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90)
이 3세는 악역입니다-289화(290/390)
289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협박이라니, 백부님답지 않으신데요.”
“무엇보다 소중한 자식을 위해 못 할 것이 없는 게 아비지.”
나는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마리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나요?”
“글쎄, 누구를 말하는지 모르겠구나.”
“마리요. 당신 딸 말이에요!”
“내 자식은 달리아뿐이란다.”
온몸의 피가 머리로 쏠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이용하기 위해 낳고, 결국 영혼을 뽑아내 자식의 육체를 괴물로 만들었으면서 감히 그 입으로 아비라고…….”
“당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그리미에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첫 번째 삶에선 마냥 따뜻해 보이기만 하던 저 미소가 역겹게 느껴진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 달리아를 못 내주겠다면요?”
“아쉬운 일이지. 이 장원에서 너만 한 인재가 사라지는 건 말이다.”
“절 죽이기라도 하시겠다는 말씀이세요?”
그리미에가 픽, 실소를 흘렸다.
“시간을 끌어서 리앙틴이 올 때까지 기다리려는 모양이군.”
젠장.
눈치 빠른 놈 같으니.
그리미에는 쿡쿡 웃으며 말을 이었다.
“증인으로 삼아서 나를 축출하려고 말이지.”
“…….”
“그런데 말이다, 에릴로트.”
그가 고개를 숙여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코 앞에서 보이는 그리미에의 표정이 소름 끼치게 변했다.
“내가 리앙틴은 못 죽이겠느냐?”
나는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다시 언제나처럼 다정한 표정으로 돌아온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자, 내 딸을 가둔 마차의 열쇠를 다오.”
“내겐 라곤이 있어. 당신이 어떤 가호를 수집해놨든 간에, 인간의 몸으로 용을 이길 순 없어.”
“하면 불러보지 그래.”
“물러나. 정말로 부를 테니까!”
“아니, 넌 부를 수 없어. 용을 불러 전투에 이용한다면, 그 즉시 황제가 너를 영원히 황궁에 구금할 것이다.”
“상관없어.”
“그래? 내가 보기엔 넌 나 하나를 물리치자고, 남은 인생을 모두 걸 아이는 아닌데 말이야.”
그때였다.
“아가씨를 더는 위협하지 마십시오!”
검을 그러쥔 병사 하나가 그리미에에게 달려들었다.
“안 돼!”
나는 황급히 고함을 내질렀다.
그 순간, 그리미에에게 달려든 병사가 그대로 돌이 되어 쩌저저적, 소리와 함께 갈라지기 시작했다.
“아가…… 아가씨…….”
다른 군사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군사들이 무기를 거머쥐었다.
내 곁에 있던 자들이 앞으로 몰려 나와 그리미에를 가로막았다.
“물러서십시오!”
“아가씨를 위협할 요량이라면 공격하겠습니다.”
루카마저도 나를 제 등 뒤에 숨기고, 무기를 잡았다.
우리 군의 최고 명령자인 아빠는 늘 한 가지를 당부시켰다.
“그 어떠한 순간에도 너희들 작은 주인의 목숨이 우선이다. 내 아들, 딸의 목숨이 위험하다면 그 순간만큼은 항명도 불사해라.”
난 목이 찢어져라 소리쳤다.
“하지 마! 싸워선 안 돼! 그러지 마!”
이길 수 없어.
저 힘엔 결코 이길 수 없어.
‘<열람>이 말하고 있단 말이야—!’
그리미에와의 전투에서 에릴로트가 동원한 부대가 몰살당했다.
이곳에 있는 군사들뿐만이 아니었다.
이어진 서술에서 ‘칼리를 잃었다’는 말이 나온다.
‘이그리츠의 단장인 칼리조차 상대가 안 되는 힘이란 말이야……!’
루카가 초승달 형태의 무기를 내던졌다.
“탈리, 제번! 너희는 아가씨를 지켜라! 셔센트는 후위에서 나를 보조해!”
“예!”
“옛!”
루카의 무기가 공중을 빙 돌아 그리미에에게 향했다.
그러나 파스슷, 균열음과 함께 순식간에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이깟 무기로 내 목을 자를 수 있을 거라 여겼던가.”
“설마, 그건 눈속임이야—!”
무기가 바스러진 먼지 틈으로 루카가 도약했다.
아래를 향해 단도를 쥔 그가 그리미에에게 달려들었다.
그 틈에 궁수들이 화살을 날렸다.
그러나.
“호기와 만용을 구분해라.”
루카의 검과 궁수들의 화살은 바스러졌고, 루카는 목을 잡혀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루카와 나의 시선이 부딪쳤다.
이윽고 그리미에에게 잡힌 목부터 푸른 반점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건 그리미에가 본래 가졌던 가호, <맹독>이었다.
현존하는 약으로는 결코 치유가 불가능한 독.
“하, 하지 마…… 하지 마……! 백부님, 제발요!”
“멈추세요, 아가씨!”
“안 됩니다!”
병사들이 나를 가로막았다.
“루카는 왜 칸시스 대륙에까지 왔어?”
“음, 명이라서?”
“싫다고 했으면 칼리는 들어줬을걸. 용병이 된 건 가족을 찾기 위해서라며. 칸시스에서 이럴 시간이 없는 것 아냐?”
“용병이 된 이유는 가족을 찾고 싶기 때문만은 아니야.”
“그러면?”
“로망이 있거든.”
내게 불쑥 얼굴을 내밀며 빙그레 웃던 루카.
“공주님을 지키는 백마의 기사가 내 꿈이다.”
“……말도 안 돼.”
“정말이야. 엄청나게 강해서 누구든 지킬 수 있는 사람. 그게 내 꿈이거든. 그리고 넌…….”
“…….”
“얼핏 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마음 약한 공주님이라 지켜주고 싶고.”
루카는 좋은 사람이었다.
동료들을 아끼고, 사랑해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
힘에 부쳐도 언제나 웃는 얼굴로 상대를 안심시키는 남자.
나는 병사들을 뿌리치며 고함을 내질렀다.
“달리아를 내주겠어요! 열쇠든, 뭐든 줄 테니까 그만해……!!”
“미안하지만, 늦었단다.”
“백부님, 제발요…… 제발……!”
“이빨을 드러낸 짐승은 단죄해야 하는 법이거든.”
“그리미에—!!”
“조카님에게도 가르침이 필요한 듯하고.”
나는 결계 마차의 열쇠를 내던졌다.
“됐잖아! 이걸 원했잖아!”
그리미에는 어깨를 으쓱하고서 루카의 몸에서 손을 떼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온몸에 푸른 반점이 생긴 루카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독이 퍼진 것이다.
나는 병사들을 뿌리치고 루카에게 달려갔다.
“루카, 정신 차려. 축복의 땅으로 갈 때까지만…… 내가 새로운 뿌리를 열면 살 수 있어. 루카……!”
루카는 움찔움찔 몸을 떨며 손을 뻗었다.
그리미에의 발목으로.
그의 발목을 꽉 쥔 루카가 억지로 입을 뗐다.
“못…… 가…….”
“아깝구나. 내 손에 키워졌더라면 세상에 이름을 떨칠 수 있었을 터인데.”
루카의 손을 떼어낸 그가 내가 내던진 열쇠를 주웠다.
그리고 결계 마차를 열어 달리아를 꺼내주며 내게 말했다.
“이건 백부의 충고다. 다시는 달리아에게 손을 대지 말라는—”
쉬익!
말을 맺기도 전에 무언가 그리미에의 발치에 꽂혔다.
‘저거…….’
발치에 꽂힌 무기를 본 나는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나와 함께 절벽 위에 선 사람들을 본 루카가 픽 웃었다.
“드디어…… 왔군.”
바람이 불었다.
절벽 위 사내들의 망토가 바람에 일렁였다.
……아스트라 제2백작가, 그러니까 데이몬드 관할령의 문양이 새겨진 그 망토가.
칼리의 이그리츠 중앙 부대가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앞에 선 사람은…….
나는 뚝, 뚝,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아빠…….”
—하고.
순간, 아빠와 칼리의 부대가 절벽으로 뛰어내렸다.
“내 딸에게 네 충고 따윈 필요 없어.”
“데이몬드.”
가장 아스트라 공작 위에 가까운 두 남자.
그리미에 아스트라와 데이몬드 아스트라의 시선이 맹렬히 부딪쳤다.
* * *
이그리츠의 참모 할러드가 나와 루카에게 달려왔다.
“루카, 괜찮으냐.”
“버틸 만…… 합니다…….”
그러자 아빠의 오른편에 위풍당당 선 칼리가 소리쳤다.
“그럼 상황 보고 해!”
이그리츠의 공격대장 켄달이 쯧, 혀를 찼다.
“한눈에 봐도 상태가 정상이 아니잖아요. 단장은 피도 눈물도 없습니까?”
“그런 건 의지로 이겨내!”
“하여간에…….”
할러드가 루카를 부축했다.
“괜찮겠느냐.”
“예……. 확인된 가호는 총 넷…… 아니, 다섯입니다.”
“다섯?”
“사람을 분해시킬 수 있습니다. 얼핏 보면 데이몬드 님의 <분해>인 듯싶으나, 직접 당해보니 달랐습니다.”
“해서.”
“<구속>으로 몸을 구속하고, <석화>로 몸을 굳힌 뒤, <부식>으로 파괴, 이 모든 가호를 <최속>의 가호를 이용해 빠르게 발동시키는 모양입니다. 거기다 <맹독>의 가호까지 있었습니다.”
나는 황급히 말했다.
“그 외에도 <신의 숨결>이 있어. 상대와 자신의 가호를 강화시키는 능력이야!”
아빠가 무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잔재주가 생겼군.”
“물러나라고 권유하지. 우리가 맞붙으면 장원의 피해가 막대할 거다.”
“내 자식 눈에 눈물이 났어.”
“내 자식도 피해를 봤으니 피차일반이 아닌가.”
“애 싸움에 어른이 끼어든 건 피차일반이라고 할 수 없지.”
쾅!
절벽이 갈라지더니 바위가 그리미에 일행의 머리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빠가 절벽을 통으로 분해한 것이다.
달리아가 흠칫, 그리미에의 등 뒤에 매달렸다.
“저, 저게 <분해>란 말이야…… 뭐야, 이게…… 괴물이잖아…….”
“달리아.”
“아, 아빠, 무서워요!”
“달리아!”
“무섭다고요!”
잘한다!
달리아가 그리미에에게 들러붙은 탓에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미에가 재빨리 가호를 발동했다.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던 바위는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나도 얼른 가호를 발동했다.
“아빠, 오른쪽이에요! 마시타브바의 동생이……!”
동생 마시타브바가 아빠를 향해 파고들었다.
그러나 동생 마시타브바의 단도는 금세 분해되고 말았다.
‘빨리, 빨리 타개법을 찾아야 해……!’
나는 얼른 글을 읽기 시작했다.
전개가 바뀌었다.
아빠가 등장하자, 우리 병사들이 전멸한다는 서술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타개책은 있어. 잠깐만, 곧 바늘개가 합류한다고?!’
“할러드! 7시 방향에서 그리미에의 몬스터 떼가 와!”
“켄달, 넌 나와 몬스터를 처리한다!”
그 와중에도 달리아는 계속 그리미에에게 매달려 있었다.
그리미에가 쯧, 혀를 찼다.
“에릴로트의 가호가 거슬리는구나.”
그러자 마시타브바의 형 쪽이 다가왔다.
“어쭈, 여긴 안 되지. 우리 쪽 공주님이거든.”
켄달이 마시타브바의 형을 가로막았다. 루카도 비척비척 켄달의 곁에 섰다.
그러는 동안, 달리아를 떼어낸 그리미에가 아빠와 부딪쳤다.
쾅! 콰과과과곽—!!
주변의 지형이 변화할 정도로 엄청난 격돌이었다.
그런데…….
‘뭐야, 바람의 방향이 왜 이래?!’
아빠와 그리미에가 파괴한 바위 같은 것들이 죄다 아빠 쪽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피하면 동풍이 불고, 반대편으로 피하면 서풍이……!
나는 이를 으득, 갈았다.
“저놈의 주인공 버프!”
세계는 주인공의 승리를 강하게 바란다.
아빠가 온갖 전투에서 승리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지금 세계는 주인공인 달리아의 승리를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아빠가 밀리고 있어.’
그리미에는 다른 <장막>에게 새로운 가호를 부여할 정도로 여유로웠다.
망할!
‘실력으론 아빠가 우위인데……!’
그리미에의 가호는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 아빠만큼 가호를 능숙히 사용할 수 없었다.
“다시 주인공을 바꿀 방법이 없을까…….”
가장 특별한 사람이 주인공이 된다.
‘세계는 회귀보다는 빙의를 특별하다고 여기는 거야.’
그래서 회귀한 나보다 빙의한 달리아를 주인공으로 삼은 거다.
‘빙의한 사람보다 특별한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
고민하던 찰나, 사람들이 달려왔다.
이 산에 들어오기 전, 내가 보낸 긴급신호를 받은 콘라드와 한지혁이 군사들을 끌고 온 것이다.
“뭐, 뭐야, 이게 어떻게 된……!”
한지혁이 입을 떡 벌렸다.
그가 더듬더듬 물었다.
“지, 지원군을 데려오긴 했는데 이길 수 있을까…….”
계곡이 붕괴할 정도의 전투였다.
거기다 저쪽엔 <장막>의 강자가 둘이나 있다.
한지혁이 중얼거렸다.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
“한지혁.”
“어?”
“한지혁, 한지혁, 한지혁…….”
“뭐, 뭐야. 왜 그렇게 내 이름을 불러?”
“여기 있잖아!”
빙의해온 특별한 사람!
‘가호만 있으면 돼. 가호만 있으면 한지혁이 달리아보다 특별해질 수 있어.’
나는 이동의 가호석을 한지혁에게 쥐여주었다.
그리고 속삭였다.
“그리미에는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자기 병사들에게 가호를 나눠주고 있어.”
“어?”
“가호를 나눠주는 순간 끼어들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알아먹게 얘기해.”
“네가 이 세계의 주인공이 되는 거야.”
나는 그리미에를 살폈다.
그리고 아빠와 시선을 맞추고 눈짓으로 신호를 주었다.
‘공격해요!’
그리미에가 가호를 나눠주던 순간, 아빠가 그리미에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지금이야—!”
“에이씨, 모르겠다!”
한지혁이 홀랑 이동의 가호석을 발동했다.
그리미에와 장막의 전투원 사이로 이동.
그리미에의 손이 한지혁의 몸에 닿자…….
파아아아앗—!!
엄청난 빛과 함께 세상이 크게 요동쳤다.
나는 황급히 가호를 발동했다.
텍스트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리미에는 미간을 좁히며 제 손을 쳐다봤다.
한지혁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이게 맞아? 어? 에릴로트, 이게 맞냐고……!”
그때였다.
소개문이 바뀌었다.
최약체에서 최강체로
~전직 사기꾼의 시종 노동기~
세상이 바뀐 것이다.
한지혁이 주인공인 세상으로……!
이 3세는 악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