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89)
이 3세는 악역입니다-288화(289/390)
288화.
* * *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말들이 일제히 멈추었다.
그들은 내가 잡아놓은 푸슬후르 성의 기사를 보고 흠칫했다.
나를 본 달리아의 동공이 잘게 떨렸다.
“에, 에릴로트?”
“안녕, 달리아. 관할성에서 자고 있어야 할 네가 어떻게 여기 있는지는 묻지 않는 게 좋겠지?”
“아, 그건…… 그러…… 니까…….”
달리아가 말꼬리를 늘리며 등 뒤의 사내와 흑마의 사내를 번갈아보았다.
‘어떻게 빠져나갔겠어.’
그리미에의 그 대단한 마도구들과 저 <장막> 놈들의 도움 때문이겠지.
흑마가 달리아의 앞으로 나왔다.
“우리 아가씨를 겁박하지 마라.”
“염병을 떠네.”
“……뭐?”
“앗, 실수로 속마음이 튀어 나가버렸네. 미안해?”
흑마의 사내가 울컥, 후드를 벗었다.
“감히……!”
“감히는 너희가 감히고.”
“뭐야?!”
“네 머리카락, 눈에 익은데? 나 알지?”
“…….”
달리아의 호위는 <장막>에게 맡겼겠지.
소중한 주인공이라면 그만한 호위쯤은 붙였을 거다.
<장막> 소속.
발자크, 요슈아와 비슷한 나이대.
그리고 저 시리듯 아름다운 은발.
“마시타브바?”
흑마의 사내가 실소를 흘렸다.
“기억력 하나는 쓸만하구나. 그 좋은 기억력으로 새겨둬. 우리 형제의 참명을 부를 수 있는 건 오직 내 등 뒤의 소중한 분이란 걸—!”
쿠구구구구구구!!
산이 크게 울었다.
‘저 놈의 능력이구나.’
기르타브 때 느꼈다.
그는 금제를 당하고도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발휘했다.
마시타브바는 그런 자를 가볍게 말렸다.
그때만 해도 어린애였는데, 이젠 훌쩍 큰 성인이다.
‘내가 바보냐? 그런 놈과 싸우게?’
“비춰!”
소리치자 주변에 깔려 있던 우리 군사들이 일시에 어떤 마도구를 들이밀었다.
마도구의 이름은 영상 송신기.
즉…….
‘생방송 중이란 거다, 이것들아!’
“이 장면은 공작성 마경에 송신되고 있어. 할아버지와 가신들, 아주 대단한 귀빈들이 보고 있다는 거야.”
달리아가 끌고 온 다른 로브들이 흠칫 중얼거렸다.
“칸시스 대륙의 왕세자…….”
“살바토레 황자와 황궁인들까지…….”
난 히죽 웃었다.
“어디 한 번 공격해 봐, 이것들아!”
마시타브바의 손등에 핏줄이 불거졌다.
그때, 달리아가 소리쳤다.
“오해야, 에릴로트! 마시타브바, 나 내려줘. 내려갈래.”
그러자 달리아의 등 뒤에서 말을 몰고 있던 사내가 내려왔다.
그리고 달리아를 안아 땅에 내려주었다.
쥐면 꺼질까 불면 날아갈까 극진한 손짓이었다.
달리아가 얼른 내게 다가왔다.
“우린 널 공격하려던 게 아니야.”
“군사를 데리고 관할령 경계를 넘었으면서 공격할 생각이 없다라…….”
“그건, 어, 그러니까…… 아! 산을 안 넘었잖아? 산까지만 갔다가 돌아가려고…….”
“달리아.”
“그래, 공격할 생각은 정말로……!”
“거기까지야.”
“응?”
“조오기.”
나는 턱 끝으로 그들 뒤에 있는 표지판을 가리켰다.
저들이 오기 삼십분 전에 내가 직접 예쁘게 꽂아놓은 표지판.
[여기서부터 데이몬드 관할령~]손으로 꾹꾹 눌러쓴 표지판을 본 달리아 무리가 입을 떡 벌렸다.
마시타브바가 인상을 썼다.
“마음대로 경계를 정할 순 없을 텐데?”
“누가 마음대로 정했대? 확실하게! 소수점 다섯 자리까지! 딱 따져서! 예쁘게 꽂아둔 거거든?”
“말도 안 돼. 데이몬드 관할령은 이 산 넘어서……!”
“그야 군사들을 배치한 곳이 거긴 거지. 복잡한 산에서 어떤 놈이 샛길로 튀어 나갈 줄 알고 여기에 군사를 배치해?”
달리아 무리는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야 그럴 것이다.
영상 송신기 때문에 날 공격하지도 못하지.
군사를 데리고 경계령을 넘은 건 맞지.
‘이제 이대로 끌려가는 수밖에 없단다.’
달리아를 내려준 남자가 후드를 벗었다.
‘저쪽도 은발이네. 쌍둥이의 한쪽인가 보군.’
그가 말했다.
“장원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아가씨를 계셔야 할 곳으로 모셔온 것뿐입니다.”
“하지만 검을 차고 있잖아? 조사는 받아야겠지?”
달리아가 어쩔 줄을 모르고 입술을 깨물었다.
나와 내가 붙잡아둔 적마의 사내, 그리고 쌍둥이를 둘러보던 그녀는…….
“에잇!”
팟! 튀어나와서 적마의 사내가 들고 있던 양피지를 빼앗았다.
“내가 잡았어! 이제 내거라고! 이 연명장을 잡았으니까 우리 아빠가 후계 자리에 앉을……!”
달리아는 신이 나서 떠들며 양피지를 펼쳤다.
“……어?”
그러는 동안 나는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다.
……우스워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퍼져나가자 달리아가 굳은 얼굴로 날 쳐다봤다.
나는 살짝 고개를 들어 그 애와 시선을 마주했다.
“연명장인 줄 알았니?”
“그, 그게 무슨…….”
“이 자가 가장 강해 보이는 데다가, 때마침 내가 붙잡아두고 있었으니 연명장이 확실하다고 생각한 거겠지?”
“설마…… 그럼 설마…….”
“자, 고개를 들어 네 얼굴을 보여주렴.”
양피지를 쥐고 있던 적마의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
난 생긋 웃고 적마의 사내를 제압하고 있던 우리 병사들에게 말했다.
“풀어줘. ……루카를.”
이그리츠 군의 소년병이었던 사내.
칸시스에서 날 수행했던 두 명의 호위 중 한 사람.
이제 이그리츠 군의 별동대를 이끌고 있는 루카다.
루카가 씩,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이세즈와 이그리츠의 기사들이 다른 추적자들 또한 생포하였습니다.”
“그럴 리 없어! 그들은 우리의……!”
흑마의 마시타브바가 소리쳤다.
나는 뒷짐을 지며 말했다.
“그래, <장막>의 훌륭한 살수들이라고? 그럴 줄 알고 가는 곳마다 ‘저걸’ 띄워놨지.”
영상송신기를 가리키자, 달리아와 마시타브바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방계들은 너희들이 도착하기 전에 연명장을 빼돌렸다고.’
내가 너희가 도착할 거라는 정보를 흘려놨거든!
난 달리아를 보며 생글생글 미소 지었다.
“알겠니, 달리아?”
“…….”
“싸움은 때때로 힘보다, 이게 더 잘 통할 때가 있단다.”
머리를 톡톡 치자 달리아가 치맛자락을 꽉 말아쥐었다.
나는 그 애에게 상냥한 목소리로 말해줬다.
“들어야 할 얘기가 많겠어. 연명장, 네 아빠, 후계…… 네 입에서 흘려 넘길 수 없는 얘기들이 나왔잖니.”
“에, 에릴로트…….”
달리아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 * *
“뭐야? 소중한 분께서 에릴로트 계집애에게 붙잡혀?!”
“예. 장막의 감시자가 보내온 소식입니다.”
아일라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쿠말이 키운 살수들이었어. 게다가 마시타브바들이 함께 있었는데 대체 왜 그런 일이 벌어져!”
“그게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영상 송신기를 이용하였다고…….”
“영상 송신기?”
“공작성의 마경에 함께 있는 영상을 송출한 모양입니다. 공작님과 귀빈들이 보는 앞에서 데이몬드 관할령의 군사들을 공격할 수는 없었던 터라…….”
아일라는 이를 악물었다.
‘사악한 계집.’
실력으론 막아낼 수 없으니, 그따위 약은 수를 써?
집사가 초조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한데 이상합니다.”
“무엇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공작성에 사람을 보냈는데, 마경이 작동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뭐야?!”
“대체 어찌 된 노릇인지…….”
“어찌 되긴 어찌 돼! 마경에 영상을 송출하고 있다는 말은 거짓이었던 게지!”
두 사람의 머릿속에 베에, 혀를 빼물고 있는 에릴로트가 떠올랐다.
‘그래, 송신할 수 없었겠지.’
영상 송신기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만한 양의 송신기를 구매하려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갈 터.
수전노 같은 구석이 있는 그 계집애가 딱 한 번을 위해 그만한 돈을 썼을 리가!
송신기를 준비할 시간도 부족했을 것이다.
설사 미리 준비했다고 해도, 공작성의 마경 파장과 맞추는 작업을 남몰래 할 순 없다.
마법사 수백이 달라붙어 계산식을 만들어야 할 테니까.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건 물론, 어디선가는 소문이 새어 나왔겠지.
‘젠장, 제기랄!’
테이블을 거세게 걷어찬 아일라가 씩씩거렸다.
집사가 마른침을 삼키고 말했다.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달리아 님과 장막들을 데리고 공작성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원이 많은 만큼 이동의 가호석을 이용하진 못할 것이다.”
“하면…….”
“그 전에 달리아 님과 장막을 빼내 와야 해.”
아일라가 살벌한 표정으로 주먹을 쥐었다.
“주인님께 소식을 알리고, 군사들을 동원해라. 서둘러!”
“예!”
* * *
나는 귀를 후볐다.
“왜 그래, 아가씨?”
루카가 물었다.
“응, 누가 내 얘기를 열심히 하는 모양이라.”
그렇겠지.
소중한 달리아가 붙잡혔으니, 그리미에 관할성이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나는 결계 마차에 실려 호송되고 있는 달리아를 힐끗 쳐다봤다.
‘잡힌 것만이 문제는 아니겠지만.’
“루카, 확실히 경계해야 해.”
“그래.”
“저쪽은 달리아를 데려가기 위해 눈이 뒤집혔을 거야.”
군사를 데리고 남의 관할령에 들어갔다.
아무리 직계라도 조사를 받을 일이었다.
‘그래, 조사가 문제지.’
혹시라도 조사 중에 달리아에게 금술의 흔적이 발견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그리미에 관할령 놈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달리아를 빼앗으려 들 것이다.
루카가 주변을 흘낏 쳐다보고 내게 바짝 다가왔다.
“단장과 이그리츠의 중앙 부대가 데콘스 관할령 인근에서 합류할 거야, 아가씨.”
“응.”
결계 마차 안은 시끄러웠다.
꽥꽥 소리를 지르는가 하면, 마차를 걷어차는 자도 있는 듯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반항이 거셌다.
나는 손바닥만 한 창문을 열었다.
“시끄러워.”
그러자 중년의 남성이 소리쳤다.
“거래를! 거래를 합시다!”
“…….”
“에릴로트 아가씨께서 여기 계신다는 건 아직 방계들의 연명장을 추적하고 있는 중이란 것이겠지요.”
“…….”
“연명장을 손에 넣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달리아 아가씨만은……!”
“웃기고 있네.”
“……예?”
“연명장은 피차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내 손에 들어올 거야. 그런데 왜 너희와 거래를 하겠어?”
중년의 사내가 이를 악물었다.
딱 ‘저놈의 송출용 마도구만 없으면……!’ 하는 표정이었다.
“재물이나, 정보는 어떻습니까.”
“별로. 아쉽지가 않네.”
“하면 원하시는 것을……!”
“내가 원하는 건, 너희가 조용히 공작성으로 가는—”
그때였다.
쾅—!
나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야!”
“몬스터입니다! 근경에서 보지 못한 강력한 몬스터 떼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제길, 그리미에 관할령 놈들이군……!”
나는 황급히 창을 닫았다.
군사들에게 망원경을 받아 다가오는 몬스터를 확인했다.
‘바늘개? 바늘개의 무리인가?’
바늘개라면 여기 있는 군사들로도 충분한데…… 잠깐.
‘바늘개가 이렇게 엄청난 마력을 발산했나?’
아직 거리가 있는데도 살갗이 따끔따끔할 정도의 마력이었다.
‘설마…….’
나는 바늘개의 발밑을 주목했다.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림자 마물이다—!!”
옴브레와 같은 그림자 마물들.
마력량으로 보아 성체였다!
부정적인 감정을 먹고 사는 몬스터인 만큼, 인간에겐 저보다 까다로운 몬스터가 없었다.
게다가 저 엄청난 숫자까지…….
군사들은 이미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나는 빽 소리쳤다.
“중지! 도망쳐!”
“예?”
“저것들을 다 물리쳐도 피해가 엄청날 거야! 호송할 인력이 없게 된다고! 잔말 말고 도망쳐!”
우리는 재빨리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동의 가호석은 하나뿐. 모두 이동하기엔 턱없이 부족해.’
이렇게 되면 칼리 단장 부대가 합류할 때까지 죽어라 달려야 한다.
치사하게 말보다 속도가 빠른 바늘개의 그림자 속에 마물을 넣어오냐!
젠장!
“민가! 민가 쪽으로 가야 해! 그림자 마물은 불빛이 있는 곳에선 약해지니까……!”
“하지만 다리가 끊겨 있습니다!”
이것도 그리미에 관할령 놈들의 짓이겠지.
나는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산이 있다.
저 곳을 넘으면 데콘스 관할령이다.
‘하지만 산을 타면 우리 쪽 속도가 느려질 뿐만 아니라, 어둠이 깊어서 그림자 마물이 강해질 텐…… 잠깐, 데콘스 관할령?’
머릿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왜 여기서 공부하고 있어? 가호 수련 시간이잖아.”
“내 가호는 개발해봐야 별 볼 일 없잖아. 손목에서 빛의 링을 두를 뿐인 가호라고…….”
“…….”
“좋겠다, 너는. 그런 엄청난 가호를 가지고 있어서.”
‘리앙틴—!!’
리앙틴은 이동의 가호석을 가지고 있다.
즉시 산으로 이동해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녀의 가호라면 저 그림자 몬스터를 도망치게 만들 수 있었다.
“산으로 들어가!”
리앙틴이 올 때까지 숨어있어야 해!
나는 산으로 이동하며 리앙틴에게 통신했다.
[이 시간에 뭐야?]“도와줘, 언니!”
[……뭐?]“그림자 마물이 쫓아오고 있어! 언니라면 도와줄 수 있잖아!”
[그건…….]“도와줘! 언니밖에 믿을 사람이 없어……!”
잠깐 침묵한 리앙틴이 꿀꺽, 침을 삼켰다.
[위치를 말해.]“어디냐면……!”
리앙틴에게 합류할 위치를 말해주고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계곡 근처였는데, 우리는 숨을 죽인 채 리앙틴을 기다렸다.
‘치사한 놈들. 송출용 마도구가 있으니까 몬스터를 보내?’
얼마쯤 지났을까.
바스락.
인기척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 리앙틴인가?’
확,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보인 건…….
“도주지로는 옳은 선택이 아니구나, 에릴로트.”
나는 딱딱하게 굳어져서 상대를 쳐다봤다.
우리 주변에 떠 있던 송출용 마도구, 아니, 정확히 말하면 ‘송출용 마도구로 꾸며놓은 공중에서 떠다닐 뿐인 마도구’가 폭발했다.
“이제 내 딸을 내어주어라.”
그리미에가 소름 끼치는 미소를 머금었다.
이 3세는 악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