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35)
이 3세는 악역입니다 35화.(35/390)
35화.
에릴로트의 옆에 있던 아이들이 허겁지겁 테이블에 와르르 쏟아져 있는 쪽지를 펼쳤다.
21위, 17위, 16위, 15위…… 4위?!
“4위도 있잖아!”
“도소간에서 차자써. (도서관에서 찾았어.)”
그때, 발자크가 쪽지를 테이블에 툭 던졌다. 요슈아도 쪽지를 내려놓았다.
발자크가 머리를 긁적이며 귀찮은 투로 말했다.
“순위를 더 부르는 건 의미 없죠? 난 3위를 찾았어요.”
“제가 2위입니다.”
에릴로트와 같이 도서관을 들어가면서 찾은 것이다.
도서관에 가려면 바늘개를 지나야 해서 혼자는 절대 못 들어간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놀라서 에릴로트와 쌍둥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자 씩씩거리던 조프리가 버럭 소리쳤다.
“이런 게 어디 있어! 네가 다 가지고 있으니까 우리는 찾을 수가 없잖아! 이건 반칙이야! 반칙이라고!”
분을 못 이긴 조프리가 에릴로트에게 삿대질하며 꽥꽥 소리 질렀다.
어른 중에서도 조프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있었다.
자기 자식이 쪽지를 찾지 못한 부모였다.
“테스트가 똑바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한 아이가 쪽지를 독점하는 바람에 다른 아이들이 기회를 잃었지 않습니까.”
조프리가 동조에 힘입어 벌떡 일어났다.
“자작이 여러 개를 찾아도 된다고 한 적 없잖아!”
에릴로트가 순진한 표정으로 갸우뚱하며 말했다.
“자작이 하라고 안 해쓰며는 다 반칙이야? 구론데 왜……. (자작이 하라고 안 했으면 다 반칙이야? 그런데 왜…….)”
에릴로트는 주변을 쭉 둘러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작이 부모밈하테 도움 바드라고 한 적이 엄는데, 다들 어멈미, 아밤미룰 불러써? (자작이 부모님한테 도움을 받으라고 한 적이 없는데, 다들 어머니, 아버지를 불렀어?)”
조프리의 어깨가 흠칫 솟구쳤다.
에릴로트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만 반칙인 건 이상하다. 구치?”
그 미소가 너무나 공작을 닮아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쿡.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일시에 소리가 난 곳에 시선을 집중했다.
공작이 입꼬리를 올리고 에릴로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에릴로트의 말이 맞다.”
“아, 아버님!”
“조부님…….”
공작이 탕! 테이블을 주먹으로 거세게 내리쳤다.
“네 아비가 감히 내 앞에서 소란을 부려도 된다고 가르쳤더냐, 조프리.”
“……!”
조프리와 그 아버지인 발데릭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조프리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조부님…….”
공작이 허공에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내 보기엔 세 살 에릴로트만 한 놈이 없구나. 테스트는 이것으로 종료해라.”
“예, 공작님.”
3세(공작의 손자) 부모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에릴로트가 단번에 확 치고 올라왔으니까.
게다가 아버님이 웃으셨어?
“대체 뭐야, 저 애는…….”
누군가 중얼거리자, 데이몬드가 가볍게 대답했다.
“뭐긴 뭐야. 내 딸이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지만, 입꼬리가 하늘을 향해 승천해서, 내려올 줄을 몰랐다.
* * *
만찬이 끝나고, 나와 쌍둥이는 만찬장에서 나왔다.
식사하는 동안 방 배정이 끝나서, 하인들이 짐을 모두 옮겨 놓았다고 했다.
드뷔시 자작에게 방 위치를 들은 난 신이 절로 났다.
‘역시 4위는 그 방일 줄 알았어!’
발자크는 폴짝폴짝 걷는 날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기, 기분 좋아?”
“응!”
“1위 방을 못 받았는데?”
드뷔시 자작은 ‘내게 1위 방을 줄까’ 하고 고민하는 것 같았지만 난 4위의 방이 좋다고 했다.
‘딱 노리던 방이니까.’
“조아!”
대답하자, 요슈아가 쿡쿡 웃음을 터뜨렸다.
“잘됐다. 우리 방도 네 방 바로 옆이야.”
알고 있었다.
애초에 이 배치를 노리고 2, 3위의 쪽지를 찾게 도와준 거니까.
도서관 주변에 쪽지가 있다는 걸 알고 있던 나는 쌍둥이를 슬쩍 끌어들였다.
‘발자크와 요슈아는 기척에 예민하니까, 혹시 누가 날 노리고 내 방에 침입하면 도와주겠지.’
“구론데 아밤미랑 인사 안 해?”
“만찬이 끝나면 2세들과 조부님이 티타임을 가져.”
요슈아가 말하는데, 발자크가 덧붙이며 입을 열었다.
“말이 티타임이고 실상은 보고회지 뭐. 내가 이런 큰일을 했고, 요새 황도엔 무슨 일이 있고…….”
“어떻게든 조부님 마음에 들려고 혈안이니까.”
“그래도 장군이 티타임까지 계실 줄은 몰랐는데. 안 그래, 요슈아?”
“내가 보기엔…….”
중얼거리던 요슈아가 픽 웃었다.
“이야, 형님의 아이들은 대단하더군요. 발자크와 요슈아는 아주 높은 순위를 찾지 않았습니까.”
“뭐, 별거라고.”
“하지만 5위와 4위 아닙니까.”
“3위와 2위.”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더니, 형제가 쌍둥이의 순위를 틀리자 눈을 부릅뜨고 정정했다.
“에릴로트가 쪽지를 10개나 찾았더군요.”
“14개.”
“아…….”
“21위, 17위, 16위, 15위……(중략)……그리고 4위까지.”
“하하…….”
쪽지 개수를 틀렸을 땐 거의 안광을 발사하는 수준으로 정정해주었다.
요슈아가 흘낏 만찬장 쪽을 돌아봤다.
“자랑하시려는 거겠지.”
발자크가 킬킬거리며 말했다.
“며칠 전에는 그리 좋은 성적 받으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된다더니.”
‘부담가질까 봐 그런 거겠지.’
겨우 아버지와 사이가 좋아진 쌍둥이다. 애들이 이 사이를 유지하기 위해 성적에 전전긍긍할까 봐 그런 것일 터.
하지만 자식이 좋은 성적을 받는 걸 싫어하는 부모가 어디 있던가?
‘아버지를 기쁘게 했어.’
나는 또 기분이 좋아져서 헤죽헤죽 웃었다.
그렇게 얘기를 하면서 걸으니 금세 신관에 다다랐다.
신관의 방은 문 색이 다 달랐다.
발자크의 방문은 붉은색, 요슈아의 방문은 청색, 내 방문은 검은색이었다.
“아기, 혼자 자는 게 무서우면 내 방에 와도─”
나는 쏜살같이 방에 쏙 들어갔다.
“…….”
“멍청이.”
등 뒤에서 요슈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이윽고 두 사람이 각각 배정된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내 방에 들어온 나는 “와아…….” 하고 탄성을 흘렸다.
세월에 잘 길들어진 중후한 색의 가구.
고풍스러운 무늬의 벽지.
금 꼬챙이를 마구잡이로 뭉쳐놓은 것 같은 특이한 형태의 샹들리에.
‘소설 속의 묘사랑 똑같네.’
여기가 바로 <빙.흑.손>의 에릴로트가 지내던 방이다.
무능력자였던 에릴로트가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4위를 지키려 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난 방을 둘러보다가 테라스를 발견했다.
‘와, 저기─!’
저것도 소설에서 봤다.
나는 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갔다.
딱 이 방에서만 보이는 호수 위로 초승달의 그림자가 떠올라 있다.
‘정말 달의 차를 마시는 것 같네.’
이 달차는 신에게 버려진 자신에게 세상이 준 딱 하나의 선물 같다고 했던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고…….
한참 달차를 바라보다가, 핫! 숨을 들이켰다.
‘이럴 때가 아니지.’
에릴로트가 이 방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했던 또 다른 이유.
그것을 찾아야 한다.
난 드레스룸으로 달려갔다.
‘음, 왼쪽에서 세 번째라고 했으니까…….’
쫑쫑쫑 걸어서 왼쪽에서 세 번째 장을 찾았다.
문을 열고 바닥을 떠듬떠듬 만져 보자, 손끝에 무언가가 걸렸다.
그걸 누르니 드르륵, 소리와 함께 옷장 안쪽 벽이 열렸다.
‘있다, 진짜 있어!’
행여나 누가 발견할까 봐 옷장 문을 잘 닫고 벽 안으로 들어갔다.
3세들이 지내는 이 신관은 선대 공작의 ‘실험장’을 개조한 것이다.
선대 공작은 가호에 미친 사람이었다.
이렇게 큰 실험장을 만들어 온갖 끔찍한 실험을 시행했다.
할아버지는 공작이 되자마자, 끔찍한 이 실험장부터 부숴버렸다.
‘아마 할아버지도 여기서…….’
생각하니까 등골이 오싹해져서 고개를 좌우로 휘휘 저었다.
쾌쾌한 지하실 특유의 냄새가 났다. 조심조심 먼지가 자욱한 실험실의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 끝에 다다라서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벽을 더듬거렸다.
그러다 무언가에 닿았는데, 지하가 환해지며 모습을 드러냈다.
“대박─!”
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이 지하실은 바로 실험장의 재료창고.
온갖 고대의 유물들과 가호를 고체화시킨 가호석이 잔뜩 있었다.
나는 양 뺨을 잡고 황홀한 표정으로 소리 없이 비명을 내질렀다.
‘만세다!’
<결계>의 가호석.
<수인화>의 가호석.
<식물 급속 성장>의 가호석.
종류도 엄청나게 다양하다.
‘이걸 다 모으려고 했으면…….’
가호석이란 건 사람이 죽을 때 나오는 거다.
산 사람에게서 가호를 빼낼 수 있지만, 그것도 <결정화>라는 가호가 필요했다.
그토록 어렵게 꺼낸 가호석이라도 평생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횟수가 정해져 있는데, 휴대폰처럼 배터리 잔량이 표시되어 있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못 쓰게 된다.
나는 가호석을 휙, 휙, 던져가며 색깔을 확인했다.
‘연두색, 연두색의 마름모꼴…… 찾았다!’
나는 어린애 손바닥만 한 가호석을 뺨에 비볐다.
‘아휴, 이렇게 귀한 가호석이 누추한 데서 고생했네.’
이제 내가 요긴하게 써줄게.
그러고 벌떡 일어나려는데 뭔가 툭, 발에 채였다.
‘성배?’
도금되어 있던 부분이 잔뜩 벗겨져서 엉망진창인 성배였다.
만지면 내 손에도 녹이 슬 것 같았다.
‘이런 것도 지하창고에 있다고 했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 있을 수도 있지.’
여기 있는 게 다 소설에 서술되진 않았을 테니까.
나는 연두색 가호석을 들고 룰루랄라 지하창고를 나왔다.
* * *
밤엔 한지혁을 몰래 호출했다.
우리는 관할성을 떠나기 전에 한가지 약속을 했다.
“1층 장식장의 부엉이 조각상이 반쯤 돌아가 있으면 네 방으로 오라고?”
“웅!”
한지혁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눈이 퀭하니 반쯤 혼이 빠진 얼굴이었다.
“또 투구 닦아써?”
한지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하지만 여긴 그보다 더한 지옥이야.”
“왜?”
“고용인들이 말 한마디를 안 한다고. 그러곤 누가 실수하면 빤히 보고만 있어. 그래서 넘어가 주려는 건가? 생각했더니, 집사에게 다 보고되어서 급료가 깎인다는 거야!”
한지혁은 벌써 20실버나 까였다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공작성은 원래 무서운 곳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남의 실수를 발견해서 집사에게 고자질하면, 돈을 받는다.
실수한 사람이 깎인 돈에서 절반을 받는 거다.
그래서 다들 눈을 부릅뜨고 일을 하면서도 타인의 실수를 감시했다.
일부러 실수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너 여기서 출세할 거 아니자나.”
“그렇긴 하지만, 20실버라고!”
“몇백만 골드나 이짜나.”
“아……. 맞다. 망명 준비한다고 늘 가난하게 살아서 자산가가 된 걸 깜빡했네.”
“…….”
역시 지금이라도 수족을 바꾸는 게 낫지 않을까.
가늘게 뜬 눈으로 한지혁을 바라보다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바다. (이거 받아.)”
아까 지하실에서 찾은 연두색 가호석을 한지혁에게 건넸다.
“이게 뭔데?”
난 히죽히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한지혁이 그런 나를 보고 한쪽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럴 때마다 진짜 못 돼 보이는 거 알아?”
“난 원래 악역이고든?”
“아무튼, 그래서 이게 뭔데.”
“보쩨의 가호석. (복제의 가호석.)”
“복…… 제?”
한지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복제로 뭘 하게? 가호석이라도 복제하게?”
“그런 엄청난 고는 고대잉들이나 가능한 고지.”
가호가 가장 강력했던 건 고대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호는 점점 약해졌고, 현대에 이르러선 고대인의 5퍼센트도 흉내 내지 못할 지경이었다.
‘옛날엔 <강화>도 신체 능력만 강화한 게 아니라던데.’
강화석처럼 타인의 가호도 강화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 복제의 가호석은 물건 정도나 복제할 수 있다.
만약 그 물건이 고대유물 같은 거라면, 신묘한 힘까지는 복제할 수 없고 껍데기만 복제하는 정도다.
“네가 보쩨의 가호석을 가지고 이따고 소문을 내.”
“또 소문? 왜?”
“그래야 귀한 거슬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접근하테니까.”
“……뭐 찾는 거라도 있어?”
나는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
“그림?”
황태후가 친정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는 그 그림.
그건 그녀가 젊었을 적에 누군가에 의해 분실됐다.
‘황태후는 지금도 엄청난 금액을 들여서 그림을 추적 중이지.’
현재 그 그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정체는 모르지만, 한가지 아는 건 있다.
‘미술품 애호가라는 것.’
천재의 마지막 유작이라는 그 그림은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한들 내놓긴 힘들 거다.
‘하지만 복제가 가능하다면?’
돈이 탐나서 복제하려고 할 거다.
원본은 자신이 갖고, 복제품을 황태후에게 넘기면 되니까.
‘<빙.흑.손>에선 화가를 고용해서 위작을 만들지만, 복제가 있다는 걸 알면 이쪽으로 오겠지.’
내가 내용을 설명해주자 한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찾아주면 황태후가 엄청 고마워하겠네. 근데…… 왜 황태후의 환심을 사려고? 너는 아스트라 공작을 할아버지로 뒀는데 그럴 필요가 있어?”
“바보. 언래 건력자하고는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놔야 하는 고야. (바보. 원래 권력자하고는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놔야 하는 거야.)”
손바닥 비비기만으로 최연소 대리 승진을 앞두고 있던 나라 이 말이야.
‘외부에도 뒷배를 만들어놔야지.’
나는 음흉하게 웃었다.
“그럼 이제 빤니 가.”
“간다, 가.”
복제의 가호석을 주머니에 넣은 한지혁이 방문으로 걸어갔다.
막 나가려던 그가 날 빙글 돌아봤다.
“근데.”
“웅?”
“너 좀 조심하는 게 좋겠더라?”
그게 무슨 말이야?
한지혁이 한달음에 내 앞으로 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누가 네 방 앞에 있다가 내 인기척을 느끼고 도망쳤거든. 어두워서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덩치가 꽤 커 보였어.”
“…….”
한지혁이 내 코를 살짝 쥐었다.
“다치지 마. 넌 내 동아줄이잖아.”
“가.”
나는 한지혁의 등을 밀며 얼른 쫓아냈다.
그러고 침대에 폴짝 뛰어들었다.
아, 푹신하다 푹신해.
‘뭐, 직계들 중에 누구 하나가 시킨 거겠지.’
오늘 내가 그렇게 잘했으니, 약이 바짝 올랐을 거다.
침대에 누워있자니 잠이 솔솔 왔다.
오늘 쪽지 찾는다고 너무 뛰어다녀서 그런 것 같다.
금세 까무룩 잠에 푹 빠졌다.
* * *
눈을 떴을 땐 눈앞에 보이는 건 파티장이었다.
응? 이게 뭐지?
몸을 내려다보니 나는 어느새 훌쩍 큰 성인이었다.
손을 꼬물꼬물 움직이려고 했는데, 미동조차 없었다.
‘또 꿈인가.’
나는 아마도 누군가의 몸에서 어떤 장면을 보고 있는 모양이다.
몸 주인이 하는 대로 난 구석에 서 있었다.
그 누구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음악이 수없이 바뀌는 동안에도 홀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왜 안 가는 거야.’
다들 여봐란듯이 무시하는데.
그때, 문밖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그리미에 관할령 달리아 님 드십니다!”
달리아라고?
주인공의 이름을 들은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달리아는 그리미에 백부님의 팔짱을 끼고 파티장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 그 애에게 우르르 몰려들었다.
“어쩜. 성인이 되고 세 번째 가호를 발현하셨다면서요?”
“멋져라. 역시 신의 사랑을 받는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어요.”
사촌들도 모두 다정한 표정으로 달리아를 바라봤다.
“스무 번째 생일 축하한다, 달리아.”
“이건 내 선물.”
달리아는 매우 행복해 보이는 표정을 하고 선물을 받아들었다.
‘대체 뭐야.’
달리아의 스무 번째 생일파티라니.
파티가 있었다는 건 언급되었지만…….
달리아는 이 공작성으로 돌아와서 처음 맞은 생일을 떠올렸다. 그녀의 스무 번째 생일파티는 황홀하게 아름다웠다.
─정도로 요약 서술되었다.
‘난 이런 장면은 읽은 적 없어.’
달리아는 중앙에서 매우 빛났다. 빛이 강해질수록 몸 주인이 있는 구석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아…. 언니!”
몸 주인을 발견한 달리아가 다가왔다.
몸 주인은 움찔하며 손에 든 것을 등 뒤에 숨겼다.
촉감으로 보아 편지인 듯싶었다.
‘생일 축하 카드를 썼나?’
“와 주셔서 감사해요, 에릴로트 언니.”
에릴로트?
‘이 몸 주인이 에릴로트라고?’
에릴로트는 달리아를 끔찍하게 싫어했는데, 어째서 파티에 온 거지?
그것도 편지를 써서.