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93)
이 3세는 악역입니다-292화(293/390)
292화.
대부분의 방계들이 움찔움찔 눈치를 보며 일어나는 가운데, 몇 사람은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가장 상석에 있는 에즐로 자작.
그 옆에 있는 푸슬후르 남작.
그리고…….
‘저 여자는 누구지?’
나는 힐끗 요슈아를 쳐다봤다.
“저쪽은?”
“작년에 죽은 로노들 자작의 외동딸 메텔이야. 로노들 가문은 저 여자가 이었나 보더군.”
로노들.
익숙한 가문이다.
로노들 자작은 할아버지의 사촌, 즉 선대의 조카였다.
할아버지의 형제들은 모두 죽었으니, 따지면 본가와 가장 가까운 가문이다.
‘그 외에도 뭔가 또 있는 것 같은데 뭐지?’
아니지.
일단 처리해야 할 건 연명장의 일이다.
나는 에즐로 자작을 쳐다보았다.
“자작은 목숨이 소중하지 않은가 봐.”
“무릎을 꿇든, 꿇지 않든 간에 아가씨는 저희를 죽이지 않으실 테니까요.”
“그래 보여?”
에즐로 자작이 턱을 가볍게 들었다.
“연명장을 밝히고 방계를 죽일 생각은 없으시지 않습니까.”
“…….”
“피차 목적은 자치권을 빼앗는 것이니. 그렇게 데이몬드 님을 공작으로 만드는 게 목표겠지요.”
“…….”
“방계와의 전쟁은 아가씨도 바라지 않으실 텐데요.”
“…….”
“공작님께서 방계를 다 죽이고 자치권을 회수해오라고 하진 않으셨을 테니!”
에즐로 자작이 그제야 일어나 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아가씨가 연명장을 꺼낸다면 공작님께선 우리 모두를 죽여야 합니다. 역적을 살려두는 선례를 남기실 분이 아니지요. 한데 아가씨…….”
“…….”
“이제 연명장을 손에 넣었으니, 그 다음 아스트라를 구상하셔야지요. 방계 없이 이 넓은 장원을 어찌 다스리실 겁니까?”
무릎 꿇고 있던 방계들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다시 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뜻이다.
‘세치 혀로 그 권력을 쥔 사람답네.’
나는 픽 웃었다.
그러자 에즐로 자작이 침착하게 대꾸했다.
“블러핑입니까. 제겐 먹히지 않아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목적과 수단을 구분하지 못하는 게 웃겨서.”
“……예?”
“할아버지가 자치권을 회수하는 이유는 너희의 오만 때문이다.”
나는 방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감히 무리지어 본가에 대항하는 너희의 그 불충을 다스리기 위해 자치권을 회수하시려는 거야.”
상황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에즐로 자작은 조급한 얼굴이었다.
나는 생긋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자치권을 회수해도 너희가 계속 오만하다면 의미가 없지.”
“…….”
“게다가 말이야. 너희 없이 이 아스트라를 다스리지 못한다는 건 어디서 나온 생각이야?”
나는 창문을 쾅! 내리쳤다.
“이제 할아버지가 세운 짐승 우리를 졸업한 3세들이 있다.”
“……!”
“그들에게도 관할령이 필요할 터. 너희를 모두 도륙하고 사촌들에게 지역을 쥐여 준다면 회수권 반대파도 입을 다물겠지.”
“아, 아가씨……!”
나는 에즐로 자작에게 사뿐사뿐 다가갔다.
머릿속에서 경고하고 있었다.
‘여기다.’
여기서 제대로 본을 보여야 한다.
방계들이 아직까지 내게 고개를 뻣뻣이 드는 이유의 한축.
그건 그리미에다.
그리미에라는 다정한 군주.
데이몬드 관할령과 척을 져도, 그리미에의 휘하에 들어간다면 안전할 거라 믿는 것이다.
‘그래, 겉보기에 그리미에만큼 온화한 사람이 없겠지.’
저들 입맛에도 딱일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 아빠가 후계가 된다고 해도, 그리미에 밑에서 규합하여 판을 뒤집으려 들 터.
‘안 돼. 앞으로 결코 장원에서 파벌을 구성하지 못하도록 해야 해.’
나는 에즐로 자작의 호위가 찬 검을 뽑았다.
그리고…….
“아아아아악—!”
어깨를 깊이 베인 에즐로 자작이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한 번 더 검을 내질렀다.
에즐로 자작은 스르륵, 미끄러져 믿을 수 없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자작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는 기억해야 해.”
“대체…… 대체 왜 이런 짓까지……!”
“데이몬드 아스트라의 앞에 누가 있는지.”
“……!”
“데이몬드 아스트라의 자식이 아비를 위해 못할 것이 없다는 것 또한! 네 놈들 눈에 똑똑히 새겨 넣어야 할 것이다.”
에즐로 자작이 새파란 얼굴이었다.
그때, 푸슬후르 남작과 새로운 로노들 자작이 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내 앞에 털썩 주저앉아 고개를 숙였다.
“살려주십시오, 아가씨!”
“원하시는 모든 것을 바칠 것입니다.”
다른 방계들도 헐레벌떡 몸을 낮췄다.
“원하시는 모든 것을!”
“머지않을 미래의 2세들께 영광을!”
“데이몬드 관할령에 적오기의 영광을……!”
자세를 바로 한 나는 발자크, 요슈아와 시선을 마주했다.
자치권을 회수했다.
적오기가 눈앞에 있었다.
* * *
공작성.
그리미에 부녀와 마주보고 앉은 드뷔시 자작이 무감한 얼굴로 말했다.
“성급하셨습니다.”
그리미에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어찌 그런 짓을 벌이셨습니까. 아직 그리미에 님에 대한 공작님의 신뢰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해서, 에릴로트에게 정보를 주신 겁니까. 제가 가주가 될 수 없도록 데이몬드를 도우라고.”
그리미에의 눈빛이 드물게 가라앉아있었다.
드뷔시 자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데이몬드 님과 에릴로트 아가씨가 세운 공에 대한 마땅한 치하였습니다.”
“그렇군요.”
그런 얘기 중에 달리아가 끼어들었다.
“저기, 저어! 아빠는, 아빠는 잘못이 없어요!”
그녀가 무릎을 잡고 빽, 소리쳤다.
“에릴로트가 저를 가둬서 공작성으로 데려가니까, 아빠가 저를 구하려고……!”
“상황은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네! 그러니까 아빠는 용서해주세요.”
“용서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지요. 피차 두 분을 가둬서 벌할 수 없으니.”
드뷔시 자작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싸늘한 표정으로 그리미에 부녀를 바라본 그가 말을 이었다.
“황제 폐하께서 그리미에 님 곁에 두고자 하시니, 가문 내에선 벌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황제의 권력에 도전하는 일이니 말입니다.”
“헤아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
“아뇨, 그리미에 님. 질책하는 겁니다.”
“질책이라시면?”
“감히 본성의 팔다리를 묶고, 형제와 목숨 건 혈투를 벌인 당신께.”
“하하, 질책이라……. 그립습니다. 자작께 질책 받는 것은 어릴 때나 있었던 일이 아닙니까. 한데.”
그리미에의 표정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질책할 주제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
드뷔시 자작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미에는 다시 빙그레 웃었다.
“자식이 생기니 이렇게 되더군요. 지킬 것이 있는 자는 못할 게 없는 법이지요. 데이몬드가 이러한 심정이었을까요.”
“아빠…….”
달리아가 감격스러운 듯 그리미에의 팔을 끌어안았다.
드뷔시 자작은 여전히 굳은 채였다.
‘가면 속에 도사리는 진짜 표정을 본 것만 같구나.’
그때, 통신석이 울었다.
“그래.”
[자작님, 에릴로트 아가씨께서 방계들을 이끌고 본성에 도착하셨습니다.]통신을 종료한 드뷔시 자작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미에 님을 질책할 주제가 되려는 모양입니다. 방계 가문을 다스리는 것은 제 책무가 아닙니까.”
“…….”
드뷔시 자작이 문을 나섰다.
달리아가 다급히 그리미에를 끌고 일어났다.
“아빠, 우리도 가요! 가서 어떻게 됐는지 확인해요! 네?”
기어코 그리미에를 끌어낸 달리아가 드뷔시 자작을 따라 복도를 내달렸다.
달리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방계들이 자치권을 주었나?’
이렇게 쉽게?
소설에서는 완전히 쇠고집이었는데!
‘난 에릴로트와 싸웠잖아. 그러니까 데이몬드도 날 싫어하겠지? 이대로 후계가 되면 안 되는데…….’
그러면 나의 해피해피 라이프가……!
달리아와 그리미에가 막 대알현실에 도착한 찰나.
방계 가주들이 공작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청합니다, 부디 본가에서 부족한 저희를 헤아리시어 관리관을 보내주십시오!”
“청합니다!”
“부디!”
“부디!”
달리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자치권을 내놓겠다는 얘기잖아!’
방계들의 주변엔 직계들이 가득했다.
벌써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모양이었다.
공작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데이몬드 아스트라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실망시키는 법이 없구나.”
쿡쿡 웃으며 입을 연 공작이 성큼성큼 무언가에 다가갔다.
대알현실의 금좌, 그 뒤에 걸린 적오기를 향해!
그가 적오기를 들자, 데이몬드 아스트라와 그 자식들이 방계들에 앞에 나섰다.
적오기를 들고 그들에게 다가간 공작은 말했다.
“데이몬드 아스트라.”
“예.”
데이몬드가 가장 먼저 무릎을 굽혔다.
뒤이어 에릴로트, 발자크, 요슈아가 무릎을 굽히고 공작을 올려다보았다.
적오기를 데이몬드에게 내민 공작이 선언했다.
“금일부로 데이몬드 아스트라를 적오기의 계승자로 명명하고, 가문을 수호케 하리라.”
깃대를 건네받은 데이몬드가 몸을 일으켰다.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소리쳤다.
“적오기의 계승자를 뵙습니다.”
뒤이어 발자크와 요슈아가 고개를 숙이며 제창했다.
“금좌의 후계자를 뵙습니다!”
“금좌의 후계자를 뵙습니다!”
와아아아아—!
가신들과 고용인, 병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다른 2세와 3세들도 마지못해 박수쳤다.
달리아가 당황한 얼굴로 그리미에를 쳐다보았다.
“아, 아빠…….”
“…….”
“아빠?”
달리아는 흠칫했다.
언제나 다정하던 아빠의 표정이 소름끼치도록 무서웠다.
그리미에는 적오기를 든 데이몬드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 틈에 있던 에릴로트가 몸을 일으켰다.
적오기를 든 부친을 벅찬 얼굴로 바라보던 에릴로트가 그에게 다가갔다.
“축하드려요. 아스트라 제2백작…… 아니, 아스트라 백작님.”
“그래.”
“드디어, 드디어…….”
“알고 있어.”
데이몬드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한 폭의 그림 같은 광경을 지켜보던 달리아는 생각했다.
‘주인공이란 것만으로 저걸 모두 차지하는 건 치사하지 않나.’
아니, 치사해.
보통은 빙의해온 사람이 새로운 주인공이 되는 법이잖아.
달리아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 * *
며칠 후.
우리 가족은 황도에 도착했다.
제2백작저를 정리하고, 후계가 사용해야 마땅한 제1백작저로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리시먼드가 아빠와 나, 그리고 쌍둥이를 배웅 나왔다.
“불초한 장남이 아스트라 제1백작님을 뵙습니다.”
“고생했다.”
“보람이 있었습니다.”
아빠가 리시먼드의 어깨를 두드렸고, 리시먼드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까치발을 들고 아빠의 뒤에서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제1백작이 아니야. 이제 유일한 백작이라고. 장남의 권한은 모두 폐해졌으니까.”
이제 그리미에는 백작도 아니란 소리지.
내가 낄낄거리자, 오라버니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내가 실수했어.”
“예비 2세가 되어 황도로 돌아왔네. 뜻 깊구만!”
“짐은? 정리가 끝났습니까, 형님.”
요슈아의 말에 나는 흠칫했다.
‘짐을 꺼내? 그러면……!’
“아, 아빠! 저는 가져갈 짐을 체크해야 돼서요! 오, 올라가 볼게요!”
그리고 한지혁을 끌고 홀랑 내 방으로 올라갔다.
몇 년 만에 보는 방은 그대로였다.
늘 깨끗하게 정리해놨는지 먼지 한 톨이 없었다.
내게 끌려온 한지혁이 말했다.
“뭐야, 왜 그래?”
“보물.”
“어?”
“내가 이 저택을 사들여서 제2백작저로 쓴 이유 말야!”
한지혁이 헉, 숨을 들이켰다.
그래, 여기는 본래 선황의 사저였다.
그래서 이런저런 보물들이 숨겨져 있었는데, 나는 그걸 찾아서 묵혀두었다.
사용할 때를 기다리면서.
우리는 주변을 살피며 슬금슬금 서재로 들어갔다.
그리고 책장을 마구잡이로 뒤졌다.
“야, 에릴로트. 지하로 이어지는 버튼이 어디 있었지?”
“기억 안 나……. 짓고 나서 한 번도 안 들어갔잖아.”
“그러니까 그걸 왜 안 들어가냐고!”
“저택 곳곳에 눈이 있는데, 잘못해서 비밀 통로를 들키면 어떻게 해? 그리고 온갖 사건 때문에 들어갈 틈도 없…… 여기다!”
나는 책을 꺼내서 버튼을 눌렀다.
드드드드드득.
소음과 함께 지하 통로로 이어지는 문이 열렸다.
그러자 문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웬 큰 소리가 들렸는데 무슨 일이 있으신지요!”
“아, 아냐! 책을 떨어뜨렸어. 여기 짐은 내가 챙길 테니 너희는 다른 곳을 부탁해!”
“예.”
나는 한지혁에게 눈을 부라렸다.
“이것 봐. 이런데 어떻게 남몰래 열어?”
“그렇겠네. 일단 들어가자.”
우리는 횃불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모습을 드러낸 선황의 보물들을 본 한지혁이 말했다.
“뭐야, 별 것도 아닌데? 박스 하나면 옮기겠다.”
“그래, 마법사들이 전부 들러붙어서 1센티씩 조심조심 걸어간다면 말이지.”
“어?”
저건 죄다 성물이다.
그것도 고대의 엄청난 결계들이 걸린, 성물.
난 쪼그려 앉아서 성물을 쳐다보았다.
“백작저로 들어가는 건 좋은데 말야. 이걸 어떻게 옮기지?”
“결계 파훼는 네 특기잖아.”
“고대의 결계라 처음 보는 식이야. 저거 하나는 풀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나는 향로처럼 생긴 마도구를 가리켰다.
“이 성물의 결계 파훼는 쉬워. 식이 현대에서도 이용하는 거라.”
“사용해보지 그래?”
“이 성물이 다 어떤 건지 모르니까 못 쓰지. 괜히 작동했다가 난리가 나면 어떻게 해.”
“그렇다고 안 옮길 수도 없잖아.”
나는 한지혁을 보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저도 그리미에가 무슨 가호를 준 줄 몰라서 못 쓰면서.”
“나는 마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르니까 그렇지! ……무서운 것도 있지만. 하여간에 한 번 해봐.”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성물을 썩힐 순 없지.
나는 조심스럽게 성물의 결계를 파훼했다.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만지지 않고 살피기도 10분.
한지혁이 “아오!” 하더니 덥석 결계를 푼 성물을 잡았다.
“뭐해!”
“날 새겠다, 인마. 뭐야, 이걸 누르는 건가?”
파아아아앗—!
빛이 퍼져 나왔다.
나는 딱딱하게 굳어서 퍼져나가는 빛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잠깐만, 지혁아.”
“어? 뭐?”
“……그거 뭐야?”
“뭐가.”
“네 옆에 그…….”
나는 한지혁의 옆에서 귀신처럼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사내를 가리켰다.
‘이 느낌, 이 감각, 그리고 저 반투명한 사람…….’
난 저런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수, 수호성!”
세일론이 내 곁에 있을 때, 아주 가끔 본 적이 있던 수호성.
가호의 근원이자, 고대인의 영혼인 수호성이다!
이 3세는 악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