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87)
이 3세는 악역입니다-286화(287/390)
286화.
* * *
할아버지의 서재.
드뷔시 자작의 이야기를 들은 난 미간을 좁혔다.
“방계들의 움직임이 수상하다고요?”
“예. 공작님께서 각 지역에 보내신 정보원들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방계 가문에서 무슨 일을 꾸미기 위해 정보원을 없앴을 가능성이 있군요.”
공작성에 말이 새 나가지 않도록.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할아버지.”
“그래.”
“왜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시죠?”
“정보원이 사라진 지역이 데이몬드 관할령과 가깝기에 방비를 명하는 것이다.”
“네. 그리고요?”
할아버지가 픽 웃었다.
드뷔시 자작의 눈매도 부드럽게 휘었다. 그가 할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하여간에 총명하기로는 아스트라 제일이신 분입니다.”
할아버지는 팔짱을 끼며 의자에 몸을 깊게 기댔다.
“그간 너와 네 아비는 아스트라를 위해 여러 가지 공로를 세웠지.”
“예.”
“결과를 낸 놈에겐 그만한 보상이 있어야지. 허구한 날 사고만 치는 놈들과 후계자 선출의 출발선이 같아서야 되겠느냐.”
나는 생긋 웃었다.
“이번에도 흡족한 결과를 가져오겠습니다.”
“그래.”
이건 신호였다.
나를, 그러니까 우리 아빠인 ‘데이몬드 아스트라’를 후계로 염두에 두고 있다는 신호.
‘난 그간 잘해온 거야.’
남들보다 한발 앞섰다.
결승선에도 가장 먼저 들어가고 말리라.
“그럼 가보겠습니다.”
“그래.”
인사하고서 방을 나섰다.
문을 나서자마자, 방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달리아, 그리미에가 내게 인사했다.
“에릴로트! 나, 할아버지께 사과드리려고! 또, 네가 가르쳐준 것들을 빨리 익혀서 훌륭한 손녀가 되겠다고 말씀드릴 거야.”
그리미에가 빙그레 웃으며 딸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를 싸늘하게 쳐다보며 대답했다.
“좋은 생각이야.”
“응, 만찬장으로 갈 거지? 여기서 기다릴래? 할아버지를 모시고 같이 가자!”
“난 만찬 전에 할 일이 있어서.”
“으음, 그럼 아쉽지만 만찬장에서 보자!”
달리아는 쾌활하게 대답하고서, 그리미에의 팔짱을 끼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려던 찰나.
나는 발밑을 톡, 쳤다.
내 그림자 속에 있던 옴브레가 순식간에 달리아의 그림자로 옮겨갔다.
* * *
즉시 신관의 뜰로 향했다.
날 기다리고 있던 발자크와 요슈아가 재빨리 다가왔다.
“어떻게 됐어?”
발자크가 날 채근했다.
“방계들의 움직임이 수상하다고 말씀하셨어. 감시가 필요해. 요슈아 오라버니가 해줄래?”
“그래.”
“아직은 내게만 말씀하신 것 같지만, 곧 그리미에도 알게 될 거야. ……그 자에겐 <장막>이 있으니까.”
대륙 최고, 최대의 정보조직 <장막>.
그들이라면 오늘이라도 수상한 신호를 감지할지도 모른다.
“그리미에보다 먼저 방계들이 무슨 짓을 벌이는지 알아야 해. 그렇게 해서 약점을 잡으면…….”
나는 눈을 날카롭게 빛냈다.
“자치권, 회수할 수 있어.”
“데이몬드 관할령이 공작성을 손에 넣는다.”
“그래.”
짙은 노을이 숲을 집어삼켰다.
난데없는 돌풍에 숲이 스산히 울었다.
* * *
그 시각.
푸슬후르 지역.
데이몬드 관할령과 경계를 맞댄 푸슬후르 지역에선 방계 귀족들이 모여 있었다.
푸슬후르 성의 대응접실.
방계 중에서도 강경파들은 커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본가의 오만이 선을 넘었소.”
“자치권 회수라니! 말이 되는 일이오?!”
“시대는 변화하고 있습니다. 변화에 발맞추지 못한다면 도태될 뿐. 본가의 결단은 아스트라의 추락을 초래할 거요.”
상석에 앉은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플로렌스 에즐로의 부친이자, 방계 가문의 거두인 에즐로 자작이었다.
“본가의 폭정을 더는 지켜볼 수 없겠소.”
다른 방계 귀족이 쯧, 혀를 찼다.
‘자치권 회수만 아니었더라면 고개도 들 수 없었을 터인데. 하여간에 운은 좋군.’
그놈의 자치권 회수 때문에 다시 방계들이 똘똘 뭉쳤다.
그 덕에 방계 가문의 대표 자리를 겨우 유지할 수 있던 것이다.
“본가에게 우리가 어찌 대항하겠소? 기껏해야 공작성에 항의문을 보내는 것밖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소.”
다른 귀족들이 끙, 신음했다.
말을 꺼낸 귀족이 양손을 들고 어깨를 으쓱했다.
“공작이 군사를 동원해 강제한다면, 우리는 결국 본가의 알량한 지원금으로 생활하던 때로 되돌아갈 거요.”
“그러니 공작이 군사를 동원했을 때를 대비해야 하지 않겠소?”
“대비?”
에즐로 자작이 푸슬후르 남작을 쳐다봤다.
푸슬후르 남작이 말했다.
“나와 에즐로 자작은 이런 때를 대비해 장원 밖에 군사와 무기를 준비해놨습니다.”
“구, 군사를 도모하자는 말이오?!”
“공작성을 치자는 말이 아닙니다. 공작이 창과 검으로 우리를 겁박할 때를 대비하자는 말이지요.”
“하면…….”
에즐로 자작이 탕! 테이블을 내리쳤다.
“방계 가문의 전원은 가신들과 함께 결의할 것이오! 죽음도 불사하는 결의의 증거로 연명장을 작성하고, 공작에게 대항합시다!”
“……!!”
푸슬후르 남작이 입꼬리를 올렸다.
“피차 지금은 후계를 정하는 시기. 공작의 노여움을 사더라도, 새로운 후계와 연합할 수 있다면 미래는 우리의 것입니다.”
다른 방계 귀족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반역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자치권을 빼앗긴다면 미래는 없다. 두려운 것은 공작의 군사들이지.’
‘하지만 이쪽에서도 군사를 준비해놓는다면 무서울 게 없다.’
‘이번 일만 잘된다면…….’
‘그래, 이번 일이 잘 풀린다면……!’
본가를 누르고 아스트라의 권력을 나눠가질 수 있을 터.
방계 귀족이 물었다.
“비상령이 떨어지면, 장원의 문이 닫힐 겁니다. 장원 밖에 있다면 군사들을 불러들일 수 없어요.”
에즐로 자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서 이주민 등으로 분장하여 군사를 들여올 것이오.”
“좋습니다. 연명하지요.”
푸슬후르 남작이 연명장을 테이블에 중앙에 놓았다.
방계 귀족들이 하나둘 일어나, 손가락을 물어뜯어 지장을 찍었다.
“결의의 표명을.”
“결의의 표명을!”
* * *
만찬은 달리아의 독무대였다.
“그래서요, 마탑이 엄청 궁금한데 놀러 가도 돼요? 네, 바실레 고모?”
“어쩌나. 마탑은 관계자 외엔 출입할 수 없단다. 마도서는 내 관할성에도 많으니 언제 시간이 나면 관할성에 놀러 오렴.”
“와, 신나라!”
바실레 고모님은 까르륵 웃는 달리아를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상냥한 바실레 고모님이야, 어렵게 찾은 조카가 기꺼울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건 다른 숙부들과 고모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었다.
“저 셀레네 언니를 엄청나게 동경했어요!”
“우리 셀레네야 누구나 동경하지.”
바스티나 고모는 자랑스러운 딸을 칭찬하는 말에 어깨가 잔뜩 부풀었다.
“언니의 미모는 바스티나 고모를 닮았군요!”
“내 자식이 나를 닮은 건 당연하잖니? 안 그래요, 여보?”
“어어, 그렇지요…….”
달리아가 양손을 맞잡고 황홀한 듯 말했다.
“아름다운 귀부인과 성녀 모녀라니. 대단해……! 아빠, 우리 엄마도 바스티나 고모처럼 아름다웠나요?”
“그래, 네 엄마도 바스티나만큼이나 아름다운 사람이었단다.”
“기억을 못 하는 게 아쉬워요…….”
가족들에게서 난봉꾼 취급을 받던 바스티나 고모는 동경의 시선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입꼬리가 실룩실룩한 거로 보아, 달리아가 매우 마음에 드는 듯했다.
“어미가 없으니 사교 데뷔 준비를 도와줄 사람이 없겠구나.”
“으음, 혼자 열심히 해야죠. 아빠도 도와주실 거고요…….”
“뭐, 조언 정도는 해주마. 데뷔 전에 내 관할성에 들르렴.”
“정말요? 그래도 돼요?! 어떡하지, 너무 기뻐요……!”
두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숙부들의 정신도 쏙 빼놨다.
저 엄청난 친화력에 주인공 버프가 더해지니 효과는 놀라웠다.
‘그리미에가 달리아를 데려오려고 그 난리를 친 이유를 알겠다니까.’
주인공 버프는 정말로 놀라운 힘이다.
‘내가 쓸 땐 꿀이었는데, 남이 쓰니까 엄청나게 사기적이네.’
리앙틴은 이를 득득 갈았다.
“언니, 그러다 치아가 전부 갈리겠어.”
말하자, 리앙틴이 달리아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저 입을 닫게 할 수 있다면 치아 정도는 전부 갈아버릴 수 있어!”
물론 그렇다고 달리아가 입을 다무는 일은 없었다.
이렇게 시끌벅적한 만찬은 처음이었다.
또 이렇게 웃음소리가 가득한 만찬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달리아가 이쪽을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내 옆자리를.
“달리아?”
그리미에가 물으니, 달리아는 수줍은 얼굴로 말했다.
“아…… 참 멋져서…….”
“응?”
“아스트라 사람들은 다들 잘생기고 예쁜데, 저쪽 오라버니들은 특히…….”
그러자 숙부들이 와하하하! 웃었다.
“아스트라의 미모는 유명하지. 그래, 어떤 오라비가 멋지지?”
구스타프 숙부의 말에 달리아가 허둥거렸다.
“다 멋져요! 파비오 오라버니랑 아론 오라버니, 애덤 오라버니…… 전부, 전부요! 그런데…….”
달리아는 우물쭈물 말을 이었다.
“발자크 오라버니랑 요슈아 오라버니, 또 밀란 오라버니가 최고로 멋진 것 같아요…….”
밀란이 픽 웃었다.
“그것참 고마운데.”
요슈아와 발자크는 별말 없이 식사했다.
바스티나 고모가 입을 열었다.
“너, 승마하는 법도 잊어버렸다고 했던가.”
“네.”
“빨리 다시 익혀두는 게 좋을 거다. 승마해야 할 때가 종종 오거든. 승마는 발자크가 발군이지. 도와주는 게 어떠니?”
그러자 달리아가 뛸 듯이 기뻐했다.
“도와주신다면 기쁠 거예요!”
그리미에도 싱긋 웃고서 발자크를 쳐다봤다.
“발자크가 달리아를 도와주겠니? 부탁하마.”
발자크의 눈썹이 꿈틀했다.
“내가 왜—”
요슈아가 테이블 밑에서 발자크의 손목을 끌어당겼다.
할아버지의 앞이니 자중하라는 뜻이었다.
발자크는 칫, 혀를 차고 말했다.
“임무가 바쁩니다.”
그러자 달리아가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임무를 많이 주셨어요……? 저기, 저기! 승마는 중요한 거라고 하는데, 제일 잘 타는 사람에게 배워야 빨리 배울 텐데…… 그러니까……!”
말하던 달리아가 눈썹을 착, 늘어뜨렸다.
“이대로 ‘밖’에 나가서 가문을 망신시킬까 봐 두려워요…….”
“…….”
“에릴로트는 예법을 잘 알고, 발자크 오라버니는 말을 잘 타니 데이몬드 관할령에서 이것저것을 배울 수 없을까요?”
“…….”
“그리고 이제 아빠도 황제 폐하의 부르심 때문에 황도에 가잖아요…… 저는 동갑인 에릴로트가 제일 가깝게 느껴지는데, 그동안 데이몬드 관할령에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숙부들과 고모들도 달리아에게 동조했다.
“그래, 이번 기회에 친해지면 좋겠지.”
“도와주도록 해라.”
친해지긴 개뿔.
달리아를 도와주느라 자치권 회수 일에 신경을 못 쓰길 바라는 거면서.
할아버지는 고심했다.
‘큰일이다.’
그리미에 관할령은 화재로 정신없는 상황.
우리가 거절하면 달리아의 교육은 본성에서 하겠지.
‘주인공 버프가 있는 달리아를 공작성에 계속 있게 할 순 없어.’
버프 때문에 세상은 달리아에게 온갖 힌트를 줄 거다.
특히 힌트가 넘치는 공작성이라면 더욱 위험했다.
무엇보다 할아버지가 달리아에게 홀라당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리미에가 제일 반길 일이지.’
눈치 빠른 요슈아가 말했다.
“저희 남매가 달리아를 돕겠습니다.”
발자크와 나는 동시에 속삭였다.
“젠장.”
“제기랄.”
—하고.
* * *
“와아, 여기가 데이몬드 관할령이구나!”
만찬 후, 데이몬드 관할령에 온 달리아가 탄성을 흘렸다.
‘글로 읽을 때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네.’
가장 유력한 공작 후보인 데이몬드 아스트라.
그가 자식들을 위해 신경 쓴 관할성.
딸을 닮은 장미가 잔뜩 피어있었다.
달리아가 에릴로트의 팔에 덥석 팔짱을 끼며 말했다.
“성이 너무 예뻐, 에릴로트.”
“……칭찬 고마워.”
전혀 고마운 목소리가 아니었다.
‘얘는 내가 싫은가?’
하기야, 소설에서도 계획이 틀어지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이라고 표현되어 있었다.
‘하지만 에릴로트는 주인공이야. 잘 지내놔야지.’
달리아가 에헤헷 웃으며 말했다.
“우리 같이 자지 않을래? 새벽까지 간식을 먹으면서 떠드는 거야. 재밌겠지?”
“난 할 일이 있어서.”
달리아는 “우…….” 하며 입술을 내밀었다.
‘진짜 어려운 애네.’
소설로 읽을 땐 마냥 좋았는데, 실제로 보니까 엄청나게 친해지기 힘든 타입이다.
뒤에서 발자크가 소리쳤다.
“넌 왜 오늘부터 오고 난리야?!”
와, 발자크!
‘진짜 진짜 멋있어.’
임무에 나갔던 장면을 봤을 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엄청나게 거칠어 보이지만, 사실은 정이 많은 점도 좋다.
‘가시를 세워도 다 안다고. 발자크는 착한 캐릭터란 거!’
“하지만 황제 폐하께서 갑자기 아빠를 부르셔서 난 갈 데가 없는 걸…….”
“너희 관할성이 있잖아!”
“다 타버린 곳에 날 혼자 둘 수 없다고 하셨어!”
발자크가 “젠장!” 하더니 성큼성큼 성 안으로 걸어갔다.
달리아가 요슈아를 쳐다봤다.
“저기, 발자크는 바쁘다고 하니까 우리끼리 커피라도—”
“미안. 나도 바빠서 말이야.”
빙그레 웃은 요슈아가 에릴로트를 쳐다봤다.
“나눌 말이 있어.”
“응.”
그리고 남매는 홀랑 들어가 버렸다.
‘진짜 어렵네.’
하지만 포기는 없단다, 이 비싼 남매들아.
문 앞에 홀로 선 달리아가 히히 웃으며 속삭였다.
“의지하면 유세은이었다고.”
소설 속에 들어왔다.
자신에게 짐과 같았던, 남보다 못한 부모가 없는 세상.
자신을 사랑하는 진짜 가족들이 있는 세상으로!
한국에서의 이름은 유세은.
유혜민의 동생이었다.
이 3세는 악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