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26)
이 3세는 악역입니다-325화(326/390)
325화.
라온트라의 기사, 클립토가 이를 악물었다.
“제기랄.”
여기서 나와 전투를 벌여 끌고 갈지, 도망칠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확, 손바닥을 펼쳐서 그들을 제지했다.
“이대로 도망쳐야 하는데, 신분을 들킨 게 걱정되는 거지!”
기사들이 흠칫했다.
그걸 왜 납치당할 예정이던 네가 말하느냐는 표정이었다.
나는 눈을 부라리고 말했다.
“함구해주마!”
“……어떻게 믿습니까?”
“내가 납치를 한두 번 당할 뻔한 줄 알아? 용을 가진 소녀라고 불렸던 나라고!”
“…….”
“날 납치하려고 했던 놈들을 모두 처리하면 칼소이에 제국 가문의 반은 멸문이거든?”
“…….”
기사들이 주춤거리며 서로를 쳐다봤다.
‘그렇지. 마음이 급할수록 판단력이 흐려지거든.’
나는 클립토에게 말했다.
“게다가 난 너희 라온트라와 척지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어.”
“…….”
“알잖아? 우리 제국의 사정. 이런 때에 라온트라와 척을 져서 내게 좋을 게 있겠어?”
“……가문의 명예를 걸고 약조를 지켜주시겠습니까.”
“물론이지!”
클립토가 내게 허리를 깊이 숙였다.
“현명하신 판단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일은 추후 보답하겠습니다. ……기사의 명예를 걸고.”
나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쉭쉭, 손을 내저었다.
“어서 가봐. 라온트라 마차와 마주칠라!”
“……감사합니다.”
라온트라 기사들이 재빨리 떠났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얼른 길을 돌아서 느티나무숲으로 뛰어갔다.
약속했던 나무 앞에 알렉시스가 보였다.
알렉시스가 미간을 좁히고 날 쳐다봤다.
“왜 그렇게 급히 뛰어오는—”
“라온트라에서 날 납치하려고 했어! 납치범들의 대장이 클립토 경이야!!”
“……뭐?”
“여기 오다가 방금 납치당할 뻔했다고, 나.”
내가 진짜로 입을 다물어줄 줄 알았냐?
‘원래 아스트라는 명예 따윈 없는 가문이거든?’
있는 건 돈과 군사뿐이다, 이것들아.
알렉시스가 확, 내 얼굴을 잡았다.
그리고 이리저리 돌리며 샅샅이 살폈다.
“다친 곳은.”
“없는데…….”
일단 바짝 들이민 얼굴 좀 치워줄래.
나는 큼, 헛기침하며 슬쩍 시선을 피했다.
알렉시스의 눈이 사나워졌다.
주먹을 꽉 말아쥔 그가 짓씹듯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라온트라…….”
—하고.
* * *
알렉시스는 날 숲 밖으로 데려다주었다.
난 괜히 옷깃을 매만지면서 알렉시스에게 말했다.
“먼저 가라니까.”
“집 앞까지 데려다줄게.”
“사람 눈에 안 띄려고 혼자 온 건데, 네가 데려다주면 의미가 없어지잖아.”
“자존심이 상한 살바토레가 날 노릴까 봐 염려해서 그러는 거라면 신경 쓰지 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아니면?”
“그건…….”
내가 말하지 못하고 우물거리자, 알렉시스가 픽 웃으며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그, 그 얼굴 좀 가만히 둘 수 없어? 왜 자꾸 들이미는……!”
“좋아하잖아, 내 얼굴.”
“……!”
저 요망한 게!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랬다. 알렉시스의 외모는 내 취향에 꼭 맞는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화려한 외모로 이름난 아스트라 혈족들과 지내서인가.
단정한 선의 알렉시스에게 자꾸만 시선이 가곤했다.
“시, 시끄러워!”
알렉시스는 웃으며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아니면 호사가들이 너와 나 사이를 떠들까 봐 그런가?”
“그건……!”
“그래서 황태후가 나와 널 지키려 달리아와 결혼시킬까 봐.”
나는 뾰로통한 얼굴로 머리를 정리했다.
“아니거든?”
알렉시스가 날 끌어안았다.
“뭐, 뭐, 뭐 하는……!”
“할래?”
“……뭐?”
알렉시스가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반지였다.
어린애 손가락에나 들어갈 것 같은 반지.
평소 내가 끼는 화려한 보석 반지도, 금으로 된 반지도 아닌 쇠반지.
얼마나 오래 간직하고 있었는지, 이곳저곳이 변색되어 있었다.
“이그리츠 부대에서 용병 일을 해서 처음 돈을 받은 날이었어.”
“…….”
“내 손으로 처음 돈을 번 거야.”
“응.”
“뭐 하나라도 선물하고 싶어서 무작정 액세서리 샵에 들어갔지.”
“…….”
“하지만 내가 가진 돈과는 단위부터 다르더라고. 번듯한 건 300골드, 500골드…… 그곳에서 내가 살 수 있던 건 이 반지가 유일했지.”
“……샀으면서 왜 안 줬어?”
알렉시스는 희미하게 웃었다.
“다음날에 본 네 손에 그 샵에서 가장 비싼 반지가 끼워져 있었거든.”
“…….”
기억난다.
처음 용병 일을 했다는 알렉시스가 걱정되어서 찾아갔던 일이 있다.
다치진 않았는지, 힘들진 않았는지 이것저것 물었는데 알렉시스는 내 손만 보고 있었다.
“묻잖아! 안 다쳤냐고!”
“……어.”
“뭐에 그렇게 정신이 팔려서…… 내 반지?”
“네가 액세서리를 하고 다녔던가?”
“지난번에 상점가에 갔는데, 발자크가 무작정 사줬어. 어울릴 것 같다면서.”
“…….”
“왜?”
“별 것 아냐.”
“그래서 못 줬구나.”
알렉시스가 희미하게 웃었다.
“초라해서 네게 어울릴 것 같지 않았어.”
“…….”
“난 아직도 초라하고 네게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남자지만, 그래도—.”
“…….”
“그래도 괜찮다면…… 받아줄래?”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째서 알렉시스에게만은 눈물을 참을 수 없는 걸까.
차마 반지를 주지 못하고, 손을 뒤로 감춘 어린 그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나 오래 날 좋아하고, 그 어떤 순간에도 변함없이 내 뒤를 지키던 그가 애틋했다.
나는 치미는 울음을 꾹 참으며 손을 내밀었다.
“끼워줘.”
“…….”
“끼워줘, 이 바보야.”
알렉시스가 내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반지는 약지엔 결코 들어가지 못했다.
새끼손가락에 전부 들어가지 못하고, 애매하게 걸린 반지를 보고 난 말했다.
“알아? 반지를 오래 끼고 있으면 손가락이 가늘어져. 그러니까…….”
난 훌쩍 눈물을 훔치고 알렉시스를 살짝 쏘아보았다.
“내 손가락에 이 반지가 완전히 들어가기 전에 새로운 걸 가져와.”
알렉시스의 동공이 가늘게 흔들렸다.
그 어린 날, 나를 보던 작은 알렉시스의 눈빛처럼.
난 웃으며 반지를 낀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프러포즈 반지는 이거로 충분하니까, 결혼반지를 가져오란 말이야.”
“…….”
알렉시스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감정을 참듯 마른침을 삼킨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난 장난스럽게 말했다.
“울어? 우냐?”
알렉시스가 내 코를 가볍게 잡고 흔들었다.
“그만 놀려라.”
난 그의 목에 팔을 감고서 말했다.
“하지만 넌 이런 날 좋아하잖아.”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어버리곤 내 목에 얼굴을 묻었다.
“맞아.”
“쇳덩이도 좋으니까 이번엔 늦지 않게 가져와라, 응?”
“알겠다니까…….”
“그리고 얼굴 좀 떼볼래?”
“……왜?”
그가 고개를 들며 물어서 난 양손으로 홱, 그의 얼굴을 내 코앞에 가져왔다.
“왜겠니?”
쪽, 입을 맞추자 알렉시스의 눈이 커다래졌다.
아주 눈이 떨어질 것처럼 크게.
그의 목울대가 크게 흔들렸다.
나는 또 한 번 짓궂게 물었다.
“좋아죽겠어?”
“이게 진짜.”
“왜. 뭐.”
“눈이나 감아.”
그가 내 목을 끌어당겼다.
나는 끝까지 “좋아, 기분이다.” 하며 그를 놀리곤 눈을 감았다.
그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다정하게 맞붙었다.
* * *
이튿날.
내가 입궁했을 땐 황궁이 뒤집혀 있었다.
알렉시스가 라온트라의 황자, 메르세데스의 얼굴에 장갑을 던진 것이다.
메르세데스의 얼굴에서 흘러내린 장갑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이게 무슨 짓이지.”
알렉시스는 손목을 가볍게 돌리며 메르세데스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 쪽이 더 잘 알겠지.”
“전혀 모르겠군. 제대로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본국의 귀족을 건드렸다. 에릴로트 아스트라의 납치를 사주했다. 허가 없이 본국의 영토에 군사를 풀었다. ……이 이상 이유를 더 들어야겠는가?”
“……!”
그랬다.
내 납치를 사주한 건 메르세데스였다.
‘궁주 쪽일 줄 알았는데, 의외더라고.’
하지만 이건 아스트라의 공작 직속 정보부와 황군이 함께 확인한 사실이었다.
기사 클립토의 모친은 메르세데스의 유모였다.
따로 배신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라온트라의 기사들이 메르세데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을 받은 것도 확인 완료.
‘그러니까 너 맞잖아.’
아니나 다를까 메르세데스는 잔뜩 굳어있었다.
그의 뒤에 있던 기사 클립토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렸고.
클립토가 어찌 된 것이냐는 듯, 알렉시스의 등 뒤에 있던 나를 쳐다봤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메르세데스는 이를 꽉 깨물곤 알렉시스에게 말했다.
“오해가 있는 모양이군.”
“아스트라와 황군이 확인을 마쳤다.”
“이쪽은 귀국의 오해라 분명히 말했어!”
“라온트라 황궁에서도 사람을 파견해 함께 확인하길 바라나?”
메르세데스가 흠칫했다.
“자리를 마련하지. 우리 사이엔 대화가 필요한 것 같으니.”
그러며 그는 “따라와라.” 말하며 제 방의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쾅—!
알렉시스의 손에 목이 잡힌 메르세데스가 그대로 끌려와 벽에 처박혔다.
“이게 무슨 짓……!”
“사과가 먼저.”
“뭐?”
“감히 납치 같은 치졸하고 무도한 수단을 쓴 점, 실로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을 것임을 황가의 이름 앞에 맹세합니다. —라고 해.”
“너, 이……!”
메르세데스가 벗어나려는 듯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암만 뛰어난 가호를 가지고 있어도, 어려서부터 전장에서 자란 알렉시스를 어떻게 이기겠는가?
“내 인내는 길지 않아, 라온트라의 황자.”
“전쟁이라도 벌일 셈이냐! 감히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성싶은—”
“라온트라에서도 한참 후계 다툼 중이라지.”
“……!”
“황제가 이 소식을 들으면 너는 물론이고, 후계 서열 1위인 네 형에게도 피해가 갈 텐데.”
“…….”
“제정신이 아니라면 네 아버지에게 매달려봐. 서제국의 황자에게 얻어맞았다고 가서 일러라.”
“이, 이 미친 자가……!”
또 한 번 쾅! 소리 나도록 메르세데스를 벽으로 바짝 민 알렉시스가 말했다.
“쉽게 끝내자고. 팔 한쪽만 내어준다면 이쪽도 용서를 생각해보지.”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도 싫다면 내 연인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야 할 것이다.”
황궁 복도가 크게 술렁였다.
무슨 일인가 하여 구경하던 태양회의 왕족들.
제국의 시종들.
심지어는 자리를 지나가던 관료들까지 크게 당황하여 쑥덕였다.
“여, 연인?”
“연인이라고?”
“에, 에릴로트,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수줍은 표정으로 양 뺨에 손끝을 올렸다.
‘뭐 이렇게 박력있고 난리람.’
아딘이 희게 질린 얼굴로 내 앞에 달려왔다.
“저게 무슨 소리야!”
“뭐…….”
그렇게 됐어.
그런 눈으로 보니 아딘 왕자와 아비노 왕손의 표정이 굳어졌다.
크리스토퍼도 “호오…….” 하며 나와 알렉시스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때였다.
“그 손, 놓으시지요. 알렉시스 황자.”
벨로스터 궁주가 등장했다.
그 뒤엔 달리아도 있었다.
달리아의 얼굴도 다른 왕자들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그 애가 나와 알렉시스를 번갈아 보다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벨로스터 궁주가 재차 말했다.
“그 손 놓으시라 말씀드렸습니다.”
“사과를 받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겠습니다.”
“본국 황제 폐하께 소식을 전달하고 정식으로 사과드리죠.”
그러자 메르세데스가 울컥 소리쳤다.
“궁주, 그게 무슨…….”
“입 다물어!”
궁주가 크게 일갈했다.
알렉시스는 눈썹을 까딱, 들어 올리며 메르세데스를 놔주었다.
풀려난 메르세데스는 목을 붙잡고 칫, 고개를 돌렸다.
“알렉시스 황자께서 이번 일을 국제 문제로 삼으셨으니, 응당 섭정 황자와 일을 상의해야겠습니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저건 협박이었다.
너희도 좋을 게 없다는 뜻의 협박.
“두 분 모두 함께 가시죠.”
그렇게 말한 궁주가 먼저 자리를 떠났다.
나는 알렉시스에게 말했다.
“내가 말했던 것, 기억하지?”
“그래.”
“잘하고 와.”
“응.”
알렉시스와 메르세데스 또한 궁주를 따라 섭정 황자의 집무실로 향했다.
나는 이 다음 일을 구상하기 위해 대회의장에 있을 아빠에게 가기로 했다.
복도를 걷던 찰나였다.
[결계다.]아웬의 말이었다.
그랬다. 결계가 느껴진다.
이건 지난번에 느꼈던 수호자 구의 결계였다.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말하자마자, 수호자 몇이 내 앞에 다가왔다.
제르모 공작이 마시타브바들, 헤라와 함께 다가왔다.
“저희를 보고 싶어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알면 제발 좀 안 찾아왔으면 좋겠는데요.”
“…….”
수호자들의 표정이 흐려졌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제르모 공작이 내게 말했다.
“이 물건만 전달해 드리면 속히 물러나겠습니다.”
그의 손에 들린 건 웬 펜던트였다.
“그게 뭔데요?”
“저희가 보관하고 있던 메시아의 성물입니다. 진정한 메시아만이 사용할 수 있지요.”
메시아의 성물?
‘그게 뭔데?’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제르모 공작이 말했다.
“잠재력을 끌어내는 성물입니다. 본래 향로와 한 세트로, 수호성을 볼 수 있게 하는…….”
“향로?! 방금 향로라고 했어요?”
“예. 황족, 왕족, 귀족들이 합심하여 저희를 공격했을 때에 향로는 분실되었지요.”
수호성을 볼 수 있게 하는 향로라면 내가 가지고 있는 그거잖아!
제르모 공작이 아픈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부디 이것만은 받아주십시오. 납치당하실 뻔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호자 모두가 지옥을 헤매는 기분이었습니다.”
“…….”
“제대로 지키지 못해 송구한 마음입니다.”
아, 저거 갖고 싶은데.
향로는 너무 커서 들고 다니기 힘들지만 저렇게 조그만 펜던트라면……!
‘하지만 저 놈들에게 뭐 하나도 받기 싫다.’
수호자들이 간절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메시아, 이것만은 제발…….”
나는 격렬하게 고민했다.
‘진짜 갖고 싶다, 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