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3)
이 3세는 악역입니다 33화.(33/390)
33화.
* * *
마차에 짐이 실렸다.
미켈란은 양피지에 쓰인 것들을 하나씩 체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책이 하나 부족한데. <마력의 이해>가 없다.”
“2번 마차에 있습니다!”
“책은 1번 마차에 모두 모아라. 추후에 찾기 쉽도록. 옷은 몇 번 마차에 있지?”
오늘은 나와 발자크, 요슈아가 공작성으로 출발하는 날이었다.
쌍둥이는 남은 열흘을 전부 관할성에서 보냈다.
“이제 사저는 정리할까?”
“그래. 휴식기엔 여기로 오면 되니까.”
사저까지 정리해버리고서.
나는 미켈란에게 도도도 뛰어가서, 소매를 짤짤 흔들었다.
“미케란, 미케란.”
“예, 아가씨.”
“한은 어떻게 되어써?”
한지혁을 말하는 거다.
걔는 내 손발이 되어 줄 사람이라 곁에 있는 쪽이 좋다.
“공작성 차출 명단에 넣었습니다.”
“응!”
3세들은 호위와 유모를 한 명씩 데려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유모가 없어서, 대신 한지혁을 데려갈 수 있게 된 거다.
‘유모를 구하자고는 했지만…….’
난 속으로 씩, 웃었다.
유모로는 이미 마음에 정해둔 사람이 있다.
“아기야, 이제 출발해!”
멀리서 발자크가 내게 손짓했다.
발자크는 최근에 날 아기라고 부르고 있다.
‘야’, ‘쬐깐한 너’, ‘짜리몽땅’ 같은 말로 부르다가 아버지에게 된통 혼이 나고는 호칭이 아기로 굳어진 모양이다.
나는 “응!” 하고 뽈뽈뽈 달려갔다.
발자크와 요슈아, 그리고 내가 탈 마차 앞에는 하인과 병사, 관리들이 한가득 서 있었다.
베티와 하이디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울었다.
“어허어어어엉. 우리 아가씨, 이제 가면 언제 보나……!”
“어허어엉!”
두 사람은 사흘 전부터 울더니, 갈 때까지도 오열이었다.
“휴시끼에 오꺼야. (휴식기에 올 거야.)”
“너무, 너무 멀어요……!”
“아가씨, 식사 잘 챙기셔야 해요. 이불은 꼭 덮고 주무시고, 덥다고 걷어차시면 안 되고……!”
나는 내 양쪽에 달라붙어서 헝헝 우는 하녀들을 흐린 눈으로 견뎌냈다.
‘콩깍지를 너무 씌워놨나 봐.’
하녀들만 그런 상태인 건 아니었다.
관리들도 병사들도 울먹울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들은 왜……?’
“아가씨가 주셨던 성벽 보수 대금…… 잊지 못할 겁니다.”
“걸레짝 같던 무구를 바꿔주신 것도……!”
이제까지 되게 힘들었나 보다.
고용인과 관리,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인사를 받고 있는데, 발자크가 나를 덥석 안아 들었다.
“언제 타려고?”
“슬슬 출발해야 해. 에릴로트.”
먼저 마차에 타고 있던 요슈아가 내게 미소 지었다.
‘요슈아도 엄청 친절해졌단 말야.’
원래 그의 인생엔 적과 졸개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어느 쪽인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요샤, 나 졸개야?”
“뭐라고?”
“아니야?”
“에릴로트, 넌 남매지.”
“발쟈쿠는?”
“아스트라 인명록에 이름 같이 쓰인 거.”
“…….”
……뭐, 그랬다.
“빨리 가자, 빨리.”
“에릴로트, 출발하자.”
“아밤미 못 보구 가?”
나는 눈썹을 늘어뜨린 채 시무룩한 표정으로 성문 쪽을 쳐다봤다.
이민족이 국경선을 또 넘어와서 아버지는 그들을 정리하러 갔는데, 벌써 사흘째 못 돌아오고 있다.
병사들이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편지하실 겁니다.”
“국경선에 발이 묶여서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아가씨 배웅도 못 하게 했다고 길길이 날뛰시는─”
“조용히 못 해?”
병사들이 핼쑥한 걸 보니, 아버지가 엄청나게 화가 났나 보다.
나는 “응.” 하고 마차에 올라탔다.
그러곤 창밖을 보며 손을 팔랑팔랑 흔들어 줬다.
“안넝~!”
“건강히 돌아오셔야 해요!”
“이불 꼭 덮고 주무시고요!”
“혹시 누가 괴롭히면 서신 주십시오!”
사람들은 떠나는 마차를 열심히 쫓아오며 소리쳤다.
요슈아는 쿡쿡 웃었다.
“인기가 좋은걸.”
“나도 우리 성 사란들 조아하니까.”
“그래.”
요슈아가 내 뺨을 쓰다듬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발자크가 날 끌어안고 으르렁거렸다.
“오늘은 내 차례잖아!”
“어제 짐 싼다고 난 곁에 얼마 못 있었어.”
최근 두 사람의 일과는 나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것이었다.
누가 나랑 노느냐를 가지고 엄청나게 싸워대는데, 이러다가 성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순서를 정해줬다.
하루는 요슈아.
하루는 발자크.
그리고, 하루는 아버지.
……아버지는 애들이랑 왜 싸우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신속>의 가호석을 탑재한 마차는 매우 빨랐다.
원래라면 말로 이틀이 꼬박 걸리는 거리인데, 이 마차로는 다섯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쉼 없이 달려서 정확히 다섯 시간.
우리는 공작성 입구에 다다랐다.
성 입구에는 엄청나게 많은 마차가 줄을 이루고 있었다.
“우와…….”
“놀랄 것 없어. 다 혈족 교육을 받으러 온 애들이니까.”
요슈아의 말에 발자크가 으, 하며 질색했다.
“이놈의 아스트라는 왜 이렇게 애들이 많은 거야.”
“선대 때부터 이어진 폐단이지, 뭐.”
“엥?”
발자크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자, 요슈아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선대는 가호 수집에 열 올리던 미친 작자잖아. 손주를 보려고 자식에게 얼마나 많은 이성을 붙였는지 몰라?”
“아……. 할아버님도 결혼을 억지로 아홉 번이나 하셨댔지. 그러니 이렇게 사람이 바글바글할 수밖에.”
“뭐, 선대가 유난히 핏줄에 미친 작자였던 건 맞지만, 웬만한 귀족 가문에서도 자식을 많이 보지. 가호는 재산이니까.”
‘와…….’
나는 발자크와 요슈아를 쳐다보며 눈을 깜빡였다.
‘아직 어린데 가문 일을 이렇게 잘 아네.’
선후 관계도 잘 이해하고.
내가 어려운 말을 해도 어른들이 그렇게까지 크게 놀라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어쨌든 우리는 관문을 통과할 때까지 아주 오래 기다려야 했다.
겨우 통과하고서도, 짐도 풀지 못하고 바로 회장으로 갔다.
회장 앞에 서자, 경비병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데이몬드 관할령의 발자크 님, 요슈아 님, 에릴로트 님 드십니다!”
거대한 문이 열렸다.
회장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족히 스무 명은 되는 아이들이 우리에게 집중했다.
“발자크야. 오늘도 무시무시하네.”
“요슈아가 지난번에 2위였나?”
“재수 없게.”
“꺄……. 오라버니들이 오셨어!”
수군거리는 와중에 누군가 말했다.
“더러운 피다.”
순식간에 내게 시선이 쏠렸다.
나를 보는 눈에 조롱이 섞여 있었다. 몇몇 애들은 “으.” 하며 질색인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쾅─!
발자크가 테이블을 걷어찼다.
“조프리. 내가 주둥이 함부로 놀리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
“바, 발자크.”
요슈아가 주변을 슥, 돌아봤다.
“몇 달 못 봤다고 벌써 겁을 상실하면 어떡해.”
조프리라 불린 남자애가 울컥해서 소리쳤다.
“내가 틀린 말 했어?! 그리고 너희랑은 상관없는 얘기잖아!”
“동생이다.”
“동생이야.”
발자크와 요슈아가 동시에 말했다.
‘이럴 때 보면 진짜 쌍둥이 같네.’
회장이 술렁였다.
<빙.흑.손>에서도 수없이 ‘사람에게 정이 없다’라고 강조하던 쌍둥이다.
곁에서 지켜봐 온 사촌들이 듣기엔 꽤 당혹스러운 말이었을 거다.
‘잠깐만, 그럼 이거…… 나 뒷배가 생긴 건가?!’
물론 아버지가 뒷배로 있지만, 3세들 교육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순 없다.
‘그러니까 교육장에서의 뒷배가 필요했는데……!’
머릿속에서 뎅─뎅─뎅─ 종이 울리고, 팡파르가 펑펑 터졌다.
나는 양손으로 뺨을 감싸 쥐었다.
‘잘했다, 나!’
아스트라 혈족들은 대부분 공격계 가호가 있다.
반면에 내 가호는 댓글 읽는 것으로, 위급 상황에선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발자크와 요슈아는 이 아스트라 3세들 가운데서도 최고의 무력을 자랑한다.
‘쪼꼬미 형제들, 든든하잖아.’
나는 속으로 히죽히죽 웃었다.
그때였다.
“드뷔시 자작 드십니다!”
‘드뷔시 자작?’
경비병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발자크와 요슈아, 그리고 나는 얼른 자리에 앉았다.
드뷔시 자작이 검은 로브와 학사모를 쓴 사람들과 함께 문 안으로 들어왔다.
단상 위로 올라온 드뷔시 자작이 말했다.
“혈족 교육을 총괄하게 된 오베릭 드뷔시입니다.”
나는 깜짝 놀란 눈으로 드뷔시 자작을 쳐다봤다.
원래 혈족 교육의 총괄은 다른 사람이었다.
드뷔시 자작은 할아버지의 최측근으로 가신 단속이 그의 역할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던 난 곧 ‘아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은 3세들이 감당이 안 됐구만.’
그러니까 3세들 사이에서 입김이 통하는 드뷔시 자작을 총괄 자리에 앉혀둔 거다.
“가문의 전통에 따라 여러분은 모든 것을 서열을 통해 배분받게 될 것입니다. 기거하실 방, 하인, 용돈까지도 말입니다.”
단상 앞쪽에 앉아 있던 칼단발의 여자아이가 손을 들었다.
“아직 짐을 못 풀고 있는데, 방이 배정되지 않아서인가요?”
“바로 맞추셨습니다.”
그 말에 아이들이 앞다퉈 질문했다.
“지난 분기 서열에 따라 나뉘는 거야?”
“저는…… 몸이 좋지 않아서…… 지난 분기엔 없었는데…… 순위를 모르면 어떻게 하나요?”
“지난 분기 서열은 엉터리야! 나는 외부 훈련에서 다쳐서 시험을 보지 못했다고!”
왁자지껄해지자, 드뷔시 자작의 뒤에 서 있던 교수들이 골치 아픈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드뷔시 자작이 사회대를 탕, 탕, 두드렸다.
“방은 바로 오늘 치를 시험 결과에 따라 배정될 것입니다.”
오늘?!
회장이 혼란스러워졌다.
뒤통수를 깍지 낀 손에 기대고 있던 발자크가 칫, 혀를 찼다.
“쉴 틈을 안 주네.”
바른 자세로 앉아 있던 요슈아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저 사촌들은 휴식기에 뭔가 잔뜩 준비해왔을 테니, 처음부터 확인하고 가는 것도 괜찮지.”
드뷔시 자작이 혼란한 아이들을 빙 둘러보고 미소 지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보물찾기를 하게 되실 겁니다.”
“보물찾기?”
“보물?”
“예. 장소마다 각각 숫자가 쓰여있는 쪽지를 숨겨놨습니다. 귀한 곳일수록 순위는 높지요. 여러분께선 지금부터 해 질 녘 만찬이 시작되는 시간까지 쪽지를 찾아오십시오.”
그렇게 말한 드뷔시 자작이 단상 위에 있던 거대한 모래시계를 돌렸다.
모래시계 안의 모래가 시계 바닥으로 후두두 떨어졌다.
‘저 모래가 다 떨어지면 테스트가 끝나는구나.’
애들은 곧장 문을 나섰다.
발자크와 요슈아도 몸을 일으켰다.
“요슈아, 넌 어디로 갈 거야?”
“적에게 전술을 공개하는 바보가 어딨어?”
“칫.”
팔짱 낀 발자크가 이번에는 내게 물었다.
“아기, 넌 어디로 갈 거야?”
“음…… 비미리야.”
“좋아, 그럼 누가 제일 먼저 찾는지 내기야.”
우리 셋은 얼른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3세 교육장으로 쓰이는 신관을 지나갔는데…….
“너희 뭐야?!”
“너야말로.”
“웅?”
셋이 나란히 같이 가게 되었다.
‘설마 목적지가 같은가?’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발자크와 요슈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
“…….”
“…….”
우리 셋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할아버지의 집무실.’
그랬다.
집무실로 온 건 우리만이 아니었다.
먼저 나온 애들의 대부분이 집무실 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다들 눈치채고 있었구나.’
아스트라에서 가장 고귀한 곳이라면 가주의 방이 아니겠는가!
“가주님께서 언제 나오실까.”
“밀지 좀 마.”
“안에 계셔? 못 들어가는 거야?”
애들이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가만히 할아버지의 집무실을 쳐다봤다.
모두가 예상 가능한 장소.
서열.
시험.
드뷔시 자작이 준 힌트를 모두 조합하자, 답이 딱 나왔다.
‘가진 것을 모두 이용해서 저 문을 열고 들어가라는 소리야.’
부모의 세가 막강한 아이는 부모에게 연락할 것이고.
인맥이 좋은 아이는 인맥을 이용할 것이며.
육체 능력이 뛰어난 아이는 저 집무실에 몰래 잠입해라.
진짜 ‘서열’을 확인할 수 있는 보물찾기였다.
“아하.”
옆에서 요슈아의 실소가 들려왔다.
머리 좋은 그도 출제 의도를 눈치챈 모양이다.
발자크만,
“왜? 뭔데? 나만 빼고 왜 다 아는 표정이야?”
─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 * *
시간이 지나면서 높은 서열 권의 아이들은 출제 의도를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들은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조프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다들 어디 가는 거야.’
여기가 제일 귀한 장소가 아닌가?
조프리는 인상을 찌푸린 채 옆에 있던 여자아이를 툭툭, 걷어찼다.
“야, 산발.”
“어, 어?!”
“쟤들 다 어디 가는 거야?”
까마귀처럼 새카맣고, 푸들처럼 잔뜩 곱슬곱슬한 머리를 가진 이 여자아이의 이름은 디오네라였다.
못생기고 소심하지만, 그래도 가끔 머리를 잘 돌릴 때가 있었다.
“어디 가는 거냐니까?”
“지, 집무실에 들어갈 방법을 마련하러 간 것 같은데…….”
“방법?”
“으응. 집무실에 들어가는 게 진짜 시험이니까…….”
디오네라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조프리가 왈칵 인상을 썼다.
“그걸 왜 지금 말해!”
“조, 조프리가 지금 물어봐서…….”
디오네라가 우물거리는 사이, 조프리는 재빨리 뛰었다.
‘아까 그 더러운 피도 어딜 가던데.’
그것 때문에 발자크에게 한 방 먹은 걸 생각하면 분하다.
별관 쪽으로 가는 것 같았다.
‘쌍둥이랑은 떨어진 것 같고…….’
조프리는 히죽 웃었다.
처음으로 혈족 교육장에 왔으니, 신고식을 치르게 해줘야지.
그리고 제 처지를 느끼게 해줘야겠다.
‘더러운 피의 처지는 어떤 건지 확실하게 알게 되겠지.’
조프리는 별관 쪽으로 몸을 틀었다.
에릴로트를 찾아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노란 뒤통수가 코너 쪽으로 쏙 빠지는 게 보인다.
따라가 보니 청소 용구를 넣어두는 창고였다.
‘하, 창고로 가는 거야?’
집무실에 들어갈 방법이 없으니, 다른 쪽을 노리는 모양이었다.
조프리는 비식, 웃고 창고 쪽으로 조심히 다가갔다.
그리고 에릴로트가 문 안으로 들어간 순간.
쾅─!
문을 닫고, 잠가버렸다.
“만찬이 끝날 때까지 넌 여기에 있어. 더러운 피 따위가 감히 아스트라 성에 온 대가야!”
낄낄 웃은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