래요!”
“그래.”
달리아는 “먼저 갈게요!” 하고 공작의 집무실로 달려갔다.
그녀가 자리를 떠난 후, 그리미에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가 부관에게 말했다.
“어찌 관리하였기에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이냐.”
“소, 소, 송구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부관은 말을 맺지 못했다.
파스스슥.
발끝에서부터 균열이 생기더니 곧 먼지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주, 주인님! 주인님! 용서를……! 주인…… 크아아악!”
부관이 완전히 사라진 후, 코너 뒤 어둠 속에서 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지우지 않았더라면 사람들이 몰려왔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 대비해 네게 <소리>의 가호를 내준 것이다, 파빌.”
“언짢으신 모양입니다.”
“에릴로트의 수작에 지하 몬스터들의 6할을 잃었다. 성물의 상당수조차 잃지 않았느냐.”
“제가 보기엔 그 때문이 아닌 듯싶습니다만.”
그리미에가 힐끗 코너 뒤를 쳐다봤다.
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저 아이, 에릴로트를 상대할 수 있겠느냐.”
“우리 크로노트가 메시아를 위해 못 할 일이 있겠습니까.”
킬킬거리는 웃음과 함께 살벌한 목소리가 어두운 복도에 깔렸다.
“메시아께 걸맞은 고귀한 자리를 내어드리라는 쿠말 님의 명이 있었습니다.”
크로노트 회의 파빌은 단언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아스트라를 당신의 손아귀에.”
그리미에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멀리서 달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빨리요! 빨리!”
“그래.”
이 3세는 악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