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295)
이 3세는 악역입니다-294화(295/390)
294화.
나는 슥, 달리아의 시선을 피했다.
“에, 에릴로트……?”
“규율이라잖니. 서둘러야 약속 시간에 늦지 않을 거야, 달리아.”
입술을 꾹 깨무는 달리아가 창문에 비쳐 보였다.
그러나 그뿐.
달리아와 그의 하인은 마차에서 내렸다.
* * *
황비궁에 도착하자, 시녀들이 날 응접실로 안내해주었다.
“황가에 광영을. 황비님을 뵙습니다.”
“그래. 한데 네 새로운 사촌은 보이지 않는구나.”
모른 척하기는.
‘일부러 달리아를 중앙문으로 못 들어오게 해놓고선.’
황비궁의 수많은 시녀가 달리아의 상황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누구 하나는 중앙문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았겠지.
그러나 다들 모르쇠로 나온 건, 황비 때문임이 틀림없다.
‘기를 잡으려고.’
그래야 황비가 손을 내밀었을 때 달리아의 감동이 커질 테니까.
혹시 손잡을 일이 없다면, 새로운 사촌을 견제하고 있을 내게 ‘황비는 내 편이다’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일 터다.
그리고…….
‘살바토레 황자가 아스트라에 왔을 때 기 싸움을 한 일을 보복하려고.’
하여간에 쪼잔하다니까.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미소 지었다.
“북서문을 통해서 오는 중입니다. 다소 늦더라도 아량을 베풀어주십시오.”
“아아, 그렇군. 아직 인명록에 이름이 오르지 않았으니…….”
황비도 모른 척 고개를 끄덕였다.
“앉으려무나.”
‘이제 시작이다.’
나는 자리에 앉고서 한지혁에게 눈짓했다.
한지혁이 향로를 끌어안은 채로 테이블에 다가왔다.
나는 생긋 웃으며 황비에게 말했다.
“특별한 허브를 구했습니다. 향을 선보여도 될는지요.”
“영애가 자신하는 물건이라니 본궁도 무척 궁금하구나.”
“한.”
한지혁을 부르자, 그가 향로를 테이블 중앙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허브를 넣고 불을 켜자, 응접실에 금세 그윽한 향이 퍼져나갔다.
“어머나…….”
시중을 들던 시녀들은 황홀한 표정으로 향을 맡았다.
‘그럴 것이다. 이게 한 줌에 얼마나 하는데.’
난 칸시스 대륙에서 더욱 수전노가 되었다.
그야 쥐꼬리만 한 봉급으로 칸시스 대륙을 횡단해야 했으니까.
그런 내가 피눈물을 흘리며 사 온 허브였다.
귀족들이 암시장에서 엄청나게 고가로 거래할 만큼 좋은 허브라, 언젠가는 써먹을 일이 있을 것 같았거든.
‘그걸 이렇게 쓰네.’
황비도 매우 흡족한 표정이었다.
“이 향, ‘5월의 신부’로구나. 오래전에 칸시스 대륙의 대사 부인이 향수로 만들어 쓰던 것을 보았다.”
“그러셨군요.”
“고맙구나. 이라드 대륙(칼소이에 제국이 속한 대륙)에선 피지 않는 데다가, 칸시스에서도 중독성 약초로 분류되어 구할 수가 없었거든.”
“마법으로 정제하여 중독 성분을 없앴으니 안심하고 사용하셔요.”
“굳이 이것을 가져온 것은 본궁이 5월에 폐하와 혼인하였기 때문이겠구나.”
……그랬어?
‘몰랐는데…….’
시녀들이 우후후 웃으며 황비에게 동조했다.
“‘5월의 신부’의 꽃말은 가정의 번영과 모성, 영원한 사랑이라지요. 실로 사려 깊은 선물입니다.”
그냥 허브 중에 제일 쓸만한 걸 가져온 건데.
뭐, 알아서 착각해준다면 나야 나쁠 것 없지.
나는 시녀의 말이 맞는 척 후후 웃었다.
그리고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자, 슬슬 보여야 하는데…… 옳지!’
황비와 시녀들 옆으로 수호성들이 보인다.
황비의 수호성은 화려한 드레스를 걸친 여자였다.
황비만큼이나 오만한 표정이었다.
[만들어진 자들 주제에 쓸만한 걸 만들어냈네. 향이 꽤…… 향?]요슈아의 수호성 때와 마찬가지로 향이 느껴지는 것에 매우 당황한 표정이었다.
‘지금이야!’
나는 한지혁에게 눈짓했다.
한지혁이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 안주머니를 더듬었다.
정확히 말해서, 신석(신성력이 담긴 광물)을.
가호 <하인의 귀감>이 발동되었다.
‘왜 세계가 한지혁이 주인공인 스토리에 <~전직 사기꾼의 시종 노동기~>라는 부제를 붙였나 했더니.’
하인의 귀감.
신성 가호의 일종으로, 종합 보조 계열의 가호였다.
보통은 영역 내 군사를 강화시키는데 쓰인다.
‘하지만 난 수호성에게 이 <하인의 귀감>의 사용법을 배웠지.’
……수호성 본인도 이 가호의 엄청난 본질은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사실은 강화보다 쓰임새가 많은 가호라고! 주인의 옷매무새를 남들과는 다르게, 누구보다 빠르게 다듬을 수 있거든.”
즉, 시전자의 신체 능력 향상.
“또 주인과 몰래 대화도 가능해.”
즉, 소리 조종.
“그리고 이건 필살기인데 말이야. 주인의 말이 빠를 때 느리게 만들어서 신속하게 메모할 수 있는……!”
즉, 시간 조종.
지금은 응접실도 커버하기 힘든 코딱지만 한 영역이다.
하지만 앞으로 가호의 레벨을 올릴수록 좀 더 범위가 넓어질 거다.
‘또 지금도 이용 가능하고 말이야.’
“여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의의의의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음음음음음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은은은은……. (영애의 마음은…….)”
황비의 말이 0.05배속 한 것처럼 늘어졌다.
“더. 더 시간을 늦춰.”
“너, 너를 영역의 효과에서 제외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힘들다고…….”
“아냐, 지혁아. 사람은 뭐든 하면 돼. 어제 해봤잖아?”
한지혁은 어제의 지옥 수련을 떠올렸는지 새파란 얼굴이었다.
“하나 하면 ‘할 수’, 둘 하면 ‘있다’. 하나!”
“하, 할 수…….”
“둘!”
“이, 있……에이 시X! 악! 아악! 할 테니까 그, 그만, 악!”
훈련이 끝났을 때 한지혁은 혼이 나가 있었다.
“젠장……!”
황비의 목소리가 점점 더 느려졌다.
‘좋아, 저렇게 느려졌으니 내가 뭘 하는지 보지도 못할 거다.’
나는 황비의 수호성을 쳐다봤다.
[뭐야, 이 계집애. 황궁에서 가호를 써? 돌아도 단단히 돌았어. 이래서 천박한 것들은…….]“돌긴 했지만 천박하진 않아. 물론 네 혈통을 따지는 당신 기준에선 말이야.”
[기가 막…… 혀?!]황비의 수호성이 입을 떡 벌렸다.
시녀들의 수호성들도 당황한 표정이었다.
물론, 저 쪽 수호성들에겐 내가 말을 걸지 않아서 대화를 듣지도 참여하지도 못하지만.
나는 생긋 웃으며 황비의 수호성에게 차를 내밀었다.
“드세요. 향이 느껴지잖아? 맛도 느껴져.”
“빨리 대화를 끝내지 않을래? 황비의 말이 끝나면 내가 대답을 해야 하거든.”
황비의 수호성이 우물쭈물하다가 찻잔을 들었다.
그리고 차를 맛보더니 어깨를 끌어안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세상에…… 아아, 갈증이 해소되는 기분이야. 멋져……!]그래, 다들 그러더라고.
차를 주든, 과자를 주든 수호성들은 난리였다.
‘하긴, 먹는 기쁨이 인생의 즐거움에서 5할을 차지한다고도 하니까.’
한지혁은 “으…….” 신음했다.
“저건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된단 말이야. 귀신 들린 것 같다고. 난 수호성이 안 보이니까.”
[귀신이라니. 어디 감히 날 그런 천박한 미물과 비교하는 거야? 난 게델 영주님의 총애비인 타타라라고!]“미안, 내 친구는 네 기품이 보이지 않아서 말이 쉽게 나왔어.”
[흥……. 뭐, 너와 같은 능력은 흔치 않으니까. 그런데 신기하구나. 너는 수호성을 데리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가호가 없는 인간일 터인데, 어떻게 그런 능력이 있지?]“내게도 수호성이 있어.”
[그래? 누구지? 내가 아는 자인가?]잘 알거다.
고대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제사장이 내 수호성이니까.
나는 모른 척 말을 돌렸다.
“차, 맛있었지?”
[뭐, 나쁘진 않았어. 천박한 피조물이 탄 차치고는 말이야.]“과자도 먹어보겠어? 내가 내주면 먹을 수 있거든.”
[……그렇게 부탁하니 맛봐줄까? 어디 줘 봐.]황비의 수호성이 큼, 헛기침하고 손을 내밀었다.
오만한 태도와는 다르게 쿠키를 잡는 내 손에 매우 집중해 있었다.
나는 쿠키를 잡아서 황비의 수호성에게…… 건네지 않고 생긋 웃었다.
[뭐, 뭐하는 거야?!]“먹고 싶어?”
[네가 내게 바치고 싶은 거잖아! 나는 아량을 베풀어서 받아주는 거야!]“그래? 그럼…… 자.”
나는 잡은 쿠키를 한지혁의 수호성에게 넘겼다.
한지혁의 수호성이 눈을 번쩍번쩍 빛내며 와작와작 쿠키를 씹어먹었다.
[오오오오! 이 쿠키는 어제의 것보다 더 훌륭하구나!] [뭐, 뭐야! 날 주려던 걸 왜……!]“필요하지 않다면 굳이 줄 필요가 없으니까.”
쿠키를 하나 더 집어서 한지혁의 수호성에게 주었다.
그가 걸신들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쿠키를 먹었다.
다른 수호성들은 그런 한지혁의 수호성을 부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황비의 수호성이 파르르 떨었다.
“이런, 초콜릿 쿠키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네. 나는 황궁의 쿠키 중에선 이 초콜릿 쿠키가 제일 좋아.”
하나뿐인 초콜릿 쿠키를 가볍게 흔들면서 말을 이었다.
“너무 달지 않아서 우유와 크림을 듬뿍 넣은 차와 잘 어울리거든. 버터와 초콜릿의 풍미가 매우 훌륭하고 말이야.”
[이, 이……!]“그러니까, 해볼래? ‘주세요’.”
[내, 내가 그런 짓을 할 것 같아?!]“그렇구나. 그럼…….”
한지혁의 수호성은 여전히 눈을 번쩍번쩍 빛내며 쿠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천천히 한지혁의 수호성에게 쿠키를 넘기려 하자…….
[주세요!]황비의 수호성이 빽 소리쳤다.
그녀가 울먹울먹한 얼굴로 날 쳐다봤다.
나는 다정하게 웃었다.
“미안, 이렇게 놀릴 생각은 없었는데. 네가 너무 귀여워서.”
[귀, 귀여워? 내가?]“그래. 자.”
건네자 황비의 수호성이 발그레한 표정으로 오도독 쿠키를 물었다.
[와아…….]생각보다 귀여운 수호성이다.
황비처럼 표독할 줄 알았더니.
난 턱을 괴고 황홀한 표정으로 쿠키를 조금씩 아껴먹는 수호성을 쳐다봤다.
“궁금한 게 있어. 듣자 하니 수호성과의 동화율이라는 게 있던데.”
[응, 너희 가호의 단계가 오른다는 건 수호성과의 동화율이 높아지지. 처음부터 높은 동화율을 타고 태어나는 개체도 있지만.]“너와 황비는 동화율이 높나?”
[응. 이 애는 내 피를 써서 만든 자의 혈통이거든.]황비의 수호성이 턱을 치켜들었다.
[나 같은 귀족은 하인을 ‘만들 때’ 피를 나눠주지. 그래야 금제가 강해서 결코 도망치지 못하고, 내 가호를 안정적으로 나눠줄 수 있으니까.]“네가 없으면 황비는 어떻게 돼?”
[바보! 그야 쓰러지지. 너희 인간이 세상의 독을 버티는 건 다 수호성의 도움이 있어서라고. 우리가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픽픽 쓰러지는 연약한 것들.]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역시 그랬구나.’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의 계획을 짤 수 있다.
“쿠키, 더 먹고 싶어? 시녀들의 수호성들은 어때? 먹고 싶니?”
[그, 그야 당연히!] [나도 먹고 싶어!] [나도! 어? 뭐, 뭐, 뭐야. 대화가 가능하잖아!]황비의 수호성도 반짝이는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자, 그럼 내 부탁을 들어주겠어?”
이건 신호였다.
한지혁과 미리 약속된 신호.
한지혁이 약속대로 선물로 꾸며온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엔 근사한 케이크가 있었다.
“너희에게 줄게.”
[저, 정말이야?] [와아…….]다들 혼이 나가서 케이크를 구경 중이었다.
나는 탁, 상자를 닫았다.
“단, 부탁을 들어준다면.”
[부탁?]황비의 수호성이 가장 먼저 물었고, 시녀들의 수호성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내가 신호하면 너희가 지키는 자들에게서 멀어져.”
[하, 하지만 그럼 마론이 쓰러질 텐데…….] [먹을 것 때문에 내 인간을 죽일 순 없다고…….]“아주 잠시면 돼. 만일 위험해진다면 내가 도울 테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 같으면 다시 돌아와도 괜찮아.”
나는 상냥한 얼굴로 수호성들을 돌아봤다.
“자신의 인간이 위험한지 아닌지는 너희가 제일 잘 알잖아? 정말로 목숨이 위험해진다면 연결이 느슨해질 테니까.”
수호성들은 우물쭈물하며 서로를 쳐다봤다.
[그렇다면야…….] [뭐, 그럼…….]천 년이 넘도록 음식은 냄새도 못 맡아본 수호성들.
저들에게 이 케이크는 보물 같을 것이다.
그리고 보물이 눈앞에 있을 땐 욕심이 이성보다 우선되는 법.
다들 내 제의를 받아들였다.
때마침, 한지혁이 움찔했다.
“달리아가 왔어.”
“영역을 해제해.”
한지혁이 재빨리 영역을 해제했다.
주변의 시간이 본래대로 되돌아왔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고 경비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미에 아스트라의 딸, 달리아 양입니다.”
황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여라.”
곧이어 달리아가 문 안으로 들어왔다.
“황비님을 뵙습니다!”
그리고 치맛자락을 넓게 펼치고 무릎을 까딱 굽혔다.
달리아가 에헤헤 웃었다.
“이렇게 하는 게 맞을까요? 저, 기억을 잃어서 예법을 잘 모르거든요.”
나는 신호했다.
“지금.”
수호성들이 냅다 달려가서 벽을 통과했다.
일정 거리 이상 멀어진 순간, 황비가 픽 쓰러졌다.
당황한 달리아가 주변을 둘러봤다.
“화, 황비님?”
너와 황비가 결탁할 시간을 줄 것 같아?
‘이렇게 황궁 조사를 받게 될 거야. 달리아.’
그리고 그 몸의 비밀.
만천하에 공개하도록 해라.
이 3세는 악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