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2)
이 3세는 악역입니다 32화.(32/390)
32화.
* * *
발자크 아스트라는 최근 기묘한 병에 걸려 있었다.
화가 나는 건 아닌데, 가끔 뭔가를 때려 부수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시도 때도 없이 가슴부터 목 아래가 간지럽고, 가끔 입꼬리가 부르르 떨릴 때도 있다.
발자크의 설명을 들은 의사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병은 저도 아직까진 보지 못하였습니다만…….”
발자크가 왈칵 인상을 찌푸렸다.
의사는 흠칫, 어깨가 솟구쳤다.
발자크 아스트라의 악명은 익히 들어왔다.
되게 무서운 애.
수틀리면 성인도 가로로 한 번, 세로로 한 번씩 접어버린다고 한다. 어떻게 접는진 상상도 하기 싫다.
그렇게 무서운 애가 인상을 쓰니 간담이 서늘했다.
“시, 시간을 주신다면 병의 정체를 밝혀내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예.”
쯧, 혀를 찬 발자크는 일어나서 의료원을 박차고 나갔다.
‘의료원에 올 게 아니라, 치료사를 찾아갔어야 했나?’
요슈아처럼 저주에 걸렸을 수도 있다.
의사도 듣도 보도 못한 병이라잖아.
그렇게 생각하면서 걷고 있는데, 멀리서 꺅꺅 비명 소리가 들렸다.
“어흥! 이에요~”
“잡아먹을 거야! 예요~”
하녀들이 무언가를 쫓아 달리고 있었다.
잘 보니 오늘도 양옆으로 머리를 조그맣게 말아 올린 노란 뒤통수가 보였다.
에릴로트가 뒤뚱뒤뚱 뛰고 있었다.
‘아, 또 다.’
벽을 부수고 싶은 충동.
제가 오리 새끼도 아니면서 뒤뚱뒤뚱 뛰는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시 증상이 시작된 것이다.
어제는 쿠키를 쥐고 있는 단풍잎처럼 조그만 손을 보니까 그랬고.
그제는 음식을 씹느라 통실통실 흔들리는 볼을 보고 그랬다.
“아가씨 잡았어요!”
“꺄악!”
비명이 들리기 무섭게 발자크는 단숨에 뛰어갔다.
“너─!”
발자크는 험악한 인상으로 하녀를 엄히 꾸짖었다.
“감히 아스트라의 혈족을 괴롭히는 것이냐!”
우렁차게 소리치자 하녀들이 흠칫, 놀랐다.
하녀 품 안의 에릴로트도 눈이 동그래져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되게 멋진가 보지?’
발자크는 원래 남을 잘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다.
하지만 에릴로트는 너무 작으니까, 안으면 찌그러질 것처럼 작으니까 조금 신경 써주기로 했다.
발자크가 하녀에게 말했다.
“내려놔.”
“예에…….”
에릴로트는 하녀의 품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러고선 자신을 빤히 쳐다봤다.
발자크가 큼, 헛기침하며 말했다.
“너무 그렇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
“개로피는 거 아냐.”
“뭐?”
“술래잡끼 하는고야. 발쟈쿠 항번도 안 해바써?”
“…….”
쌍둥이는 모두 강력한 공격계 가호를 가지고 태어났다.
어릴 때는 가호가 잘 조절되지 않으므로,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다칠까 봐 쌍둥이 곁에 두지 않았다.
가호를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자라선, 모두 경쟁자가 됐기 때문에 이런 놀이는 해본 적이 없었다.
눈을 깜빡이며 발자크를 쳐다보던 에릴로트가 말했다.
“발쟈쿠 술래야. 우리 잡는 고야.”
그러곤 “시─작!” 하고 소리친다.
에릴로트와 하녀들이 주변으로 막 달려 나갔다.
‘뭐, 뭐야…….’
잠깐 멍하니 있던 그가 주춤주춤 발을 뗐다.
“살려줘, 예요~”
“아악, 이에요~”
하녀들이 설렁설렁 달리고 있을 때였다.
슉, 팟─!
발자크는 단숨에 도약해서 거리를 좁혔다.
멀리 있던 발자크가 순식간에 살기를 뿜으며 달려오자, 하녀들의 목소리 톤이 바뀌었다.
“살려줘!!”
“아악!!”
마치 등 뒤에 맹수가 달려오는 것 같다. 호랑이한테 쫓기는 토끼가 된 것처럼 솜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미친 듯이 도망쳤지만, 고작 3분.
3분 만에 두 하녀를 나란히 잡은 발자크가 휙, 고개를 돌렸다.
하녀를 잡는 모습을 사색이 되어 구경하고 있던 에릴로트가 움찔, 뒷걸음질 쳤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미친 듯이 달려갔다.
뒤뚱뒤뚱뒤뚱뒤뚱뒤뚱뒤뚱.
엄청나게 열심히 달리는 것 같은데, 발자크를 떨쳐내지 못했다.
에릴로트를 잡는 데에 딱 3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끄악!”
“잡았다.”
발자크가 에릴로트의 옆구리를 양손으로 잡고 달랑 들어 올렸다.
아이는 눈썹을 늘어뜨리며 시무룩해졌다.
“발쟈쿠가 이겨써.”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데?”
“이제 내가 술래하는 고야.”
에릴로트는 발자크의 품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이제 내가 잠눈다. 시─작!”
발자크가 슬쩍 뛰기 시작했다.
에릴로트는 눈을 빛내며 열심히 쫓아왔다.
말랑말랑하게 생겨서 포기도 빠를 줄 알았더니, 나름 굳센 데가 있다.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저를 쫓아왔다.
‘좀…… 재밌는 것도 같은데?’
발자크는 슬쩍 걸음을 맞춰 주다가, 잡을락 말락 할 때 휙! 속도를 높였다.
“이익!”
약 올라서 얼굴이 새빨개진 에릴로트가 발자크를 잡기 위해서 폴짝 뛰던 찰나.
“위험해.”
누군가 에릴로트를 잡아줬다.
요슈아였다.
발자크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뭐야.”
“도서관 가는 길에 보이길래. 안녕, 에릴로트.”
요슈아가 눈매를 사르르 접으며 에릴로트에게 인사했다.
평소와 달리 데이몬드가 없는데도 다정하게 대해주는 요슈아가 낯설었다.
“에릴로트는 그림책 읽는 걸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녜.”
“도서관에 새 책이 들어왔다고 했어. 같이 갈래?”
발자크는 울컥 소리쳤다.
“그 녀석은 나와 놀고 있잖아.”
요슈아의 눈이 가늘어져 발자크를 쏘아봤다.
“누구와 가는지는 에릴로트의 맘이지.”
형제의 시선이 허공에서 파지직, 충돌했다.
“나와 술래잡기할 거지? 이따가 말도 태워줄게.”
“도서관 안 갈래? 책 읽으면서 먹을 간식을 챙겨오라고 할게.”
에릴로트가 저를 사이에 두고 말하는 쌍둥이 형제를 번갈아 보았다.
그때였다.
부스럭 소리와 함께 데이몬드가 저 멀리서 걸어왔다.
그의 손엔 어떤 털 뭉치가 들려 있었다.
“강아지 있다.”
“멈머니─!”
얼굴이 확 밝아진 에릴로트가 후다닥 뛰어갔다.
“성안에서 데리고 놀아도 좋은데. 갈래?”
“갈래!”
그러곤 제 아버지 새끼손가락을 잡고 따라서 슝 가버리는 것이다.
형제를 흘낏 뒤돌아본 데이몬드의 입매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발자크와 요슈아가 으득, 이를 갈았다.
‘치사하게.’
‘비열하긴.’
두 사람이 소리 없이 불타고 있었다.
* * *
나는 털이 복슬복슬한 검은 강아지의 등을 살살 매만졌다.
“부드러어.”
양 볼을 잡고 얼굴이 발그레해지니, 날 보고 있던 하녀와 병사들이 “하아아…….” 하고 황홀한 숨을 터뜨렸다.
베티는 “귀여운 거 더하기 귀여운 거는 완전 귀여운 거…….” 하며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하이디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엔조님이 강아지를 데려와 주셔서 잘 되었네요.”
“엥조네 멈머니야?”
내가 엔조를 쳐다보자, 그가 말했다.
“예. 형제가 둘 다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서 어머니께서 적적해하기에 한 마리 데려왔습니다.”
“그러쿠나.”
강아지는 내 손을 챱챱 핥았다.
‘귀여워!’
유혜민일 때는 강아지를 키우는 게 소원이었다.
어려선 동생 세은이가 개를 질색해서 안 됐다.
성인이 된 후엔 양아버지의 사업이 기우는 바람에 월급 대부분을 집에 보내서, 키울 형편이 안 됐고.
나는 정신 없이 강아지를 바라봤다.
보고만 있어도 하나도 지루하지 않아서, 정신 차려 보니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조그맣고 귀여운 강아지는 하품을 쩍 하더니, 깔고 앉은 천에 꼼질꼼질 머리를 비볐다.
“졸링가바요.”
“그래.”
“그러몬 이제 멈머니 가?”
아쉬움이 뚝뚝 묻은 목소리로 묻자, 엔조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하녀들과 병사들도 난감한 듯 “으으음.” 신음하였다.
아버지가 입꼬리가 내려간 채로 강아지를 쓰다듬고 있는 나를 보며 물었다.
“관할성에서도 개를 키울까. 네가 잘 기를 수 있다고 약속하면 한 마리 데려오지.”
“정말?!”
나는 표정이 확 밝아졌다가, 이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아냐.”
“어째서.”
“이제 에리로트 할부지하테 가요. 멈머니 혼자 이써.”
성엔 사람이 아주 많지만, 나를 주인으로 여긴다면 내가 없는 동안 아주 쓸쓸할 거다.
하이디가 날 설득하려 했다.
“그래도 휴식기엔 오시잖아요. 그때까지 저희가 잘 보살피면 되지요.”
“나 할부지하테 가서 열시미 해야 대. 먼머니 이쓰면 자꾸 간할성 오고 시퍼.(나 할아버지한테 가서 열심히 해야 돼. 멍멍이 있으면 자꾸 관할성에 오고 싶어.)”
‘할아버지에게 가려면 한 열흘 남았나?’
생각해 보니 이제 곧 평화는 끝이다.
관할성에서도 이런저런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목숨에 위협이 되는 일은 없었는데.
공작성으로 들어가면 본격적인 3세 전쟁의 시작이었다.
베티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갸웃했다.
“관할성이 생각나지 않도록 꼭 그렇게 열심히 하셔야 하나요? 아가씨는 충분히 지혜롭고 멋진 분이신데요.”
“나 더러운 피니까 그러치.”
가뜩이나 평민의 피가 섞인 아이.
열심히 하지 않으면, 무슨 소리를 들을지 뻔하다.
‘역시 평민의 피가 섞인 아이는 안 된다니까요.’
그런 얘기나 듣겠지.
‘이제 내 위치는 달라졌어.’
누구도 12번째 탑에서 자란 천덕꾸러기라는 얘기는 못 할 거다.
여러 가지 공을 세운 데다가, 아버지까지 돌아왔다.
그리고 아버지의 관할령은 이제 성장하는 일만 남았다.
‘서열권에 들어서 쐐기를 딱 박아주는 거야.’
그렇게 하면 내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괴롭힘을 당하다가 죽을 악역의 삶은 끔찍하지만, 공작 영애의 삶은 꿀이란 말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며 속으로 히죽히죽 웃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주변이 매우 고요해진 것이다.
‘아, 더러운 피 얘기를 해선 안 됐는데!’
강아지에게 정신을 홀딱 빼앗겼더니, 나도 모르게 툭 나와버리고 말았다.
이놈의 조연 페널티.
나는 우물쭈물하며 아버지를 쳐다봤다.
아버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 * *
밤.
나는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성의 분위기가 너무 우울해져서 버티고 있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잠자리를 봐주는 하이디와 베티가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아가씨…….”
하이디가 조심스럽게 부르며 다가왔다. 베티도 그 뒤를 따랐다.
“아가씨는 소중한 분이에요.”
“이 관할성의 보물이고, 행복이고, 기쁨이에요.”
나는 힐끔힐끔 하녀들의 눈치를 보다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잘 고야.”
‘진짜 불편해 죽겠네.’
이불 밖으로 하녀들이 한숨을 푹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하녀들이 몇 번 내 가슴을 톡 톡 두드렸다.
“좋은 꿈 꾸세요.”
“아주 행복한 꿈이요.”
그런 후에야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불에서 쏙 얼굴을 내밀었다.
‘내가 너무 걱정시켰나 봐.’
내일은 더 씩씩하게 지내야겠다.
나는 이 관할성 사람들이 마음에 쏙 들었다.
용감한 하이디.
착한 베티.
똑똑한 미켈란.
그리고 상냥한 엔조와 모스코.
다들 날 볼 때 아주아주 다정한 눈빛을 하고 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울타리 안’의 기분.
저들 중 그 누구도 나를 아프게 하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생겨났다.
‘원래 이렇게까지 사람들이랑 잘 지낼 생각은 없었는데.’
계획이 망하면 도망칠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었다.
그래서 정을 잘 안 주려고 했는데도, 저렇게 따뜻한 눈빛을 보면 자꾸만 코가 찡해져 오는 것이다.
나는 뒤척이며 옆으로 돌아누웠다.
그때.
등 뒤에서 침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침대 옆 의자에 누군가 앉았다.
‘아버지 향기다.’
내가 돌아눕자, 아버지가 가볍게 내 눈가를 문질렀다.
“아밤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네게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어.”
“…….”
“말주변이 없어서, 널 상처 줄까 봐 네가 그런 말을 들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대화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
아버지가 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네 어머니와는 전쟁터에서 처음 만났어.”
“……!”
아버지가 어머니의 이야기를 해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해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주에 걸려서 사경을 헤매던 내게 네 어머니가 찾아왔지.”
“…….”
“우리는 필요에 의해 함께 있었고, 네가 생겼어.”
아버지의 눈빛은 매우 흐렸다.
사랑 없이 태어난 아이라는 것을 내게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이내 눈을 꽉 감았다.
나는 침대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 앉아서 아버지를 바라봤다.
“그래서, 아밤미 나 좋지 않아?”
아버지가 급히 눈을 떴다.
아프게 일그러진 눈에 내가 비추었다.
“아니. 아니야, 에릴로트.”
아버지가 손을 뻗어서 내 뺨을 쓰다듬었다.
“네 어머니는 아스트라 장원에서 아주 먼 땅에 있던 사람이야.”
“…….”
“그런 그녀가 만삭의 몸으로, 숱한 위기를 넘으며 아스트라로 왔다는 건…… 그녀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이라는 의미다.”
“…….”
“소중해져서. 너를 너무나 사랑하고 말아서.”
아버지는 나를 천천히 안아주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내 등을 토닥이며.
“너는 나와 그녀에겐 숨이고, 삶이며, 전부야.”
“…….”
“네 핏속엔 나와 네 어머니의 애정이 가득 들어있는 거야.”
아주아주 어색한 말이었다.
너무 어색해서 부끄러울 정도의 말.
아버지는 무심한 성격이었다. 그런 그가 내게 이 이야기를 해주기까지 얼마나 많이 고민했을까.
‘사실은 조금 상처였어.’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더러운 피라는 이야기 같은 거 듣고 싶은 아이가 있을 리 없잖아.
그런데 이제 정말로 괜찮아졌다.
유혜민일 적에 그토록 바라던, 나를 사랑해 주는 부모가 여기에 있으니까.
“응!”
나는 웃으며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았다.
아버지가 내 등을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그때.
우당탕!
문가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밀지 말랬잖아.”
“안 들리니까!”
고개를 돌리니, 문 앞에서 넘어진 쌍둥이가 보였다.
아버지와 내가 쳐다보자, 두 사람이 어색하게 일어났다.
발자크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에릴로트가 더러운 피 얘기를 들었다고 해서요. 누가 그런 얘기를 했는지 들으려고……. 다 죽여버리게요.”
“…….”
요슈아는 고개를 수그린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발자크가 내게 다가올 때까지도 요슈아는 미동조차 못 했다.
‘왜 그러지?’
나는 눈을 깜빡였다.
아버지와 발자크도 주먹을 꽉 쥐고 땅만 보고 있는 요슈아를 쳐다봤다.
“……미안.”
“…….”
“미안해.”
발자크가 “엥?” 하며 요슈아를 쳐다봤다.
“뭐야, 네가 더러운 피라고 했냐!”
“…….”
더러운 피라고 한 적은 없다. 사생아라고 했지.
그치만 그건 저주에 걸려서 몸이 엄청나게 아픈데, 내가 저주의 매개가 있는 정원을 파헤치지 못하게 하니까.
‘으음.’
나는 요슈아에게 팔랑팔랑 손짓했다.
“나 그린책 일거죠. (나 그림책 읽어줘.)”
“……!”
“벼아리 가족 얘기 들을 고야.(병아리 가족 얘기 들을 거야.)”
요슈아가 눈을 크게 떴다.
발자크는 인상을 찌푸렸다.
“오라잖아. 이 죄인아!”
“……괜찮아?”
“응!”
아버지가 자리를 비켜줘서 요슈아가 의자에 앉아서 책을 펼쳤다.
발자크는 양탄자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침대에 두 팔과 고개를 올렸다.
난 침대에 누웠고, 아버지는 팔짱을 낀 채로 서서 함께 이야기를 들었다.
“옛날 옛날 어느 먼 옛날. 병아리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밖은 춥고 위험해서 가족은 서로에게 기대……”
새카만 밤.
밤을 비추는 건 오직 협탁의 등불뿐.
조금도 무섭지 않은 공간에서 요슈아의 달콤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다짐했다.
이 다정한 공간을 결코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겠다고.
.
.
그렇게 시간이 흘러 봄의 끝자락.
공작성으로 돌아갈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