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24)
이 3세는 악역입니다-323화(324/390)
323화.
* * *
마차 안.
달리아는 기가 죽은 얼굴로 힐끔힐끔 그리미에를 쳐다보았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그리미에가 무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앞으로 다신 함부로 움직이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 그게 아니라 저는 아빠를 위해서……!”
달리아가 당황한 투로 말을 이었다.
“장막이 필요하시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아빠를 위해서 수호자들의 마음을 돌리려고……!”
“크로노트 회.”
“네?”
“더는 장막으로 부르지 마라. 그들은 크로노트 회일 뿐이니.”
달리아가 우물쭈물하자, 그리미에가 미간을 좁혔다.
“그들이 마음을 돌릴 일은 없다.”
“하지만 에릴로트가 그렇게 못되게 구는데……!”
“달리아—!!”
그리미에의 노성이 마차를 울렸다.
달리아는 흠칫, 눈을 크게 떴다.
‘아, 아빠가 내게 소리를 질렀어?’
자신을 몹시 사랑하는 다정한 아빠가 어째서…….
달리아가 금세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처럼 울먹거렸으나, 그리미에의 냉랭한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판단은 내가 한다. 더는 네 멋대로 구는 것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네.”
달리아는 기어코 훌쩍훌쩍 울며 대답했다.
그리미에가 말했다.
“너는 귀빈 의전에 신경 써라.”
“화, 황궁에서 수호자들을 마주치면 어떻게 해요?”
“그들은 너를 건드릴 수 없어.”
“어째서요……?”
역시 크로노트 회가 정이 남아있어서 그런 걸까?
달리아가 기대하는 얼굴로 쳐다보자, 그리미에가 냉랭하게 대답했다.
“크로노트 회에 경고해놨기 때문이다.”
“경고요?”
“너와 날 건드린다면,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크로노트 회의 메시아인 것이 밝혀질 것이다.”
“아…….”
“너나 내가 사라지면 에릴로트의 정체가 세간에 풀리도록 조치해놓은 것 또한 알고 있지.”
그리미에는 크로노트 회와 오래 일했던 만큼 그들의 정보 대부분을 파악하고 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크로노트 회는 메시아를 지키기 위해 섣불리 움직일 수 없을 터였다.
달리아는 뾰로통한 표정이 되었다.
‘뭐야. 그런 거였어?’
왜 수호자들은 그렇게나 메시아에게 집착하는 것일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노락스는 입술을 삐죽 내민 달리아를 보고 키득거렸다.
[귀여운 그리미에, 네 딸은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구나.]그리미에의 어깨에 턱을 괸 그녀가 속삭였다.
[딸로 삼을 영혼을 잘못 선택한 것이지.]그리미에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 이유’가 아니라면 죽이고 싶지? 그렇지? 답답해서 오장육부가 뒤집어지지? 응?]그리미에가 거칠게 허공을 저었다.
이노락스는 깔깔 웃으며 사라졌다.
“아빠? 왜 그러세요?”
“별일 아니야.”
“저한테 너무 차가우신 것 같아요…… 조금 서운해요…….”
그리미에는 한숨을 내쉬었다.
“달리아.”
“예…….”
“어째서 아비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이냐.”
“…….”
“모든 것은 너를 위해 준비했어. 세상의 가장 고귀한 자리에서 빛날 너를 위해.”
“아빠…….”
“벨로스터 궁주와는 모든 이야기가 끝났단다. 처신에만 유의한다면 데이몬드 관할령을 무너뜨리고 우리 부녀가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룰 수 있어.”
달리아가 손등으로 눈가를 꾹꾹 닦곤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응! 잘할 거예요!”
“그래.”
부디.
* * *
황궁 만찬.
국빈과의 만찬에 초청되는 건 중앙탑 대회의의 발언권을 가진 최고위의 귀족들뿐이었다.
우리 가족 또한 만찬에 초청되어 황궁을 찾았다.
“이거 오랜만인걸.”
저먼 왕국에 크리스토퍼가 내게 다가왔다.
“왕세손을 뵙습니다. 안녕하셨어요?”
“이런! 안부를 물을 줄 아는 사람이었군!”
크리스토퍼가 하하, 웃었다.
겉으론 호쾌하게 웃고 있지만 눈빛이 매서웠다.
주변을 둘러본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동맹을 맺은 게 맞긴 한 거냐? 응?”
“그럼요!”
“그럼? 그으럼?”
크리스토퍼가 바짝 얼굴을 붙이고 속삭였다.
“치료제를 다른 나라와 같은 가격에 팔아먹었던데?”
“네.”
“장난해? 우린 가뭄 때문에 그만한 돈을 낼 여력이 없다고 애원하는 서신을 네게 열일곱 통이나 보냈어.”
“공작성에 직접 요청하시지 그러셨어요.”
“그게 얼마나 쪽—!”
크리스토퍼가 참다못해 버럭 소리치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그는 다시 하하 웃는 척하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쪽팔린 일인지 알잖아. 어? 통신은 대체 왜 안 받는 건데?”
“왕세손과 같은 요청을 한 나라가 얼마나 많았는데요. 외부 연락용 통신석은 완전히 불이 나서 받을 수가 없었다고요.”
“서신에 대답을 하든가!”
나는 워워, 양손을 위아래로 가볍게 흔들었다.
“가격을 깎는 건 무리였어요. 남는 것도 없다는 걸 아시면서? 원료비, 제조비, 유통비까지 따지면 거저 준 거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그래서 제일 먼저 보내드렸잖아요. 심각성으로 따졌으면 5차, 6차로 전달되었을 거라고요.”
할 말이 없는지 크리스토퍼가 칫, 혀를 찼다.
“정보는 좀 나눠줘라.”
“무슨 정보요?”
“너, 황후 되냐?”
이건 또 무슨 개똥 같은 소리야.
내가 헛소리하는 사람 보듯 하자 크리스토퍼가 눈을 좁혔다.
“살바토레와 결혼한다던데?”
“미쳤어요?”
“가끔 권력에 미칠 때가 있긴 하지.”
“자꾸 말도 안 되는 소리 할 거면 가요. 안 그래도 자꾸 그 얘기를 물어서 짜증이—”
크리스토퍼와 내가 속닥속닥 얘기하고 있을 때였다.
“에릴로트!”
아비노 왕세손이 다른 태양회의 멤버를 이끌고 다가왔다.
나와 크리스토퍼는 언제 짜증을 냈냐는 듯 얼른 표정을 바꾸었다.
“안녕하세요, 아비노 님.”
그리고 고개를 돌렸는데…….
“머리카락만 보고 알아봤어. 꿀 같은 색이니…… 어?”
“……!”
“……!!”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뭐야, 왜 저래?’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크리스토퍼가 낄낄 웃으며 내 귀에 속삭였다.
그러고 보니까 알리기오사의 아비노 왕손과 팔라사 왕국의 아딘 왕자가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네가 여기서 한 번 웃어주면 저 놈들 기절하겠다.”
“……시끄러워요.”
슈엘리즈의 체자레 왕자 또한 “와~” 하며 눈매를 휘었다.
“여성의 미모를 칭찬하면 결례이던가? 결례라도 아름답다는 말은 영애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
아비노도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어, 엄청 오랜만이라서 노, 놀란 거야. 그렇지, 아딘?”
“아니! 난 그냥 제 아비와 엄청나게 닮아서 놀란 거거든!”
그럼 그렇다고 하면 되지, 왜 소리는 지르고 그래?
사람들이 다 쳐다보게.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슬슬 뒷걸음질 쳤다.
‘여긴 너무 시선이 많이 모여있어.’
여기서 더 화제의 중심이 될 순 없다.
“저는 이만 인사할 분이 계셔서…….”
“인사할 분?”
“누군데?”
아비노와 아딘이 슬금슬금 물러나는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그때였다.
나는 누군가와 툭, 부딪쳐서 가로막혔다.
“나지.”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컥 인상 쓰인다.
태양회의 왕족들도 표정이 변했다.
“오랜만이다. 아니, 황제 대행이시니 공대를 해야 하나?”
“축하할 일인가 모르겠네. 네 부황께서 쓰러지셔서 기회를 얻은 거니까.”
태양회의 멤버들이 뾰족하게 대꾸하나, 나를 막은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어렵게 대할 필요 없어. 그저 부황께서 잠시 비운 자리를 맡아둔 것이니. ……그렇지 않나, 에릴로트?”
살바토레가 빙그레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지긋지긋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망했네.’
주인공인 섭정 황자, 살바토레가 등장하니 모든 사람이 우릴 쳐다봤다.
시선을 피하긴커녕, 소문이 더 커지겠다.
살바토레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태양회의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데 메르세데스는?”
동제국 라온트라의 황자를 언급하자, 다들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보지 못했는데~”
“궁주와 함께 오려는 모양이지.”
“그런데 웬일로 궁주가 무거운 몸을 일으키셨나? 결코 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이잖아.”
“하여간. 크리스토퍼, 너는 소식이 느리다니까. 최근에 궁주가 얼마나 활개를 치고 다니는데.”
“활개?”
“이번만 해도 그렇지. 메르세데스만 오지 않은 건, 그녀가 동생을 감시하기 위해서라고—“
그렇게 떠들던 차였다.
경비병의 목소리가 회장에 울려 퍼졌다.
“라온트라의 메르세데스 황자님, 벨로스터 궁주님 드십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문가로 향했다.
메르세데스 황자와 벨로스터 궁주가 등장했다.
‘왔구나.’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온 것은 벨로스터 궁주를 보기 위해서였다.
대체 왜 마사의…… 아니, 달리아의 모친인 척하는 건지 알아내기 위해서.
그런데 벨로스터 궁주의 뒤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래서요, 서제국은 위터 나이프라는 게 있는 거래요. 모르셨죠?”
달리아가 활발하게 떠들며 궁주를 쫓아오고 있었다.
만찬장이 크게 술렁였다.
“세상에나, 의전을 사교 데뷔도 하지 않은 달리아 아스트라가 맡았네요.”
“역시 소문이 사실인 게지.”
“맙소사, 그럼 정말 라온트라 황족의 딸인 것이……!”
달리아는 슬쩍 회장을 둘러보곤 에헤헤 웃었다.
반응이 마음에 드는 듯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흥, 고개를 돌리고 벨로스터 궁주에게 바짝 붙었다.
메르세데스 황자는 어두운 얼굴이었다.
태양회의 황족, 왕족들이 손짓했다.
“여기다, 메르세데스!”
큰형 역할을 하는 크리스토퍼가 말하자, 메르세데스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응?’
메르세데스의 표정이 이상하다.
그는 요슈아와 같은 타입이었다.
속에 뱀이 우글거리지만, 겉으론 미소 지어 상대의 벽을 허무는 타입.
그런데 오늘은 차갑고 어두운 표정이었다.
다른 태양회의 멤버들도 이상한지 다들 의아한 표정이었다.
크리스토퍼가 물었다.
“뭐야, 왜 그래?”
메르세데스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살바토레에게 말했다.
“라온트라와의 연락선을 빌려야겠어.”
“그러려면 내가 이유를 알아야겠지.”
“……모후의 안위를 확인해야겠다.”
메르세데스는 벨로스터 궁주를 찢어 죽일 듯 노려보았다.
모두 흠칫했다.
‘벨로스터 궁주가 메르세데스의 모후를 어떻게 한 거야?’
메르세데스의 모후인 아나스 황비는 좋은 사람으로 유명했다.
‘실제로 좋은 사람이지.’
첫 번째 삶에서 아스트라도 그녀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미에가 아스트라를 치고, 새로운 가문을 세웠을 때.
아스트라 혈족들의 망명 신청을 받아주고, 지켜줬던 타국의 귀인은 그녀가 유일했다.
살바토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가하지.”
태양회의 멤버들이 메르세데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나는 슬쩍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빠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빠는 아카데미 동기였던 데본 숙부, 레오 탈로프와 함께 있었다.
“아빠, 라온트라에 일이 생긴 모양이에요. 아나스 황비가…… 아빠?”
뭐지?
아빠와 숙부들이 내 이야기를 들을 생각은 않고, 정신없이 한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빠는 완전히 굳어진 상태였다.
“아빠.”
“…….”
“왜 그러시는—”
그때였다.
벨로스터 궁주와 달리아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라온트라의 벨로스터요. 귀하가 적오기를 계승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소.”
“…….”
“후일을 위해 연락책을 마련하고 싶소.”
“……어째서.”
나 또한 굳어져서 아빠를 쳐다봤다.
아빠의 표정이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에.
마치…… 마치 내가 사경을 헤매다 깨어났을 때처럼.
본능처럼 느끼고 말았다.
‘이 사람이다.’
벨로스터 궁주가…….
“벨트리.”
아빠의 말에 나는 치맛자락을 꽉 그러쥐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눈부신 은발과 아름다운 자안을 가진 여자가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아빠의 팔을 꽉 잡았다.
벨로스터 궁주가 말했다.
“네 아비가 다른 누군가와 나를 착각하시는 모양이구나.”
“…….”
그러자 데본 숙부가 이를 악물었다.
“우리가 너를 몰라볼 것 같으냐. 어떻게 된 거야. 설명해, 벨트리!”
레오 탈로프마저 굳은 얼굴로 말했다.
“대체 이게 무슨 조화지? 네가 어떻게…….”
벨로스터 궁주가 바닥을 내려다보며 가볍게 웃었다.
“오만한 칼소이에의 귀족이기 때문인가.”
“뭐라고? 그게 무슨 뜻—”
“감히 황제의 딸에게 취할 예가 아니로구나.”
벨로스터 궁주가 데본 숙부를 보며 눈썹을 까딱 들었다.
그러곤 살바토레에게 물었다.
“섭정 황자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로체 후작.”
살바토레가 사과하라는 데본 숙부를 불렀다.
데본 숙부는 여전히 굳어져 있었다.
“벨트리, 너…….”
“달리아, 서제국에선 국빈을 우롱한 죄를 어찌 다스리느냐.”
“네?”
달리아가 흠칫, 대답했다. 그러더니 “으음, 으으음.” 하며 관자놀이를 짚었다.
“저기, 어, 투옥하고…….”
“하면 투옥해야지. 경비병들은 무얼하고 있느냐!”
소리치자, 경비병들이 우왕좌왕 살바토레 황자를 쳐다보았다.
살바토레가 픽 웃더니, 혀를 차고 말했다.
“로체 후작을 끌어내라.”
“……!”
저게 진짜!
‘데본 숙부는 친황제파야.’
이 기회에 처리해버리면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데본 숙부가 경비병들에게 붙잡혔다.
‘안 돼, 투옥 되면 살바토레가 기필코 처리하려 할 거야!’
나는 황급히 데본 숙부의 팔을 끌어안고 말했다.
“용서해주세요, 궁주님! 그리운 사람과 착각한 나머지 큰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궁주님, 제발……!”
“국빈에게 무례한 자가 여기 또 있구나, 달리아.”
달리아가 키득거리며 궁주의 뒤에 바짝 붙었다.
나는 얼른 궁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부디 아량을 베풀어주십시오, 궁주님!”
“불가.”
궁주의 싸늘한 목소리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